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20)
〈 320화 〉 천의 날개 토벌전 (8)
* * *
짙은 고요 속에서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나는 활짝 웃었다.
“나 기억나냐?”
인사를 했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또다시 말을 걸어보았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도로시는 그저 많은 눈으로 나를 살피고 있을 뿐. 별빛 마력에 가로막혀 심리도 읽히지 않았다.
도로시가 날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알았다. 아마 그녀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미 이성을 잃은 후일 것이다.
눈앞의 도로시는 초월자다. 유유히 발산하는 마력은 최소 명왕에 필적한다.
나 같은 건 이 애에게 아무런 상대도 못 될 것이다.
하물며 내 마력은 고갈되기 직전이니. 아마 도로시가 손짓만 해도 난 죽겠지.
‘차라리 얘 손에 죽는 게 나을까.’
서리의 시련 때도 해봤던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문득 다시 드니 그만 실소가 터졌다.
“나한테 궁금하다고 했지? 나와 도로시 선배가 서로… 그 뭐냐, 사랑하는지.”
부끄러운 척 웃으며 친구와 수다를 떨듯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마 그렇다고 생각해. 일단 난 그렇고, 도로시 선배도 날 좋아하는 눈치야. 내 오해일 수도 있고, 그냥 내 희망사항일 수도 있긴 한데, 어쨌든 그렇다고.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갈지 모르겠네.”
숨을 잠깐 고르고.
“너도 그랬어. 사실상 네가 나랑 처음 만났던 도로시잖아. 넌 날 딱히 좋아하지 않았을 테니까 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난 너 정말로 좋아했다. 정말로.”
도로시가 가장 듣기 좋을 법한, 상냥한 목소리를 입에 담으며 내 진심을 전했다.
“예쁘지, 연예인 같지…. 모든 걸 다 잃고도,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발버둥 쳤던 네 모습이… 내겐 너무 좋았던 거야.”
넌 나를 치유해주었고 가능성이 충만한 세계를 그려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네게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주고 싶었다.
빛나고자 살아갔던 그 모습이 날 구원해주었으니, 이젠 내가 널 살려내 그 삶이 더욱 찬란해지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보답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러고 싶을 뿐이었다.
“보고 싶었어. 신이 됐어도 눈부시게 예쁘네, 넌.”
도로시를 앞에 두고,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전하며 깨달았다.
내 가슴속엔 많은 응어리가 져 있었다.
망막에 도로시의 모습을 새길수록 꾸역꾸역 외면해왔던 가슴속 응어리가 요동치며 서서히 내 전신을 잠식해 갔다.
서늘한 냉기가 피로 물든 뺨을 쓰다듬으니, 감정이 더욱 고조되는 것만 같았다.
난 무력하고 아무런 지혜도 없었기에 널 구하지 못했다.
그 허탈감과 상실감이 내 마음을 쥐새끼처럼 갉아먹고 있었다.
차라랑.
청아한 소리와 함께 내 주위로 별 무리가 일어났다.
내 몸은 무중력 상태가 되어 공중에 떠올라 도로시 앞에 이르렀다.
“도로시…?”
도로시의 얼굴에 남은 옛 흔적은 한쪽 눈과 눈가 정도밖에 없었다.
그 남은 눈조차 아무런 생기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쓸쓸하고 신비로운 별빛만을 조용히 발할 뿐.
도로시는 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감각 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으으으.
이내, 도로시의 손을 타고 찬란한 별빛 마력이 내 안으로 스르르 흘러들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파밧, 튀는 느낌과 함께 아득하고 무거운 마력이 내 마력 회로를 뒤덮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그렇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도로시?”
도로시의 손을 걷어 치우려 하자, 별 무리가 일어나며 내 전신을 포박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도로시!! 야!!”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자 돌연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력이 남아있었으면 이런 마법 정도는 몰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도로시!! 뭐 하는 거냐고!! 대답해!!”
[안녕하세요?]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하얀 옷을 입은 도로시가 내 눈에 보였다.
