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
나의 악당들 004화
2. 눈을 뜨다(2)
코앞에 닥친 갑작스러운 죽음의 광 경.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떨리는 다리를 끌고 뒷걸음질 쳤다.
“씨, 씨X……
나는 항해 내내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자리에 숨듯이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발치를 더 듬어 떨어진 칼을 주워들었다.
“크악!”
“무기를 들어! 버텨라!”
어디선가 나타난 조각배들이 배를 포위하고 있었다.
노 두어 쌍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조각배들은 하나같이 예닐곱 명의 해적들을 태우고 있었다.
“쏴!”
“모조리 죽여!”
놈들은 꼭 평생 씻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더러운 차림새였다.
머리칼과 수염이 덥수룩했으며, 소 리를 지르며 드러나는 이는, 아니, 이빨은 누렇다 못해 검었다.
이가 나간 도끼와 끝이 부러진 곡 도, 단검을 묶어 만든 창 등 조잡한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 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올라가!”
“올라가! 죽여!”
해적들은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이 었지만 포악하기 짝이 없었다.
놈들은 사납게 고함을 지르며 화살 을 쏘고 창을 던졌다. 그렇게 선원 들을 무력화시키며 악착같이 배에 올라왔다.
선원들에 더해 몇몇 선객들이 무기 를 들고 맞선 덕에 놈들을 잘 막아 내는 듯했다.
하지만 아래에서 쏘아진 화살에 덩 치 큰 선원 여럿이 쓰러지고 난 후 엔 마침내 해적들이 갑판에 올라섰 다.
“제, 젠장! 막아야, 커억……
저항하던 선원 하나가 어깨에 도끼 를 맞고 쓰러졌다.
그가 숨을 거둘 무렵, 배에 올라와 흉성을 내지르는 해적들은 언뜻 열 댓 명도 넘어 보였다.
“우와아아!”
“꺄아악!”
그 후에 펼쳐진 광경은 비현실적이 기 그지없었다.
개구리보다 큰 동물은 죽여본 적이 없는 내게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모 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으악!”
“살려줘요, 살려줘!”
해적들이 무기를 뻗을 때마다 사람 들이 무참히 죽어갔다.
놈들은 남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 까지 모조리 죽이고, 여자는 무자비 한 폭력으로 제압하곤 조각배로 끌 고 갔다.
히어로영화나 액션영화보다는 피가 많이 났고, 작정하고 만든 고어 영 화보다는 덜 잔인했다.
그래서 배 위에서 펼쳐진 학살극은 꼭 잘 만든 19금 슬래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미, 미친……
나는 달달 떨리는 턱을 앙다물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곤, 지금 내게 닥쳐오는 죽음 이 한낱 악몽에 불과하길 기도했다.
하지만 예민해진 몸이 감각하는 주 변의 상황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 이었다.
“자, 잠깐, 항복하겠…… 꺽.”
채 이어지지 못한 말과 함께, 살점 이 뜯어지고 무언가 바닥에 쏟아지 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에서 들려온 끔찍한 소리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러곤 떨리는 손으로 느슨해진 흉 갑을 조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짐들 사이에서 운 좋게 놈들의 눈을 피했지만, 이 큰 덩치 를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터였다.
공포 질린 타조처럼 눈을 감고 고 개를 처박은 채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손은 벌벌 떨리면서도 착실히 끈을 찾아내었다.
배갑과 흉갑을 연결하는 부위는 다 행히도 한쪽만 풀려 있었고, 그 모 양이 전투화 끈과 비슷해서 어렵잖 게 조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흉갑을 조인 뒤, 견갑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깨에 차는 갑옷은 형태가 낯설뿐 더러, 끈이 엉켜 있었기에 재빨리 묶을 자신도 없었다.
‘X발, 투구도 주웠어야 하는데.’
챕터 1을 진행하며, 오만하게도 노 멀 아이템은 한 번도 줍지 않았더랬 다.
그런 이유로 지금 가진 무기와 버 클러, 흉갑 등은 모두 매직, 혹은 레어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투구와 장갑은 아예 없었 고, 부츠는 캐릭터 생성 때부터 들 고 있던 폐품이었다.
