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75)
“아이작 님 바보십니까?”
카야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매도했다.
자길 선택하면 잔야의 지팡이도 알아서 따라오지 않겠느냐며.
나로선 장난으로라도 카야를 선택할 순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 있다는 방증처럼 보일 테니.
뭐, 카야도 장난이었다는 듯 금세 표정이 풀려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여러 잡다한 대화를 나눈 뒤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카야는 “오늘 자기 전에 제 생각 많이 나시겠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더니,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나를 보내주었다.
‘난처하네.’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고민에 잠겼다.
카야의 애정 표현은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곤란해지고 만다.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명확한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예상대로 카야는 본래의 인격으로 되돌아와 있었고.
“거,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합니다악──!”
나를 보자마자 어제 일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확 붉히며 줄행랑을 쳤다. 구두의 질주였다.
언제쯤 평소의 카야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힌다.
저녁. 하늘에 노을빛이 만연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비 정원 구석으로 향했다. 카야 문제는 둘째 치고, 잔야의 지팡이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온 나비 정원 구석은 무척 한적했다. 잔디가 가을바람에 쓸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여러 학생이 모여 수련하는 탓에 시종 시끄러운 훈련장과는 분위기가 대조적이었다.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어.
“오….”
느티나무에 기대앉아 있는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오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쓰고 있는 남색 고깔모자 아래로는 기다란 연보랏빛 머리칼이 곱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조용히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
2학년 선배이자 내 최애캐,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 도로시 하트노바 ]Lv : 181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바위, 별빛
위험도 : X
심리 : [ ★☆★☆★☆★☆★☆★☆★☆ ]
‘크으.’
화보가 달리 있겠는가. 도로시가 있는 곳이 화보다. 누나, 나 죽어.
참고로 도로시하고는 엘트 섬 사건에 관해 얘기를 나눈 상태였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한 거짓 진술과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도로시는 내게 위험한 짓은 자제하라며 타일러주었고, 무사해서 다행이란 말도 빼먹지 않았다. 나름 선배다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속으로 내 최애캐의 여신 같은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때.
도로시의 눈길이 내 쪽으로 돌아갔다. 곧 그녀의 만면에 꽃이 개화하듯 화사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회장!”
“선배.”
똑같이 미소로 화답했다.
도로시는 벌떡 일어나 내게 총총 다가오고는, 여느 때처럼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식사는 하셨…?”
“나랑 파트너 하자!”
내 인사말을 끊고 느닷없이 소리치는 도로시.
‘파트너? 아, 사교회 얘기구나.’
시나리오는 이제 「5막 1장, 4성좌(星座)」 파트에 돌입할 때였다.
학생회를 제외하고 아카데미 행정에 관여하는 학생 세력 네 곳을 통칭해서 4성좌라고 일컫는다. 각 세력의 명칭은 이 세계관의 별자리 이름을 따온 것이다.
시나리오 5막은 우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이 4성좌 중 푸른 이리 자리, ‘청랑’에 들어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구르는 파트였다.
본래 이 파트의 최종 보스는 독식의 하인켈이었으나, 놈은 내가 해치웠으니 시나리오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슬슬 4성좌는 1학년생 중에서 새로운 멤버를 모집할 수 있게 된다.
그 전에 4성좌는 사교회를 연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전통으로 정착한 대규모 파티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 파트너를 대동해 2인 1조로 참석하는 건 청춘을 구가하는 학생들의 주된 바람이다. 벚꽃놀이나 축제 같은 걸 앞두면 기분이 들뜨고 연애 욕구가 자극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참석은 누구나 자유이나, 파티장 중심부로 들어가려면 4성좌로부터 따로 ‘초대장’을 받아야만 한다. 그 안에선 각 4성좌의 주축인 핵심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파트너 좋았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어떤 히로인을 파트너로 데려가느냐에 따라 이벤트가 달라졌었지. 나름 재밌는 에피소드였던 기억이 난다.
그 파티장에, 도로시는 나를 파트너로 데려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교회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이지.”
“감개무량합니다.”
눈빛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사교회에 날 파트너로 데려가겠다고 할 만큼, 도로시는 내게 마음을 열어줬다는 의미.
지금 이 자리에서 내 감정을 바디 랭귀지로 표현한다면 헤드 스핀으로도 모자랐다.
