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26
제425화
끼이익…
문을 열어주자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하는 게일.
“안녕, 꼬마 아가씨?”
“나, 탄시아!”
“오빠는 게일이란다.”
“아저씨, 게일?”
“…아무튼. 강설 수사관님. 이야기를 나눌까 해서 잠시 시간을 냈습니다.”
시간을 냈다는 그의 말이 살짝 건방지게 들리기도 했지만,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는 지금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앉으시죠.”
“후우… 이거 실례.”
게일은 앉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강설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결국 경매는 어떻게 된 겁니까?”
“주최 측은 파산 후 잠적했고 귀족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아니, 분통을 터트린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죠. 굉장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것을 떠올렸는지 게일이 인상을 잔뜩 쓰고 이렇게 말했다.
“전이자들까지 끌어오고 있습니다.”
“전이자?”
“이른바, 용병인 거죠. 정당한 보상만 지급하면 열심히 나서주는 용병. 그들은 이 일을 일으킨 원흉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긴 합니다만… 그래서 제게도 같은 질문이 쏟아지더군요.”
게일이 거칠게 자란 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강설은 함께 있는 우르의 눈을 잠시 맞추었다가 아까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게일에게도 전했다.
“즉, 홈을 도시에 뿌리는 녀석들이 이 사태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검증도 필요하고….”
“아뇨! 중요한 겁니다! 그, 약간의 의심! 그게 지금 필요한 거예요! 정말로… 정말로 잘해주셨습니다!”
“…네?”
“이제 이 사실을 피해를 입은 귀족들에게만 던져주면 됩니다. 그럼 저는 해방되는 거예요….”
게일은 눈이 충혈된 상태로 중얼거렸다.
“…가보겠습니다.”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귀족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습니다. 아마 그들은 흘린 피를 두고 보지 않겠죠… 그들이 직접 흉수를 단죄하든, 누군가에게 칼을 쥐여 주든 할 겁니다. 어쩌면 수사국이 될 가능성도….”
“네?”
“아닙니다. 가보겠습니다. 꼬마야… 그러니까 탄… 아무튼, 잘 있어라.”
“잘 가, 아저씨!”
게일이 손을 휘적이며 떠났다.
널찍한 거실에 장막의 인원이 들어찼다.
카렌과 카루나가 탄시아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공간은 곧, 허무로 변모한다.
휘이이이이…
[이곳은 허무입니다.]
[허무는 스노우맨의 독립 공간입니다.]
찌직…
찌지직…
강대한 기운이 한자리에 모이자, 주변의 기류가 크게 변했다.
“강설, 어쩔 생각이냐?”
우르가 강설에게 물었다.
“음?”
“이 녀석들, 일전에 기차에서 모조리 죽였던 그 녀석들과 한패인 것 같은데.”
“그렇겠지, 아마도. 뒤에 있다는 녀석들이 고작해야 이런 녀석들이었던 건가… 힘이 좀 빠지네.”
끙차…
탄시아가 카렌의 품에서 벗어나 강설에게 와 안겼다.
요즘 이런저런 일 때문에 탄시아와 자꾸만 떨어지게 되니, 애정이 고픈 모양이었다.
“사실, 손을 댈 가치도 없는 녀석들이긴 하다만… 녀석들이 만들어낸 이 약에는 관심이 간다.”
“…….”
“우르, 너….”
장막의 구성원들 모두가 우르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넌 이미 글러 먹었지만, 거기까지 손을 대서는 안 돼!”
“…닥쳐라. 내가 말하는 건, 이 약의 성분이다.”
“아까 말한 그것?”
“그래. 특이한데 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녀석들이 이걸로 단순히 약 장사나 한 건 아닐 것 같은데….”
강설은 별무덤에서 만났던 흉수의 수하들을 떠올렸다. 기괴하게 근육을 부풀려 싸웠던 자들.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거지?”
“이 경우에는 불길한 예감이 아니지.”
“…그렇겠네.”
우르는 자극을 원하는 존재다.
그에게 있어 불길하다는 건 귀찮아지거나 예상보다 지루해질 때나 하는 말이다.
“주인님, 준비는 언제나 되어있습니다.”
카루나의 말.
그 말 자체만으로도 든든했지만,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존재들은 비대칭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가 투하될 때마다 조직 전체가 괴멸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
장막의 상대가 된 녀석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저 먼 어둠으로 숨어버릴 것이다.
