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34)
“걱정 마, 안 잡아먹을게.”
악몽이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숨결에서는 짙은 장미향이 났다.
“착한 아이야, 나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의 마지막 선물을 받으렴.”
그러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
하지만, 그것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 우읍!”
반문하려는 내 입을 갑자기 악몽의 입술이 집어삼킬 듯 덮쳐 왔다.
불꽃처럼 뜨겁고,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아름답고 덧없으며, 왠지 모르게 희미한 피맛이 섞인 듯한 달콤한 키스.
너무나 강렬한 자극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악몽이 멍해 있는 나를 보며 아직 끈적끈적한 침이 묻어 있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후후, 맛만 봤으니까 너무 기겁하진 마.”
그녀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뒤를 부탁한다, 가슴 큰 년아.”
***
드르렁~ 쿨쿨!
띠링!
-‘밤에 피는 장미’ 권능이 소멸했습니다.
갓메이커의 메시지 알림 소리에 골방 바닥에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 자고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어라? 내가 언제 잠들었지?”
이불도 안 깔고 방바닥에서 잠들다니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하긴 요새 좀 많은 일을 겪긴 했었지.
“흐음, 뭔가 꿈을 꾼 거 같은데? 무슨 꿈이었더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대부분의 꿈들이 그렇듯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뭔가 좀 강렬하고 슬픈 꿈이었던 것 같은데…….
“응? 이건 뭐지?”
내 주변으로 장미로 보이는 꽃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어제 온 손님 중에 꽃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나?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충 어질러져 있는 꽃잎을 치우고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 거울을 보니, 입술이 마치 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 있는 게 아닌가.
이거 병원에라도 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였다.
음. 내가 확실히 회귀자의 행동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같이 생긴 거대한 신전을 보면 된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신이라 하시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비록 교외긴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신전을 지어 버린 엄청난 행동력의 소유자, 댄디한 매력을 풍기던 중년 사내 강우가 지금은 칭찬을 바라는 소년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차마 내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난 최대한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서 찬사의 말을 쏟아 내 보았다.
“마음에 쏙 드네요. 헬레니즘의 느낌이 나면서 엘레강스하고 고저스하기까지 한 것이 꼭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강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스 신전이 맞습니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네? 맞다고요?”
“마침 헌터워 이후에 그리스 정부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서 싸게 구할 수 있었죠. 다행히 엘프들이 포털 시스템을 빌려줘서 쉽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법으로 열심히 자재를 옮기고 있던 엘프들이 내게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거, 설마 진짜 파르테논신전이었나.
“……싸다는 게 얼마죠?”
아무리 내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저런 신전을 내 황금 신상 열 개로 퉁치기는 턱도 없어 보이는데.
“10억 달러에 샀습니다. 거저나 다름없죠.”
아무래도 내가 회귀자의 금전 감각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나 보다.
생각보다 더 심해!
대충 계산해도 1조가 넘는데 앤티들이 열심히 만들어 준 내 황금 신상을 전부 다 처분해도 모자라겠다!
“화, 환불 안 될까요?”
“엇? 설마 마음에 안 드십니까?”
“너무 비싸기도 하고, 신전이 겉모습은 보기 좋아도 아무래도 생활하기에는 좀 불편할 것 같은데요.”
“아, 그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겉은 신전의 모습이지만 리모델링을 싹 해서 안은 현대풍으로 개조했거든요. 지내시는 데 아무런 불편도 없을 겁니다.”
그건 또 얼마가 들었냐고 차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기에 또 내 평온한 생활을 위해 신전 주위의 땅을 몽땅 사들였다는 말도 들었으니까.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곧 천명에 이르는 엘프들이 이주해 올 텐데 이 정도 부지는 확보해 둬야 합니다.”
그거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건가? 신전도 감당하기 힘든데 엘프들까지 이사 온다니 부담스러워서 위가 쿡쿡 쑤셔 온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 와 있던 내 분신과 신도는 나와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잔근육이 멋있게 드러난 상체를 드러낸 이신이 몸에 묻은 땀을 훔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련장이 제법 마음에 드는군. 고생했다, 강우. 과연 내 신도다.”
“과찬이십니다.”
강우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근육남의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하아압! 근유우욱!”
부지에는 마치 에×랜드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헬스장도 있었는데, 당연히 그곳의 주인은 우리 일호였다.
