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05)
첫눈이다.
늦은 오후의 희뿌연 하늘은 앙증맞은 눈송이를 쏟아냈고.
메르헨 아카데미는 눈과 서리에 뒤덮여 새하얀 장관을 뽐내고 있었다.
2학기 학기말 평가만을 앞둔 시점이라 대부분의 학생은 면학과 수련에 열을 올리면서도, 첫눈이 전해주는 아련한 감상에 잠시간 젖어들곤 했다.
루체 엘타니아는 냉담한 얼굴로 말없이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작을 찾아가 활짝 웃으며 사사롭게 장난을 치거나 함께 공부하거나 마력기 단련을 도와주었다.
아이작과 함께 있으면 얼음공주라는 우스개 별명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활달한 모습을 보였다.
사랑이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하던가.
겉보기엔, 그녀가 누구보다도 아이작 바라기라는 데엔 아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었다.
카야 아스트레앙은 이번 학기말 평가에서라도 루체를 넘어서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래의 인격은 루체와 아이작이 매일 붙어 다니는 모습에 몰래 치를 떨었고.
도중에 보다 못한 악식이 나서서 잠깐씩 아이작을 뒤에서 껴안아주며 유혹하거나,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시엘 카르네다스는 학기말 평가가 있든 말든 일단 자고 봤다.
리제타 라이온하트는 터프한 성향은 여전하지만 사람이 겸손해졌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 마법학부 1학년 사이에서 나돌고 있었다.
뜻밖에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수없이 마도 둔기, 록타를 휘두르며 뼈를 깎는 단련을 해나갔다.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이번 학기말 평가에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 셈이었다. 이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평민, 아이작에게 따라잡혀선 안 된다는 은근한 위기의식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베르가를 쓰러뜨렸던 아이작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니. 트리스탄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조급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마테오 조르다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과, 그의 연인이라 소문난 에이미 할로웨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마법 단련에 힘을 쏟았다.
평민이라 해도 실력적으로 귀족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음을 반드시 증명하리라, 각오를 다지면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아카데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한들.
각자 서로 다른 사정을 품고,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간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시간은 그리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온 돌멩이에 유리창이 깨지듯 놈이 나타난다.
저녁, 아킨스 해 상공.
그것은 자기 존재를 알리듯 목관악기처럼 울리는 기이한 울음소리를 제르베르 황국에 널리 퍼뜨렸다.
음파가 건물 외벽을 두두둑 흔들자, 학생들은 놀란 얼굴로 각자 서쪽을 쳐다보았다.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바다를 뒤덮을 듯.
거대한 섬 하나가 미동 한번 없이, 대규모의 이류안개에 휘감긴 채 가만히 천공에 떠 있었다.
그 웅대한 크기에 학생들은 입을 떡 벌리고 만다.
“저게… 뭐야?”
“위험한 거 아니야?”
“저런 게 어떻게, 갑자기 툭 튀어나와?”
“방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잖아?”
“저거, 설마… 부유섬인가?”
그 섬이 전해주는 아득하고도 이질적인 신비감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무언가였다.
물리력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마력이 파도처럼 몰아친다.
제르베르 황국 토벌 목표 대상 1순위, 부유섬.
어느 날 돌연 그 섬이 나타나면, 그 주위는 온통 쑥대밭이 되곤 한다는 기록이 역사에 새겨져 있었다.
용맹한 기사가 그 섬에 이르고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기록해 놓았길, 그곳은 낙원이자 지옥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나 보았던 부유섬이, 고작 눈 한번 깜박일 새에 학생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 * *
부유섬, 지괴의 카발리온.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파트에서 첫눈이 내리는 날, 놈은 아킨스 해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아킨스 해 방면 해안가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짙은 이류안개로 들어찬 바다 위, 천공에 떠 있는 웅대한 땅덩어리 마족.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1학년 2학기 마지막 마족이 내 눈앞에 등장했다.
[ 지괴의 카발리온 ]Lv : 190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땅
위험도 : 극상
심리 : [ ────────. ]
‘진짜, 더럽게 크네….’
역시나, 게임에서 보는 것과 현실에서 보는 건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진짜… 지랄 맞게 컸다. 빙설룡-힐드도 저 마족 앞에선 콩벌레 크기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엄청난 안개 탓에 무척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신기루가 아닐까, 싶을 정도.
내 기억에 따르면, 지금쯤 학사측엔 비상이 걸린다.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는 섬뜩하고도 공격적인 마력을 감지해 통신 마법으로 교장 엘레나에게 위기 상황임을 전달했겠고.
교장 엘레나는 학사진, 학생회와 함께 학생들을 대피시킬 것을 명하고, 황실 기사단에게는 협력을 요청했겠지.
