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79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79화
현실적인 고민과 해결
※ 2016년 4월 2주 차 신우주의 ATP 랭킹
(1) 투어 참가 여부 : 참가
↳ 카프리 와치 컵(챌린저 90)
↳ 결과 : 우승
(2) 포인트 총합
↳ 기존 : 57점
↳ 추가 점수 : 우승 점수 90점
↳ 상실 점수 : 없음
↳ 합계 : 147점(↑ 90점)
(3) ATP 랭킹 테이블
↳ 기존 : 576위
↳ 최고 랭킹 : 576위
↳ 현재 : 324위(↑ 252위)
* * *
#. 2016년 4월 12일
#-1. 이탈리아, 나폴리
#-2. 나폴리 테니스 클럽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은 현재의 신우주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약 27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던 마이클 창의 ‘최연소 챌린저 우승’을 경신한 만 15세의 소년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투어 후 일상으로 돌아간 나폴리 테니스 클럽.
본래라면 화요일 오전은 가장 한산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꽤 많은 사람이 있다.
연습용 코트로 향하는 통로 쪽에 인파가 몰린 이유는 단 하나.
신우주가 훈련을 진행하는 장소라서다.
“그야!”
한쪽에서 시작된 목소리는 곧바로 전염된다.
바리케이드 밖에서 펜을 내미는 사람들.
이들은 신우주의 사인을 바라고 있다.
“젠장! 우리 집 마당 구더기도 놀라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겠네. 시방 대체 이게 뭔 일이야?”
놀라는 것마저도 독특한 에이스 조이스.
하지만 누구도 그걸 지적할 수 없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장 먼저 안드레이가 정신을 차린다.
그는 재빨리 신우주에게 전했다.
“사인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래도 되나요?”
“그래. 너무 시간을 지체하진 말고.”
“네!”
팬들의 앞에 다가간 신우주는 신기하단 얼굴이었다.
전에는 없었던 일이니 그럴 만했다.
그러나 앞으론 익숙한 일이 될 것이다.
“괜찮겠어요? 훈련이 늦어질 텐데요.”
“기껏해야 스무 명도 안 돼. 지금처럼 주목받는 상황에서 팬 서비스를 거절하는 선수로 보일 이유도 없고. 괜히 우주가 건방지다는 프레임이 씌길 바라지 않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팬들이 들고 온 것은 대부분이 테니스공이었다.
크기는 각양각색이다.
얼마 뒤, 살짝 상기된 표정의 신우주가 돌아왔다.
“이렇게나 많은 사인을 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점점 더 팬들이 많아질 거란다.”
“어쩌죠? 그렇게 많은 분께 전부 사인을 해드릴 순 없어요. 그렇다고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할 수도…….”
“하하하.”
안드레이는 소년의 고민이 귀여웠다.
그래서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년의 어깨를 두들겼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자연스럽게 방법을 찾게 될 테니까.”
“정말요?”
“물론. 자, 어서 코트로 가자.”
“네!”
다시 환하게 웃으며 코트를 향해 움직이는 신우주를 보며, 안드레이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거다.
미디어가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날, 네마냐 플라브시치가 전화를 걸어와 엄청난 숫자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랭킹과 명성 또 인기가 곧바로 투어 참가와 연결되는 테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중 일부는 반드시 수락해야만 했다.
현재, TNU는 한 미디어를 고려 중이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만큼 이탈리아 미디어다.
‘SUPER TENNIS.’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테니스 전문 채널이다.
“좋아! 가볍게 몸부터 풀자!”
“얼마든지요!”
에이스 조이스와의 그라운드 스트로크 훈련.
TNU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탕!
탕!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
“한국, 롤랑가로스. 다 좋아요. 그런데, 그 생각은 안 해봐요? 만약 우주가 다음 토리노 투어랑 한국에서 펼쳐지게 될 두 개의 투어에서 모두 포인트를 따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
하루 전에 발표된 ATP 랭킹 기준, 128위를 기록한 비요른 프란탄젤로(Bjorn Frantangelo)의 포인트는 448점이었다.
