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96)
그러자 미나 누나가 으스대며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러엄! 야, 듣고 놀라지 마!”
과거 나락용에게 제물로 바쳐져 저주받은 이후로 성장이 멈췄던 미나 누나였지만, 그 사건 이후 놀랍게도 그녀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 후로 무려 2cm나 더 자랐다고!”
브이를 하는 건지, 아니면 2cm 자랐다는 표현인 건지 손가락 2개를 내밀며 미나 누나가 으스댔다.
“아, 네. 축하여.”
그래 봐야 아직도 작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10대 후반으로는 봐줄 만했다.
미나 누나가 내 반응이 불만이라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흥! 두고 봐! 곧 너도 따라잡아 줄 테니까!”
“네, 네. 힘내세영. 파이팅.”
“이씨! 너 마음에 안 들어!”
나는 툴툴거리는 미나 누나를 보며 해바라기 씨를 잔뜩 머금은 햄스터를 떠올렸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미나 누나가 나보다 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여기서 더 자라면 조금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내 이상형이 도중에 바뀌었나?
나는 성숙한 연상의 누님이 취향이었는데 말이다. 요새는 귀여운 연상의 누님이 좋은 것 같기도.
나는 흘깃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때가 됐다.
“누나, 전 이만 가 볼게요.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거든요.”
“중요한 일정? 아, 혹시 오늘이 그날이야? 나도 같이 갈까?”
“괜찮아요. 이따가 CF 촬영 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누나가 사 준 책 때문에 여는 거니까 별로 올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래, 그럼 끝나면 연락해. 기념으로 저녁 사 줄게.”
“넹.”
미나 누나와 헤어진 후, 나는 약속 장소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공간 이동으로 단숨에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내가 도착한 곳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래커 문고.
그 앞에는 유일신 작가 신작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휴재합니다》 출간 기념 사인회!’의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전생에서는 땜빵에 불과했지만, 이번 생에서는 미나 누나가 통 크게도 100만 부나 사 주어서 저렇게 대형 현수막이 붙게 되었다.
변한 건 또 있다.
원래 전생에서 내 신작 제목은 《갓겜하는 작가님》이었지만, 이번 생은 저것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이쪽이 왠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자까님! 첫 사인회라고 해서 긴장하지 마시고요! 평소대로 편한 마음으로 하세요!”
“넹. 그런데 부탁드린 건 가져오셨어요?”
“네, 여깄습니다. 갑자기 왜 옛날 원고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요.”
나는 담당이 건넨 가방을 받아 들고는 내 사인 부스에 느긋하게 앉았다.
역시 100만 부를 판 작가의 의자답게 쿠션이 아주 좋았다.
휘이잉!
하지만, 뭐 역시 사인을 받으려고 오는 독자님들은 없었다.
오히려 저 사람은 누구기에 저러고 있는지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시간도 때울 겸 가방에서 낡은 종이 뭉치를 꺼내 펼쳤다.
이것은 내가 어릴 때, 담당에게 보여 주었던 소설의 초고였다.
어릴 때 쓴 소설이라 그런지 문장도 구성도 엉망이었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때울 만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안녕하세요, 유일신 작가님.”
낯익은 여인의 음성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나를 뒤덮었다.
나는 보고 있던 원고를 덮고는 그 음성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만삭의 여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기다렸어요, 나락. 아니 파괴신님이라고 부를까요?”
나는 내 전생의 배드엔딩을 맞이했다.
해피엔딩? (2)
사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직감하고는 있었다.
내가 싸웠던 나락용, 그것을 내 권능 ‘눈먼 신의 눈’의 완성판인 ‘개안한 신의 눈’으로 보았을 때부터 말이다.
개안한 신의 눈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정보량은 두꺼운 책 한 권을 방불케 할 정도지만, 그중에서 내 뇌리에 남은 것은 다음의 한 문장.
특이 사항 : ……나락의 혼과 분리되어 있다.
확실히 그날 싸웠던 나락용은 그저 본능만이 남아 있는 괴물과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 느꼈던, 그리고 거짓된 천지창조에서 보았던 파괴신과는 다르게 세상에 대한 악의와 조롱하듯 나를 무수히 회귀시켰던 음험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작가님의 성장이 무척 기뻐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여자와는 달리 말이다.