“후우, 후-” 나는 숨을 고르며 칼을 두른 천을 풀어내었다.
천을 풀고 가죽 칼집에서 꺼내든 칼은 부드러운 곡선이 날카로운 칼 끝까지 이어진 펄션이었다.
챕터 1을 진행하며 기계적으로 주 워든 칼이라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사자의 이빨인가, 발톱인가, 뭐 그 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펄션은 묵직한 무게감과 편 안한 그립감 덕에 마음이 썩 든든해 졌다.
위압적인 모양새의 칼날은 공들여 관리했는지 허옇게 번쩍거리고 있었 다. 쨍하고 내리쬔 햇빛이 펄션의 날을 타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부서진 빛은 갑판을 휘젓던 해적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 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열기로 번뜩이 는 시선들. 나는 그 시선들을 마주 하며 작게 신음했다.
“흐으.”
•••조금 지린 것 같은데. 나는 떨리는 다리를 애써 멈춰 세 우며 침을 삼켰다.
“뭐야, 저 새끼?”
“죽여!”
위압적인 고함과는 달리, 놈들은 쉽사리 내게 다가서지 못했다. 나의, 그러니까, 10레벨 혈기사 ‘핵쟁이새 기야’의 비주얼이 꽤나 위협적이었 기 때문이리라.
그럴 법도 한 것이, 왜소한 해적들 에 비해 나는 머리 한 개 반은 컸 고, 일견 마른 듯했지만, 전신에 근 육이 박힌 단단한 체구였다.
거기에 흠집이 가득한 흉갑과 허리 춤에 덜렁거리는 방패, 날카로운 칼 과 언뜻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까지.
10레벨 혈기사 ‘핵쟁이새기야’는 소위 말해, ‘한가락 할 것 같은’ 생 김새였다.
나는 놈들을 곁눈질하며 허리춤을 더듬었다.
방패를 꺼내 들고 싶은데, 흉악하 기 그지없는 해적들에게서 눈을 떼 기가 겁났다.
어떻게 방패를 잡고 끌어올려 보았 으나, 역시나 벨트에 고정되어 있었 다.
놈들이 나를 살피는 사이 나는 재 빨리 곁눈질하여 방패의 고정 상태 를 확인했다.
“이런 씨-”
방패는 고리에 걸려 있었는데, 문 제는 그 고리가 배갑의 안쪽으로 말 려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좀 전에 갑옷을 조이는 과정 에서 엉킨 모양이었다.
나는 초조하게 눈앞의 해적들과 방 패를 곁눈질하며 바쁘게 손을 놀렸 지만, 방패는 도저히 빠져나올 생각 을 않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해적들 역시 내가 하는 양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 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쐐액, 퍽!
“꺽!”
나는 끔찍한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거렸다. 그러면서 본능적으 로 칼을 휘둘러 해적들을 견제했다.
“이런 개 같은.”
나는 볼썽사납게 칼을 휘두르며 뒷 걸음질 쳤다.
“으흐흐.”
“저 새끼 꼬라지 봐.”
해적들은 으스스한 웃음을 흘리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난간에 기댄 채 내려다보니, 어느 새 허벅지에 화살이 돋아나 있었다 족히 손가락 서너 마디 아래까지 화 살촉이 파고든 것 같았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화살을 뽑으려 했지만.
“끄 O} 으]•!”
으, 화살대를 살짝만 건드렸는데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려든다.
미친, 이걸 어떻게 뽑아!
“크하하!”
“저 멍청한 놈, 뭐 하냐?”
내가 하는 양을 보며 비웃던 해적 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10레벨 혈기사 ‘핵쟁이새기 야’가 아닌, 그냥 약해빠진 아저씨 인 것을 들킨 것 같았다.
“으으, 트릭스터 이 썩을 놈-”
나는 씨근덕거리며 재차 화살대를 잡았다. 그러고 두어 차례 심호흡했 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 다. 아마 칼을 휘둘러 생명을 해칠 용기는 없고, 아무 발악도 못 하고 죽기는 싫은,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끄아악!”
나는 악에 받쳐 허벅지에 박힌 화 살대를 잡아당겼다.
그때 깨달은 것은, 화살은 쉽게 뽑 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맞는 것보다 뽑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이었 다.