롤랑가로스 이전 신우주가 참가가 확정된 세 개의 투어에서 획득할 수 있는 최대 포인트는 310점이다.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신우주의 합산 포인트는 457점이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기준, 러시아의 콘스탄틴 크라프추크(Konstantin Kravchuk)와 함께 공동 125위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그랜드슬램 참가 자격 획득을 뜻했다.
롤랑가로스 참가자 발표일은 오픈 개막 3일 전인 5월 19일이다. 신우주의 5월 서울 챌린저 투어는 15일에 끝난다.
충분히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확률은 희박하다.
높은 명성만큼이나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그랜드슬램의 주최 측은 ATP 마스터스 250레벨의 투어조차 소화하지 않는 소년의 참가를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본선 직행은커녕 예선조차 쉽지 않다.
불합리하지만, 그게 테니스 세계다.
신사의 스포츠로 불리나, 가장 불합리한 동네다.
물론, 가능성은 존재한다.
“주니어 캘런더 그랜드슬램. 그거 좋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니어 대회가 우주에게 의미가 있을 때의 이야기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후우-”
소년을 위해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바스코 토미치의 주장은 안드레이 시미치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
나중에 어찌 되든, 롤랑가로스엔 참가한다.
악명 높은 코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만약 신우주가 계속해서 전승 기록을 유지해 나가며 연이어 챌린저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면, ATP 마스터스 참가는 확정이고 롤랑가로스 측도 태도를 바꾸게 될 수도 있다.
그런 미래를 가정하며,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로 소년을 위해 최선인지.
무작정 높은 레벨에 뛰어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생각할 시간은 많아. 일단 지켜보자고.”
“네. 그렇지만 제 말은…….”
“나도 알아, 바스코.”
“안드레이.”
“나도 자네와 같은 마음이야.”
불확실한 미래에서 정해져 있는 부분도 몇 개 있다.
지금 안드레이의 고민도 정해진 그것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지금은 그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는 안드레이.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신우주를 보았다.
“슬라이스로 부탁해요!”
“네가 말을 잘 들어야, 슬라이스를 줄 거야! 안 그럼 그냥 내 마음대로 보낼 거라고! 왜냐하면, 나는 에이스고! 너한텐 내가 빌어먹게 필요하니까! 인정?”
“네, 인정. 그러니, 슬라이스 좀 줄래요?”
“Hell Yeah. 그 말을 듣고 싶었어.”
지금의 일상을 언젠간 그리워할 날이 올까?
부디 그날이 멀리 있길 바라는 안드레이다.
* * *
#. 2016년 4월 15일
#-1. 이탈리아, 나폴리
#-2. 클루 커피&푸드
지난번 대회 상금은 9,200유로였다.
한국 돈으로 천만 원이나 된다.
그렇지만,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투어엔, 정말 많은 돈이 든다.
최소 9만 유로.
나는 팀이 많아서 15만 유로 정도가 필요했다.
란코 코치님이 지난번에 얘기해 줘서 알고 있다.
“얘가 말했다고?”
“웁스. 실수했다.”
세르비아어로도 실수했을 때 내는 소리는 웁스(упс)다.
비밀이라고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바스코 코치님이 란코 코치님의 뒤통수를 때렸다.
찰싹-!
“윽!”
보는 내가 아플 정도였다.
죄송했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란코 코치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나도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말했다.
“저도 이젠, 전부 알고 싶어요.”
“…….”
투어를 하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누구도 나보다 많은 사람과 다니지 않는다는 것.
보통은 둘 아니면 셋이었고, 혼자 다니는 경우도 봤다.
어떤 선수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도련님처럼 다니지 말라.”]고.그러면서 재수 없다며 침도 뱉었다.
물론 나한테 직접 뱉은 건 아니다.
노박 조코비치 선수의 팀이 열둘이나 된다고 들어서 그것만 생각했는데, 내가 특별하다는 걸 챌린저를 뛰며 알게 됐다.
“사실은…….”
머리를 긁적이던 필리프 코치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넌 마스터스 1000레벨의 팀을 꾸리고 있어.”
