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7
제36화
강설이 깨운 마지막 골렘의 눈에서 푸른 불빛이 새어 나왔다.
스으으…
[업적 ‘모든 골렘은 소중하다’를 달성합니다.]
[칭호 「식물 퇴치자」를 얻습니다.]
연구소 곳곳에 자신 이외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던 그리즈.
지금, 그만큼 지독한 나르시스트가 유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청자들은 생소한 이름이 계속 등장하자 당황했다.
– 답이… 밀란이야?
– 그리즈가 아니었네?
– 시청자 전부 알못행;
– 스노우맨은 이걸 어케 알았징?
정작 골렘을 깨운 강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즈에게 밀란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의 무게였나?’
강설의 입장에서 밀란은 그의 아바타이자 또 하나의 분신이었다.
게임 속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판데아,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이 자신의 말을 잊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다.
그리고 또 묘했다.
강설은 이 저릿한 감정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강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불타버린 연구 단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연구소의 소장인 아르타가 다가왔다.
“손님,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 공들였던 연구물은 전소됐지만, 연구 기록만큼은 남아있기에 그리즈 님도 괘념치 않으실 겁니다.”
“후….”
강설은 SF영화에서나 봤던 거대한 식물이 눈앞에 다가왔던 순간을 떨쳐내기 쉽지 않았다.
‘대체 그리즈는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신출귀몰, 동분서주가 그의 특기이니 아마 당분간 모험의 초반에서 그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철컥… 철컥…
골렘 중 하나가 작은 상자를 손에 고이 들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강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지?”
“연구소의 문제 해결에 나서주신 보답입니다.”
“아.”
추가 보상.
이미 허리띠까지 챙긴 강설에겐 다소 멋쩍은 상황이었지만 이럴 때 사양하면 예의 바른 사람은 될 수 있어도 강자는 될 수 없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구사일생의 장화를 획득합니다.]
“장화?”
“그렇습니다. 그리즈 님께서는 신소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가죽, 천 등 강철이 아닌 다양한 소재에 기계공학의 정수를 담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고 계십니다.”
“이게 그 발명품인 거고?”
“그렇습니다. 안에 들어간 핵심 기관은 그리즈 님의 업적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 것입니다.”
강설은 추가 보상으로 얻게 된 장화를 살폈다.
[구사일생의 장화]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방어력 : 25
내구력 : 90/90
무게 : 0.1kg
깃털처럼 가벼운 장화.
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폭발력이 숨겨져 있다. 천재 그리즈의 최신 발명품이다.
기본 능력 : 체력 + 4 민첩 + 3
특수 능력 : 위기 탈출 가능. 사용 후 24시간 냉각 필요.
“위기 탈출?”
– 신발 끈을 꽉 묶어서 사망.
– 신발이 안 맞아서 사망…
– 무슨 옵션이 이러냐?
강설이 아르타를 쳐다보자 아르타는 친절하게 장화에 관해 설명했다.
“순간 가속하는 장화입니다. 한 번 발동하면 불꽃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은 정확하진 않지만 짧은 편입니다.”
“부작용은 없어?”
“현재까지 발견된 문제점은 모두 해결했습니다.”
저 현재까지란 말이 무척이나 걸렸지만, 강설은 이 신발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소환사라 어쩔 수 없이 노려지는 순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아직 온전히 원하는 능력까지 도달하지 못한 현재로서는 이만한 물건이 없을 것이다.
“사용법은?”
“한쪽 발로 다른 쪽 발의 뒤꿈치를 차면 반응합니다.”
“여기서 해 봐도 되나?”
“상관은 없지만, 익숙하지 않을 땐 되도록 사방이 뚫린 곳에서 시험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군. 알겠어.”
이로써 또 하나의 비밀 무기를 얻었다.
강설은 확인하는 김에 아까 얻은 칭호까지 확인했다.
[칭호 : 식물 퇴치자]
관련 업적 : 모든 골렘은 소중하다 (모험 : 잠자는 숲속의 골렘)
특수 능력 : 식물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 5% 증가. 식물과 관련된 재능에 숙련도 부여(요리, 원예, 마수 소환 등)
대륙에 식물형 몬스터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라 아쉬웠지만, 요리에 숙련도를 부여하는 점만큼은 훌륭했다.
‘이제 끝인가?’
