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5)
나의 악당들 135화
35. 전설의 혈통(3)
“하으, 흐으.”
포이닉스의 곁에 서 있던 엘렌이 크게 휘청거리자, 근처에서 활을 당 기던 콜이 깜짝 놀라 외쳤다.
“엘렌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 아.”
얼굴이 창백해진 엘렌은 슬링백에 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포이닉스와 엘렌은 사우스하버의 지하 유물방에서 다섯 병의 물약을 얻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그중 두 병의 효능이 마력회복이라는 사 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엘렌이 마시는 물약이 바로 그 마력회복의 물약이었다.
마나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엘 렌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나 중독……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은 재앙 이 되는 법이다. 짧은 시간 동안 너 무 많은 마나를 사용한 탓에, 엘렌 은 마나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지만, 엘렌은 멈출 수 없었다.
엘렌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면의 물이 비처럼 하늘로 솟구친 탓에 대양은 호수만큼 쪼그라들어 있었다. 저 멀리 펼쳐져 있던 지평 선은 어느새 암흑의 장벽에 집어 삼 켜진 뒤였다.
발아래의 물이 완전히 마르면 쪽빛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 것이다. 엘렌 이 필사적으로 붕괴의 속도를 조절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완전한 붕괴가 코앞이었다.
“엘렌 님! 여기, 좀-”
아미아스의 급박한 외침에 엘렌이 즉각 주문을 외웠다. 이어지는 사출 과 폭발. 불길에 휩싸인 언데드들이 무감정한 비명을 질러댔다.
“크으, 워어어-!”
고개를 돌려보니, 물의 상급 정령 을 마주한 우테콰이가 사나운 고함 을 지르고 있었다. 초원의 대전사는 자신의 배를 꿰뚫은 물의 창과 창잡 이를 한꺼번에 후려쳤다.
슬론헤의 마울이 연녹색으로 빛났 다. 정령을 무력화시키는 바로 그 빛이었다.
팡!
물을 두드리는 경쾌한 타격음과 함 께 물보라가 터졌다. 청년의 형상을 하고 있던 정령이 절반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흐으, 후우.”
우테콰이는 배의 상처를 부여잡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복압이 올라갈 때마다 붉은 덩어리가 튀어나온 탓 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젠장, * 후욱* 젠장할.”
왼쪽 눈을 잃은 시모스가 숨을 몰 아쉬며 칼을 고쳐 쥐었다. 그녀는 장검에서 최후의 스파크를 피워올리 며 물의 정령을 노려보았다.
그 불타는 외눈을 비웃기라도 하 듯, 물의 정령이 제자리에서 빙글빙 글 돌기 시작했다. 사방을 채운 물 방울들이 도로 놈에게 달라붙어 갔 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엘렌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흐으읍.”
라-팔라이스 궁전의 그랜드마스터 들에게서 ‘세기의 천재’라는 말이 나오게끔 만든 바로 그 마력이었다.
구우우우-
묵직한 울림과 함께 상급 정령 주 변의 공간이 멈췄다. 엘렌의 통제력 이 정령의 회복을 막은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엘렌은 파 랗게 메마른 입술을 재빠르게 달싹 거렸다.
“Ostende te, quod papillon(현현 하라, 나비가 되어).”
주문과 함께, 엘렌의 완드 끝이 하 얗게 빛났다. 그 빛에서 고개를 든 서리나비가 힘차게 날갯짓했다.
서리나비는 재빨리 물의 정령에게 달라붙었다. 쪼그라든 물의 정령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 어 갔다.
“그만, 뒤져-!”
머리칼이 파랗게 물든 시모스가 전 류가 흐르는 장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살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두 다리를 잃은 물의 정령이 바닥에 틀 어박혔다.
크릉!
몸을 낮추고 있던 회색 늑대가 정 령을 덮쳐 갔다. 날카로운 이빨이 목덜미를 깨물기 직전, 정령이 얼어 붙은 팔을 바닥에 내리쳤다.
캉!
정령의 손이 산산이 깨지며, 부러 진 부위가 서늘한 빛을 내었다. 창 날처럼 날카로워진 손끝이 회색 늑 대의 가슴팍을 깊이 파고들었다.
푸욱.
늑대가 깨갱 울며 나자빠지자, 시 렌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자나바스!”
부러진 팔을 자나바스의 피로 물들 인 물의 정령은 끈질기게 기어 늑대 에게 다가갔다. 타락한 정령다운 끈 질긴 살의를, 우테콰이의 돌메가 끝 장냈다.
쾅!
물의 정령이 완전히 소멸할 즈음, 회색 늑대가 도로 인간으로 변해갔다.
“크흑, 흐으.”
“자나바스, 자나바스!”
허겁지겁 달려온 시렌이 쓰러진 자 나바스 곁에 무릎을 꿇었다.
