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3)
나의 악당들 133화
35. 전설의 혈통⑴
“으극, 그극.”
얼굴이 시뻘게진 청년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노끈이 걸린 완강기 지지대가 끼익, 끽 비명을 질러댔다.
“……뭐야.”
답답하다. 190센티를 넘는 장신인
나에게 이 원룸은 너무나 좁게 느껴 졌다.
……나? 내가 누군데?
나는 현관에 선 채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불이 질질 흘러내리는 침대와 뭉 쳐진 빨랫감 더미, 먼지가 쌓인 전 공 서적들과 사진이 띄워진 컴퓨터.
컴퓨터의 화면 속에선, 엘렌이 활 짝 웃고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엘렌이 아니었다. 쌍꺼풀 없는 눈에 검은 단발머리. 내가 왜 착각을 했지?
“끄그.”
노끈에 목을 매단 청년은 금방이라 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툭 불거 진 눈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는, 카라멕을 닮은 눈 동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내고, 걸음을 옮겨 완강기 지지대를 붙잡았다. 두꺼운 쇠막대가 단숨에 부러졌다.
“하윽, 흐윽, 하아!”
한때 나였던 청년의 가쁜 숨소리.
이어서 쨍, 세상이 조각났다.
바다의 단면으로 둘러싸인 너른 통 로에서, 6인의 파티가 타락한 정령 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선두의 우테콰이가 돌메를 휘두르 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 하, 하, 하!”
광전사는 마법사 시렌의 ‘거대화’ 주문에 힘입어 평소보다 2배쯤 커져 있었다. 그로 인한 고양감에, 우테콰 이는 마치 술에 취한 듯 껄껄거리고 있었다.
파라라락!
우테콰이의 움직임에 따라, 예장모 의 붉고 하얀 깃털이 거세게 울어댔 다.
딱따구리 내지는 까마귀처럼 생긴 정령은, 거대한 돌메가 휘둘러질 때 마다 대여섯 마리씩 짜부라졌다.
시모스는 전류가 파직거리는 장검 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또 온다!”
과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서 개 구리를 닮은 정령들이 물의 장벽을 가르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미리 주문을 외고 있던 엘렌이 완 드를 떨쳤다.
“Lumfere(터 져라)!”
완드 끝에 머물러 있던 조그만 불 덩이가 순식간에 덩치를 불렸다.
꽝!
화염구의 폭발에 타락한 정령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뒤이은 정령들에 게 마법사 에단이 밀랍을 던져 감속 주문을 걸었다.
“신, 난, 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커다란 포효를 터뜨린 우테콰이가 굼떠진 정령들을 짓밟고, 터뜨려 버 렸다.
“Req, ne, shi-ko(나, 를, 보소-서)!”
정령들을 마구 으깨던 우테콰이는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손가락을 뻗 었다.
“계집, 저기-봐라!”
«으 ”
엘렌은 귀를 막으면서도 몸을 높이 띄웠다. 그러곤 저 멀리 둥둥 떠 있 는 하늘빛 물방울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후우.”
숨을 내쉰 엘렌이 왼손에 쥐고 있 던 수정구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수정구에 가득 차 있던 마나가 연기 처럼 솟아올랐다.
“하으읍-”
마나를 흠뻑 들이마신 엘렌이 눈을 감으며 가슴을 부풀렸다.
번쩍.
다시금 떠진 눈에서 푸른 마나가 줄줄 흘러나왔다. 엘렌은 주문을 외 움과 동시에 사방으로 통제력을 뻗 어갔다.
주인을 잃은 균열은 너무나도 쉽게 지배권을 내어주었다. 이 순간, 엘렌 은 근처의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양옆을 둘러싼 물의 벽이 한껏 물 러났다. 거기에 더하여, 저 멀리 떠 있던 하늘빛 물방울이 조그맣게 쪼 그라들었다. 엘렌은 재빨리 완드를 뻗었다.
“Thulam (쏘아져 라)! ”
쏜살처럼 날아간 서리송곳이 하늘 색 물방울을 터뜨려 버렸다.
쿠구구구-! 굉음이 울리고, 물방울이 터진 곳 에서 웬 소용돌이가 모습을 드러내 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그 소용돌이를 보고, 엘렌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균열이 무너질 거야! 물러나 야 해!”
“하지만, 퇴로가!”
검사 시모스의 외침대로 여섯 명이 지나온 곳은 맹렬한 파도가 몰아치 고 있었다. 양옆에 있던 물의 장벽 이 무너져 내린 탓에, 마치 좁은 도 랑에 양동이로 물을 퍼붓고 있는 것 만 같았다.
