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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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도로시 (2)
하늘의 축복을 몰아 받은 듯한 천재적인 마법적 재능. 그 강함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고들 한다.
레벨은 180. 가히 압도적이다.
‘오메···.’
이렇게 현실에서 도로시 하트노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뻐서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았던 캐릭터이기에, 그녀를 보는 순간을 고대해 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교복 리본에는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는 작은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파란색은 2학년을 상징한다.
“단련 중이었는데…, 그러는 선배는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여기서 뭐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반대로 물었다.
그냥 물어본 것이다. 도로시가 왜 하늘에서 떨어졌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자연의 풍경 따위를 구경하다 내려온 거겠지.
이곳저곳에서 그러다가, 오늘 하필 내가 있는 정원 구석을 낙하 지점으로 삼았을 뿐일 터.
“나? 봤잖아.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어!”
“그니까 왜 하늘에서 떨어지는데요?”
“비구름이 뭉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거든. 이제 더 볼 게 없어서 떨어진 거야.”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도로시.
“저 높이 올라가면 수평선이 보인단 말이지. 난 노을 진 하늘이랑 바다의 경계선을 좋아해. 해가 수평선 너머로 져가는 광경이 무척이나 낭만적이거든.”
들뜬 목소리로 궁금하지도 않은 걸 떠들어대기 시작하고.
“특히 비구름 만들어지는 순간이 제일 좋아. 심미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날면서 구경하다가 ‘이제 됐다’하고 떨어진 거지.”
“…….”
“니히히.”
도로시는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녀가 공중부양을 하면서 수평선을 볼 수 있었던 건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같은 자연계의 힘을 다루는 별빛 마법 덕분이다.
바람 마법으로 몸을 띄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그나저나 무슨 단련? 얼음 속성? 왜 여기서 해? 원래 혼자 이래? 무슨 마법 쓰고 있었어? 몇 성급까지 쓸 줄 알아?”
다짜고짜 잰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호기심이 왕성한 ‘척’하는 그녀니까,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그녀가 건네오는 질문엔 그 어떤 호기심이나 흥미도 담겨 있지 않을 터였다. 단지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연기인 셈.
도로시는 타인을 친근하게 대하지만, 아무리 친해져도 막상 마음은 잘 열지 않는 스타일이다. 웃는 얼굴이라는 가면을 쓰고, 타인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둔다.
루체 엘타니아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그녀는 타인에게 무관심하지만, 막상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아예 활짝 열어 버리니까. 적당한 심리적 거리감을 둘 줄 모르는 까닭이다.
‘우왓.’
휙.
도로시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오우,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언제나 보는 이로 하여금 호감을 살 수 있도록 매 순간 미소를 짓고 다니는 그녀. 그러나 그 미소엔 많은 가식이 섞여 있다.
마녀 모자 아래.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가 내 심중을 꿰뚫어 보려는 듯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다. 그녀는 진짜로 심중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심해 고리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 [심리 간파]. 그와 비슷한 [감정 간파]라는 스킬을 도로시는 쓸 수 있다.
공포, 애정, 동경, 사랑, 우정 등등. 눈이 마주친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천라만상]이라는 고유 특성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생물의 본질 같은 걸 꿰뚫어 볼 수 있다는데, 구체적인 범위는 게임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도로시의 신비감을 더해주기 위해서겠지.
뭐, 본질을 꿰뚫어 보는 특성 같은 건 나중 가면 주구장창 나온다. 고레벨 캐릭터들의 기본 소양 같은 느낌으로 전락된다고 해야 할까.
“너, 나 알아?”
역시나, 심리가 꿰뚫렸다.
그녀에게 내 심리 상태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쁘게 보이고 있지는 않겠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해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순 없는 노릇이니, 아주 살짝 꾸며내서 대답하기로 했다.
“네, 도로시 선배니까요.”
“으음.”
썩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도로시.
