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2)
나의 악당들 132화
34. 영혼주술사(4)
흐룬팅이 하얀 궤적을 그리자, 카 라멕의 머리통이 피를 흩뿌리며 하 늘로 치솟았다.
목이 잘린 생명체는 대부분 몇 초 안에 죽음을 맞이한다. 아주 당연한 세상의 이치건만, 대주술사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끄으.”
강대한 마력과 끈질긴 생명력에 힘 입어 카라멕은 간신히 의식을 붙들 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은 급 격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너, 나를-”
허공에 떠오른 머리통이 자신을 노 려보자, 포이닉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환생의 비술? 아니, 그럴 리 가 없는데.’
포이닉스의 예상대로, 카라멕은 재 생 계열의 비술에는 서투른 편이었 다. 대신, 남을 해치는 비술에는 아 주 능했다.
“Rec‘ti elarrve(나의 야수들아).”
허공에 떠오른 머리가 하늘 높이 영력(靈方)을 뽑아내자, 영혼 야수들 이 그에 달라붙었다. 피를 쏟아내며 창백해져 가던 머리통이 쪽빛으로 물들었다. ‘충천(衝天)의 술’이었다.
한편, 수평선을 따라 갈라진 명계 의 틈에선 끊임없이 원혼들이 쏟아 져 나오고 있었다. 원혼이 어찌나 많은지, 마치 저 멀리에서 회색 안 개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런 미친.”
흐룬팅에 대주술사의 피를 덧씌운 포이닉스가 엘렌을 돌아보았다.
“엘렌, 핵(核)을 찾아.”
“핵?’’
“그래. 그걸 파괴해야 균열이 닫혀.”
포이닉스의 다급한 말에 엘렌은 마 력을 끌어올려 보았다. 열일곱 나이 에 어울리지 않는 깊고 방대한 마력 이 쪽빛의 세계에 닥친 변화를 감지 해냈다.
‘카라멕의 힘이 흩어지고 있어!’
고금제일의 대주술사는 목이 잘리 고도 비술을 부렸다. 하지만 차원의 균열을 통제하는 고등한 작업까지는 이어나가지 못했다.
덕분에 균열은 제멋대로 날뛰며 확 장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정 말로 차원 충돌이 벌어질지도 몰랐 다.
“후우-”
엘렌은 단숨에 마력을 퍼뜨려 일대 의 통제력을 훔쳐냈다.
고오오오-
바다가 갈라지며 수면 아래로 향하 는 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핵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탈란테만 남고, 나머지는 내려 가!”
“잠깐, 그러면 너는,”
엘렌이 망설이자, 우테콰이가 단호 하게 호통쳤다.
“시간 없다, 따라와라!”
우테콰이가 수면 사이로 드러난 경 사로로 뛰어들자, 시렌 일행도 그를 따라 달려갔다. 하지만 엘렌은 여전 히 망설이며 포이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이……
“가! 가서 균열을 찾아!”
카라멕은 제 머리통을 중심으로 뭉 친 영혼 야수들을 쪽빛으로 물들이 고 있었다. 호랑이의 앞발에 표범의 허리, 늑대의 머리에 곰의 가슴, 독 수리의 날개에 뱀의 꼬리를 가진 거 대한 괴수가 모습을 갖추어갔다.
“젠장, 곧 완성돼……. 서둘러!”
그 모습을 일별한 포이닉스는 엘렌 을 뒤로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으 ”
아랫입술을 짓씹은 엘렌은 결국 수 면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아탈란테! 공허의 구를 준비해!”
포이닉스의 외침에 정신력을 끌어 올리던 아탈란테가 문득 묘한 표정 을 지었다.
‘……내가 언제 본명을 말했던가?’
그런 생각도 잠시, 성채만큼 거대 해진 괴수가 이를 드러냈다.
크르릉.
네 쌍의 눈을 가진 괴수가 사납게 으르렁거리자 영력이 뿜어지기 시작 했다. 녹색과 파란색으로 물든 털이 휘날리고, 세계가 진동한다. 발밑의 바다가 솟구치며, 거꾸로 내리는 비 처럼 하늘을 향해 쏟아진다…….
“……Liljanun(미치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아탈란테가 공허 의 구를 만들어내는 사이, 포이닉스 는 카라멕의 몸을 뒤지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시체에서 무지갯빛으로 번쩍거리는 반지 한 쌍을 빼고, 석 판을 주워들었다.