“흐, 케흑-”
“당신, 이걸 어쩌면.”
시렌이 손을 덜덜 떨었다. 자나바 스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답답한 소 리를 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 다.
비틀거리며 다가온 시모스가 자나 바스를 살폈다. 허벅지에서 피가 줄 줄 흐르고 있었고, 물의 정령에게 당한 가슴엔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 었다.
“……재수도 없지. 폐가 찢어졌어.”
“시모스, 제발, 자나바스를-”
시렌의 애원에 시모스의 표정이 어 두워졌다.
“포션 남은 거 없어?”
“어, 없어요. 이미 다……
“젠장, 젠장.”
뒤늦게 달려온 에단의 얼굴이 일그 러 졌다.
‘내가, 내가 마녀에게 당하지만 않 았더라면.’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년의 눈에 자책과 원망, 분노 따위가 떠 올랐다.
그때, 무언가가 단단한 것이 에단 의 뒤통수에 닿았다.
“윽, 이런 제기—”
소년의 눈이 불타오른 것도 잠시.
자신과 부딪힌 것이 우테콰이의 팔 꿈치라는 것을 깨달은 에단은 씩씩 거리면서도 입을 닫았다.
배를 부여잡은 채 자나바스에게 다 가간 우테콰이가 흥,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Urti nots’ tesnel, himar dirldi(네 꼴을 봐라, 어리석은 드루이드여).”
자나바스는 켁켁거리며 우테콰이를 올려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밭은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돌메를 내려놓은 우테콰이는 허리 춤을 뒤지며 말을 이었다.
“넌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겨 비겁 한 선택을 했다. 그러고도 대의며 정의를 입에 담을 수 있느냐?”
여전히 초원의 언어였기에, 시렌과 시모스는 우테콰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투에 담긴 조롱은 쉽사리 눈치챌 수 있었다.
시모스는 조용히 이를 갈았고, 시 렌은 울음을 삼키며 성을 내었다.
“그만하시죠, 하탄카 씨. 당신은 전 사이시면서 싸우다 죽는 이를 비웃 는 겁니까?”
우테콰이는 끙, 하며 제 배를 눌렀 다. 뱃가죽을 비집고 나오려던 내장 이 도로 밀려들어 갔다.
“죽음을 비웃는 것 아니다. 그의 삶을 비웃는 것이다.”
“당신!”
커다란 눈에 분노가 차올랐지만, 우테콰이는 시렌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허리춤에서 꺼낸 유리 병의 마개를 엄지손가락으로 뽑아내 었다.
“그건……
“Urne tasard’daya(너는 젊다).”
한쪽 무릎을 꿇은 우테콰이가 조심 스레 유리병을 기울였다. 엘렌이 마 스터 캐스라이트의 실험실에서 만든 물약이 자나바스의 상처에 스며들었 다.
초원의 언어가 이어졌다.
“부디, 배우는 게 있었길 바란다.
떠돌이 드루이드여.”
자나바스의 기침이 잦아들었다.
찌지지직!
공간이 찢어지는 끔찍한 굉음이 울 려 퍼졌다. 균열의 붕괴가 절정에 이른 것이다.
쪽빛 세상은 이제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엘렌이 동쪽의 출구와 그 일대를 지탱하고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서 쪽에 자리 잡은 명계의 틈이 장악하 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명계의 틈에서 흘러나 오는 마력의 양은 실로 엄청났다. 그러니 균열의 나머지 공간이 전부 무너진 뒤에야 명계의 틈이 닫힐 터 였다.
그렇게 된다면 속박을 당한 포이닉 스는 균열의 붕괴에 휘말리거나, 명 계의 존재들에게 죽음을 맞을 터였 다.
‘절대, 안 돼.’ 당연하지만, 엘렌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마무 리할 최후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포이닉스를 묶고 있는 것은 아칸쿠 의 사념과 명계의 틈에서 흘러든 힘 이었다. 그러니 명계의 틈이 닫히면 포이닉스는 해방될 터였다.
엘렌은 균열의 붕괴 범위와 속도를 조절하여 명계의 틈을 먼저 무너뜨 릴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했 다.
“■S’ O •g•우 ” –’9 ——- I •
엘렌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들 이켰다. 마지막 남은 마력회복의 물 약이었다.
“후우우우-”
그녀의 눈과 입에서 푸른 마나가 흘러 넘쳤다.
마나 중독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포이닉스를 구하겠다는 의 지만이 엘렌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 었다.
고오오-
평범한 마법사 열댓 명과 맞먹는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마력 으로 말미암은 통제력이 명계의 틈 으로 쏘아졌다.
우르르.
쪽빛 세계가 한층 더 좁아졌다.
