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57)
나의 악당들 257화
50. 아수라장(II)
속이 메슥거린다.
라살데하를 포함한 악마와 마물들 의 피를 양껏 흡수한 탓일까?
문득 롱빌에서 수렵제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트롤과 그린스 킨들의 피를 줄기차게 마신 후유증 으로 이성과 판단력이 흐려졌었지.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괴물 2, 30마리쯤 빨아먹었 다고 해롱거릴 수준은 넘어선 모양 이다.
“흐으음……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라살데하의 가슴에 박 혀 있던 흐룬팅을 뽑았다. 미라처럼 메마른 악마는 바닥에 닿자마자 可 석- 먼지가 되어 스러졌다.
“밀어붙여!”
“뒈져라, 이 저주받을 새끼들아!”
어느새 나타난 빡빡이 스티드먼과 용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얼마 남지 않은 괴물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선 두로 나선 말총머리 프리츠가 길게 푼 쇠도리깨로 막 불을 뿜으려던 유 황불 늑대의 머리를 깨버렸다.
그 옆에서 각진 참수검을 쥔 베테 랑 컨휘어가 화염의 악마가 휘두른 대검을 방패로 흘려냈다. 기회를 노 리던 중검사 움베르타는 얼른 몸을 날려 악마의 명치에 칼을 꽂았다.
“Quaaak—!”
놈은 치명상을 입은 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생명줄이 질긴 악마답게 저항은 이어졌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진 대검과 불길 탓에 용병들이 물러나는 사이, 한 인영이 기민한 몸놀림을 뽐내며 악 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푹!
턱 아래 칼날이 박힌 화염의 악마 가 ‘그워억-’ 하며 이물질 섞인 불 길을 토해내었다. 장검의 손잡이를 놓은 주근깨 미라는 욕을 지껄이며 뒤로 몸을 굴렸다.
화르륵-
악마가 최후에 쏟아낸 화염숨결이 거세게 퍼져 나가려던 찰나, 하얀 날개를 단 서리야수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그르르.
온몸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신비한 짐승은 불길을 향해 냉기를 토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 올랐다.
그 허연 수증기를 포함하여, 사방 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염계의 괴물들이 지른 불이 꺼지며 피어나 는 연기였다.
꺼진 불길 위에 연기가 내려앉으며 밤하늘은 도로 어둑해졌다. 전투가 끝나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야!”
화염망토를 흩어낸 엘렌이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여전히 시야는 붉고 심장은 흉포하게 고동쳤지만 미소를 짓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엘렌.”
“너, 또 무식하게 몸으로 때웠지?”
“……몸으로 때워? 뭘?”
“방금 전에!”
아, 라살데하의 불길 속으로 몸을 날린 걸 말하는 모양이다.
“ O ”
녀석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불에 닿아 우글거리던 피부는 악마에게서 빼앗은 생명력에 힘입어 이미 재생 된 상태였다. 한껏 달궈졌던 갑옷도 겨울밤의 찬바람에 금세 식어버렸 고.
덕분에 내가 화염 속에서 칼춤을 췄던 흔적이라곤 여기저기 묻은 그 을음과 끄트머리가 조금 꼬부라진 머리칼 정도가 다였다.
“보다시피, 멀쩡한데.”
“멀쩡하면? 멀쩡하면 다야? 결과만 좋으면 용 아가리에 뛰어들어도 괜 찮아?”
엘렌의 쏘아붙이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피식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 다. 내가 올려보고 녀석이 내려보는, 우리 사이에선 썩 낯선 시선이 교차 했다. 엘렌이 무어라 입을 떼기 전 에 붕대를 감아둔 부위를 살펴보았 다.
“뭐, 뭐 하는 거야?”
“피는 완전히 그친 모양이고……
붕대를 조심스레 풀어 찢긴 바지 사이로 상처를 살폈다. 엘렌은 ‘으 이잇!’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밀치 려 했으나 난 아랑곳하지 않고 비늘 수갑을 벗었다. 희게 물든 살에 손 끝이 닿자 녀석은 괴상한 소리와 함 께 몸을 비틀었다.
“잘 아물었네. 걷는 것도 지장 없 는 것 같고.”
“……응.”
“아프지는 않아?”
“안 아파.”
바닥에 흩뿌려진 잿불의 은은한 빛 에 얼굴을 물들인 엘렌을 빤히 바라 보다가, 손을 뻗어 녀석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녀석은 ‘헉,’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품에 폭 안겨 왔다.
“으휴, 다행이다. 걱정했어.”
“……으 ”
O •
“미안해.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 데.”
“아니, 아니야.”
아담한 등을 툭툭 두드리니 녀석은 꾸물꾸물 손을 뻗어 내 목을 마주 껴안았다. 신선하고 파릇한 라임 향 기에 흉포하게 날뛰던 심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는다…….
