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31)
나의 악당들 231화
47. 악몽(13)
검은 원반을 통과하여 발을 내디딘 곳은 경사진 바윗돌 위였다.
재빨리 사방을 살펴보니, 별이 쏟 아질 것만 같은 새까만 하늘과 그 아래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이 보였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제 몸 을 불사르고 있었던 탓에 키 작은 풀밭과 점점이 흩어진 고목들은 창 백한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윽,”
민활한 동작으로 자세를 잡은 뭉치 와는 달리, 다리가 풀린 콜은 세차 게 넘어져 바위 아래로 굴러떨어졌 다.
“Urwha, 콜?”
그때, 바위 아래에서 익숙한 중저 음이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시선 을 돌리니 모닥불가에 앉아 있던 거 구가 벌떡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 였다.
“포이 닉스!”
강철을 덧댄 깃털예장모와 생가죽 바지만 걸쳐 근육질 상체를 훤히 드 러낸 붉은 피부의 대전사.
“우테콰이!”
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 지만 회포를 풀고 있을 여유는 없었 다.
난 서둘러 바위 아래의 야영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업고 있던 헤 일라를 모닥불 옆에 뉘었다.
“다쳤군.”
“당장 치료해야 해.” 옆에 자빠져 있던 콜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꽤 높은 바위에서 떨어졌지만 푹신한 풀밭 덕에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다.
“여기, 포션이 있습니다.”
콜이 내민 건 끈적한 질감의 붉은 액체가 든 유리병이었다. 겉면에 덧 대어진 철제 틀이 꽤 익숙한 모양새 다.
“이건?”
“마스터 캐스라이트의 실험실에서 엘렌 님이 만든 겁니다.”
역시, 롱빌에서 만든 상처치료의 물약이군.
트롤의 피 대신 특수처리한 주황이 끼를 써서 만든 물약으로, 사용하면 급격히 허기가 지는 부작용을 가진 물건이다.
“좋아. 뚜껑 열고 대기해!”
물론, 지금은 그런 부작용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일단 헤일라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헤일라, 정신 차려!”
뺨을 두들겨 보았지만 의식은 진즉 에 날아간 뒤였고, 숨도 미약했다. 총을 맞은 곳은 왼쪽 갈비뼈 아래와 오른쪽 허벅지. 둘 다 치명상일 터 였다.
“우테콰이, 물 있어?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한 물.”
“여기 있다.”
“잠깐 기다려. 뭉치야, 단검이랑 밧 줄!”
뭉치가 ‘넷!’ 하고 대답하며 날카로 운 단검과 밧줄을 내밀었다. 난 우 선 단검을 받아 헤일라의 조끼와 셔 츠를 부욱, 찢었다.
시뻘겋게 물든 천을 떼어내자, 소 가죽으로 만든 워터스킨을 든 우테 콰이가 거기에 물을 부었다.
복부의 상처를 씻어내는 동안 난 뭉치가 건넨 밧줄을 허벅지의 상처 위쪽에 단단히 묶었다.
“……마법에 당한 건가?”
“ 비슷해.”
“Athar Marta. 끔찍하군.”
우테콰이가 침음을 흘릴 만큼 상처 는 심각했다.
당연하지만, 나도 총상은 처음 본 다. 그러니 12.7밀리에 맞은 건지 7.62밀리에 맞은 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헤일라의 배를 관통한 총 알은 적어도 2개 이상이었다.
“포션 부어, 삼 분의 일만.”
콜이 상처치료의 물약을 붓자, 매 캐한 연기와 함께 상처가 부글거리 며 끓어올랐다. 그렇게 살이 차올랐 지만, 내장까지 제대로 치료가 될지 는 확신할 수 없었다.
뒤이어 단검을 이용해 오른쪽 바짓 단을 찢고, 역시 물로 씻어낸 뒤 물 약을 조금 붓게 했다.
허벅지에 새하얀 살이 돋는 동안 손으로 헤일라의 허리 뒤쪽을 더듬 어보았다.
“0 O ” —
손가락 끝에 균열이 세 개쯤 만져 졌다. 아무래도 총알은 깔끔하게 관 통하여 나간 모양이다. 평상복을 입 은 채 기관총에 맞았으니 당연한 거 겠지.
총상을 입으면 탄자가 깨져서 몸 안에 남을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기관총탄은 괜찮을까?
남은 물약을 억지로 먹였지만 여전 히 헤일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식이 엄엄했고, 얼굴 역시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쇼크라도 온 건가?
……이대론 안 되겠다. 역시 수혈 을 해서 혈조술을,
必, iba-r
M 으 하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귀청 을 때렸다. 산 하나 없는 초원인데 도 그 목소리는 크고 격렬하게 메아 리쳤다…….
우테콰이가 침음을 흘리더니 굳은 얼굴로 일행을 돌아보았다.
“움직여야 한다.”
“뭐? 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인다!”
이건 또 무슨 난리야?
평소답지 않게, 우테콰이는 썩 다 급한 기색이었다.
“으, 이런 젠장.”
