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8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8화
8. 돌아왔어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형 백화점.
주말이라 평소보다 3배는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이 시각.
“응?”
보안요원의 눈에 한 노인이 보였다.
“저기 좀 봐.”
“뭐야? 저 미친 새끼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노인이 백화점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닌 모습.
우연히 못 볼 꼴을 본 시민들이 꺄악 소리 지르며 흩어진다.
“이봐요! 할아버지! 옷을 안 입고 돌아다니면 어떡합니까!”
“이러다 공연음란죄로 체포될 수 있어요! 아시겠어요? 얼른 옷 챙겨 입으세요!”
보안요원 둘의 외침에도 노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는 모습.
정신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귀까지 먹은 모양이다.
보안요원이 한숨을 쉬며 동료에게 말했다.
“우선 경찰에 신고해.”
“알았어.”
일단 가릴 곳은 가려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점퍼를 노인에게 벗어주려던 찰나였다.
푹!
“어?”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색의 기다란 꼬챙이 같은 게 가슴팍에 박혔다.
꿀렁꿀렁-
꼬챙이로 기운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동시에.
털썩-
보안요원 하나가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 쓰러졌다.
“허억! X발, 뭐야!?”
“꺄아아아악!”
목격자의 비명에 사람들의 이목이 단번에 쏠렸다.
교주는 그러거나 말거나 빨아들인 보안요원의 생체 에너지를 음미했다.
“이거 간에 기별도 안 가는군.”
“무슨… 꺽!”
남은 보안요원마저 꼬챙이에 가슴이 꿰뚫렸다.
빨대처럼 쭈웁 빨아들이자, 피부가 쪼그라들며 요원이 즉사했다.
“히, 히익!”
“괴, 괴물이다!”
괴물.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존재할 법한 그 외침에 평소라면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세대는 경험했다.
천사로 인해 18억 명의 사람들이 잡혀가고 플레이어란 이름하에 인간을 초월한 이능을 쓰던 말도 안 되는 경험을.
그렇기에 시민들은 괴물이라는 단어에 그리 낯설어하지 않았다.
그것이 괴물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으아아아악!”
“괴물이다아아!”
“다들 도망가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아무렴 좋다는 듯 교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대처가 꽤 빠르군. 하지만 먹잇감을 놓칠 수야 없지.”
교주는 몸을 부풀리며 쏘아낼 준비를 했다.
수천 명을 녹여버렸던 검은색의 빗방울을.
하지만.
“뭐하냐?”
“……!”
제삼자의 목소리에 교주는 시도를 멈췄다.
고개를 홱 돌려보니 한 인간이 팔짱을 낀 채로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저 녀석, 언제 나타난 거지?’
교주는 분명 주변의 인간들을 자신의 인식범위 안에 두고 있었다.
도망가는 움직임을 모조리 읽고 있었던 것.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한 인간이 등장했다.
“옷은 홀딱 벗어서 뭐 하는 짓거리야? 변태야?”
“넌 누구냐?”
“내가 먼저 물었잖아. 괴물 새끼야.”
‘새끼?’
새끼라는 말은 분명하게 이곳 세상에서 욕으로 통했다.
‘저 인간이 겁도 없이 나한테 욕지거리를?’
교주는 헛웃음이 나왔다.
“정신이 나간 건가? 아니면 죽고 싶은…….”
“야, 우선 뭐라도 걸치면 안 되겠냐? 보기가 좀 그렇다.”
속옷도 걸치지 않은 몰골이 놈에겐 껄끄럽게 보이겠으나,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으니.
“죽어라.”
교주의 손바닥에서 검은 물방울들이 돋아났다.
파파파파팍!
총알처럼 쏘아진 그것은 인간 하나를 녹여 없애기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그러나.
“음……?”
티팅팅팅팅!
검은 방벽을 만들어 낸 상대가 가볍게 막아냈다.
튕겨 나간 물방울들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바닥을 녹였다.
“부식성을 가진 액체를 쏘아낸다라…… 그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지 상상도 안 되는군.”
“네놈, 정체가 대체…….”
“말하면 알아?”
상대의 손아귀에서 별안간 무기가 형성됐다.
“이제 곧 죽을 건데.”
그것은 거대한 낫이었다.
* * *
어둠의 룬을 이용한 장벽을 세워 공격을 막아낸 류민은 상대를 노려봤다.
‘이 녀석이군. 데오란트가 세계선 곳곳에 심어놓았다는 씨앗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생존게임이 끝난 세상에서 이런 괴생물체가 어디서 나타났겠는가?
‘겉보기엔 인간처럼 보이지만, 알 수 있어. 놈은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괴생명체라는걸.’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고 그 정신을 지배해 기억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류민에겐 속마음의 룬이 있었으니까.
‘놈은 오직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광속의 룬으로 빠르게 찾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늦었다면 백화점의 사람들이 학살당했을 터다.
‘생각을 읽어보니 이미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이고서 이곳에 도착한 듯하지만.’
더 큰 피해가 생기게 놔둘 순 없다.
류민은 타나토스의 검은 낫을 꺼냈다.
자세를 잡으며 대치하는 사이,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어? 저 사람 좀 봐.”
“저 괴물이랑 싸우려나 본데?”
“잠깐만. 저 낫은……!?”
“검은 낫이다!”
“검은 낫이 살아 돌아왔어!”
생존게임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검은 낫은 어딜 가나 유명인사였다.
그의 시그니처인 낫만 봐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알아볼 정도.
다만 그가 다른 세계선에서 넘어왔을 줄은 상상도 못 할 거다.