“포이.”
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 뭉치야?”
“아직 안 끝났어요.”
……흐음, 이상하다. 왜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질까?
뭉치는 오른손의 운검을 역수로 쥔 채 왼팔에 달린 석궁을 장전하고 있 었다. 그리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싸늘한 얼굴로 한쪽을 가리키는 것 이었다.
“우테콰이가 싸우고 있어요. 도와 야 해요.”
“ 아.”
미친,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엘렌의 얼굴을 보고 든 안도감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저편에선 지금 까지도 두 광전사가 ‘끼야압!’ 내지 는 ‘우워어!’ 하고 고함을 내지르며
격렬한 전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동방의 권법가인 일진이나 저기서 쌍칼을 휘두르고 있는 렝카의 경우, 그들의 원본이 되는 캐릭터에 대해 서 썩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편이 다.
당연하지. 비교적 최근에 플레이했 던 캐릭터들이니까.
그런고로,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저기서 호랑이처럼 날뛰는 렝카는 도망친 일진에 비하면 사실 고양이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마디로 46레벨의 권법가는 우리
일행 전원이 덤벼들어도 승리를 장 담하기 어렵지만, 36레벨의 광전사 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SiyOnna—!”
정도를 벗어난 소음은 그 자체로 공격이었다. 눈치를 보며 포위망을 좁히던 용병과 병사들은 날카로운 고함에 귀를 틀어막으며 물러섰다.
그 틈을 노린 렝카는 검은 안광을 길게 늘이며 땅을 박찼다. 마찬가지 로 안광을 뿜던 우테콰이는 바닥을 나뒹구는 무기 사이에서 철퇴 한 쌍 을 주워들며 그녀에게 맞섰다.
“키히,”
렝카는 비웃음을 머금고 샛별을 휘 둘렀다. 하얀 칼날은 쌔애앵- 공기 를 가르다 철퇴들의 머리를 날려 버 렸다. 쇠가 갈리며 터진 불똥이 사 그라들기도 전에 검은 얼음이 우테 콰이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Thulam!”
우테콰이의 배에 칼날이 박히기 직 전, 서리송곳 둘이 쐐애액 살벌한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검은 얼음은 잽싸게 방향을 꺾어 서리송곳 둘을 한꺼번에 깨버렸다. 그 순간 렝카의 뒤통수를 노리고 단 검 두 자루가 쏘아졌다.
황홀경에 이른 광전사는 예리해진 감각을 바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 고 허리를 꺾었다. 하지만 단검이 스쳐 지나가기 전에 조그만 쇠뇌살 이 그녀에게 먼저 도달했다.
“그흐으!”
신경질적인 으르렁거림에 이어서, 허리를 꺾던 렝카는 아예 뒤로 쓰러 지듯 몸을 던지며 땅을 굴렀다.
엘렌의 주문과 뭉치의 암습으로 공 세를 놓친 그녀에게, 내가 덤벼들었 다. 쩌렁쩌렁한 기합 대신 숨죽인 걸음으로 달려들어 흐룬팅을 휘둘렀 지만-
카가각!
렝카는 고양잇과 동물처럼 몸을 일 으키며 내 공격을 받아냈다.
“Urh-”
“뭐, 이 망나니 같은 놈아.”
난 흐룬팅으로 샛별을 얽으며 어깨 를 밀어붙였다.
렝카는 말도 안 되는 괴력으로 칼 을 잡아당겼지만 내 심장이 펄떡거 리며 팔에 힘을 더하자 끝끝내 그녀 는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난 한 걸음 더 나서며 렝카에게 찰싹 달라붙었고, 냅다 박치기를 갈 겼다.
빠악!
“키 잇,”
이를 악문 그녀가 마주 박치기를 하려 머리를 젖혔으나 난 한발 빠르 게 뒤로 물러섰다. 물론 그러는 와 중에도 발목을 거는 것은 잊지 않았 다.
뒷걸음을 치다 박치기를 맞고 발목 을 걸렸으니 넘어질 법도 하건만, 렝카는 용케 몸을 비틀어 균형을 유 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괴한 스텝 을 밟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미친-”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몸놀림 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나, 내 몸은 기다렸다는 듯 기민하게 움 직였다. 왼손을 뻗어 그녀의 눈을 향해 피보라를 터뜨린 것이다.
콰가각!
“끄, 으흐윽!”
수류탄처럼 터진 혈편이 렝카의 얼 굴을 할퀴었고, 그중 한 조각은 눈 알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녀는 물러서는 대신 두 자루 장검을 휘둘러왔다.
“이런, 미친-”
이를 악문 렝카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칼을 휘둘렀다.
따다다당!
불과 한 호흡 만에 네 번의 검격 이 쏟아졌고, 난 가까스로 막아냈다. 눈과 얼굴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공 격을 이어가려는 렝카의 등 뒤에 서 리나비가 내려앉았다.