도로시는 내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실실 웃어댔다.
“느흐흐, 역시 내 팬 답게 시원시원해!”
“근데 아마 전 못 갈 것 같아요.”
“왜애?!”
반사적인 속도로 소리치는 도로시.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에 불만이 들어찼다. 마음 아프네.
“단련해야 해서요.”
어깨를 으쓱하며, 축제 기간에 혼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고지식한 사람처럼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야, 도로시와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은 바벨탑보다 높았다. 가끔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고.
하지만 도로시와의 동행은 굉장히 눈에 띄는 일이다.
안 그래도 루체와 엮이면서 1학년 학생들 눈에 띄어 버린 상태.
하물며 사교회는 아카데미 전교생이 밀집하는 자리이기까지 하다.
그곳에 아카데미 최대 전력이자 주신 만할라의 축복을 몰아 받았다고 칭해지는 희대의 천재, 도로시와 파트너를 맺고 참석한다면….
필시 아카데미 학생들 모두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말 것이었다.
심지어 사교회에는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도 참석한다. 즉, 도로시와 파트너를 맺고 사교회에 참석하는 건 무조건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도로시는 도끼눈을 뜨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하’, 하고 짧은 한숨을 뱉어냈다. 삐친 눈치였다.
“단련충. 재미없어.”
“죄송합니다.”
“됐고, 그건 어디서 얻어왔어?”
도로시는 내 오른손에 들려 있는 잔야의 지팡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선물 받았어요. 당분간 이거 제대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흐음….”
누가 줬는지는 관심 없어 보였다. 아마 재밌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겠지.
도로시는 등을 돌리고 다시 느티나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각 바뀌었어. 나도 사교회 안 갈래.”
“선배는 왜요?”
“단련충 회장도 재미없는데, 회장 없는 사교회는 더 재미없을 테니까. 최악보단 차악이 낫지.”
“읏차.”하고 느티나무에 도로 기대앉는 도로시. 그러고는 마녀 모자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모자에 뭘 저렇게 넣고 다니는 거냐.
어쨌든, 이제부터 예정대로 일과를 소화해야겠지.
잔야의 지팡이를 다루기 전에 바위 마법부터 다뤄보기로 했다. 오늘 새로운 스킬을 익힐 것 같았으니까.
바위 마나를 흘려보내자, 바위 마법이 형상을 갖춰갔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바위 속성 마법 [암벽(★4)]을 습득하였습니다!] [바위 속성 마법 [암석 붕괴(★4)]를 습득하였습니다!]‘예쓰!’
새로운 바위 마법들을 익혔다.
바위의 벽을 만들어내는 방어 마법, [암벽]. 바위를 위력적으로 뽑아내 뭐든지 박살 내버리는 공격 마법, [암석 붕괴].
1학기 때보다 마법을 익히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5성급 마법도 무난하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황석 소나기] 같은 6성급 마법까지도 이번 학기 동안 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꾸우우!] [ 이든 ]심리 : [ 당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
아까 전에 소환했던 작은 골렘 사역마, 이든은 내가 [암석 붕괴]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엘트 섬에서 양질의 바위 마나를 잔뜩 먹인 탓인지, 이든은 성장 속도가 촉진되어 어느덧 레벨 85를 찍은 상태였다.
상태창 사역마 정보에 들어가 보면 등급은 ‘★4’라고 떴다. 뿌듯해지는 발전이었다.
‘아, [융화력] 몇이지?’
나는 도로시의 시선을 주의하며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상태창을 만졌다.
[ 사역마 ]이든 (Lv : 85)
등급 : ★4
종족 : 마수
속성 : 바위
친밀도 : 90
융화력 : 75
소환시 소모 마력량 : 350
“오오, 많이 올랐네.”
[융화력]이 높아지면 사역마의 기능 일부를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부분 소환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조류 사역마와 융화력이 높다면 그 사역마의 날개를 내 몸에 구현할 수 있는 식이다.
이든 같은 경우엔… 바위 주먹이 가능해지겠다. 이든은 바위를 탈부착하는 방식을 주로 이용하는 게 특징이니까.
이든의 바위 갑옷 같은 것도 괜찮겠지만, 마력 운용이 더럽게 어려울 것 같으니 넘어가자.
주먹에 바위를 덕지덕지 바르는 것과.
