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54
제553화
저벅…
저벅…
후드를 뒤집어쓴 거한이 계단을 올랐다. 나선형의 계단을 전부 오른 그는, 탑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용에게 접근했다.
스으으윽…
용에게 손을 얹는 남자.
마엘이었다.
밖은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그는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하였으니.
“…당신입니까?”
“…….”
“저를 이곳으로 부른 존재가.”
푸우우우…
첫 용 니에르가 힘겹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엘은 새로운 지식을 경험할 생각에 온몸을 떨며 물었다.
“알려주십시오.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 겁니까?”
“…….”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당신이 가진 그 비밀을… 저는 알고 싶습니다.”
니에르는 마엘에게 답했다.
“그대가 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오직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여.”
“…나의 방문을 예언한 겁니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테죠. 저는 솟아오른 이 땅이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렇게 당신을 만난 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무엇이 궁금한가.”
“당신의 이름은요?”
“니에르.”
“당신 스스로 정한 이름입니까?”
“누군가에게 받은 이름이다. 그는 나를 니에르라 불렀으며 그 순간부터 나는 니에르가 되었다. 아니, 니에르가 되고자 했다.”
“…이름을 지어준 이에게 은혜를 입은 모양이군요.”
“…….”
구그그그그그그긍…
밖의 싸움이 격화되면서부터 노을 탑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탑 전체가 흔들렸다.
“안심하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할 테니.”
“그거 다행입니다. 계속하죠.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지금껏 살아온 겁니까?”
“소실된 지식을 전하기 위해.”
“…전했습니까?”
“전했다. 그 이후의 삶은, 그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
“…백야를 기다린다.”
강설과 같은 말을 전해 듣는 그.
마엘은 속이 탔다.
시간이 없다.
더욱 많은, 더욱 깊은 지식에 접근할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으니.
“백야는 무엇입니까? 현상일 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관념적인….”
“스스로 깨닫거라.”
“…당신은 누구에게 사명을 부여받은 거죠?”
“마도사들.”
쿠직…
쿠지지지지지지직…
그 순간을 기점으로 노을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엘은 아직, 무엇 하나 명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제 호기심이 언젠가 제 삶을 헤치리라곤 생각했지만, 조금 이르긴 하군요.”
“아이여, 너는 이곳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게 무슨…?”
“보고 들어라, 올바른 눈으로 순수한 귀로.”
마엘은 자신의 몸 주변으로 수상쩍은 마력이 모여드는 것을 확인했다. 거부할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마력 조율이었다.
그저, 바람으로 된 천을 덮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니.
“용이시여!”
“그리하여, 네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용의 동공이 처음으로 마엘에게 향했다.
“기록하라.”
후우우우우우우웅…
“안….”
마엘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는 이곳과는 멀리 떨어진, 어느 한적한 해변에서 깨어날 것이다.
첫 용 니에르가 무너지는 탑에서 말한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끝맺었다. 나는 긴 여행을 정리하고 마침내 안식에 다다를 것이다. 돌이켜본다면….”
니에르가 이를 드러내며 표정을 만들었다. 어쩌면, 웃는 것처럼 보일지도.
“이 모든 게 운명으로 느껴졌다. 그래… 아마도….”
쿠구구구궁…
니에르의 탑이 기울어진다.
“당신들은 싫어하겠지만.”
* * *
심판관의 대지.
신앙과 광기의 교역로 ‘거미줄’과 관념의 역사관 ‘아카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이 행성에 붙여진 이름은 따로 있었으나, 심판관이 군림한 이후로는 그의 대지라 일컬어졌다.
심판관의 대지엔 수많은 우주 중개 무역상이 터를 잡고 교역로의 성장에 보탬이 되었다.
거미줄의 존재는 그들이 안전하고도 전보다 효율적인 거래를 할 수 있게 도왔으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심판관은 왕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를 떠받드는 자들이 생겨났으며, 심판관과 중개상들에게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거미줄의 번영은 곧 심판관의 대지가 풍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때문에, 무역상 중 행성에 손에 꼽히는 이문을 가져오는 자들은 심판관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상인들.
심판관의 7대 거상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심판관이 거하는 영원의 회랑에 발을 들일 권한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역사관 아카식까지 출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중요한 거래처와 약속이 잡혀 있는데, 빨리 좀 끝내줬으면 좋겠군.”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낸 것치고는 손님 접대가 영 마음에 안 들어요.”
“쉴 새 없이 떠드는구려. 아까부터 불평만 늘어놓는데 정작 심판관이 앞에 있었어도 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흐음… 내가 할 말도 제대로 못 할 거라는 거예요?”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죠. 나는 가린 행성 출신이에요.”
