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1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11화
211. 목격자
3시간 전.
크리스틴이 한국에 온 것은 그저 예언자에게 다음 라운드 예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검은 낫에 대해서도 물어볼 겸.
‘그랬는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제프리 집사님이 여길 어떻게……?”
안 좋은 감정이 있다 보니 크리스틴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설마 제 뒤를 밟은 거예요? 아버지 지시로?”
“아닙니다. 저는 검은 낫님의 지시로 이곳에 온 겁니다.”
“검은 낫님?”
검은 낫이란 말에 크리스틴의 화가 가라앉았다.
설마 제프리의 입에서 그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일까?
금세 의심의 눈초리가 되었다.
“집사님이 검은 낫님을 어떻게 알죠? 무슨 관련이 있다고요?”
“12라운드에서 같이 파티했습니다. 그러다가 크리스틴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알자 저한테 핸드폰 번호를 달라더군요.”
“예?”
자신도 모르는 번호를 주고받았다?
순간 의심보다 질투심이 앞섰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가 알기로 검은 낫님은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길 꺼린다고…….”
그때 제프리가 대뜸 핸드폰을 내밀었다.
“방금 검은 낫님에게 영상통화 걸었습니다. 통화해 보시죠.”
“예?”
놀라서 받아보니 흰색 가면을 쓴 사람이 화면에 보인다.
-크리시인가?
“거, 검은 낫님?”
화면 속에는 검은 낫이 이계에서 봤던 익숙한 복장으로 서 있었다.
낫도 그때 봤던 것과 똑같았고.
“정말로 검은 낫님이세요?”
-그래. 너는 이계에서나 현실에서나 얼굴이 똑같군.
‘얼굴형이랑 피부 좀 건드렸는데…….’
차이점을 못 알아봐서 서운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생명의 은인과의 통화였으니까.
“현실에서 검은 낫님이랑 통화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나도 생각 못 했다. 제피와 네가 아는 사이일 줄이야.
“제 얘기를 듣고 번호 교환하셨다면서요?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크리스틴이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장소를 알려줄 테니 그곳으로 나오도록. 안내는 제피가 해줄 거다.
“아,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크리스틴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의심해서 미안해요, 집사님. 정말로 검은 낫님과 접촉하셨군요?”
“네. 신기한 인연이죠?”
“그러네요. 검은 낫님과 파티는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건 가면서 차차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이동하시죠.”
크리스틴은 제프리가 준비한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보여주고 싶은 거라는 게 뭘까? 검은 낫님도 오시는 걸까?’
궁금증을 참으며 도로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으슥한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여긴가요?”
“예. 내리시죠.”
이윽고 제프리와 함께 산길을 올랐다.
모르는 사람과 왔다면 의심부터 했겠지만 크리스틴은 믿었다.
검은 낫과 통화하기도 했고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제프리였으니까.
‘제프리 집사님은 나한테 해를 끼칠만한 사람이 아니야.’
어릴 적부터 봤던지라 확신한다.
누구보다 자신을 지켜줄 만한 사람이라고.
그것이 크리스틴이 안심하고 따라가는 이유였다.
“응? 저기 사람이 있네요?”
나무 뒤에 두 남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특히 여자 쪽은 크리스틴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서아린?”
“크리시?”
마주 본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닉네임을 불렀다.
불과 며칠 전에 12라운드에서 같이 파티를 맺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서아린 씨를 만날 줄이야…….”
“저도 그래요, 크리시. 한 명 더 올 거라고 했는데 그게 크리시인 줄은 몰랐어요.”
서아린의 유창한 영어 발음에 크리스틴이 동그랗게 눈을 키웠다.
“영어를 잘하시네요?”
“연기 수업받으면서 틈틈이 배운 거예요. 대사에 영어가 있는데 발음이 어색하면 좀 그렇잖아요.”
서아린이 배우라는 건 이미 크리스틴도 알고 있었다.
같이 파티를 맺으면서 통성명은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
마경록 회사 소속 연예인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어쩜 현실이랑 얼굴이 똑같네요.”
“크리시도 그러네요.”
“저는 조금 고친 건데…….”
“어? 그래요? 몰랐어요. 현실에서나 이계에서나 너무 예쁘셔서…….”
파티했던 동료라 그런 걸까?
아니면 검은 낫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일까?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옆에 있는 분은?”
“아, 검은 낫님이 소개해 주신 분인데…….”
“주성탁이라 합니다. 12라운드에서 검은 낫님과 파티를 했었죠.”
크리스틴의 시선에 주성탁이 눈치껏 소개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아린이 있기에 대화에 문제는 없었다.
“아, 여기는 제피라고 해요. 서로 인사들…….”
제프리와 주성탁은 서로를 힐끔 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거니와 인사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것이다.
검은 낫의 노예라는 것을.
“두 분을 이 자리에 부른 건 다름이 아닙니다. 검은 낫님께서 보여드릴 게 있다고 하셔서죠.”
“어떤 걸 보여주겠다는 거죠?”
주성탁이 나무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비탈 아래엔 웬 낡은 창고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그 앞에 눈에 익은 남자가 보였다.
“저, 저 사람은…….”
다름 아닌 마경록이었다.
“마경록 씨가 왜 저기 있는 거죠?”
크리스틴의 질문에 서아린이 대답했다.
“검은 낫님이 보여주고 싶은 분이 마 대표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 대표님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실체?”
크리스틴이 다시 한번 마경록을 바라봤다.
창고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검은 낫님은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건지…….”
“그건 지켜보면 알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고요.”
서아린도 기다린다고 하니 크리스틴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경록의 어떤 면을 보라는 건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때 마경록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기척 감지에 걸리지 않으려고 30m 이상 떨어져 있었기에 통화 내용은 듣지 못했다.