막상 대답하고 생각해 보니 납득 되는 반응이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도로시 하트노바를 모르는 건 이상한 일. 그녀가 한 질문의 의미엔 더 깊은 뜻이 있을 터다.
그녀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다. 즉, 내 감정은 ‘애정’ 같은 것으로 비쳐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상당한 크기겠지.
도로시 처지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한테서 그런 감정이 보이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대답으로 내놓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네.’
도로시가 딱 좋아할 만한 대답 같은 건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도로시 선배 팬입니다, 저.”
콧김을 훅 내뱉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 진짜?”
도로시는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유독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관심종자 끼가 다분한 성격이다. 연예인 병이란 거다.
그래서 남들과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 앞에선 무조건 ‘별빛’ 마법만 쓰는 까닭이 그렇다.
‘그래서 좋아했지.’
도로시는 네임드 캐릭터지만 공식 히로인은 아니다. 그런데도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내 최애캐는 단연코 그녀였다.
고시 공부로 찌들어 살던 때, 나는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특별한 게 없는 놈처럼 느껴졌다.
허무하고, 허탈했던 일상.
아직 하늘이 채 밝지 않은 새벽에 독서실에 가고.
독서실을 나서면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나를 반겨 줬다.
그런 별 볼일 없는 일상 때문이었다. 유독 빛나려는 사람이며, 어디에 있든 자신을 드러내려 하던 도로시가 그토록 내게 와 닿았던 것은.
내가 너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많은 힘을 얻어왔는지 넌 모를 거다.
“으흠흠, 그런가. 내 팬인가~.”
도로시는 내게서 떨어지더니, 눈을 감고 헛기침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쑥스러워하는 모습. 저건 솔직한 반응이었다. 게임에서 하도 봐 왔기에 알고 있었다.
이토록 팬이란 도로시를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최고의 존재인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가 내 감정을 읽기까지 한 상황이다. 내가 그녀의 팬이란 대답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을 것이다.
“1학년 중에 내 팬이 나왔을 정도면, 이미 내 팬클럽도 있다는 얘기 아니야?!”
“···예?”
있겠냐···.
···아니, 진짜로 있나?
“아아, 뭐야아. 나 팬미팅할 수도 있는 거잖아? 드디어 내 싸인이 빛을 발할 때가 왔군!”
단숨에 사고를 확장시키더니 흥분한 얼굴로 김칫국을 들이마시는 도로시.
그래도 귀엽긴 귀여워서, 그냥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아직 유치원도 졸업 못한 딸내미가 ‘전 커서 연예인이 될 거예요’라고 포부를 밝히더니, 벌써 팬 미팅을 걱정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게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아직 결혼해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느낌이 그랬다.
“회장은 누구야?”
“1학년은 저요.”
“엑? 학년도 나뉘어 있었어…?”
모른다. 애초에 팬클럽 같은 게 있는지도. 그냥 기 살려주려고 한 말이었다.
그래도 다른 학년은 모르겠지만, 1학년 중에선 내가 도로시 1호 팬인 건 확실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짬밥이 있는데.
“그러니까, 저 싸인 좀.”
도로시 장단에나 맞춰줄 겸 싸인이나 받기로 했다.
복습하려고 가져왔던 수업 자료 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도로시에게 건넸다.
그녀는 실실 웃으면서 미리 준비해 놓았던 깃펜을 꺼내 들더니 양피지에 자기 싸인을 휘갈겼다.
돌려받았다.
그냥 악필이었다.
“니히히, 만나서 기쁘다.”
“기뻐 보이셔서 저도 기쁩니다.”
“말하는 거 봐~. 귀여워! 냐하하!”
활짝 웃는 도로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아, 맞다. 우리 회장님 단련하는 데 시간 뺏어 버렸네.”
“아, 괜찮아요.”
“으음! 그러네. 내 팬이니까 내 얼굴만 보면 힘이 충전되겠구나?”
그렇게라도 힘이 났으면 좋겠다.
단련하느라 뒤질 것 같으니까.
“농담이구~. 나 이제 가 볼게. 단련 열심히 해!”