“여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네가 부유한 행성의 귀족이었다는 걸?”
“가린은 부유한 것뿐만 아니라 고귀해요. 그리고 저는 가린에서도 늘 추앙받았죠. 어딘가에서 아둔한 짓을 일삼다가 멸망해버린 불모지 행성의 천한 출신과는 다르다고나 할까…?”
“그거, 꼭 누군가를 꼬집어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제 고귀한 피가 그게 아니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게 만드네요.”
몇몇 거상이 한 여인을 쳐다보았다.
악귀 가면을 쓴 여인.
매혹적인 향을 뿜어내지만, 어쩐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듣자 하니… 천한 것들과 계속 얽힌다는데… 소문이길 바라지만, 왠지 사실일 것 같네요.”
악귀 가면을 쓴 여인이 반응하지 않고 우뚝 멈춰 서 심판관이 앉을 옥좌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쟈넷이었다.
심판관이 총애하는 7대 거상.
그녀는 그 마지막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여인이다.
‘영원의 회랑… 아름다워라. 이런 곳까지 와서 하찮은 주둥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다니… 음….’
그녀는 나란히 선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 역시 7대 거상인 이상, 이들과는 대등한 존재이기도 했으며 그녀는 자신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이들 역시 대단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왔다.’
그녀의 흥미는 금세 타올랐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샌가 장포를 걸친 자가 옥좌에 앉아 있었다.
“심판관님께서….”
하수인이 뭐라 떠드는지는 금세 묻혔다.
‘심판관….’
무겁다.
그냥… 뭔가 무거운 느낌이다.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꺼풀이 뻐근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7대 거상 중 누구도 심판관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하수인이 엄포를 놓으려 했다.
“불경한! 심판관께 무릎….”
“…….”
심판관이 오히려 하수인에게 눈길을 보내 입을 닫게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상황은 그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군주가 아니다. 너희 역시 신하가 아니니. 나는 추앙을 바라지 않는다. 너희 역시 누군가를 의심 없이 추앙할 만큼 순수한 존재가 아니니.”
심판관은 거상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물건을 고르는 듯한 눈초리로.
다양한 종족, 다양한 생명체를 눈에 담았다.
침묵을 깬 것은, 심판관이 입회하기 전 수다를 떨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심판관, 우리는 누군가의 종복이 될 생각이 없다. 우리는 계약 관계일 뿐이니. 미련한 자들에게서 신앙과 광기를 사들여 그대의 배를 불리고 이문을 남긴다. 오직 그뿐이지.”
“오호호… 그래도, 기세 하나만은 대단하다고요. 이젠 심판관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의 우주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니.”
“그 점은 인정할 만하지. 우주의 패왕을 자처할 만하다.”
심판관이 권태로운 눈으로 거상 중 입을 연 자들에게 말했다.
“우주라… 그대에게 우주는 무엇이지?”
“무엇이냐니? 미리 말해두지만 난 누군가가 날 가르치려 드는 걸 질색한다. 헛된 문답으로 날 가르치려 하다간, 심판관 그대일지라도….”
“순수한 의문일 뿐, 경계할 것 없다.”
“흐음….”
질문을 받은 거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을 만들었다.
“우주는… 우주지. 다원 우주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문명의 수준은 기껏해야 그 경계를 넘어갈 순 있어도 되돌아올 순 없다.”
“그러나 다원 우주는 분명 존재하지.”
“아하… 심판관! 혹, 그대는 언젠가 다원 우주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가?”
“…장난감 몇 개가 늘어난다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뭐, 뭐라고?”
후우우우우우웅…
심판관이 옥좌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영원의 회랑이 진동하며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이건….”
“별의 힘! 아카식을 해석해낸 건가?”
“아니, 다르잖아! 흉내일 뿐이라고, 그래도… 어마어마하군.”
독립 공간.
또는 소우주 창조.
이 언뜻 간단해 보이는 행위에 작은 별 하나의 죽음과 같은 힘이 필요하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대단해….”
풍경은 뒤바뀐다.
심판관의 옥좌 뒤로 눈에 다 담기도 어려운 크기의 적재함이 보였다.
“이건….”
“엄청나잖아….”
쟈넷은 이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적재함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좌표를 계속해서 바꾸고 있군. 예상 범위는 경(京) 단위인가. 노력으로 찾아내긴 무리, 바뀌는 규칙이 있을 거다. 우연은 필연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운명의 장난으로 이곳이 개방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불가해의 영역에서 사고했다.
적재함이 숨겨진 이곳, 바뀌는 좌표를 계속해서 기록했다.
그녀는 적재함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대는 전쟁이라도 일으키려 함인가?”