아카데미 연구진과 헤겔 마탑은 연계하여 부유섬의 구조를 빠르게 분석하고, 대응책을 수립하고 있으리라.
참고로 부유섬이 단순 물질적인 섬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마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지금부터 약 2시간 뒤에 벌어질 일.
위우우우웅───.
곧, 엄청난 규모의 마법진들이 부유섬 몸체에 덕지덕지 새겨져 나갔다. 전투 태세다.
땅 속성 마법진. 그것은 바위 속성 마법진 색보다 진한 진황색을 띠고 있었다.
바위 속성은 땅 속성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며, 땅 속성이야말로 진정한 근원 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바위 속성 비스무리하게 취급되니까….’
땅 속성은 대미지 계산시 약 70퍼센트 정도는 바위 속성으로 취급됐던 게 기억난다.
왼쪽 손목에 끼워둔 원소 팔찌는 바위 속성으로 설정해 두었다. 따라서 내 [바위 속성 원소 저항력]은 40 만큼 증가한 상태.
부유섬 자체가 지나치게 거대한 탓에, 하나하나가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마법진조차도 상대적으로 작게 보였다.
그러나 부유섬 밑으로 천천히 궤적을 그려 나가는 광활한 흑갈빛 마법진은 그 규모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마력량으로 구현해내는 마법진이니만큼, 제 형상을 새겨나가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의 계산에 따르면 앞으로 약 4시간 뒤, 그 마법진은 온전한 형상을 갖출 것이라고 학사 내에 정보가 퍼졌을 터.
저 광활한 마법진이 아킨스 해를 향해 공격을 퍼붓는다면,
아킨스 해의 일부가 증발하고, 광대한 제르베르 황국의 영토마저도 최소 10분의 1은 소실될 것이 분명하다.
메르헨 아카데미가 있는 이 섬은 그 공격에 가볍게 휩쓸려 나가 소멸하는 수준에 불과할 테지.
그것이 배드 엔딩 내용이다.
“아, 아이작 님…. 진짜로, 저게 마족…입니까…? 저 섬 하나가 통째로?”
모래사장 위.
내 옆에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어여쁜 소녀, 카야 아스트레앙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취색 눈동자. 본래의 카야였다.
그녀는 나와 같이 인식 저해용 검은 후드 로브를 입고 있었다.
카야에게는 미리 부유섬이 나타날 거란 정보를 전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가 있다면 부유섬까지 몰래, 그리고 빠르게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예상대로, 카야는 ‘아카데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이라고 정의감을 불태우며 발 벗고 나서 주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실제 적을 목도하니 감회가 새롭나보다. 아르마나의 완드를 쥔 양손을 덜덜 떨고 있는 모양새가 그러하다.
타오르던 의욕과는 다르게, 저 웅장한 크기와 어마어마한 마력량에 압도당한 듯했다.
“저걸… 쓰러뜨리는 거죠? 저희가…. 앗, 아이작 님?”
나는 부유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카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괜찮아. 위험할 것 같으면 나한테 붙어.”
…어째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얜 어떻게 머리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냐.
어느 틈엔가 카야는 얼굴을 확 붉힌 채였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려 미동조차 없다.
“후와아아아….”
공기 빠지는 듯한 이상한 신음 소리가 카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튼, 이제 겁에 질린 얼굴은 아니네.
“가자.”
“네에….”
카야는 눈을 내리깔고, 달아오른 뺨을 말꼬리 같은 한쪽 머리 갈래로 슬쩍 가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상의 리파가 [투시]라는 고유 마법을 사용했듯, 부유섬-지괴의 카발리온은 순간 이동 마법을 고유 마법으로서 쓸 줄 안다. 흔히 이르길, 워프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세계관에서 순간 이동 마법은 매우 드문 편.
‘도로시나 원왕도 못 하는데, 말 다 했지 뭐.’
부유섬은 제 거대한 몸집을 한번 순간 이동하면 적어도 하루 이상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여담이지만, 평소엔 심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기에 황국에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놈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그리고 부유섬은 자신이 저주를 내린 대상인 도로시 하트노바와 해치워야 할 빛 속성 보유자 이안 페어리테일을 자신에게로 워프시킨다. 대상을 지정하는 고유 마법이며, 막을 수 없다.
도로시는 중심부에 있는 핵에 흡수되고, 저주가 급격히 촉진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터. 무력한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반면, 이안은 부유섬 어딘가로 워프될 뿐.
그 이후로 부유섬은 제약이 걸려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이 끝날 때까지 워프 마법은 아예 쓰지도 못한다.
‘그러니 첫 번째로 해야 할 건.’
이안을 서포트하기.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출동하는 토벌대와 이안이 합류하기 전까지만, 녀석을 지켜주는 것이다.