그 광경을 본 엘렌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눈에서 푸른 빛이 쏟아지더니, 파도가 멈추며 물이 좌 우로 갈라졌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일행에게, 엘 렌이 소리를 질렀다.
“붕괴를 잠시 늦춘 것뿐이야! 서둘 러!”
거대화 주문이 풀리기 시작한 우테 콰이를 선두로, 여섯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저거.” 늑대에 타고 있던 에단이 앞을 가 리켰다. 경사로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수면 위가 보 인 탓이다.
“공간이 쪼그라들고 있는 거야.”
“공간이 쪼그라들어?”
“붕괴의 전조지. 얼른 나가야 해.”
누이, 시렌의 설명에 에단의 얼굴 이 창백해졌다.
그렇게 수면으로 올라선 일행은, 기이한 풍경과 마주했다.
끼이 이 이—
명계의 틈에서 흘러나온 영혼들이 한 곳에 모여 버글대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보랏빛 광채가 번뜩거릴 때마다 영혼들이 뭉쳐 만들어진 회 색 안개가 갈라졌다.
“저 비전력, 아틸리아야!”
에단의 목소리에 엘렌은 얼른 주변 을 훑어보았다.
“포이가, 포이가 안 보여!”
“……아니. 저기에 있다.”
거대화가 풀린 탓에 도로 차분해진 우테콰이는 그 말만 남긴 채 몸을 날 렸다. 나머지도 얼른 그를 따라갔다.
“Ventum, Av—em(바람이 여, 혼이 여)!”
엘렌의 주문에, 맹렬한 돌개바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곳은 정령계 로 이어진 균열이었고, 덕분에 춤의 정령은 평소보다 훨씬 강력한 상태 로 소환되었다.
돌개바람에 둘러싸인 엘렌은 마치 새처럼 쏘아졌다. 단숨에 일행을 추 월한 엘렌은 영혼들을 향해 불꽃화 살을 연거푸 쏘아냈다.
끼이 이 이 —
파리 떼처럼 모여 있던 영혼들은 결국 미련을 버렸는지 명계의 틈을 향해 물러났다.
“하아, 하아, 너- 성공했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아탈란테 를 무시하고, 엘렌은 바닥에 내려앉 았다.
“이게, 이게 대체.”
파란 눈동자가 마구 요동치고, 손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안 색이 창백해진 엘렌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카라멕은 처리했지만……
아탈란테가 무어라 말했지만, 엘렌 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 다. 벌벌 떨리는 손이 슬링백을 더 듬어 유리병을 꺼냈다.
“포이, 포이.”
애타는 부름에도, 바닥에 몸을 뉜 포이닉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 아으으, 이게, 이게.”
엘렌이 유리병을 연신 더듬었지만, 손이 너무 떨린 탓에 마개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창대를 짚은 채 숨을 몰아쉬던 아탈란테가 유리 병을 빼앗았다.
“후우- 물약은 이미 세 병이나 먹 였어.”
“내, 내놔.”
“멍청아, 또 물약을 먹였다간 닉스 는 말라 죽고 말 거야!”
“으 으으 ”
얼굴이 일그러진 엘렌이 눈물을 쏟 기 시작했다. 우테콰이와 나머지 일 행이 도착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머니 신이여……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우테콰이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포이닉스의 상태가 그만큼 끔찍했던 탓이다.
양다리는 무릎 아래로 끔찍하게 뜯 어져 있었고, 왼팔은 이리저리 뒤틀 렸으며,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완 전히 불탄 채였다.
안구가 녹아내려 눈꺼풀이 움푹 들 어가 있었고, 피를 토한 듯 입가는 피범벅이었다.
“포이, 포이. 이게, 제발.”
엘렌은 포이닉스의 가슴팍에 얼굴 을 묻은 채 서럽게 울어댔다.
“이럴 때 아니다, 계집.”
우테콰이는 포이닉스의 코에 손을 대보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난다. 사제에게 데려가야 한다.”
“안 돼요. 이미 시도해 봤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엘렌의 반대편에 주저앉은 아탈란 테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뭔가가 닉스를 붙들고 있어요.”
“붙들어? 이해할 수 없다.”
얼굴이 구겨진 우테콰이가 포이닉 스를 둘러맸다. 아니, 둘러매려 했지 만,
“끄읍!”