엘렌이 출구로 이르는 좁은 통로만 을 남겨두고, 나머지 공간은 포기해 버린 것이다.
공간이 좁아진 만큼 마력에 여유가 생겼다. 엘렌은 그 마력까지 짜내어 명계의 틈으로 쏘아 보냈다.
명확한 목적을 갖춘 엘렌의 마력과 는 달리, 명계에서 흘러든 마력은 마구잡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게 다가 점점 빨라지는 붕괴를 막느라 대부분의 마력이 낭비되고 있었다.
엘렌은 마력을 집중하여 명계의 마 력을 단숨에 꿰뚫었다.
끼기기직.
명계의 틈에서 철판이 비틀리는 굉 음이 들려왔다. 명계의 마력이 모여 들 기미를 보이자, 엘렌은 의지를 담아 고함을 질렀다.
“무너, 져 — !”
기이한 굉음이 이어졌다. 명계의 틈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대응도 못 해본 명계의 틈은 원통하 다는 듯 마지막 언데드를 내뱉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검은 연기를 뿌리 며 날아올랐다. 나타난 놈은, 강대한 육신과 끔찍한 원혼을 동시에 품은 언데드였다.
끼이야아아아악-!
그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명계 의 틈이 완전히 닫혔다.
“으, 카흑!”
비틀거리던 엘렌이 피를 토했다.
“흐 O O O 포이 ” , – —■ —, —丄一 I •
포이닉스를 감싼 비늘막에 피가 끼 얹어졌다. 엘렌은 더듬거리는 손으 로 그걸 닦아내려 했지만, 피는 이 미 비늘막에 스며든 뒤였다.
“이제, 가야, 하는데.”
엘렌의 눈이 초점을 잃으며 작은 몸이 푹 엎어졌다.
뱀에 삼켜진 나는 알이 되었다.
젖이 흘러들어왔다.
충분한 영양분을 갖춘 데다가 정신 이 아득해질 정도로 향기로웠다. 죽 어가던 육신이 되살아나고, 잠들어 있던 생명력이 깨어났다.
절대 질리지 않을 맛이었지만, 젖 은 금세 말라붙었다. 아쉬움에 눈물 이 찔끔 흘렀다.
곧 새로운 젖이 쏟아져 들어왔다.
난 식성이 꽤 너그러운 편이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냄새는 풍미로 받 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흘러드는 냄새는 ‘어 지간한’ 정도가 아니었다. 온갖 역 겨운 냄새가 섞인 데다가 별로 신선 하지도 않았다.
아으, X팔. 토할 것 같아.
파충류면 파충류고, 포유류면 포유 류지. 왜 알에 젖을 먹이고 난리야, 엿 같게.
게다가 이번에 흘러드는 젖에는 웬 개 같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본능과 욕망을 건드리는 불쾌한 기운이었 다.
내 감상이야 어쨌든, 포이닉스의 몸은 준비를 갖춰갔다.
아니, 포이닉스의 몸이 아니지. 김 승수와 포이닉스의 몸이다.
굳이 한 이름만 거론하려면 ‘김포 이닉스의 몸’이나 ‘승수 오브 자하 카르의 몸’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자하카르? 자하카르가 뭐지?
아. 자하카르 왕가(王家)의 포이닉 스. 내 또 다른 이름…….
포이닉스로서의 흐릿한 기억을 곱씹 어 보는 동안,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부화 혹은 탈피를 위한 준비였다.
하지만 몸의 준비가 끝난 것과는 달리, 내 정신은 여전히 몽롱한 상 태였다. 혀끝에 남은 아릿한 쇳내에 입을 쩝쩝거리며 포만감을 음미하고 있었다.
알을 깨려면 껍질의 안팎에서 수고 를 기울여야 한다. 새끼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峰)이라 했고, 어미가 바깥에서 쪼는 것을 탁(隊) 이라 했다.
지금의 나는 줄도, 탁도 없었다. 그러니 알이 깨질 리가 만무했다.
그때, 누군가 고함을 질러댔다.
뭉개진 목소리. 마치 수면 아래에 서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의미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감정은 전달되었다. 사납고, 급박하고, 처절 한 목소리였다.
태아는 제 부모의 부부싸움을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고 했지. 어조가 거 칠어지고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본 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랬나. 지금의 내 신세가 태아와 다르지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눈을 깜빡거리는데, 눈앞에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불투명한 껍질 내지는 양막(羊膜) 이, 잉크 같은 그것을 게걸스레 빨 아먹었다. 나 역시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상쾌한 라임 향기가 섞인, 신선하 고 달콤한 맛이었다. 아쉬움에 눈물 을 흘리게 만들었던 바로 그 젖이었 다!
욕망에 불타올라 양손을 뻗었다.
탁 없는 줄이 나의 세계를 파괴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