강설의 시야가 먼 곳으로 향했다.
“일단은 지켜보자고. 치우는 건 한순간이면 되니까.”
어둠의 의회라도 되는 것처럼,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막.
비탄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런가… 큭큭… 우리는 결국 악의 무리가 되어버린 것인가? 이런… 비탄은 이미 터무니없는 성게가 되어버린 거였군.】
“…….”
“…….”
비탄은 어렸을 적 꿈을 목격한 것처럼 들떠있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간헐적으로 예전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지금은 탄시아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영혼이었다.
그래도, 역시나 악의 무리인 척하는 건 즐거운 모양이다.
【조금 더! 조금 더 나쁘게 말해줘!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니까!】
강설은 비탄의 말을 듣고 최대한 그의 말과 반대되는 억양으로 말했다.
“그럼, 이번에 얻은 물건들을 확인해 볼까?”
“할래, 할래! 탄시아도 할래!”
여기서, 카렌과 카루나 그리고 쟈마드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모두 장비 칸에 적당히 효율 좋은 물건들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얻는 장비들은 허무가 판단하기에 가장 시급한 장비들을 우선하여 채워지는 듯했다.
그건 우르, 강설, 그리고 탄시아였다.
우선 강설은 장물이나 마찬가지인, 경매 물품부터 확인했다.
끼이익….
“…흠.”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게 된 것처럼 차게 식는 눈동자.
경매에 출품된 장비는 강설이 사용하기에는 적정 레벨이 너무 낮았다.
스윽…
상자를 창고에 발로 툭 밀어 넣었다.
아마, 이 상자는 앞으로도 열릴 일이 딱히 없을 것 같았다. 알라딘이 램프를 손에 넣고자 들어간 동굴에 어질러져 있던 보물들처럼 창고의 풍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얻은 재액의 단지를 확인해 볼 차례.
강설은 흐뭇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철컥…
끼이이익…
[당신은 매우 지혜롭습니다.]
[높은 지혜가 잠금장치의 원리를 순식간에 이해합니다.]
[마력을 주입하면, 잠금장치가 해제됩니다.]
[재액의 단지를 확인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능력 점수를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획득합니다.
[알부자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교활한 핏빛 뱀이 발동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나는 놈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능력 점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분열하는 시간의 장갑을 획득합니다.]
[냉소의 장화를 획득합니다.]
[잿가루의 반지를 획득합니다.]
[들꽃을 획득합니다.]
[백금화 62개를 획득합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 3개를 획득합니다.]
……
터져 나오는 빛은 강설의 기대와는 다른 색이었다.
“…보물이네.”
강설은 흉물과 불세출을 잔뜩 바라고 있었지만, 상자에선 불세출 하나와 보물들만이 존재했다.
“바라는 게 많으면 그만큼 괴로움도 커지는 법이지.”
우르가 강설에게 충고했다. 강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들을 확인했다.
[분열하는 시간의 장갑]
등급 : 보물
적정 레벨 : 60 – 67
방어력 : 150
내구력 : 120/120
무게 : 0.1kg
처음 보는 소재로 만들어진 장갑. 고대 시대의 물건으로 보인다. 아주 약간이지만,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기본 능력 : 지능 + 66 지혜 + 20 체력 + 35
특수 능력 : 받은 피해의 50%만큼을 10초에 걸쳐 천천히 입습니다. 피해를 누적시킨 대상이 사망할 때, 누적된 피해량을 도리어 회복합니다.
천 장갑.
특수 능력은 아리송한 효과.
쟈마드가 착용하고 있는 불세출 ‘번영’의 특수 능력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
이 물건은 앞에 붙은 ‘천’이라는 것 때문에 주인이 단번에 정해졌다.
“장갑은 불편하지만… 뭐, 이제부터 익숙해지면 되겠지.”
스윽…
우르의 행동은 여간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음은, 장화.
스윽…
강설이 장화를 들어 올린 순간, 장화의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강설에게 불쾌감만 던져주었을 뿐.
“마침, 신발이 필요하긴 했다.”
장화를 채가는 우르.
이번 모험에서 우르의 역할이 지대하기도 했고, 유대도 깊어진 것 같긴 했지만, 보상은 보상이다.
“…확인 정도는 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천이다.”
“…그래.”