강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연구 단지를 되돌아보며 떠날 준비를 했다. 여행 운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 성과라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전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겠어. 위험한 순간들이 종종 있었으니.’
가령, 쟈마드가 홀로 식물을 막기 위해 낙오됐을 경우처럼.
불합리한 순간은 언제든 찾아오니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아무튼….”
“아, 손님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이름?”
“그리즈 님께 방문자가 있었다는 걸 말씀드려야 합니다.”
“…됐어.”
“알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강설은 이 대화를 끝으로 모험을 종료했다.
지이이잉-
빛무리가 그를 감쌌고 곧 그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으으으…
그로부터 3시간 후.
위이이이잉-!
중앙 통제 장치가 원활히 작동하는 가운데, 소란으로 인한 폐기물 대량 발생으로 연구원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였다.
치이이익…
중앙 통제 장치에서 갑작스레 이어질 듯 말 듯한 연결음이 들려왔다.
아르타가 장치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후우우우웅…
빛나는 문양이 아르타의 몸에 새겨졌다.
“여기는 제81 연구소, 연결된 개체는 아르타-2입니다.”
“…인가요.”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직거리던 연결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상대는 헛기침을 몇 번 한 후에,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예요. 긴급 상황이라고 전달받았는데요?”
“생명 연구 단지의 연구물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과성장을 일으켰습니다. 현재는 해결된 상황입니다.”
“호? 해결됐다고요? 어떻게요?”
“그건….”
아르타는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줄줄 풀어놓았다. 문제가 생긴 경위, 발생했던 문제,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까지.
그리고 그중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는 그리즈도 관심을 보였다.
“손님? 정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흐음…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이라… 꽤 대범한 사람이군요.”
그리즈의 말에 상세한 이야기가 아르타의 입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리즈를 당황하게 했다.
“모든 골렘을 재가동시켰다고요? 그럴 수가 있나?”
“모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리가… 아르타, 골렘의 재가동 문제는 답을 단 한 번만 선택할 수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요?”
“저는 감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섞어둔 그 문제까지 한 번에 맞췄다는 겁니다. 손님이라 말한 그 사람은 밀란과 나의 관계를 알고 있어요. 호오오… 이거 흥미롭군요. 그래서 그 도둑은?”
“일이 마무리되고 떠났습니다.”
그리즈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에게 새로운 사건의 흥미는 길게 가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죠. 떠난 밀란이 되돌아온 것도 아닐 테니. 아, 그리고 조만간 81 연구소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중요한 투자자와 함께.”
“알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 * *
지이이잉-
빛무리에 휩싸인 강설이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녹음이 우거진 대삼림이었다.
[다음 모험을 시작합니다.]
[여덟 번째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 6. 미완성 : 색칠 공부]
모험 6. ‘미완성 : 색칠 공부’
영원의 세계, 판데아의 주민들은 세계가 단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령계입니다.
정령은 대자연에서 탄생한 기운의 응집체이며 지성을 갖춘 존재입니다.
순수한 원소의 힘을 다루는 그들은 훌륭한 마법사이자 귀여운 악동들입니다.
하지만, 이 악동들의 놀이터가 정령계가 아닌 판데아가 되었을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이 현실에 머무는 시간만큼 들불과 우박, 가뭄과 백야 같은 이상 자연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노비라 인근에는 이 같은 문제가 꽤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삼림 인근, 정령계와 물질계의 이동을 제한하는 경계석에 문제가 생긴 지 무려 수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재해는 정령 홍수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경계석은 물병자리 마탑의 대처로 빠르게 복구를 완료했지만, 흩어진 정령들은 아직도 모두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경계 돌파의 영향으로 경계석이 위치하던 대삼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은 물질계에 남은 정령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생포, 혹은 제거해야 합니다. 다양한 정령을 구제할수록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표 :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정령 생포 혹은 제거.
목표 달성 실패 시 조디악에서 당신을 안 좋게 평가할 겁니다. 또한, 후유증 ‘자괴감’ 상태에 빠집니다.
현재 남은 시간 「719 : 59」
‘한 달? 제한 시간이 한 달이라고?’
여태까지와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긴 제한 시간에 강설이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제한 시간을 이만큼이나 줬다는 건, 아무래도 귀찮은 모험이겠는데….’
또, 특이한 모험 명칭까지 나왔다.
앞에 미완성이라는 명칭이 붙고 뒤에는 색칠 공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여기까지 확인한 강설은 약간 의아한 심정이 들었다.