그날 우리가 죽인 것은 그녀의 껍질일 뿐이었다.
“무한의 루프를 탈출해 이렇게 성장한 작가님을 보니 꼭 내가 낳은 아이가 장성한 기분이 드네요.”
여자가 만삭인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비록 겉보기에는 마치 평범한 인간처럼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여자가 바로 모든 비극의 원인인 나락용의 혼이자 미쳐 버린 파괴신의 화신이 분명했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이 모든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구를 향해 몰려오던 파괴신의 조각들의 움직임도 나락용을 토벌한 이후 멈췄고, 게이트와 던전도 내가 다른 세계와 연결해 둔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지구는 평화로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키려 한다.
애초에 내가 사인회를 열려고 한 이유도 만에 하나 나락을 찾지 못할 경우, 그가 내게 찾아오기를 유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
“엄마라고 불러 드릴까여?”
내 말에 나락이 살포시 웃었다.
“내가 무섭지 않아요?”
당연히 무섭다.
처음 그녀를 마주하자 전생에서 벌레처럼 처참하게 살해당한 마지막 기억이 떠오르며 현기증과 구토가 밀려왔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내게 한 번도 아니고 억겁 같은 죽음을 준 존재였다.
꿈틀! 꿈틀!
나락의 부푼 배가 뭔가 튀어나오려고 하듯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저런 저런, 진정하렴. 지금 엄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잖니.”
나락이 달래듯 자신의 배를 두드리자 그 기이한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저 나락이 잉태하고 있는 것은 파괴신의 화신인 나락이 창조신을 흉내 내어 창조했다는 끔찍한 존재이다.
바로 전생에서 나와 지구를 멸망시킨 괴물.
종말의 괴신(怪神).
전생의 나와 지구의 모든 인간은 저것에게 벌레처럼 짓뭉개져 죽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나락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전생에서도 해 보았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저 종말의 괴물이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 본체? 아니 일부들이라고 해야 하나? ‘모든 것을 베는 천검’에게 베여 쪼개질 대로 쪼개져 이성도 없는 그 괴물들은 당신의 존재를 무척 기뻐하고 있어요. 수억 년 동안 영겁처럼 이어진 파멸의 끝에 창조신이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작가님을 통해 처음으로 보았으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포상이에요.”
포상이란 말에 슬그머니 찔러보았다.
“그럼 우리를 내버려 둘 수 없을까요?”
“호호, 그건 안 되겠는데요. 당신은 우리의 최우선 멸망 대상이에요. 최고위급의 신을 넷이나 먹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나락이 굶주린 짐승처럼 붉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랬다.
창조신의 부활의 가능성을 본 것으로 그녀에게 나란 존재의 효용은 이미 다했을 것이다. 남은 건 기껏해야 먹이 정도일까?
“저는 대체 뭔가요?”
“인간이되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 그리고 결국 신이 되어 인과를 초월할 뻔한 존재. 그리고 창조신의 부활을 완성할 수 있다는 희망.”
나락의 말만 들으면 뭔가 상당히 그럴듯한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이제 살이 토실토실 올라서 잡아먹겠다고 하는, 도살장의 돼지 취급인데 말이다.
꿈틀꿈틀!
나락의 부푼 배가 다시 격하게 움직였다.
“슬슬 다른 분신들도 부르지 않을래요? 혼자서는 곧 태어날 내 아이를 상대하기 버거울 텐데.”
“걔들은 바빠서요.”
이신은 지금 헌터워에 참가하고 있었고, 삼신이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다른 세계로 성연이와 피크닉을 보낸 상태다.
사신이는 이미 나와 다시 하나가 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선신과 창조신의 신력을 가진 유일신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지금의 내가 본연의 나다.
엄밀히 따지면 이신과 삼신은 내가 악신과 파괴신의 신력을 얻고 나서 생긴 분신들이니까.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사신이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 증거로 지금 내 앞에는 우리가 처음으로 쓴 소설의 초고가 놓여 있었다.
어린 아이가 연필로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쓴 원고라 보기에도 불편하고 구성이나 내용도 창피할 정도로 미숙한 원고다.
대체 담당 놈은 이런 걸 가져온 어린 나를 무슨 생각으로 만나 주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원고야말로 작가로서의 나의 기원이자,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일지도.
나는 이걸 쓴 시기의 어린아이였던 나를 떠올렸다.