‘……목걸이. 목걸이는 어딨지?’
포이닉스의 검은 눈동자가 바쁘게 주변을 훑었다.
이내, 포이닉스는 저 앞에서 번쩍 거리는 펜던트를 발견해 냈다. 그리 고 그 펜던트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쪽빛 괴수도.
“••••••하, X발.”
훙.
하늘로 치솟는 물방울이 터지며, 쪽빛 잔상이 길게 늘어졌다.
석판을 떨어뜨린 포이닉스가 잽싸 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지하군주의 뼈와 비늘로 이루어진 원방패는 어 느새 피로 물들어 있었다.
뒤이어, 벼락처럼 휘둘러진 앞발.
쾅
“컥,”
검붉은 방패가 터지듯 박살 나며 포이닉스가 튕겨 나갔다.
“그으윽.”
팔꿈치와 손목뼈가 으스러진 포이 닉스는 비명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 다.
크릉.
목이 잘린 카라멕은 매 순간마다 생명을, 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쪽 빛 괴수도 어느새 집채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네 쌍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 고 있었다.
스윽.
괴수가 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표 범과 호랑이를 닮은 은밀함이었다.
“흐우.”
숨을 고른 포이닉스는 갑자기 옆으 로 달리기 시작했다. 괴수에게 마주 덤벼드는 것도, 뒤돌아 도망치는 것 도 아닌 기이한 움직임이었다.
몸을 날리던 쪽빛 괴수는 꼬리를 흔들고 날개를 퍼덕이며 방향을 틀 었다. 그 순간, 포이닉스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득거리더니, 콰가각!
괴수의 주둥이 아래에서 피의 파편 들이 솟구쳤다. 그것은, 바닥에 몸을 뉜 카라멕의 몸통에서 터져 나온 피 보라였다.
“후웁!”
괴수가 움찔거리는 틈을 타, 포이 닉스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리곤 바닥을 미끄러지며 괴수의 가 슴팍에 흐룬팅을 꽂아 넣었다.
크항!
괴수가 깜짝 놀라 몸을 튕겼다. 칼 손잡이를 놓은 포이닉스는 얼른 손 을 뻗어 근처에 떨어져 있던 석판을 주워들었다.
‘이제, 목걸이!’
포이닉스는 펜던트를 향해 전력으 로 달려갔다. 그때, 가슴에 박힌 칼 을 뽑아낸 괴수가 벼락같이 그를 덮 쳐왔다.
“ O 으”
—=5三
석판을 늘어진 왼팔에 낀 포이닉스 가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오른 손이 펜던트에 닿기 직전.
꽈드득.
“끄윽,”
늑대의 그것을 닮은 괴수의 아가리 가 양다리를 깨물었다. 성난 괴수는 그대로 목을 휘둘러 포이닉스를 연 달아 패대기쳤다.
뿌득, 뿌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갑옷과 골육이 잘려 나갔다. 바닥에 내던져 진 포이닉스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 렀다.
“끄아아악-!”
양다리가 뜯어진 고통에, 포이닉스 의 눈이 뒤집혔다.
영혼주술사에겐, 이른바 ‘충파콤보’ 라는 게 있었다.
주변의 영혼을 흡수하여 강력한 짐 승으로 변신하는 ‘충천의 비술’과 자신의 능력치에 비례해서 막대한 광역피해를 입히는 ‘파멸의 비술’을 연계한 기술이었다.
그중, 내가 주목한 건 ‘충천의 비
술’이었다. 자신이 거느린 영혼의 능력치와 질에 비례하여 위력이 오 르는 스킬. 난 호기심을 느꼈다.
-야수의 영혼이나 인간의 영혼이 나 ‘영혼’으로 분류되는 건 똑같네. 그럼 ‘충천의 비술’로 인간의 영혼 도 흡수할 수 있나?
난 즉시 실험에 돌입했다.
‘영혼 야수’와 ‘영혼화’계열에 특화 된 영혼주술사를 육성하고, 클래스 제한을 무시하게 해주는 ‘사건의 무 지개’ 세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인 간의 영혼을 부릴 수 있게 해주는 강령술사의 전용 장비 ‘묘비’까지 갖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험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천의 비술’로 인간의 영혼을 흡 수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상 태에서 ‘파멸의 비술’을 쓰면 서버 가 튕기더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버그에 내 호 기심은 식어버렸고, 실험용 캐릭터 ‘인간파멸’은 그대로 잊히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난 또 다른 실험을 시작해야 했다.