‘다중 정령함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도 없는데?’
강설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3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어? 사람이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경쟁자야.”
“그렇긴 한데….”
그들의 말이 맞았다.
전이자들이 서로 도우며 정을 나누는 이상적인 관계인 것만은 아니었다. 경쟁하고, 시기할 때도 분명 존재했다.
강설은 해당 무리에서 시선을 거둔 후, 눈에 띄는 접수대로 향했다.
후드를 눌러쓰고 눈이 퀭해 보이는 남자, 그 옆에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돋보기를 쓴 젊은 여자가 탁자 앞 의자에 앉아 강설을 보고 있었다.
쉬어빠진 파김치 같은 모습이 꼭 대학원생을 보는 것 같았다.
“노비라에서 지원을 와주신 모험가님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물병자리 마탑이고 보시다시피 아주 바쁜 사람들입니다. 일단….”
“…지금 바쁘다고요?”
“그럼 지금 우리가 쉬고 있는 거로 보입니까? 머릿속으로 계속 이번 사태에 대한 거시적인 해결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여러분들처럼 꼭 몸으로 움직여야만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니, 됐다. 아무튼,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강설은 마탑 인원들이 참 쌀쌀맞다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의 이런 기조는 원래 게임에서도 잘 구현되어 있었다. ‘츤데레’가 아닌 ‘츤츤츤츤’의 대표적인 사례.
대화 스크립트만 읽어도 망치 들고 얼굴 보러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오만방자한 족속들.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지성의 우월함을 늘 권력으로 치환하고 싶어 했다. 아주 작은 관계에서조차.
그래도 나중에 등장하는 마도사들보다는 상당히 순한 맛이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나빴지만, 짧게 보고 말 사람들인데 뭐 하러 힘을 빼나 싶어 신분증을 내밀었다.
“어디… 아하, 콩고리에서 등록이 된 것으로 나오는데요. 음… 스노우맨? 어디서 들어봤는데….”
“왜 그래? 위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남자는 그 작던 눈에 억지로 힘을 줘 신분증과 강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그러니까… 스노우맨 님?”
“네.”
“어? 스노우맨이면 그 모험가 아니야?”
“조용히 좀 해봐! 아!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혹시 최근에 뾰족 바위산에서 바위 어금니를 무너트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우신 분이 맞나요?”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바위 어금니와 부딪히긴 했습니다.”
“맙소사….”
“맞대? 맞대?”
명성은 이런 곳에서 작용했다.
전혀 뜻밖인 인물의 호의를 끌어내기도 했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해주기도 했다.
굵직한 모험을 계속해서 진행해야 하는 이유기도 했고.
‘명성은 다다익선이긴 하지.’
명성은 당장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보상이 굉장한 모험을 선택할 수 있게끔 돌아올 때가 있었다.
끼긱…
“아! 내 정신 좀 봐. 여기, 생포용 정령함입니다!”
남자는 굳이 옆에 있는 커다란 상자가 아니라 발치에서 꺼낸, 그보다 작은 상자를 건넸다.
“이건….”
“개량형인데, 보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스승님이 믿을 만한 분에게만 건네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저에게?”
“네!”
그때, 아까 전송된 강설을 보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들었는지, 한 번 더 수군거렸다.
“우리는 크기만 크고 무겁기만 한 거 줘놓고 저 사람한테만 개량형인지 뭔지 주는 거는 너무하잖아?”
“뭐지? 무슨 일 있었나? 끝나고 물어볼까?”
“됐어, 딱 봐도 한 성질 하게 생겼는데.”
불합리하다는 말은 판데아와 늘 같이 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불합리하다고 해서 지금 그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런 선택권은 강설에게 없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네, 네? 어째서….”
“정령함을 따로 준비해 왔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등록이 필수입니다. 계측이 우선이라서요. 나중에 보상을 제공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강설은 그리즈의 미완성 다중 정령함을 이들에게 내밀었다.
달칵.
“오… 신기한 형태네요. 직접 만드신 건가요?”
남자는 허리띠에 장착된 정령함을 하나씩 열어보며 체크했다.
“아는 사람에게 받은 겁니다.”
“음? 어어… 이거 잠깐…. 프린, 이것 좀 봐봐.”
강설의 인터페이스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완성 : 색칠 공부’의 주요 내용이 변경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