“엄청난 힘이야… 우주의 탄생 후에 이런 힘이 한 곳에 응축된 적은 없었을 테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주 평의회가 문제 삼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지금도 충돌이 있는 걸로 아는데, 심판관. 어째서 우리에게 이 힘을 보여주는 거지? 그대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심판관은 여전히 무표정.
“아까의 이야기를 마저 하지. 만약, 우주라는 것이 완전하지 않다면… 그대들은 어찌할 텐가?”
“…뭐?”
“우주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건가? 그대는….”
우주는 완전하다.
그것은 이 자리에 존재하는 자들에겐 당연한 진리였다.
딱 한 존재만 빼놓고는.
심판관이 말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곳보다 더 완전에 가까우며 위대한 우주가 존재한다면, 혹은 우리를 지배하는 또 다른 우주가 있다면 그대들은 어찌할 텐가?”
“…….”
“…….”
쉽사리 답을 고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심판관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자들이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초대받지도 못했을 테니까.
“상상할 순 있을지라도,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이다.”
거상의 주장에 심판관이 반박했다.
“직접 보아라.”
후우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영원의 회랑이 또 한 번 모습을 바꾸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이 디딘 바닥이 투명해지며 마치 우주 한가운데에서 부유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으며,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심판관이 드러낸 것은, 적재함이 아닌 다른 장소에 저장된 힘이었다.
신앙과 광기를 쥐어짜 만들어낸 압도적이고 순수한 힘.
온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 정도로, 단순히 목격한 것만으로 온몸이 떨릴 정도로 대단한 힘.
심판관은 감춰두었던 힘을 드러내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거머쥘 것이다.”
“…….”
심판관이 우주의 패왕으로 손꼽히는 이유.
“나는 묻노니, 너희는 감히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하겠는가?”
7대 거상은 이 질문에 두 부류로 나뉘었다.
털썩…
무릎을 꿇는 4인의 거상.
“심판관, 그대를 섬기겠나이다!”
“실로 위대한 뜻이오!”
“나의 뜻을 그대와 함께할 것이오! 온 힘을 다해 그대를 지지할 것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무릎 꿇지 않는 3인의 거상.
“…….”
“…….”
“…….”
거인족이라 불리는 메타인, 비늘을 가진 용인족이라 불리는 드라고인.
그리고 멸망한 초신성 출신의 쟈넷.
심판관은 말한다.
“그대들은 아마도 같은 생각일 듯하군.”
그의 시선이 쟈넷에게 향했다.
“초신성의 딸이여, 그대는 무엇을 꿈꾸겠는가?”
“꿈꾸지 않습니다.”
“…좌절인가?”
“나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런 우주가 있다면….”
씨익…
그녀가 히죽 웃었다.
“그곳에서도 신나게 팔아먹겠군요.”
“…지금과 같다는 말인가?”
“덩치가 커지고 위엄이 늘어날 수는 있겠죠. 아마, 절 위한 종교가 탄생할지도? 하나….”
그녀가 우주를 대하는 태도는, 심판관에게 무릎 꿇은 다른 자들과는 달랐다.
“나는 그럼에도 장사꾼으로 살 것입니다.”
“어째서?”
“그게 내 욕망이니까.”
쟈넷의 옆에 서 있던 두 거상이 그 대답을 듣고 껄껄 웃었다.
“내 욕망은, 원래부터 컸다. 우주가 커지고 나발이고 별 상관없어.”
“어차피, 거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래할 테니. 그것뿐이다.”
무릎 꿇은 자들이 그 발언에 반발했다.
“경박한!”
“심판관께서는….”
기이이이이이잉-
푸화아아아아아악-!
심판관이 손을 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무릎 꿇은 4인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지 않았을 테니까.
‘…보이지도 않았다. 이뤄졌다는 관념보다도 빠른 거 아니야?’
드라고인이 물었다.
“왜 죽였지? 반발이 있을 텐데.”
“그대들의 욕심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리라.”
피식…
“그건 맞지만.”
“내겐 욕심 있는 자가 필요하다. 거래란 믿을 만한 자가 아닌, 나를 섬기는 자도 아닌 욕심 많은 자와 한다.”
“그런가… 뭐,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영원의 회랑을 들어설 땐 일곱이었지만, 밖으로 나올 땐 셋이었다.
오늘부로 심판관의 3대 거상이 된 자들.
꿀꺽… 꿀꺽…
쟈넷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가게에 들어와 독주를 마셨다.
그녀의 내면에 잠든, 아니 끊임없이 지하실의 문을 두드리며 꺼내달라고 말하는 욕망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 아직은 아니야.
호기심이라는 못 말리는 욕망에게.
만약에 세상이, 심판관의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푸하아아….”
그녀는 독주로 욕망의 온도를 낮추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