“아, 네!”
도로시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게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그녀.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내 표정은 녹아내렸다.
“좋은 구경했다.”
진짜 곱고 예뻤다. 도로시는 왜 공식 히로인이 아니었을까.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내 최대 불만사항이 그거였다. 도로시 정실 루트가 있었으면 내 >메르헨의 마법 기사> 플레이 타임 중 3분의 2는 그녀 루트를 타는 데 투자했을 것이다.
‘어쨌든···.’
다시 집중. 좋은 구경이고 나발이고, 다시 본 목적대로 단련에 집중하자.
이제 나도 나름 강해졌으니, 당분간 훈련장에 가서 [원소 시너지]를 높이는 훈련도 병행하는 편이 좋겠···.
“회장아!”
“……!”
도로시의 발랄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무 뒤에서 고개만 불쑥 내밀고 있는 도로시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너 이름 뭐야?”
아, 이름.
“아이작입니다.”
“응, 아이작! 내일 또 보자!”
“네. ···예?”
‘내일’ 또 보자고?
왜 내일이냐고 물어 보려던 찰나에, 도로시는 손을 흔들면서 발에 별빛 마나를 싣고 멀리 떠나버렸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엔 형형색색의 빛무리가 잠깐 떠다니다가 사그라졌다.
“내일?”
뭐지, 갑자기?
마치 ‘넌 내일 꼭 나를 봐야 한다’는 뉘앙스처럼 느껴졌다.
팬이라서? 아니, 팬이라고 그러나?
“…….”
도로시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시간이 아까워서 다시 단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진짜로 내일 찾아온다면, 내일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 * *
“신기하네. 그런 건 처음 봤어···.”
방금 전, 단련하고 있었다던 청은발의 남자.
그는 도로시 하트노바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음습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녀만의 고유 특성, [천라만상]. 도로시는 그 힘으로 아이작이라는 남자를 보자마자 그의 본질을 살펴보았다.
그의 본질 속에는 세상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존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지.
그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가 뭔지 조금도 짐작되지 않는 존재.
어마어마한 크기의, 몹시도 포악해 보이는 무언가였다. 섭리를 무시하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의 셀 수없이 많은 눈은 일제히 도로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 하나하나에 도로시는 강한 위압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보잘것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향해 말하길.
──── [ ■ ■■■■ ■■■■■, ■■ ■■ ■■■? ]
마치 고주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 말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날 맨눈으로 훔쳐보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따위의 뜻이었으리라.
아주 잠깐이지만.
두려웠다.
고작 인간의 본질 속에 감춰진 무언가 때문에 자신이 공포감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심지어 그 거대한 것은 아이작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온전히 그 남자의 것이란 얘기다.
그것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작은 무지막지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될 터다.
얼마나 강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겠지.
한 마디로 아이작은 겉보기엔 순해 보이고, 단순히 성실할 뿐인 나약한 학생처럼 보이나.
실상은.
“괴물인가.”
도로시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번졌다.
1학년 중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루체 엘타니아나 카야 아스트레앙 같은 존재는 이미 소문이 돌고 있어서 알고 있었다. 예전에 보니 확실히 재능은 있는 녀석들이었다. 특히 루체 엘타니아 쪽은 얼마 안 가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작이 본래의 힘을 사용한다면, 그녀들을 포함한 1학년생 전부가 덤벼든다고 해도 당해낼 수 없을 게 자명했다.
게다가 아이작이 그 힘을 제 뜻대로 빌릴 수 있다면,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도로시 자신조차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법했다.
결론적으로 아이작은 아무리 도로시라고 해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해질지도 모를 인물이었다.
“역시 메르헨 아카데미. 이래서 좋아~.”
가히 대륙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천라만상]의 힘으로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게 없을 지경이 됐다고 생각해 왔다. 흥미를 가질 건 더 이상 없다고.그런데 또 정체불명의 새로운 게 나타나다니···.
즐거워졌다.