“톱 랭커란 거네요.”
“Top 50. 어쩌면 Top 20일 수도 있지.”
“돈이 많이 들어요. 그렇죠?”
“맞아. 우리의 급여. 식비. 기타 비용. 최소한도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15만 유로 정도야. 물론, 우리에겐 포포비치 씨가 있고 또 TTA가 우리 급여를 주고 있어.”
“……아카데미에서 일하지 않는데도요.”
“응. 전부 얀코가 바라는 거야.”
투어에 참가해 연습할 때마다, 다른 선수들은 서로를 돕는데 왜 내겐 아무도 말을 걸지 않나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재수 없어 보였나 보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게.
새삼 주변 분들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다.
나 때문에, 많은 걸 희생하고 계시다.
“이젠 내가 이야기하지.”
“안드레이 코치님…….”
“우주야. 잘 들으렴. 네가 미안해하고 있다면, 전혀 그러지 않아도 돼. 우리가 바란 거지, 네가 원했던 게 아니니까.”
“하지만, 죄송한걸요.”
“그래. 마음은 이해한단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네요.”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제야 깨닫게 된 것들이 생겼다.
플라브시치 코치님과 다닐 때 왜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나누다 거리를 뒀는지. 그리고 일방적으로 먼저 시비를 걸어온 이유 역시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챌린저 선수들은 코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돈이 없기 때문일 거다.
서로서로 도우며 코치이자 훈련 파트너, 때로는 피지컬코치 역할까지도 하며 마사지도 해주고 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줬을 게 틀림없다.
그런 그들의 눈에 나는, 아무런 현실적인 걱정 없이 테니스만 해도 되는 사람으로 보였을 거다.
부러웠을 거고, 질투도 났을 거다.
왜 그걸 몰랐던 걸까.
“우주? 넌 이제 겨우 열다섯이야.”
“네. 하지만 테니스 선수라면 저보다 어린 사람들도 이런 걸 전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건…….”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철부지 어린애였다.
코치님들과 데니스 삼촌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심했다.
“제가 더 잘할게요!”
“……뭐라고?”
“제가 더 열심히 테니스를 하겠다고요.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매일매일 숙제도 더 꼼꼼히 할래요! 투어에 나가면 꼭 우승하겠어요! 바보처럼 즐기기만 했는데, 앞으론…….”
“아니. 그럴 필요 없단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안드레이 코치님이 내 앞으로 왔다.
울기 싫은데, 눈물이 눈에 가득 찼다.
깜빡하면 흐를 것 같다.
그래서 눈을 계속 뜨고 있었는데.
정말 울기 싫은데.
난.
“흑.”
아, 바보 같다.
진짜 울고 싶지 않았다.
근데 참지 못하겠다.
“우주야. 잘 들으렴. 지금 너는 아주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어. 앞으론 네 삶이 많이 변할 거란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지금처럼 테니스를 즐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승리에 집착하고, 그걸 이뤄내지 못했을 때 좌절도 하겠지. 테니스가 친구처럼만 느껴지진 않을 거란다.”
“훌쩍. 그런 건 잘 몰라요. 저는 그냥…….”
“그래. 네 맘 전부 알아.”
언젠가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할 때가 올 거랬다.
그러니 지금은 평소처럼 생각해도 된다고 했다.
“정말…… 훌쩍. 괜찮으신 거예요?”
“물론. 그러니, 약속해다오. 최소한 올해까진, 그런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기로.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무엇보다, 네가 걱정하는 그런 부분도 곧 해결……”
“으아-! 못 참겠네!”
“?”
갑자기 곁에 있던 에이스 코치님이 벌떡 일어섰다.
아니, 에이스 코치님인 줄 알았다.
일어선 건, 뒤에 있던 사람이다.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굴었나?
그런데, 누구?
“하아- 세르비아어를 할 줄 아는 걸 후회하게 될 줄이야.”
“……당신, 뉘슈?”
에이스 코치님의 질문에, 벌떡 일어섰던 남자가 몸을 돌려 우리의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명함을 놨다.
란코 코치님이 그걸 가져갔다.