“끄아아아아악!”
피를 토할 것 같은 비명과 함께 피로 물든 화살촉이 살점을 끌며 뽑 혀 나왔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 면서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흐으, 흐으-”
약간 질린 것 같은 해적들을 보며 나는 피 묻은 화살을 내팽개쳤다.
“후우, 후! 덤벼봐,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 악!”
기세를 잡았다는 생각에 고함을 지 르던 나는 돌연 비명을 지르며 쓰러 졌다.
어깨에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와 박 혔기 때문이다.
해적들의 폭소가 들려왔다. 수치심 을 느낄 새도 없이 바닥을 긁으며 일어났지만.
쐐애액, 푹!
“커 헉!”
또다시 날아든 화살이 허벅지와 정 강이에 연달아 꽂혔다.
가슴에도 한 발 날아왔지만 둔중한 충격만 남기고 흉갑에 튕겨 나갔다. 목이나 머리에 맞지 않은 게 천운이 었다.
나는 처박히듯 난간 구석에 쓰러지 고 말았다.
“흐어—”
평생 느껴본 그 어떤 고통보다 강 렬한 통증이었다.
나는 박제된 벌레처럼 바닥에 피 웅덩이를 만들며 버르적거릴 뿐이었 다.
“끄으.”
몸이 떨려서 욕도 뱉을 수 없었다.
마치 사지에 심장이 하나씩 달린 것처럼 전신에서 맥박이 울렸다. 그 세찬 펌프질로 힘을 얻은 피가 상처 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
벌거벗겨진 채 냉동실에 들어온 것 처럼 끔찍한 오한이 전신을 파고들 었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끔 찍한 배 위의 광경과는 달리 푸른 하늘이었다.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졌다. 비릿한 혈향 사이에서도 해적 이 풍기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X발-”
좀 씻고 다니지. 이딴 냄새를 맡으 며 죽어야 하다니.
그렇게 눈을 감으려는 찰나, 얼굴 에 더운 피가 튀었다.
그런데… 내 피가 아니었다.
“어.”
태양을 등지고 있던 해적의 머리가 기우뚱 넘어가고 있었다. 놈의 머리 가 비정상적으로 기울자 가려졌던 태양이 드러났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상황을 파악하 려 노력했다. 앞에 서 있던 해적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쓰러진 채 였다.
목이 절반쯤 갈라진 모습.
대체 무슨 일이지?
“마법사다!”
“조심해!”
해적들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 질렀다.
어디선가 나타난 인영이 짧은 리코 더 같은 걸 휘두르고 있었다. 아니, 리코더가 아니라, 조그만 완드였다.
후우웅!
완드의 머리에 진녹색 바람이 뭉쳤 다.
바람은 앞으로 뻗어 나가며 점차 펼쳐졌고, 마침내 반원을 그리며 칼 처럼 휘둘러졌다.
서걱!
진녹색 바람이 한 해적의 팔을 깊 게 썰어버렸고, 놈은 가래가 끓는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악! XX!”
“저 마술쟁이 잡아!”
나는 그 마법 같은 장면을 보고 다크월드의 스킬을 떠올렸다.
칼바람!
원소마법사의 바람계열 주문으로, 좁은 범위에 절삭피해를 입히는 마 법이었다.
선실 안에서 불쑥 나타난 원소마법 사가 순식간에 두 명의 해적들을 처 치하자 가까이에 있던 해적들은 혼 비백산하며 갑판 여기저기로 흩어졌 다.
그러자 원소마법사는 놈들을 쫓는 대신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던 해적 들을 노리고 칼바람을 날리기 시작 했다.
바람의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해적 놈들은 어김없이 사지를 잃거 나 목이 잘리며 나자빠졌다.
그러는 동안 풀색을 띤 바람이 완 드를 타고 넘으며 흩어졌다 뭉치기 를 반복했다.
그 바람의 흐름이 마법사의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를 휙 뒤집어 넘겼 다.
“어……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멍청 한 소리를 내었다.
굴곡진 긴 금발과 오밀조밀한 이목 구비의 미소녀. 다크월드 패키지의 한 면을 장식한 여성 원소마법사 캐 릭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