그 당시의 기억은 마치 뿌옇게 낀 안개처럼 희미하다.
사각사각!
조막만 한 손에 꼭 쥔 연필이 텅 빈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고아였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오직 누나뿐.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친구들과 놀던 것과는 달리 그 당시의 나는 오직 글을 쓰는 데 몰두했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마치 신처럼 말이다.
내가 쥔 연필심에서 내가 꿈꾸던 세계가 만들어지는 광경은 경이 그 자체였다.
때로는 내가 만든 캐릭터가 내 의지를 벗어나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 실망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기뻤다.
그들이 내가 창조한 거짓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진짜 생명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창조의 기쁨에 탐닉한 채, 작은 골방에 처박혀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글을 쓰고 또 썼다. 당연히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러다간 정말 너도 죽을지도 모른다고! 제발! 제발 그만해! 일신아!”
당시 여고생이었던 누나는 그런 나를 울며 말리기도 하고, 때로는 체벌을 하면서까지 글을 못 쓰게 하려고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글은 내게 남은 전부였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글을 쓰다 죽는다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 시기에 만났던 담당은 나를 천재라고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광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달라진 계기가 생긴 것은 내 조카인 성연이가 태어난 후였다.
“일신아, 네 조카야. 안아 볼래?”
처음에는 귀찮았다. 내 창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누나가 건넨 그 작디작은, 손에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한 생명을 마지못해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내가 스스로 만든 상자 속 세계 안에 비춘 한 줄기 광명을 본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때론 우주를 맞을 때가 있다.
타인이라는 신비롭고 경외스러운 우주를 말이다.
내가 연필로 종이에 새긴 작디작은 세계를 넘어선 압도적인 경이가 내 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천천히 변해 갔다.
방구석의 신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말이다.
담당은 점점 변하는 내 모습에 조금 실망한 듯했다.
더 이상 내게는 어린 시절의 광기가 서렸다고 할 만한 재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비로소 나라는 자아를 넘어 진정한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님.”
나락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에 몰두하다니. 여유인가요, 아니면 포기한 건가요? 나로서는 작가님이 좀 더 처절하게 발버둥 쳐 주면 좋겠는데요.”
발버둥이라…….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당신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멸망시켰나요?”
나락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 작가님은 지금까지 먹은 식사 횟수를 전부 기억하나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창조신이 만든 세계의 절반은 멸망시켰을 거예요. 오늘 내 아이가 작가님을 먹어 치우고 나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나락이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종말의 거인을 품은 자신의 부푼 배를 어루만졌다.
“이제 곧 내 아이가 태어나요. 그런데 정말 분신들을 안 부를 건가요? 겨우 내 일부인 나락용에게도 그렇게 고전한 주제에 혼자서 내 아이를 상대할 수 있겠어요?”
스스스.
핏빛으로 물든 나락의 섬뜩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설마 이다음이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말아요. 작가님이 신의 탑을 나온 후로 이미 앤트리니아의 개미로 환생하는 루프는 깨졌어요. 이다음은 없어요.”
그래, 나도 안다.
내게 이다음은 없다는 것을.
나는 문득 떠올린다.
신의 탑의 세계에서 내가 겪었던 영혼 기갑 라젠카, 팔이의 세계를.
그 세계는 0과 1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게임 세계였다.
비단 팔이의 세계뿐만이 아니다.
내가 겪었던 신의 탑의 세계 중에서는 기이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신비로운 세계들이 많았다.
어쩌면 내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창조신이 만든 경이로운 작품.
그것에서 나는 교사가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듯, 배웠다.
“후우, 작가님.”
내가 대답이 없자, 포기했다고 여겼던 걸까?
나락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쩌적! 쩌저적!
그러자 하늘이 알의 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갈라진 하늘의 틈에서 직경 수 킬로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눈동자가 나와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무척 기시감이 드는 광경이었다.
어느덧 만삭이던 나락의 배는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드디어 종말의 괴신(怪神)이 태어난 것이다.
나락이 선언했다.
“이제 진정한 종막이에요.”
종말의 괴신이 터무니없이 거대한 자신의 검지를 들더니.
주저 없이 지구를 향해 휘둘렀다.
콰직! 콰지직!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던 지구의 사람들, 헌터워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벌레처럼 짓뭉개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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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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