특수 제작한 거대한 아령들을 양손으로 번쩍번쩍 들며 일호가 환호했다.
“근육을 자극하는 딱 좋은 중량이옵니다! 이제야 좀 운동하는 맛이 나는군요! 껄껄껄!”
“일호 님을 위해 헌터 상점에서 특수 주문한 오리하르콘을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엄청 비싼 물건 아니었나? 분명 S급 헌터들 무구에 사용하는 금속이었을 텐데.
“하아.”
이 정도면 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 들었다.
“성연이는 어디 있어요? 여기 와 있다고 들었는데.”
“조카님께서는 삼신 님과 함께 ‘유일 식물원’에 놀러 가셨습니다.”
식물원도 있다니 대체 이곳은 없는 게 없구나.
나는 한숨을 쉬며 강우가 알려 준 식물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식물원도 다른 곳과 비교해서 제법 넓은 편이라 아이들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동화 .”
한참을 걷다 보니 낭랑하지만 아이답게 조금은 어눌한 성연이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것을 따라가 보니 흐드러지게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미 화원에 이르렀다.
끼익! 끼익!
화원에 놓인 그네 의자에 앉아서 동화책을 낭독하고 있는 성연이와 초코 케이크를 열심히 퍼먹고 있는 삼신이가 보였다.
삼신이 저 녀석은 밥 대신 잔 르망이 사 준 케이크만 먹고 있네? 이빨 안 썩으려나?
기저귀 갈아 준 게 엊그제 같은데 삼신이에게 동화책도 읽어 주고 있는 조카의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했다.
나는 행여나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백수 삼촌의 골방처럼 작디작은 별에는 어린 왕자와 장미가 살고 있었어요.”
조카님, 혹시 그 백수 삼촌이란 게 나 말하는 건 아니지?
“장미는 예뻤지만 성질이 아주 더러웠어요. 장미는 매일매일 백수인 어린 왕자에게 북북 바가지를 긁었어요. 위대하고 강하고 예쁜 자신을 잘 보살피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잔소리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어린 왕자는 이놈의 별을 나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고 결심했어요.”
어째 내가 어릴 때 읽었던 하고는 좀 다른데? 가 저런 내용이었어?
나는 장미 화원에 쭈그리고 앉은 채, 지금이라도 교육상 저 괴상한 동화를 읽는 것을 말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침내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는 날이 왔어요. 어린 왕자는 떠나기 전에 골방 같은 별을 깨끗이 치우고는 장미에게 유리 고깔을 씌워 주려 했어요. 자기가 없는 동안 장미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성질 나쁜 장미는 그런 왕자의 유리 고깔을 넝쿨로 차 버리며 버럭 화를 냈어요!
-지금 떠나는 주제에 뭐 하는 거야? 날 동정하는 거니? 이런 건 필요 없어!
어린 왕자가 말했어요.
-아냐, 난 혼자 남을 네가 걱정돼서…….
장미가 꽃잎에 맺힌 이슬을 감추며 훌쩍였어요.
-걱정은 개뿔! 날 떠나고 분명 상자 속에 들어갈 깜찍하고 귀여운 양이나 사막에서 만난 여우 년이랑 바람이나 피울 거면서!
-오해야. 뭐 양이랑 여우랑은 친구가 되고 싶긴 하지만…….
눈치 없는 어린 왕자의 말에 장미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어요.
-나쁜 놈! 이혼이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 버리겠어!
쾅! 콰콰쾅! 푸슈욱! 삐이이! 콰르르 쿠쿵!”
성연이가 실감 나게 효과음까지 외쳤다.
“파……괴!”
흥미진진했는지 삼신이가 초코 케이크를 퍼먹는 걸 멈추고 성연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저 막장 드라마의 탈을 쓴 동화책을 당장 뺏기로.
대체 어떤 망할 작가가 저런 동심 파괴 동화를 쓰고 있단 말인가.
저자를 검색해 보니 크래커란 이름이 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지만, 아쉽게도 그 설정은 이 동화에는 통하지 않았답니다. 세상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결국 패배한 장미는 슬피 우는 어린 왕자의 품에 안긴 채 힘겹게 말했어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장미야! 죽지 마! 앞으로는 평생 너를 지키면서 살게!
-흥, 나는 네 보호가 필요한 나약한 장미가 아냐.
장미가 상처 입은 꽃잎을 눈물처럼 땅에 떨구며 어린 왕자의 뺨을 가시넝쿨로 어루만졌어요.
