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68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68화
268. 호텔에서
‘크리스틴?’
전화를 받으니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예언자님? 괜찮으신 거죠?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집에 들렀었는데 부서졌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류민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게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들렀었다니…… 지금 한국에 계신 거예요?”
-네. 그뿐만 아니라 호텔 앞에 와 있는데요?
“예?”
류민이 놀라며 추적하기로 크리스틴을 검색해 봤다.
[얼굴과 이름이 일치합니다. 대상의 위치를 추적합니다.] [대상 ‘크리스틴 크레이그’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현재 78m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대상을 추적하려면 앞에 보이는 화살표를 따라가십시오.]정말 호텔 앞에 와 있는지 가까이에 있다.
아무래도 추적하기로 자신을 쫓아온 모양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죠.”
통화를 끊은 류민은 외투를 챙겨 들고 동생에게 말했다.
“누구 좀 만나러 갔다 올게.”
“누구?”
“동료.”
추적하기 화살표를 따라가니 로비에 앉아 있는 크리스틴이 보인다.
“아, 류민님.”
“말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죄송해요. 집이 그렇게 된 걸 보니 걱정돼서…….”
“따라오세요.”
류민은 일단 근처 카페로 크리스틴을 데리고 갔다.
“뭐 드실래요? 먹고 싶은 거 고르세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갑자기 찾아온 건 전데 무슨 염치로…….”
“그래도 손님으로 오셨는데 대접하지 않을 수 있나요. 마음껏 고르세요.”
“고, 고마워요.”
크리스틴은 간단하게 커피 한 잔만 시켰다.
류민도 따라서 시킨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국으로 가신 줄 알았는데…… 저희 집은 왜 찾아오신 거예요?”
“아, 그게 다른 이유는 아니고요, 저번에 예언 알려주겠다고 미국으로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제가 찾아갈 차례라는 생각에…….”
“정말 그것뿐이에요?”
“네…….”
류민은 취조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크리스틴을 쳐다봤다.
나름대로 매서운 눈빛이었지만 크리스틴은 오히려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말이군. 정말 별 볼 일 없는 이유로 찾아온 거였어.’
속마음을 읽은 류민이 내심 탄식했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아무리 돌부처라도 자신을 신경 써주는 사람 앞에선 마음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으음, 죄, 죄송해요.”
여전히 노려보는 류민의 모습에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오해한 크리스틴이 재차 사과했다.
“말이라도 하고 찾아오는 거였는데…… 너무 갑작스러웠죠?”
“갑작스럽긴 하네요.”
“정말 죄송해요. 그나저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집이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천사가 찾아왔거든요.”
“예?”
이미 정체도 아는 크리스틴 앞에선 숨길 것도 없었기에 류민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모르셨겠지만 천사들이 저를 원수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동생을 노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요.”
“처, 천사가 동생을 노렸어요? 동생은 괜찮아요?”
“다행히 늦지 않게 나타나서 구할 수 있었죠.”
“천사는요?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류민이 피식 웃었다.
그 시니컬한 웃음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섬에 늦게 돌아오셨던 거군요? 천사를 처리하느라…….”
“그렇죠.”
“다음에도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요.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상상만으로도 싫었는지 류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쭉 뻗은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장난감 블록 같은 도시를 바라보니 답답한 가슴이 트인다.
하지만 눈빛에 남은 불안감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크리스틴이 걱정스레 쳐다봤다.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저기,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잠시 말을 끊고 우물쭈물하던 크리스틴이 용기를 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저를 마음껏 부려주세요.”
“…….”
“저는 이미 검은 낫 님이 아니었으면 죽었던 몸이잖아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언제든지 써먹어 주세요. 24시간 동생 곁을 지키라고 하면 지킬게요. 제게 천사를 막을 힘이라곤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요?”
자신을 마음껏 부려 먹으라니.
크리스틴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용하고 버려도 좋아요. 뭐가 됐든 검은 낫 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류민은 그저 아무 말 없이 크리스틴을 바라봤다.
‘진심이다. 생각을 읽지 않아도 느껴져.’
어떻게 해서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아직은 딱히 도와줄 일이 없군요.”
“제가 동생 옆을 지키면…….”
류민이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상대한 천사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포터인 당신으로선 평범한 방패막이 역할도 못 해낼 거예요.”
“그런가요…….”
촌철살인 같은 말에 크리스틴이 시무룩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크리스틴은 중요한 전력이다.
방패막이로 허무하게 잃을 순 없다.
커피를 홀짝이는 크리스틴은 비 맞은 강아지마냥 안쓰러워 보였다.
정말 검은 낫을 도와주는 것만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류민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덧붙여야 했다.