이안은 주인공 답게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자다.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부유섬을 막아내야 한다고 판단.
부유섬의 하수인들을 해치워 나가며 중심부로 향한다.
반드시 이안은 부유섬의 중심부에 있는 핵을 향해 [빛의 사도]를 갈겨줘야 한다.
그래야만 부유섬에게 걸려 있는 강력한 보호 마법이 무력화되고, 놈에게 유효타를 먹여줄 수 있게 되니까.
‘그때가 내 차례지.’
내 최종 목적은 도로시의 별빛 속성 궁극기 [초신성 폭발]급 화력을 부유섬에게 쏟아 붓는 것.
따라서 마력을 남용할 수 없는 처지라, 웬만해선 카야의 역할이 중대해질 수밖에 없다.
부유섬은 낙원이자 지옥. 무척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지만 반짝이는 불과 유황 못, 독 포자를 뿌리는 새하얀 버섯, 닿으면 피부가 괴사돼 버리는 보석 등이 즐비하다.
그래도 카야의 식물 속성 회복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만일의 위기상황이 닥쳐도 어떻게든 커버가 되리라.
참고로 토벌대가 이안을 추적하는 건, 녀석의 넥타이에 착용된 넥타이핀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 걱정 없다. 에이미의 집착 어린 선물이자, 위치 추적이 가능한 마도구다.
나와 카야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우───.
고밀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연녹빛 바람이 나와 카야를 휘감았다. 몸이 붕 떠오르고, 부유감이 밀려온다.
그렇게 우리는 바람을 타고 부유섬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부유섬에 침입하는 건 무척이나 간단하다. 그냥 가면 된다.
놈은 침입해 오는 자들을 막지 않으니까.
자기 몸체에 있는 시체는 곧 자양분이 되는 까닭이다. 땅 속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출전하는 부유섬 토벌대가 쉽게 놈에게 도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와 카야가 놈에게 날아가는 도중에 공격을 받을 염려는 없으리라.
“아이작 님.”
바다를 가로지르며 부연 안개를 헤쳐 나가던 중, 카야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정면으로 휙 돌려 버렸다.
뒤집어쓴 후드 모자 안쪽에, 카야의 뽀얀 뺨에 불그스름한 빛깔이 떠올라 있었다.
“이때가 기회인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 뭐 제 개인적인 욕심이라 꼭 들어주실 필요는 없구, 또 아이작 님께 실례이기도 해서 진짜로 굳이 들어주실 필요는 없지만, 그, 그냥 생각보다 조금 무섭기도하고 그래서, 물론 들어주실 필요는 없지만…!”
“뭔데?”
왜 이리 횡설수설하냐.
카야는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살짝 숙여 내 눈을 피하면서 은근하게 손을 내밀었다.
얼굴은 새빨갛게 붉힌 채로.
“손만 잡고 가도, 괜찮을까요…?”
“…….”
생각해 보면 최근에 얘, 루체와 내가 붙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많았지.
루체가 마력기 단련을 도와주는 건, 떨어져서 보면 손을 잡은 연인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카야가 그 모습을 꽤 부러워 하고 있었다는 건 [심리 간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카야에겐 고마운 게 많다.
당장에 오늘만 해도 그녀가 내 편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오히려 손을 잡는 정도의 바람조차 무시하는 건 그녀를 업신여기는 기분조차 느끼게 한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
덤덤하게 카야가 내민 손을 휙 잡자, 그녀는 어깨를 흠칫 떨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앗, 흐아아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 손을 바라보는 카야.
그녀가 피부색이 뒤바뀔 만큼 얼굴과 손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건, 은둔의 가르지아를 처치하고 캠핑했던 날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 카야 아스트레앙 ]심리 : [ 당신과 손을 잡아 몹시 감격하고 있습니다. ]
“집중해줘, 마력 흩트리지 말고.”
“네에, 아이작 님….”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애교스러우면서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카야.
후드 모자를 썼음에도 머리 위로 열기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남자 면역은 아직 약한 듯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마도 악식의 영향일 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면을 쳐다보자, 작은 나라 수준으로 거대한 섬이 내 눈에 담겼다. 그 압도적인 위용만으로도 잡아먹힐 것 같은 기분.
그래도.
‘도로시는 뒤지게 안 둔다.’
여태껏 내 목적을 위해서, 시나리오를 야금야금 갉아먹어오면서도 변수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 왔다면.
오늘은 시나리오를 밥상 뒤엎듯 통째로 엎어버릴 작정이었다.
악신을 잡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도 나는 달려왔으니까.
여느 때와 같았다.
해보자.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86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열혈 1학년
마력량 : 14000 / 14000
– 마력 회복 속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