결국, 난 반망토를 끌러 헤일라의 상체를 덮은 뒤 그녀를 안아 들었 다. 포션을 쓴 덕에 어느 정도 지혈 이 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헤엑.”
어느새 야영지 뒤편 바위에 올라선 뭉치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입을 쩍 벌렸다.
“포이! 저기, 저기요-!”
“어?”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에선…….
쿠구구궁-
교외의 저택과 누데인족의 야영지 가 그랬던 것처럼, 별빛에 물든 초 원은 저 멀리 지평선부터 무너져내 리고 있었다. 마치 거센 바람이 모 래성을 깎아내는 것만 같은 풍경이 다.
“……이런 미친. 벌써?”
여기가 꿈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 는 것도 알고, 특정 조건이 만족하 면 저처럼 무너진다는 것도 안다.
근데 이렇게 빨리 무너진 경우는 처음인데, 대체 왜?
“Aiba-!”
또다시 목소리가 초원에 메아리치 자, 우테콰이는 이를 악물더니 나와 콜의 등을 떠밀었다.
“뛰어라, 당장!”
놈의 성화에 우리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바위에 올라 있던 뭉치도 얼른 따라붙었고, 뒤이어 달밤의 질 주가 시작되었다.
뭉치와 콜은 몸 쓰는 일이라면 어 디 가서 빠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테콰이가 전력으로 뜀박 질을 하자 둘은 금세 턱밑까지 숨이 차올랐고, 몇 분 되지 않아 점차 뒤 처지기 시작했다.
“우테콰이! 너무 빨라!”
“조금, *후욱* 참아라!”
“이대로면, 뭉치랑 콜이, 낙오된다 고!”
“강이 있다! 강까지만 뛰면, *훅* 된다!”
必, iba-r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세 번째였기에 격렬한 메아리 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소년의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 왔다!”
우테콰이의 고함에 앞을 살펴보니, 과연 널찍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난 헤일라를 고쳐 안으며 속도를 더 했다. 뭉치와 콜도 마지막 힘을 짜 내어 다리를 놀렸다.
그렇게 강가에 이른 우리를 맞이한 것은, 한 척의 목선이었다.
배는 폭이 좁은 것에 비해 길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사람 열댓 명쯤은 너끈히 태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랬다.
“타라!”
가장 먼저 도착한 나는 헤일라를 배에 태우고 넓적한 모양의 뱃고물 을 밀었다.
곧이어 도착한 우테콰이는 금방이 라도 쓰러질 것 같은 뭉치와 콜을 뱃전에 집어 던진 뒤 내게 손을 보 탰다.
“흐읍!”
“끙,”
우테콰이와 내 힘을 합치면 아마 장정 서른 명 몫은 나올 거다. 덕분 에 강변에 절반쯤 걸쳐있던 목선은 미끄러지듯 강 위로 떠올랐다.
“Ai-ba!”
유속이 빠른 강이었다. 속도가 붙 은 뒤엔 노를 젓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테콰이는 뱃전 에 서서 이물의 방향이 틀어질 때만 수면에 노를 담갔다.
한참 헥헥거리던 뭉치는 난간을 붙 들고 몸을 일으켰다.
“으, *헤으* 가까워져요.”
“……그러게.”
녀석이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향 해 쇄도하는 세상의 끝이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창백하게 물든 초원은 빠르게 스러져 갔다. 세상을 먼지로 만드는 경계선은 고 작 2, 300미터 뒤에서 우리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걱정 마라.” 우테콰이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 다.
“벗어날 수 있다. 아무 일 없다.”
w……으 ”
이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우선 헤일라를 다시 살폈다.
달리는 와중에도 계속 신경을 쓴 덕에 상태가 나빠진 것 같진 않았 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호전이 된 것도 아니라서 한시라도 빨리 치료 를 이어가야 했다.
“ O 으” — —1 9
하지만, 격렬히 흔들리는 배 위에 서 수혈을 하고 혈조술을 펼칠 자신 이 없었다.
“언제쯤 끝날 것 같아?”
“……정확히는 모른다.”
우테콰이의 우묵한 시선이 강 저편 을 향했다.
“가다 보면, 어느새인가 끝이 난다. 길지 않다.”
“그러니까, 꿈에서 그랬단 거지?”
“옳다. 항상 그랬으니, 안심해라.”
난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조심 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긴 어딘데?”
평소답지 않게, 놈은 망설이고 있 었다.
우테콰이는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 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대초원의 아이들, 스스로 증명해 야 사내가 된다. 우리, 리쿠와 부족 도 그렇다.”
“……성인식?”
“옳다, 성인식. 어리면 열넷, 늙으 면 열일곱까지, 아이들끼리 패거리 꾸려서 마을 떠난다.”
“떠나서 뭘 하는데?”
“뭐든 한다.”
“ 뭐든?”
“짐승, 괴물, 인간 사냥이 흔하다. 배 타고 바다도 나간다. 제국 국경 을 넘어 귀한 물건도 구한다. 무엇 이든 상관없다. 사내가 될 자격 증 명한다.”
“Aiba-!”
우테콰이는 소년의 목소리가 울리 는 동안 말을 골랐다. 그리고 메아 리가 끝나자 고른 말을 꺼내놓았다.