도로시는 환하게 웃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토끼처럼 펄쩍펄쩍 뛰듯 아카데미 부지를 걸어갔다.
당분간 아이작을 관찰하기로 마음을 정한 채.
······
한밤 중.
하늘은 비구름으로 들어찼다.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다.
높다란 칼리스관 천장 위. 검은 옷차림의 마족이 난간에 앉아서 주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하게 내려오는 회갈색 머리칼. 얼굴은 장난기가 엿보이는 인상이었고, 체격은 왜소한 편이었다. 엄밀하게는 인간 남자의 모습이었고, 피부는 칙칙한 회색이었다.
그의 주위는 검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흑염 장막]이 감싸고 있었다. 빗줄기는 장막에 부딪히는 즉시 증발 되어 사라져갔다.
난간 앞으로 쭉 뻗은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마족.
그는 양쪽 위아래로 두 쌍인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아까 전, 메르헨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인 앨리스 캐럴과 얘기를 마친 뒤 바람이나 쐴 겸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음?]독특한 광경이 마족의 눈에 들어왔다.
아주 멀리서, 한 남자가 남색 운동복 차림으로 아카데미 부지에서 뜀박질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 몸에 [얼음 장막]을 씌워둔 채로.
기사학부 놈들이라면 이런 궂은 날씨에도 뜀박질하는 게 납득이 됐겠지만, 저 운동복은 분명 마법학부의 것이었다.
마족은 그 남자를 살폈다. 뛰어난 시력 덕분에,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간단히 남자의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 E급 걔구나.]마족은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푸르스름한 기운이 엿보이는 은발과 핏빛 같은 적안.
마족은 학생회장 덕분에 아카데미 학생부와 마력량 측정 결과(공개적인 정보다)를 보고 전부 외워둔 상태였기에.
뜀박질 중이던 은발의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마력량 E급으로 책정됐던 최하위. 평민인 데다 이 아카데미의 최약체라 불리는 남자, 아이작이었다.
[머저리네, 머저리야. 괜히 1학년 최하위가 아니지. 이런 날씨에 백 날 천 날 운동해 봐라. 마력량이 오르나 안 오르나.]낄낄 웃어대는 마족. 아이작이 한심스럽게 보였다. 저러니 밑바닥 인생인 거지.
이렇게 비 오는 날 뜀박질할 시간에 차라리 훈련장에 가서 마법이나 단련하는 편이 훨씬 나을 텐데 말이다.
[아, 놀려주고 싶다~. 약한 거 보면 괴롭히고 싶어~.]마족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면서 고민에 잠겼다. 저 조깅 중인 남자를 괴롭힐까, 말까.
…관뒀다. 어차피 저 녀석은 1학년. 대련 평가가 시작되기 전에 괜히 눈에 띄는 짓을 벌여 일정에 차질을 빚어선 안 됐다.
마족은 마법학부 1학년 대련 날, 모든 학생을 살해할 계획이었다. 8성급 마법 [허구지옥]으로 학생 전원을 가두고, 대규모 데스 게임을 벌이는 거다.
그날까지 버티자. 인간을 괴롭히고 살상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거다. 그 감정이 농익고 농익어서, 마침내 계획한 당일이 되었을 때 더욱 큰 짜릿함을 느낄 수 있도록.
[얼른 와라, 그날아~.]문득 어느 날에 악신 네피드에게서 전해 받았던 사명이 떠올랐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 것이었다.
──‘빛의 아이를 죽여라.’
‘빛의 아이’란 바로 이곳, 메르헨 아카데미에 있는 ‘이안 페어리테일’이란 남자를 의미했다. 빛 속성은 마족을 두렵게 만드는 성질이 있기에 금세 구분이 가능했다.
기왕이면 마족을 처리하고 다니는 방해꾼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아, 기대된다. 빛의 아이, 방해꾼, 많은 학생을 전부 자기 손으로 갖고 놀고 무참히 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족, ‘허상의 리파’.
그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