“그, 그으윽.”
턱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나는 왼팔로는 석판을, 오른손으로는 펜 던트를 꼭 쥐었다.
크엉-!
뒤에서 승리의 포효가 들려왔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그와 동시에, 양다리에 서만 느껴지던 고통이 전신으로 퍼 져 나갔다.
“끄으윽.”
두 반지와 펜던트를 착용하며 완성 된 ‘사건의 무지개’ 세트는 내가 감
당하기엔 너무 큰 힘을 품고 있었 다.
사지말단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고 통에 당장에라도 펜던트를 벗어던지 고 싶었지만, 나는 석판을 들고 정 신을 집중했다.
끼이 이-
명계에서 날아들던 영혼들이 비명 을 내질렀다. 석판, 아니, ‘묘비’의 힘 때문이었다.
영혼을 가두어 타락시키고, 더럽히 고, 고문하여 마침내 굴복시키는 힘. 카라멕의 아내, 아일리샤를 원혼으 로 만든 바로 그 힘이었다.
끼야아아아악! 꺄악, 꺄아악!
묘비가 개방되자, 미친 원혼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원혼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 지르자 명계의 영혼들마저 겁을 먹 고 물러났다.
“하으, 아흐.”
눈이 멀었다.
빛이, 삶이, 육이, 순간이 흩어지고 어둠이, 죽음이, 혼이, 영원이 모여 들었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호흡마다 위 기가 닥쳤다.
크르, 크어엉!
사나운 울부짖음이 나를 깨웠다. 희미한 정신을 붙잡고 묘비의 원혼 들에게 속삭였다.
“……복수, 해.”
끼야아아아악!
하늘을 뒤덮은 원혼들이 환희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원혼들이 카라멕 에게 몰려들었다. 멀어버린 눈으로 도 그게 보였다.
“닉스.”
“아, 아아-”
“정신 차려, 닉스.”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남은 감각으로, 내 몸을 껴안는 손 길이 느껴졌다. 다리아만큼 따뜻하 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손길이었 다.
“아, 아아, 다리아?”
“아틸리아야. 정신 차려, 닉스.”
“아아, 다리아, 다리아.”
어째서인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녹아내린 안구와 뒤섞여 볼 을 타고 흘러내렸다.
“Lu alkarf……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었
다. 사지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줄어 드는 것 같았다.
아탈란테, 아니, 다리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닉스, 잘 들어. 공허의 구를 여러 개 만들어뒀어. 거기로 놈을 유인해 야 해.”
“아아, 놈?”
“카라멕 말이야. 괴수로 변신한 카 라멕.”
“카라멕, 인간파멸, 잊고 있었어, 그런 캐릭터가 있었는데.
“닉스, 네가 불러낸 영혼들이 밀리 고 있어.”
쪽빛 괴수와 맞서는 원혼들이 보였 다. 영력의 불길에 휩싸인 채 소멸 하면서도, 원혼들은 괴수에게 이빨 을 박아넣고 있었다…….
“어디, 어디로.”
“기다려.”
다리아는 나를 껴안은 채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쪽으로 유인하면 돼. 그러면, 내 가 끝장낼 수 있어.”
“아, 으-”
나는 굳어가는 혀를 움직이려 애썼 다. 무어라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멕을 괴롭히던 원혼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아이야, 아이야.” 내 부름에, 한 원혼이 수면으로 내 려섰다. 그 원혼을 마주한 괴수가 우뚝 굳었다.
그르으으.
카라멕이 아일리샤에게 다가갔다. 이지를 상실한 여인이 고통스럽게 울었다. 카라멕도 짐승처럼 울었다.
“닉스, 조금만 더.”
괴수가 인간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 었다.
“좋아, 조금만, 조금만.”
부부가 만난 순간, 난 원혼들을 불 러 모았다. 원혼들이 부부를 꼭 감 싸 안았다.
다리아의 따스한 손길이 내 귀를 감쌌다.
“Ainfijar.”
갑작스레 닥친 정적.
이명이 들릴 즈음에는 카라멕도, 아일리샤도, 다른 원혼들도 보이지 않았다.
영혼의 세계를 비추던 시야가, 완 벽한 어둠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