-왕자, 나를 떠나도 돼. 하지만 약속해. 절대로 나를 잊지 마, 영원히……. 그리고 바람피우면 죽여 버릴 거…… 꼴깍!
그렇게 저주 같은 유언을 말한 장미가 죽어 버렸…… 앗, 삼촌? 여기서 뭐 해?”
성연이가 우두커니 장미 화단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휘이잉!
갑자기 불어오는 강풍에 장미 화단의 장미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회오리처럼 나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 아름답고 덧없고 달콤한 향을 흩날리는 장미 꽃잎을 보며.
‘생각해, 생각해.’
지난밤 꿈속에서 장미가 내게 속삭인 말을 힘겹게 떠올리려 애썼다.
쩌적! 쩌저적!
동시에 마치 세상이 균열이 일 듯 내 주위의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꺅! 일신 삼촌!”
“파, 파……괴!”
꽃이 시들 듯 화려했던 꽃잎을 떨구며, 꿈속의 장미가 내게 속삭였었다.
-지금부터 넌 내 존재를 잊게 될 거야. 이것이 악몽인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괜히 투신에게 복수할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행복하게 살렴, 네가 그토록 바랐던 것처럼.
그것을 자신을 영원히 잊지 말라던 동화와는 완전히 다른 장미의 대사.
나는 피가 날 듯 주먹을 쥐며 말했다.
“싫어.”
콰직! 콰지직!
나는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이 건 망각이란 이름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고오오!
동시에 내 앞의 공간이 부서지며 신계로 통하는 입구가 열렸다.
투신전(鬪神殿)의 주인
고오오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갈라진 공간의 틈 너머로 피와 그을음으로 장식된 산처럼 거대한 신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곳인가?
투신과 악몽이 있는 곳이?
나는 성연이가 읽고 있던 동화를 떠올렸다.
어린 왕자와 장미.
어린 왕자가 보살피고 지켜 줘야 할 장미.
하지만, 보호받은 것은 장미가 아니라 나였다.
장미가 속삭였다.
-날 잊어.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악몽 정도 되는 최상급 신격이 왜 나를 위해 희생한단 말인가?
그것은 내가 앤티와 일호들에게 품는 것과 같은 마음일까? 아니면, 그녀 또한 ‘영겁의 구도자’처럼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존재였던 걸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부터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한없이 베푸는 풍요’가 자신의 결계를 부순 당신의 신력에 크게 당황합니다.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역시 풍요 님이 막은 거였네요.”
과거 나는 태양신 ‘가장 높은 창공에서 빛나는 불’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구를 떠나는 게 가능했는데 갑자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누군가 개입한 것일지 모른다고 짐작은 했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가 창백한 얼굴로 절대 그곳에 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풍요의 마음은 이해한다.
나 같아도 누군가 나와 같은 짓을 하려면 말릴 것이다.
“그래도 가야 돼요.”
신이라면, 아니 남자라면 나 때문에 희생하려는 여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목숨을 이어 가는 것은 쓰레기다.
나는 갈라진 공간의 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번쩍! 콰콰쾅!
순간 눈부신 황금 광휘가 번뜩이더니 낫의 형태를 한 신력이 내 앞에 내리꽂혔다.
나는 나를 가로막은 소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나를 막은 것은 바로 허저였다.
하지만, 평소의 그녀가 아니다.
츠츠츠!
전신에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것으로 짐작되는 황금빛의 신력을 뿜고 있고, 손에는 그녀의 상징인 거대한 황금 낫까지 들고 있었다.
허저, 아니 자신의 사도의 모습을 한 풍요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가면 안 됩니다. 신계에서도 손에 꼽는 강자인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조차 결국 투신에게 결국 패했습니다! 갓 상급 신이 된 당신이 투신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예요! 게다가 투신전에는 투신뿐만 아니라, 그의 수하인 상급 신격들이 드글거립니다!”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에요. 구하러 가는 거지.”
풍요가 입술을 깨물더니 황금 낫을 내게 겨눴다.
“악몽이 제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입니다! 절대로 당신을 투신전에 보낼 수 없습니다!”
드드드!
선신이지만 과연 최상급 신의 신격. 그녀가 기세를 드러내자 지진이라도 난 듯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슈우욱! 쿵! 쿵!
“무슨 일이냐!”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