하필, 다음 물건이 반지인 것을 확인한 강설이 능력치를 보지도 않고 우르에게 건넸다.
강설에게도 반지는 있었으니, 이 반지는 우르가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오, 일 처리가 빨라서 좋군.”
강설은 차라리 우르가 모든 칸에 장비를 한시라도 빨리 착용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장비들이 사라지는 기분 나쁜 경험은 끝날 테니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이거니까.’
필요 이상의 빛으로 과하게 존재감을 표출하는 장화.
그것을 매만지자, 강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올 뻔했다.
“…가죽이다.”
우르가 그 말을 듣자, 혀를 차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서 있었다. 엄청 커다랬다.
“…쟈마드?”
“확인해라.”
– 제에발 그만해에에…
– 소환수 독립… 나쁘지 않을지도?
– 쟈마드 너도 슬슬 트롤을 부흥하러 가야하지 않겠어?
강설은 장화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불세출(不世出) : 들꽃
등급 : 불세출
적정 레벨 : 60 – 70
방어력 : 270
내구력 : 300/300
무게 : 0.1kg
꽃의 문양으로 장식된 장화.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기본 능력 : 모든 능력치 + 34
특수 능력 : 자연 보호(고유)작용, 뾰족 가시(고유)작용, 만변(고유)작용, 변신할 시 들꽃의 기본 능력으로 추가되는 능력치가 2배가 된다.
[자연 보호]
– 날붙이에 큰 저항력을 가진다.
[뾰족 가시]
– 뾰족 가시의 영향을 받아 공격받았을 시, 상대에게 가시가 붙는다. 가시가 붙은 대상을 공격하면 추가 피해를 입힌다.
[만변]
– 변신할 시, 모든 상태 이상의 저항력이 조금 상승한다.
“…음?”
“…으음?”
강설과 쟈마드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혹시….”
“아니다. 너야말로….”
“나도 아닌데.”
둘은 변신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예뻐! 예쁘다!”
탄시아였다.
강설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단 탄시아에게 장화를 신겨주었다.
“이히… 이히히….”
장화가 딱 맞았다.
“탄시아, 혹시… 변할 수 있는 거야?”
영원의 세계에 변신이 가능한 직업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만약 탄시아가 형태를 변화할 수 있다면 드루이드에 가깝지 않을까 했다.
“변해? 나?”
“응. 용이 된다거나 하는….”
“용? 나는 용! 용이야!”
그러니까,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아직 탄시아가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강설은 조금 더 파고들어 가 보았다.
“날개가 돋아나거나, 꼬리가 생기거나 하는….”
“날개는 지금도 있어! 여기!”
탄시아가 가리킨 부위엔 정말로 날개가 있었다.
다만, 강설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날개.
– 선생님, 저딴 걸론 날 수 없습니다.
– 실족사한 이카루스도 웃음을 못 참는군요.
– 모두 닥쳐! 탄시아가 날지 않아서 그렇지 날면 우주까지 난다고!
– 어둠의 탄시아단이다! 돔황챠!
강설은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그가 용이 아니니 알려줄 수도 없었다. 아마 전승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추론 정도만 할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 변하기는 하겠지? 용이니까.’
그러나 용의 수명은 압도적이다.
강설은 그녀가 용으로 변하는 순간이 되면 자신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얼른 머릿속에서 지웠다.
카렌이 탄시아에게 다가오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궁금한가 봐, 우리 아빠 없는 동안 연습한 그거 보여줄까?”
“그거?”
“응! 그거 보여주자.”
지고의 기사는 용의 훌륭한 보모였다. 탄시아에게 뭔가 가르친 모양이다.
탄시아가 양손을 오므리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이이이….”
치직…
‘…어?’
검은 번개가 잠시 번뜩였다.
탄시아의 날개 쪽에서였다.
뭔가, 변하려는 느낌.
장막의 인원이 모두 달라붙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이이… 으으으….”
【힘내라, 탄시아! 넌 검은 조직, 장막의 일원이다!】
“할 수 있어!”
비탄과 카렌의 응원에 힘입었을까, 점차 날개가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오….”
“날개가….”
탄시아가 눈을 감고 최후의 힘을 주었다.
“끄으으으응….”
그리고.
치지지지… 직…
날개가 다시 줄어들었다.
탄시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화장실.”
“…….”
카렌이 탄시아를 들쳐 메고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