“성인식은 위험하다. 부족 최고의 전사가 아이들 몰래 따라간다. 숨어 서 살피고, 위험하면 지킨다.”
“흠. 꽤 인간적이네.”
“전사가 도움 주면 성인식 실패한 다. 아이들은 사내가 되지 못한다.”
“재수, 아니, 재도전을 해야 한다는 거야?”
“틀리다. 재도전 없다. 영원히 사내 되지 못한다.”
인간적이긴 개뿔, 겁나 가혹하네.
“나, 대초원 최고의 전사다. 늘 성 인식 따라다녔다.”
100미터쯤 뒤까지 세상이 스러졌 지만, 우테콰이는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3년 전까지 그랬다.”
“3년 전?”
“열두 명. 하나같이 용감하고 영리 했다. ‘기타마위’가 우두머리 노릇 했다.”
“그래서?”
“배짱이 정말 센 아이들이었다. 금 지된 강 건넜다.”
“금지된 강?”
“이곳이다. 금지된 강.”
금지된 강이라. 겉보기엔 그저 초 원을 가르는 아름다운 강인데.
“금지된 강 건너서 이틀을 걸으면 마귀의 땅이다.”
“마귀의 땅은 또 뭔데?”
“마귀들이 사는 땅이다. 대지를 검 게 죽이며 주변으로 번진다.”
“ 번진다고?”
“말 그대로다. 언젠가 마귀의 강 너머까지 검게 칠해질 거다. 모든 주술사들이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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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마귀의 땅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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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땅 멈춰 세우면, 사내임을 증명할 수 있다. 아니, 증명하고 남 는다. 대초원의 영웅이 되니까.”
우테콰이는 말을 그치고 숨을 들이 마셨다. 삼켰던 숨이 길게 빠져나가 며 단단한 가슴이 가라앉는다.
“말려야 했다. 말려야 했지만, 그러 지 않았다.”
“왜?”
“용감하고 영리한 아이들이었으니 까. 영웅은 몰라도, 사내는 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미 리 말리는 것도 실패로 쳐?”
“옳다.”
“야, 그건 좀 심하다.”
“최고의 전사가 말렸다는 것, 계획 잘못 세웠다는 뜻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쯤 되니 우테콰이의 꿈이, 아니, 악 몽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마귀의 땅에 들어선 지 사흘 만 에, 아이들은 마귀를 만났다.”
역시 이야기는 내 짐작대로 흘러갔 다.
“처음 보는 마귀였다. 쏠레바의 드 레이크보다 크고, 팔이 여덟 개나 달렸지. 아주 강력했다. 아이들도, 나도 당해내지 못할 만큼.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흘러갈 무 렵, 경계선은 선미 바로 뒤까지 뻗 어와 있었다. 우리가 탄 배와 그 아 래의 강물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 간 위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에, 에. 포이, 이거, 어떠케요-”
“……위험해 보입니다. 괜찮을지,”
뭉치와 콜은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반면 우테콰이는 그저 덤덤 한 얼굴이었다.
“급히 달려갔지만 열둘 중 열하나 가 죽었다. 나도 거의 죽었다. 어머 니의 축복이 마귀 죽이고, 나를 살 렸다.”
어머니의 축복.
아마 광폭화를 말하는 거겠지. 저 때 익힌 거구나.
“……그래서, 애들은 하나만 살고 다 죽은 거야?”
“우두머리, 기타마위는 이 배 위에 서 죽었다. 피를 많이 흘렸지.”
“으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왜 애들을 말리지 않았느냐고 책망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네 잘 못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기엔 우테 콰이의 눈빛에 떠오른 무언가가 너 무 어둡고 깊었다.
그래서 난, 아무 말 없이 놈의 어 깨만 두드려주었다.
“포이, 저기!”
뭉치가 팔짝 뛰며 앞을 가리켰다. 녀석이 가리키는 곳, 강이 끝나고 폭포로 꺾이는 저 멀리에-
“……통로다!”
-검은 원반이 떠올라 있었다!
“우테콰이, 저기야! 저 안으로 들 어가야 해!”
“알겠다!”
우테콰이는 능숙하게 노를 저어 방 향을 조절했다. 급류를 탄 목선은 그 렇게 검은 원반을 향해 쇄도해갔다.
뒤쪽으로 바짝 따라붙은 경계선을 살펴보니…….
“후우.”
살았다. 아직 여유가 있어.
“Aiba-!”
점차 커지는 검은 원반과 순조롭게 흘러가는 배를 번갈아 살피다가, 나 는 문득 입을 열었다.
“근데 우테콰이.”
“ 음?”
“지금 계속 들리는 목소리 있잖아. 아이바? 저게 무슨 뜻이야?” 우테콰이는 노를 저어 마지막으로 방향을 조정하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버지다.”
“아버지? 아이바가, 아버지라는 뜻 이라고?”
“옳다.”
“……잠깐만, 그러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우묵한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기타마위, 내 첫 자식이다.”
내가 입을 쩍 벌린 그 순간, 목선 이 검은 원반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