장사 중의 장사인 우테콰이가 목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 주었음 에도 포이닉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 다.
“이건?”
“아칸쿠가 남긴 사념입니다.”
드루이드 자나바스가 굳은 얼굴로 말하자, 우테콰이가 고개를 내저었 다.
“사념은 이런 힘 못 낸다.”
“사념뿐만이 아닙니다. 명계의 틈에 서 흘러든 힘이 들러붙어 있습니다.”
자나바스의 푹 꺼진 눈이 명계의 틈으로 향했다.
“명계의 존재들이 포이닉스 경을 탐내고 있는 겁니다.”
“이걸 풀 방법은?”
“……강령술의 대가가 아닌 이상, 불가능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균열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흘긋 뒤를 돌아본 마법사 에단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나, 자나바스. 어서 여길 나가야 해.”
“조용히 해, 에단.”
“뭘 조용히 하라는 거야! 봐, 어차 피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시렌의 만류에 에단이 벌컥 성을 내자, 우테콰이가 사납게 으르렁거 렸다.
“닥쳐라, 어린놈. 아가리를 찢기 전 에.”
얼굴이 창백해진 에단이 입을 다물 자, 검사 시모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사실 이야. 한 명을 살리겠다고 나머지가 떼죽음을 당할 수는 없어.”
“시모스;”
시렌의 커다란 눈에 실망이 차오르 자, 자나바스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시렌, 시모스의 말이 맞아. 우린 할 일이 있잖아.”
“자나바스, 어떻게 당신까지……
이마의 땀을 털어내던 아탈란테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다들 귀한 분들인데, 뭔가 할 일 이 있으시겠죠. 은혜고 뭐고 내팽개 칠 만큼 바쁜 일이 있으실 거야, 그 렇죠?”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아틸리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오.”
자나바스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탈 란테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선택 같은 소리 하네. 꼬랑지 말 거면 빨리 꺼지기나 해요.” 그녀가 평소와는 달리 차가운 분위 기를 풍기자, 자나바스가 입을 다물 었다.
그때, 우테콰이가 돌메를 고쳐 쥐 었다.
“우리끼리 싸울 때 아니다.”
다른 일행이 우테콰이의 시선을 좇 았다. 수평선을 따라 벌어진 명계의 틈에서, 온갖 시체들이 쏟아져 나오 고 있었다.
우테콰이가 싸울 준비를 갖추자, 자 나바스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 다, 하탄카. 하지만, 저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보다 가치 없는 삶 있는 법이 다. 네 선택을 비웃겠다, diridi.”
우테콰이가 사납게 속삭이던 그때, 불쑥 엘렌이 입을 열었다.
“아틸리아.’’
어쩐지 기이한 분위기에, 일행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어?”
“포이의 칼, 어디 있어?”
방금까지만 해도 질질 눈물을 흘리 고 있던 소녀가 침착한, 아니, 차가 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O w “S’.
아탈란테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 변을 둘러보더니 한 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데.”
“가져다줘.”
“뭐?”
“급하니까, 얼른 가져다줘.”
파란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빛나자, 아탈란테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 덕 거렸다.
엘렌은 왼손에 쥔 수정구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테콰이.”
“음?” “저건 평범한 언데드들이 아니라 사자(死者)의 군대야.”
우테콰이는 문득 언데드들을 돌아 보았다. 과연, 명계의 틈에서 빠져나 온 시체들은 마치 군대처럼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하아.”
수정구의 마나를 바닥까지 빨아들 인 엘렌이 우테콰이와 눈을 마주쳤 다.
“지휘관이 나오기 전까지 최대한 수를 줄여. 지휘관이 나오면 물러나 고. 내가 지원할게.”
“……알겠다.”
엘렌은 포이닉스의 곁에 무릎을 꿇 은 채, 빈 수정구를 슬링백 안에 넣 었다. 우테콰이가 언데드들을 향해 달려가자 에단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제 가자.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
“아니. 너희도 할 일이 있어.”
아탈란테에게서 흐룬팅을 건네받으 며, 엘렌이 여상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자나바스, 밖에서 트롤의 피를 전 부 가지고 와.”
엘렌은 포이닉스의 부러진 왼손에 흐룬팅을 쥐여주었다.
“아미아스와 다른 용병들도 데리고 와. 이 주변은 내가 통제하고 있으 니, 침식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지금 명령을 하는 겁니까?”
흐룬팅의 우윳빛 칼날로 하얀 손바 닥을 길게 그으며, 엘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나머지는 정령을 막아. 남은 놈들이 분명 있을 테고, 곧 올라올 거야.”