[아마 많이 놀라셨겠죠?]저번에 보았던 1회차 도로시의 모습이었다.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째서?
[이건 제가 당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예요. 일단 여기까지 오신 걸 축하해요! 불가능을 뛰어넘는 일이었으니까, 분명 많이… 고통스러웠겠죠.]메시지.
도로시는 지금 나와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눈앞의 그녀에게선 그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도로시가 이성을 잃기 전에 만든 메시지인 듯했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무력화된 것이다.
도로시의 마법이 나를 속박하고, 내 정신을 메시지 안으로 끌어들여서 그런 것이리라.
[이름, 기억 못 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었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도로시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하늘은 별빛이 찬연한 밤하늘로, 지상은 한때 부유섬이 휩쓸었던 황폐한 땅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도로시는 황색 원피스를 차려 입은 꼬마 아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제가 마력을 줘서 조금 놀라셨죠? 이럴 거라고 미리 말 안 해줘서 미안해요. 당신이 절 좋아했다는 걸 아니까, 분명 미리 말하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너…, 지금 뭐 하는 건데? 왜 나한테 마력을 불어넣는 건데?”
메시지임을 알았음에도, 도로시에게 말을 걸 수단이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리 물었다.
[이건 당신을 위한 일이에요. 부탁할게요. 오즈마를 쓰러뜨려주세요.]뭐?
[그 이름은 아마 모르시겠죠. 그녀는 당신 안에 있는 신이에요. 제가 말했던, 당신을 돕고 있으나 당신이 믿어선 안 될 존재. 그녀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이루면 당신은 죽는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오즈마는 스텔라에게 강한 원망을 품고 있어서…. 그녀가 목적을 달성한다면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죠.]오즈마가 내 육신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악신을 해치우기는커녕 재앙이 초래된다는 얘기일까.
[사실 오즈마는 먼 옛날, 어느 나라의 공주였어요. 그녀는 네피드를 봉인하기 위한 용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나 버렸죠.]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때의 네피드는 악신이 아닌 마왕이었거든요. 결국, 오즈마는 별의 권속이 되어 마왕 네피드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날, 마왕 네피드를 봉인하기 위해 별빛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해 버린 나머지, 오즈마는 신격을 갖추게 되고 말았죠. 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 대재앙을 일으킨 데다 자기 모습마저 흉측해져 버려서, 그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당신이 사는 세계를 몰래 떠돌게 됐어요.]마치 동화 내용을 읊조리듯 도로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로시는 가벼운 제스처를 취했다.
[신이 그 세상에 개입하면 네피드의 먹이가 돼요. 그런데 오즈마는 예외였어요. 신살의 권능이 발동되기 전에 초월자가 됐던 데다, 많은 이들의 본질 속에 숨어 살고 있었으니까요. 만약 네피드가 봉인되자마자 신격을 깨우쳤다면 오즈마도 예외 없이 흡수됐겠죠. 운이 좋았던 거예요.]오즈마가 먼저 신이 되어 세상을 몰래 떠돌게 되었고.
그 후에 마왕 네피드가 악신이 되어 신살의 권능을 깨우쳤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악신에게 대항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오즈마가 필요했어요. 스텔라는 악신이 신살의 권능을 깨우치려 할 때, 오즈마를 찾아가 거래했어요. 오즈마가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즉, 내가 거짓된 상태창을 갖고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여정 길에 휘말린 건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저도요.]“어?”
[스텔라는 그때 제 탄생을 예견했고, 저 또한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계획에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 먼 조상에게 별빛의 축복을 내렸고, 그렇게 저는 별빛 마력을 깨우쳤던 거죠.]에펠토 황가가 밤의 요정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에 깊게 감화받은 화이트가 요정의 힘을 깨우쳤듯.
도로시도 같은 과정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럼 부유섬한테서 도로시를 구했던 건….’