“어? 저기 누가 와요.”
산길로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하더니 사람이 내렸다.
크리스틴도 알고 있는, 마경록의 오른팔 안상철이었다.
드르륵-
그는 뒷좌석을 열더니 정체 모를 두 사람을 둘러멨다.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미동도 없는 그들을 창고로 데려가자 지켜보던 크리스틴과 서아린이 놀랐다.
“저, 저거 뭐죠? 설마 납치?”
“서, 설마요. 아니겠죠.”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안상철이 무장을 한 채로 출입문을 지켰다.
그때였다.
뭔가 말소리가 나는듯하더니 창고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십 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들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이, 이거 아까 그 사람들 비명 같은데…….”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비명이 들림에도 밖에 있는 안상철은 집 지키는 개처럼 가만히 있을 따름이었다.
마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차마 창고 안까지 들여다볼 수 없던 크리스틴과 서아린은 나무 뒤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서아린 씨. 그 페어리를 이용해서 잠시 엿보고 올 순 없어요?”
“소용없어요. 제가 페어리랑 소통되는 게 아닌지라…….”
이내 비명이 멎었고, 얼마 안 있어 마경록과 납치당했던 남자 한 명이 창고 밖으로 나왔다.
“안 실장.”
“예, 대표님.”
“저 새끼 못 가게 막아요. 죽이는 건 내 손으로 직접 할 테니.”
안상철은 방패로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마경록도 남자를 쫓아가 무릎을 잘랐다.
“끄흐아아아아악!”
“이제 도망은 못 가겠네?”
“사, 살려줘! 형!”
애원하는 남자의 말을 듣다가 정체를 알게 된 서아린이 놀란 눈으로 크리스틴에게 통역해 줬다.
“저 남자…… 마 대표님의 친동생이라고 하네요.”
“동생? 가족이라고요?”
“아무래도 후계자 문제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나 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을…….”
남은 다리도 잘라버리는 마경록을 보며 크리스틴은 소름을 느꼈다.
저 정도로 잔인한 성정의 남자였나?
지금 보는 마경록은 여태껏 자신이 봤던 약혼자가 아니었다.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한 명의 사이코패스일 뿐이었다.
“먹어 치워라.”
“아, 안 돼! 끄아아아아악!”
사람이 산 채로 뜯어먹히고 있을 때 크리스틴이 나섰다.
“그만두세요!”
“크리스틴?”
갑작스러운 약혼녀의 등장에 마경록은 당황했다.
옆에 서아린까지 붙자 더욱 그랬다.
“서 배우까지?”
놀라긴 했지만 다크 오러에게 내린 명령은 거두지 않았다.
“끄허허허흑…….”
“마경록 씨! 그만!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하세요!”
크리스틴이 말렸으나 이미 늦었다.
마경수는 결국 다크 오러에게 모든 살점을 파먹힌 채로 죽었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대표님…….”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 사람이 쳐다보자 마경록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려던 생각을 접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일단은 두 사람을 납득시키는 게 중요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크리스틴. 하지만 오해입니다.”
“오해요?”
“보다시피 사람을 죽인 건 맞습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게 아니에요.”
“지금 죽인 사람이 형제라면서요.”
“맞습니다. 제 동생입니다. 하지만 저놈은 저를 죽이려던 쓰레기입니다. 이미 저 안에서 자신의 형을 죽이기도 했고요.”
증거는 있었기에 걱정할 건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틴의 얼굴에서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나 알아요? 자기 동생을 죽이고도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말로 풀어갈 생각을 해야죠. 어떻게 자기 가족을…….”
“저 녀석이 먼저 절 죽이려고 했다니까요?”
“이곳으로 납치한 거 다 봤는데요?”
“절 암살하려 하기에 이곳으로 데려온 겁니다. 왜 그러는지 물어나 보려고요. 그러다가 저한테 먼저 칼을 들이밀었고 보다시피 불의의 사고로 죽이게 된 겁니다.”
“사고요?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라?”
“그럼요.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을 뿐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요? 죽일 때 사이코패스 살인마처럼 웃고 있는 걸 다 봤는데도요?”
“그럴 리가요. 잘못 보신 겁니다.”
다 봤는데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하자 크리스틴이 기막혀했다.
“분명한 건 저쪽에서 먼저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것만은 알아주시길.”
“그렇다 해서 살인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죽을 뻔했는데도요?”
“다른 방법도 있었잖아요.”
“아니요. 없었습니다.”
“그럼 세상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요? 나는 형제를 죽였고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다고?”
순간 마경록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세상에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간 후계자고 뭐고 그동안 이룬 업적들이 날아가 버린다.
가족을 죽여놓고 여론이 좋을 리는 없었으니까.
‘잘못하면 과거에 이곳에서 저질렀던 살인들까지 전부 까발려질 수 있어.’
증거를 인멸한다곤 했지만 경찰 조사를 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지금으로서 가장 깔끔한 건 목격자를 남기지 않는 것…….’
결단을 내린 마경록의 눈빛에서 살의가 떠올랐다.
“후우.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경록의 검이 크리스틴을 향했다.
“저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겠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되어드리는 수밖에.”
안상철이 눈치껏 두 사람의 뒤를 막아섰다.
그러자 크리스틴과 서아린이 긴장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저들이 이 자리에서 자신들을 살인 멸구 할 생각이라는 것을.
“죽이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거죠? 절 미행한 겁니까?”
“…….”
“뭐, 지금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곧 대답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마경록은 진심으로 둘을 죽일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크리스틴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던 마경록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제격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죽이고 다른 약혼녀를 구해야겠다.
당장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하지만 마경록은 몰랐다.
채앵-!
기습적으로 날아든 단도를 쳐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동료가 더 있었군.”
제프리와 주성탁이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