‘그건 그렇고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야 상관없다.
문제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건 실제 상황이야. 구경하고 있을 틈이 없다고.’
그런 류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고 태평하게 구경한다.
“흐흐.”
사람들이 가까이 오자 교주가 히죽 웃으며 몸을 부풀렸다.
곧이어 비산되는 검은 액체의 향연.
파파팍!
“아아아악!”
치이이익!
“내 얼굴!”
액체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다행히도 당장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미래시의 룬으로 본 7초 뒤의 미래에서 벌어질 일이었다.
‘지금 당장 놈을 막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방금 봤던 미래처럼 사람들이 액체에 당하고 말 거다.’
이럴 때 답은 하나.
‘시공의 틈새로 집어넣는다.’
류민은 즉시 시공간을 열어 녀석과 함께 들어갔다.
현세와 완전히 분리해 놓는 것만이 사람들을 지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음……?!”
몸을 부풀리는 와중.
무저갱 같은 공간에 들어와 버리자, 교주가 당황했다.
“여긴…… 시공의 틈새?”
한순간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사차원의 공간에 갇혔다.
류민이 풀어주기 전까진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이게 어떻게 된…… 설마 네놈이 날 이곳으로 끌어들인 거냐?”
“나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
“한낱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내가 아직도 한낱 인간으로 보이나?”
낫을 겨누며 흉흉한 기세로 다가서자, 교주의 표정에 전에 없던 긴장감이 어렸다.
“네놈. 정체가…….”
“말하면 아냐고.”
류민은 대답 대신 낫을 휘둘렀다.
카아앙!
순간적으로 교주가 검은 액체를 경질화시켜 방패처럼 막아냈다.
캉! 캉! 카칵!
몇 번 더 휘둘러봤으나 의외로 잘도 막아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류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진 알았고…… 이제 순발력 좀 볼까?”
“뭐?”
순간 빛이 번뜩이며 섬전처럼 교주의 목이 떨어졌다.
툭-
끝났나 싶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지 않는지 교주의 몸뚱이가 여전히 움직인다.
“일정 스피드에는 반응하지 못하지만, 목을 쳐도 죽지 않은 걸 보면 생명은 질기군. 그렇다면…….”
류민의 손아귀에서 파직 파직 번갯불이 튀었다.
“번개로 지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자, 잠깐…!”
파지지지지직!
수십 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탯에 기반한 마법 대미지가 번개의 룬을 통해 작렬했다.
순간 불에 구운 듯 교주의 시신이 새까맣게 타버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죽었나?’
움직임도 없고 생각도 읽히지 않는 걸 보면 완전히 사멸한 모양.
이제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시공간의 결계를 해제했다.
“어? 나타났다!”
“검은 낫이 나타났어!”
“아까 그 괴물은……?”
“처리된 거 같은데?”
사람들이 웅성이는 가운데, 류민은 시야 한쪽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봤다.
[영웅의 룬 스택 : 100/100] [영웅의 룬 효과로 모든 스탯이 100 증가합니다.] [스택 100을 소모하여 ‘영웅의 보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영웅의 룬 스택이 쌓였어.’
영웅의 룬 스택은 사람 한 명을 구할 때마다 쌓인다.
방금 교주를 죽임으로써 100명 이상의 시민을 구했으니 한도까지 차버린 것.
‘잘됐군. 안 그래도 원이 혼자 남겨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위험할 때 무적이 발동되는 영웅의 보호를 동생에게 걸어놓는다면 좀 더 안심하고 씨앗 제거에 나설 수 있으리라.
‘경찰이 도착했군. 더 머물러서 좋을 건 없겠어.’
저 멀리 보이는 경찰을 보며 류민은 어둠의 날개를 등 뒤로 펼쳤다.
펄럭-
“어어!?”
“검은 낫! 어디 가요!”
시민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류민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침묵이 잠긴 집 안.
갑작스러운 형의 등장은 류원을 혼란스럽게 했다.
‘형이…… 살아 있었어.’
분명 형의 시신을 장례식장에서 안치했다.
소각되어 뼛가루만 남은 형을 직접 바다에 뿌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땅에 묻혔으면 기적적으로 돌아왔다고 여겼겠지만, 시신은 화장됐다.
돌아올 건덕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설마 환각을 본 건가……?’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죽을 때가 되면 생전 살아온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고.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형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서 환각을 본 것은 아닐까?
‘하긴, 화장된 형이 어떻게 살아 돌아오겠어.’
아직도 얼얼한 목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쉰 류원이었으나.
곧 털어버리고 묵묵히 밧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살은 안 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마음가짐.
그럴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형의 환영 덕분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산 사람은 살라는.
죽으면 절대로 용서 못 한다는 형의 말에 류원은 용기를 얻었다.
형 없이 세상을 헤쳐갈 용기를.
“내 생각이 짧았어, 형. 형 없다고 삶을 포기하려 들다니…….”
만으로 16세.
삶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다.
그건 하늘나라에 있는 형도 용납지 않으리라.
“형은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그 숱한 고비와 사선을 넘나들었는데…… 나는 고작 형이 없다고 나쁜 마음이나 먹고, 응석이나 부리고…….”
류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바보 멍청이야.”
“그걸 이제 알았어?”
“…!!!”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혀, 형……?”
“원아.”
류민이 다가오자, 류원은 이상행동을 보였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눈을 깜빡이기를 몇 번.
아무래도 자신이 헛것을 보는 게 아닌지 확인하는 듯했다.
“……왜 안 사라지지? 환영일 텐데?”
“환영 아니야.”
류민은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진짜로 돌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