“비도 아르시치. 세르비아 사람?”
“아뇨. 미국인입니다. 부모님이 세르비아분이죠.”
“아- 그런데, 윌슨이라고요? 설마 그 윌슨?”
“네. 그 윌슨이 맞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찾아왔다고 했다.
처음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알아봤는데, 뭔가 심각한 이야기 중인 것 같아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Mr. 플라브시치에게 들은 것 없나요?”
“듣긴 했지만, 토리노가 아닙니까?”
“아. 뒤에 일정이 생겨서요.”
“잠깐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정리가 필요하단 에이스 코치님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눈물은 오래전에 쏙 들어갔다.
훌쩍.
콧물은 좀 남았지만.
아무튼, 안드레이 코치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우주가 바볼랏을 거절한 뒤에, 윌슨에서 연락이 왔어. 후원을 맺고 싶다더군. 일단 나는 네마냐가 그걸 거절한 거로 알고 있어.”
“거절? 윌슨을? 왜?”
“그건, 제가 설명하죠.”
어느새 의자를 끌고 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참 능청스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사람을 어디서 봤는데.
아, 생각났다.
나이키의 아치 커클랜드 씨다.
하지만, 이분은 그분보다 좀 더 뻔뻔한 느낌이다.
그래도 싫은 느낌은 아니다.
“인정할게요. 우리가 오만했어요.”
“오만?”
“전화로 매년 70만 달러를 후원하겠다고 했죠. 외에도 라켓을 필요한 만큼 제공하겠다고도요. 팬들에게 주거나 하는 라켓은 연에 12벌이었고요.”
“그거 나쁘지 않은…… 헙!”
“택도 없는 조건이야.”
란코 코치님의 입을 가로막은 바스코 코치님이 눈을 매섭게 뜨면서 말씀하셨다.
근데, 지금 70만 달러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거 엄청나게 큰돈 아닌가?
투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돈이다.
그래서 나도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번엔 에이스 코치님이 손을 뻗어 말을 가로막았다.
“70만? 역대 최연소 챌린저 우승잔데?”
“네- 저희도 이젠 적었다고 생각해요. 저희로선, 로또를 터뜨릴 기회를 날린 셈이지만요.”
“세상이 그렇게 쉽지는 않수다.”
“하하. 저도 동의해요.”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인 비도 아르시치라는 사람이 바닥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그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래서 제가 온 거죠.”
“틀림없이 좋은 조건이어야 할 거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내 사비를 털어서 얘를 도와줄 거니까.”
“하하. 돈이 많으신가 봐요?”
“피트 샘프러스와 일했거든.”
“와우. 그거 엄청나네요.”
에이스 코치님의 매서운 시선.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
비도 아르시치라는 사람은 이제 나를 돌아봤다.
“조금 전 대화.”
“……네?”
“젠장. 난 정말이지 그런 신파극을 좋아하거든. 아까 그 대화가 연기가 아니라면,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두죠. 본래 제가 제안할 첫 번째 금액은 120만 달러였지만, 특별히 회사가 허락한 최대한도를 제안하죠. 이건 저희 윌슨의 처음이자 유일한 제안이 될 겁니다. 지금 당장은요.”
셔츠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펜을 빠르게 뽑아 든 비도 아르시치 씨는 뚜껑을 열더니 바로 서류로 가져갔다.
슥-
슥-
어떠한 부분이 지워지고, 그 위에 다른 것이 적혔다.
그러곤 아까처럼 빠르게 펜을 원위치에 꽂았다.
저것만 한참을 연습한 것 같다.
“150만 달러.”
“워.”
“흠.”
코치님들의 반응은 나뉘었지만, 표정은 비슷했다.
놀랐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계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거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시다시피, 로저가 저희에게 35만 달러를 받거든요.”
“그야, 당신들이 사기를 쳤으니까.”
“하하. 이거, 당신이 있어서 거짓말은 못 하겠네요. 네, 맞아요. 우리가 로저에게 사기를 쳤죠. 그가 유명하지 않았을 때, 평생 계약을 조건으로 연 35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어요.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5년 35만으로 참으라고 했죠. 참고로, 그건 매년 35만이 아니라, 총합 35만이었어요.”