신체에 딱 알맞게,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도록 바위를 두르는 건 마력 운용 난이도가 천지 차이니까.
‘다음엔….’
오늘 이곳에 온 목적.
옆에 놔두었던 카야의 선물, 잔야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그립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잔야의 지팡이]: 현자의 나무를 깎아 만든 희귀한 마도무기. 여명의 자연 마나를 가득 머금은 마석이 달려 있다. 물, 얼음, 바람, 바위 속성에 효과가 탁월하다.
등급 : 2티어
잔야의 지팡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간지 나는 외형이 딱 내 취향이었다.
좋아, 해보자.
나는 잔야의 지팡이 마석 부분을 앞으로 슬쩍 내밀고 마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대로 마법을…. …어어?’
어째…, 흘려보내는 마력이 지팡이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나의 흐름이 실타래 얽히듯 마구 뒤엉켰다.
마도무기는 마법의 위력을 높여주지만, 마력 운용이 어려워서 아직 대부분의 학생은 다루기 어려워한다. 그 이유가 체감되었다.
이거, 상당히 빡센데…?
“으그윽….”
[꾸웅?]이를 악물고 잔야의 지팡이로 마법을 쏟아 내려 했다.
가까스로 [서리불꽃]의 술식이 지팡이 머리 부분 앞에 구현되었으나.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화아─.
튀어나온 건 미미한 수준의 냉기 화염.
차라리 가스불 키는 게 이보다 장렬하리라.
“냐학!”
돌연 뒤쪽에서 독특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느티나무 앞에 앉아 있는 도로시의 모습이 시야에 내비쳤다.
“냐하하하하하학─! 뭐야, 그게에! 방귀도 아니고!”
도로시는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격한 수치심이 몰려왔으나, 도로시의 웃는 모습이 무척 예뻤기에 눈 호강한 셈이라고 치자면 제법 수지타산이 맞았다.
“아, 어떡해. 회장, 귀여워어….”
도로시는 눈물까지 훔쳤다. 그 정도로 웃긴 모양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진짜로 방귀 같긴 했으니까.
“자극이 되네요. 비웃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
“느흐흐흐, 원한다면 얼마든지 비웃어 줄게.”
[꾸우!]이든도 내가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비웃어 줄 셈인 모양이었다.
“뭐, 방금 건… 이제 막 지팡이 다루기 시작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시작은 방귀처럼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할 겁니다.”
“창대해질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네. 니히히.”
이든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내 말에 호응해주었다. 역시 내 편은 이든뿐이었다.
……
‘정신 나갈 것 같애….’
어두운 밤.
잔야의 지팡이로 지면을 짚어가며 중하위권 기숙사, 브릭스관으로 비치적비치적 걸어왔다.
마도무기를 다루려면 복잡한 마력 운용을 해내야 하니, 피로감이 상당했다.
책을 펴고 공부하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각 페이지마다 아주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는 수식을 암산으로 풀어나간다면 비슷한 느낌이리라.
“음?”
브릭스관으로 들어서려는 때.
내 우편함에 박혀 있는 작은 마석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비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멈춰 섰다.
저 마석에 빛이 들어왔다는 건, 우편함 안에 편지든 뭐든 들어 있다는 의미였다.
‘나한테 올 게 있나?’
그런 건 없을 텐데?
우편함 안에 손을 집어넣자, 편지 하나가 손에 잡혔다.
나는 그 편지를 꺼내 들었다.
“……?”
마도무기를 다루느라 과하게 써버린 머리가 순식간에 말똥말똥해졌다.
붉은 편지 봉투. 4성좌 중 붉은 코끼리 자리를 상징하는 ‘적상’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별자리 그림이었다.
‘이게 왜 나한테 와?’
이 편지는 4성좌가 여는 사교회에서, 파티장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 초대장이자.
내 선택에 따라 4성좌 중 적상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5막 1장, 4성좌(星座)」 파트는 이안 페어리테일이 4성좌의 초대장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주로 우수한 학생들 혹은 빛 속성인 이안처럼 특별한 학생들에게만 초대장이 발송된다. 그들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즉, 나한테 올 만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
직감이라는 레이더가 작동한다.
별생각 없이 넘어가려고 했던 5막 시나리오가, 어째 이리저리 꼬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