츠츠_츠_츠~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던 피가 끈적하게 늘어졌 다. 흩어진 마력을 조금쯤 수습한 헤일라가 렝카의 몸에 피의 늪을 끼 얹은 것이다.
“그으으-”
렝카는 몸을 비틀며 안간힘을 썼 다. 하지만 피부에 서리가 내려앉고 끈적한 피가 몸을 묶어대는 통에 쉽 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푸욱!
“끄윽,”
설상가상, 콜이 쏜 화살이 오금을 정확히 꿰뚫었다.
렝카는 비틀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어깨를 젖혔고, 코앞에서 번쩍 나타 난 단검이 그녀의 턱을 깊이 스치고 지나갔다. 뭉치가 던진 깜빡이 단검
이었다.
렝카가 피에 속박되고, 얼어붙고, 화살에 꿰이고, 중독되는 과정에서 안광은 점차 흐려져 갔다. 그녀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단숨에 목을 치려 했지만-
까앙!
렝카는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흐 룬팅을 막아내었다. 대신 균형을 잃 고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
아니,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뒤로 데굴데굴 굴러 반쯤 무너진 선술집 안으로 숨어버렸다.
“……끈질기군.”
“옳다. 전사답다.”
어느새 광폭화가 풀린 듯, 우묵한 눈빛을 되찾은 우테콰이가 옆으로 다가섰다. 나와 우테콰이는 감각을 날카롭게 돋운 채 잔해와 먼지로 가 득한 선술집에 들어섰다.
“■S’ O 흐一” -—, –
렝카는 구석진 벽에 등을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력이 깃든 회색 바람도, 신적 존 재의 흔적이 느껴지던 검은 안광도 꺼진 채였다. 그러나 그녀는 두 자 루 장검을 단단히 꼬나쥔 채였고, 눈도 여전히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 다. 상처 입은 맹수 같다.
“제법, 인데.”
칼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던 그녀는 비틀거리다 도로 자빠지고 말았다.
등에 달라붙은 채 끈질기게 냉기를 뿜는 서리나비와 혈관을 타고 퍼지 는 맹독 탓일까? 입술이 검푸르게 물들어갔다.
“Fidhos. 이렇게 뒈질 줄 몰랐다.”
“이딴 또라이 같은 짓거리를 벌이 고도 대가가 있을 줄 몰랐다고?”
“흐흐.”
렝카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실실 웃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 선택받은 전사다. 모신 뜻을 퍼뜨리는 것이 내 일이다. 이곳도 그렇게 했을 뿐이다.”
“지랄.”
난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우테콰이 를 돌아보았다. 뭔가 해줄 말이 있 으리라 예상한 탓이다.
“우테콰이?” 그러나 놈은 모신 운운하는 개소리 에 반박하는 대신 가만히 렝카를 살 펴보고만 있었다.
“음. 혼란스럽다.”
“••••••뭐가?”
“으음.”
우테콰이가 침음을 흘리는 사이, 선술집의 무너진 외벽을 통해 뭉치, 엘렌, 콜, 헤일라가 순서대로 나타났 다.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들어와선 바닥엔 널브러져 있는 렝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아직도 안 끝내고 뭐 했 어?’ 하는 시선이 모여들 즈음.
타다닥.
“ O 으?’’
“조심하십시오!”
깨진 창문을 통해 커다란 늑대가 나타났다.
놀란 콜이 재빨리 그 늑대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쏘아지기 직 전, 늑대는 휘릭 몸을 회전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멈춰주십시오, 포이닉스 님!”
“……당신은?”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얇은 천 옷 을 입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청년. 우테콰이는 그를 보고 미간을 좁혔 다.
“젊은 드루이드 자나바스.”
“하탄카 님.”
롱빌에서 만나 카라멕의 위협에 대 해 알려주었던 드루이드, 자나바스 였다. 라오 가문의 마법사인 시렌과 에단의 일행이기도 했다.
그는 우테콰이에게 슬쩍 눈인사를 건넨 뒤, 나와 일행을 돌아보았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당신이 여기 왜……. 시렌 양과 에단은요?”
“모두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시간 이 없군요.”
자나바스는 무너진 외벽 쪽을 연신 흘끔거렸다. 스티드먼과 프리츠 등 내 부하들이 선술집에 들어차고 있 었고, 병사들은 부상자들을 후송하 느라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 야만인! 이노멘 남작을 죽인 야만인은 어디에 있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샤엔나 남작의 목소리에 자나바스의 눈빛에 불안함 이 깃들었다.
“여기, 이 여자를 데려가게 해주십 시오.”
“……갑자기 무슨 개소립니까?”
“시렌과 에단을 구해야 해요.”
어느새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린 렝카를 홀긋거리며, 자나바스는 입 술을 질끈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