[저도 나중에 알았어요. 오즈의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제가 별빛 마력을 깨우쳤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그때 제가 보았던 스텔라의 모습은 제게 남겨졌던 스텔라의 잔영. 제 피에 전해져 내려온 또 하나의 스텔라였죠.]부유섬으로부터 어린 도로시를 구했던 스텔라는, 마치 먼 옛날에 도로시의 조상에 프로그래밍된 AI와 비슷한 개념의 존재였다.
왜 초월자였던 스텔라가 신살의 권능에 당하지 않았는지 납득이 갔다.
[그렇게 저 또한 스텔라가 세운 계획의 일부가 돼서, 지금 같은 상황이 됐죠.]1회차 도로시가 스텔라의 계획에 따라 목숨을 잃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 계획이 그토록 오래전에 세워졌던 일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있죠, 당신의 도로시는 저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막아줄 거니까.]어깨가 흠칫 떨렸다.
[당신에게 제 힘을 줄게요.]“아니, 그러지 마….”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내 애원이 도로시에게 닿을 리 없었다.
[당신이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도록, 오로지 전투에 쓸 수 있는 힘만을 드릴 거예요. 당신에게서 오즈마를 쫓아내고요. 당신은 별빛 마력의 적합자가 아니어도, 오즈마가 머물렀던 여운 덕분에 일시적으로나마 별빛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겠죠. 그 힘으로 오즈마를 쓰러뜨리고 그녀가 가진 모든 힘을 빼앗아주세요. 그리고 얼음 호수를 벗어나면 다시 균열로 이동될 거예요. 그러면 제 힘으로 균열을 열고 무사히 나가주세요.]어린 소녀, 도로시 게일은 두 손을 뒤로 넘기고 은은하게 웃었다.
[그게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소원이에요.]“…….”
[비록 당신을 떠올리지 못하게 됐지만, 당신을 좋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만약 계속 살아서 같이 지냈다면, 전 분명 당신을 누구보다도 좋아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부끄럽네.]도로시는 뺨을 붉히고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도로시, 제발….”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어린 도로시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그거 알아요? 오즈의 마법사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자라고 해요.]마지막 인사라는 듯, 어린 소녀는 만개한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부디 제 오즈의 마법사가 되어주세요.]정적.
곧 눈을 감았다 뜨자 내 시야는 어두운 얼음 호수의 정경을 내비쳤다.
도로시가 있던 곳에서 형형한 별빛 가루가 흩어져 갔다.
그녀의 반짝이는, 남은 생명의 흔적마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먹먹함을 삼키니, 무언가가 내 모든 내장을 사정 없이 도려내고 깊숙한 곳으로 끌어내려 견딜 수 없는 침묵을 끌어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위로 피어오르던 별 무리가 온전히 사그라졌다.
내 몸은 서서히 아래로 떨어졌다.
화아아아!!
얼음 호수에 닿기 직전, 냉기를 강렬히 방출해 낙하의 위력을 줄였다.
몸 안에 이질적인 감각이 나돌았다. 평소에 느껴졌던 감각과는 결이 달랐다.
중요한 줄 알았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무언가가 대신해서 그 안을 가득 채운 듯한 느낌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음색이 귀청을 파고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의 구름이 휘몰아치고, 어느 순간부터 하늘을 메운 아름다운 오로라마저 소용돌이쳤다.
그 아래. 눈앞에 찬란하고 웅대한 우주를 품은 존재가 명상이라도 하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존재가 몸체에 휘감은 것은 천문학적인 양의 마력을 머금은 두 개의 고리. 초월자의 격이었다.
그의 전신을 메운 셀 수 없이 많은 눈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너구나, 오즈마.”
분노, 원망, 증오를 담은 마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즈마의 마력이었다.
묵묵히 걸어 나갔다. 이 발걸음엔 너무도 많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진정할 수 없었고, 진정할 수 없었기에 더욱 표정을 굳혔다.
“상태창 놀이는 이제 끝내자.”
오른손을 펼쳤다.
차라랑!
그 위로 하얀 별 무리가 피어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