“이야기를 못 들었나 본데, 우린 나갈 겁니다.”
“아니, 못 나가.”
자나바스의 눈빛에 의혹이 서렸다.
“못 나가다니?”
“이 일대가 무너지지 않은 건, 내가 그렇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야.”
흐룬팅의 칼날이 작게 맥동하자, 엘렌은 짧게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 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파란 눈동 자에선 물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면 붕괴를 앞당길 수도 있어.”
넷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사 시모 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지금 협박하는 건가?”
« O ” “〒
문득, 포이닉스의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왼손가락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손을 따라 느릿하게 번져갔다.
흐룬팅에 계속 피를 흘려 넣으며, 엘렌은 조용히 포이닉스의 얼굴을 쓸어 만졌다.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붕괴에 휩쓸려 먼지가 될 거 야.”
엘렌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감 정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에 시렌 일 행이 모두 얼어붙었다.
시렌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는 건가요?”
“응.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어.”
그렇게 말하는 엘렌은 마치 인형이 나 조각처럼 보였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와 표정이 없는 얼 굴. 소름 끼치는 아름다움이었다.
“ 가.”
검사 시모스는 입을 꾹 다물고 마 법을 준비했다. 입안으로 소리 없이 주문을 외는 것, 시모스가 가진 비 장의 기술이었다.
에단 역시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소년이 룬 문자를 쥔 그 순간이었 다.
푸욱.
“꼬아아악!”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파란 수면에 피가 튀었다. 어느새 시모스의 어깨와 에단의 팔뚝엔 손 바닥만 한 얼음 조각이 박혀 있었 다. 엘렌이 쏘아낸 서리송곳이었다.
동생과 호위가 부상을 당했다는 사 실도 잊고, 마법사 시렌은 입을 쩍 벌렸다.
‘서리송곳을 둘로 쪼개서 쐈어. 저 런 주문응용을 무영창(無諫唱)으로 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으, 우웩.”
마력이 역류한 시모스가 피를 토했 고, 에단은 상처를 감싸 쥔 채 턱을 떨었다.
“아으으, 으, 누, 누나. 누나, 이거, 피가-”
팔이 꿰뚫린 에단이 울먹거리며 엉 덩방아를 찧었지만, 시렌과 자나바 스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사 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그들을 가만 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는 둘과 얼어붙은 둘을 보며, 엘렌이 입을 열었다.
“ 가.”
시렌은 공포를 느꼈다.
와이번이나 트롤, 거인을 보았을 느꼈던 것보다도 더 선명하고 진한 공포였다.
“……가, 가자.”
시렌 일행이 물러났다. 시렌이 에 단을 부축하고, 자나바스가 늑대로 변신해 출구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아탈란테가 씩 미소를 지 었다.
“겁쟁이들. 으, 속이 다 후련하네.”
엘렌은 가만히 포이닉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느새 균열은 왼팔을 모두 덮고 포이닉스의 가슴 팍까지 번져 있었다.
“은근히 과격하네, 우리 마법사 아 가씨? 아, 나쁜 뜻은 아니고,”
“너도 가.”
“좋은 뜻에서, 어?”
“너도 가.”
하얀 손가락이 포이닉스의 볼에 남 은 물기를 닦아내었다.
“아무리 우테콰이라도, 혼자선 벅
찰 거야.” “……음, 나도 꽤 지쳤거든? 비전 력도 거의 바닥이고,”
“아틸리아.”
엘렌이 눈이 아탈란테를 향했다.
“넌 멀쩡하네?”
“어?”
“포이는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는 데, 넌 멀쩡해.”
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더 창백해진 덕에, 엘렌의 투명한 피부 너머로 파란 핏줄이 선명히 비쳤다. 표정 없는 얼굴에 번쩍거리는 파란 눈동 자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아탈란테는 시렌 일행을 이해하게 되었다.
“ 가.”
“……뭐, 그럴, 까.”
아탈란테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엘렌은 포이닉스의 입술을 만지작거 렸다. 창을 고쳐 쥔 누데인족 여인 이 충분히 멀어지고 난 뒤에야 엘렌 의 시선이 포이닉스에게로 향했다.
쪽빛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포이.”
포이닉스의 입술이 메마르며 피부 가 벗겨졌다. 보드랍던 살결이 거친 껍질처럼 변했지만, 하얀 손가락은 여전히 그걸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지켜줄게.”
엘렌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