“그렇다고 도움을 거절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겠다고 약속하죠.”
“정말요?”
끄덕이자 크리스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약속하신 거예요! 제가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으면 꼭 부르겠다고.”
“지금도 충분히 도움 되고 계신걸요.”
“아니요. 서포터로서 돕는 건 당연한 거고요. 개인적으로 필요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
“예, 예. 약속하죠.”
류민이야 손해 볼 건 없다.
그렇다고 주요 전력인 크리스틴을 막 다룰 수도 없지만.
“다 마셨으면 갈까요?”
“네.”
류민은 크리스틴과 카페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음 같아선 공항까지 배웅하고 싶지만,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요.”
“이해해요. 필요한 일 생기면 얼마든지 부르세요. 비행기 타고 한달음에 달려갈 테니까.”
이윽고 엘리베이터에 탄 크리스틴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류민이 로비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민주리는 자신이 본 광경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크리시가 왜 민이를 만난 거지?’
추적하기로 류민의 이름이 검색되자, 민주리는 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정말로 자신이 아는 류민이 맞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해서 이곳 호텔에 다다를 수 있었고, 우연히 로비에서 크리시를 닮은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류민과 만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하는 광경까지 모두 목격했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두 사람이 만나?’
가까이 가면 들통날까 봐 대화까진 듣지 못했다.
30m 이상 거리를 벌린 채 지켜만 봤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기도 하는 크리스틴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는 거냐고…….’
이게 질투심이라는 건 제삼자가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몰랐다.
‘류민이 부른 걸까? 머물 곳 정해지면 나한테 먼저 알려주기로 했으면서 왜 크리시를……?’
이게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간만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렇게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은 없다.
가장 확실한 해결법은 류민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오면 물어봐야겠어.’
그렇게 화장실 입구를 노려보며 기다렸지만 어째 나오질 않는다.
‘뭐지? 큰일 보고 있…….’
“민주리.”
“으하앗!”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민주리가 기겁하며 돌아봤다.
류민이다.
하마터면 기껏 부활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노, 놀랐잖아!”
“누군가 미행한다 했더니 너였구나?”
“아, 알고 있었어?”
당황하는 민주리를 향해 류민이 빙긋 웃었다.
‘당연하지. 내 기척 감지 범위는 60m거든.’
그 이유까진 말하진 않았지만.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어, 어, 그게…….”
“너도 추적하기로 쫓아왔구나?”
“너도……라니?”
“크리스틴도 호텔로 찾아왔더라고. 추적하기로.”
“아아…….”
류민이 부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자신처럼 크리스틴도 멋대로 추적하기로 찾아온 것이다.
작은 오해가 풀렸다.
“안 그래도 주소 알려주려고 했는데 온 김에 얘기나 하자.”
“으응.”
두 사람은 다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틴과 대화했던 자리였다.
“마실 거 시켜. 내가 살게.”
“너는?”
“너도 봤겠지만 난 아까 먹었어.”
“미, 미안. 훔쳐보려던 건 아닌데…….”
“괜찮아.”
이해한다는 듯 끄덕인 류민은 민주리의 커피가 오자 본론을 말했다.
“할 얘기란 게 뭐야?”
“응?”
“전화로 나한테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했잖아. 무슨 일인데?”
류민의 물음에 뜸을 들이던 민주리가 심호흡 끝에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거짓말했어?”
“무슨 소리야?”
“네 닉네임, 정말로 로스트야크 맞아?”
“…….”
“라운드 끝나고 검은 낫 님이 호명할 때 유심히 들었었는데 그런 닉네임은 없었어. 어떻게 된 거야?”
“음, 그건…….”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참에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심산인 듯 민주리가 말했다.
“추적하기를 쓰면 네 이름이랑 얼굴을 알고 있어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나와.”
“…….”
“이계에서 추적하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현실을 말하는 거야. 이계의 모습이야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모른다고 쳐도, 현실의 류민이 추적되지 않는다니.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
“이상한 점은 또 있어. 외딴섬에서 아무리 찾아봤지만 네 모습을 볼 수 없었어. 분명 커스터마이징된 신체가 아니라 현실이었는데도.”
인원은 맞는데 모습은 안 보인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 느껴질 만하다.
“너…… 애초에 섬에 있었긴 한 거야?”
류민은 침묵했다.
민주리는 자신이 해답을 갖고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해답이야 갖고 있지.’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답이다.
숨겨야만 하는 답이다.
모든 걸 설명하려면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때 문득 류민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정체를 밝히면 안 돼? 나처럼 충격 안 받을 수 있잖아.
마침 동생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어쩌면…… 이해할지도 몰라.’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류민의 입이 움직였다.
“내가 검은 낫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