“있잖아…….”
비도 아르시치 씨와 에이스 코치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란코 코치님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줬다.
어렸을 적 로저 페더러 선수는 투어에 즉시 참가할 정도로 경제 사정이 풍족하지 못했고, 되도록 스위스 국내와 주변국들에서 열리는 투어만을 참가했다.
하지만 페더러 선수는 이내 자신의 재능을 나타냈고, 그때 윌슨이 등장해 투어를 뛸 수 있을 만큼 돈을 줄 테니 평생 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35만 달러였다.
“뭐,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받았을 거야. 그리고 로저는 꼭 윌슨이 아니어도 엄청난 돈을 버니까.”
“얼마나요?”
“스폰서십만 7천만 달러가 넘어.”
“7천만……. 엄청 큰돈인 거죠?”
“빌어먹게 크지. 네 상금을 봐.”
“제 상금. 작고 귀엽죠.”
“그렇지만 소중하지.”
“네. 그건 맞아요.”
“이봐! 뭘 그리 속닥대는 거야?”
이야기가 끝났는지, 에이스 코치님이 우리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안드레이 코치님은 서류를 읽고 계셨다.
얼마 뒤엔 그것을 도로 내려놨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요.”
“네. 계약 기간인 3년 동안, 일 년에 세 번 미국의 투어에 참가해 줘야 해요. 그리고 그때마다 회사가 정한 일정이 잡힐 거고, 회사를 대표하는 모델로 활동도 해야 할 거예요. 외에는 자유죠. 이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안드레이 코치님이 나를 돌아봤다.
괜히, 긴장이 됐다.
“우주?”
“ㄴ, 네.”
“내가 볼 땐 이건 상당히 괜찮은 조건인 것 같구나. 너만 괜찮다면 네마냐와 너희 부모님이 이걸 검토하게 하고 싶어. 그래도 되겠니?”
“음, 그러니까. 좋은 거죠?”
“Hell Yeah.”
대답해 주신 건 에이스 코치님이었다.
“완전 쌈@빡한 계약이야. 받아들여.”
“그, 그럼 그럴게요.”
“좋아. 들으셨죠?”
“완벽하군요. 상사한테 조금 들볶이긴 하겠지만,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무튼, 좋은 거래였어요. 명함은 여기에 둘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앞으로 연락 줘요. 아 그리고, 지금 이미 저희 제품을 쓰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만.”
“완벽하네요. 다음 일정은요?”
“토리노입니다.”
“토리노라. 잠시만요.”
휴대전화를 매만지던 비도 아르시치 씨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나를 직접 쳐다봤다.
“토리노에 우리 제품을 파는 곳이 있단다. 그중 하나에 미리 연락해 둘 테니, 거기 가서 원하는 걸 집어도 좋아.”
“저, 정말요?”
“물론. 계약조건상 본래는 다섯 벌 까지지만, 처음이니까 10개까지는 봐주마.”
한동안 테니스 용품점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돈보다 지금 이 제안이 더 좋았다.
내게는 가장 기쁜 시간이다.
라켓을 고르는 것.
만족스러운 미소의 비도 아르시치 씨가 떠나고, 우리만 남겨진 상태에서 에이스 코치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젠장. 너 확실히 좀 특이한 애야.”
“네? 제가요?”
“그래. 150만 달러보다 라켓 10벌이 더 기쁘다고? 뽕@알아-! 만약 나였잖아? 기뻐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을 거야! 150만 달러라고! 세금을 떼면 절반 정도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우주?”
“네?”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안드레이 코치님.
그걸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그리고 코치님은 말씀하셨다.
“앞으로도 계속 테니스를 즐기렴.”
“!! 네!!”
여전히 잘은 모르지만 하나는 알 수 있다.
금방,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났다.
* * *
[내달, 신우주가 부산과 서울에서 펼쳐질 챌린저 투어에 참가한다고 밝힌 대한 테니스 협회 – 코리아테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