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29)
나의 악당들 529화
68. 왕도행(2)
무리 지어 움직일 때, 바이콘은 절 대 선두를 내어주는 법이 없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 는 않다. 그저 이 두 뿔 마수는 저 가 첫째로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놈 일 뿐인 것이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바이콘은 마 수다운 각력에 힘입어 대개 별 어려 움 없이 선두를 차지하곤 했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름다운 백마이 자 인세에 보기 드문 명마, ‘브라이 트미어’가 테오도라의 축복에 힘입 어 바이콘을 추월한 적이 있다. 그 때 놈은 한 쌍의 나선형 뿔을 칼처 럼 휘두르며 위협을 해댄 건 기본 에, 앞서가는 엉덩이를 깨물겠다고 이빨까지 드러내는 추태를 보였다.
반쯤 눈깔이 돌았던 바이콘은 내가 연거푸 대가리를 후려친 뒤에야 멈 춰 섰고,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뒷발로 땅을 파헤치거나 근처의 나무를 부러뜨리는 등 행패를 부려 댔다. 마구간에 도착하고 나서도 진 정이 되지 않아 굵직한 사슬로 결박 을 해둬야 했고.
여하간, 그 이후로는 되도록 놈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었다.
기병 몇을 거느리고 숲을 가로지르 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수색 에 나선 부하들은 바이콘을 앞서지 않으려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내 바로 뒤쪽에서 말을 달리던 란 델 소령이 길잡이 삼아 데려온 숲지 기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거의 다 왔습니다, 나으리. 아마 저기, 저 너머 어디일 겁니다.”
중년의 숲지기가 가리키는 곳에는 수풀이 빼곡할 뿐 오솔길 하나 보이 지 않았다. 란델이 미심쩍다는 뜻을 담아 침묵하자, 숲지기는 근방의 지 형이며 주민들의 목격담 따위를 횡 설수설 늘어놓았다.
삭풍이 불어닥치는 달밤, 내가 열 댓 기의 기병들을 데리고 숲을 뒤지 고 있는 건 식사가 끝난 뒤 게덴문 츠의 대관이 올린 보고 때문이었다.
대관이 늘어놓은 이야기를 대충 요 약하자면, 최근 고을 동쪽의 우거진 숲에서 사람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열흘간 사라진 것이 약초꾼 하나에 숯장이 삼부자에 사냥꾼 형 제까지 총 여섯이라나. 영문 모를 일에 대관은 고을의 경비병 일곱을 보내어 숲을 뒤지도록 했는데, 이들 마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도시 출신의 출세욕 넘치는 관료가 ‘이까짓 일’로 오랜만에 방문한 영 주를 귀찮게 하는 게 이상하다 싶었 는데, 알고 보니 테오도라 공녀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게덴문츠의 소성당에 방문한 테오 도라는 사제에게 조촐한 정찬을 대 접받은 뒤 함께 예배를 올렸다. 그 러는 와중 서럽게 우는 노파를 발견 했는데, 그게 바로 숲에서 실종되었 다는 약초꾼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약자에 대한 봉사를 의무이자 즐거 움으로 여기는 성기사와 절실히 도 움을 바라는 노파가 만났다. 더 무 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나.
휘황한 판금갑옷, ‘순백’을 걸친 테 오도라가 무슨 일이냐 묻자 사라진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던 노파는 제가 아는 모든 이 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길고 두서없는 이야기였지만 테오 도라는 늘 그렇듯 귀를 기울여 주었 고, 눈치만 보던 다른 실종자들의 가족, 친구, 애인 역시 용기를 얻어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대관은 소성당에서의 촌극을 전해 듣자마자 내게 달려와 실종 사건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제 고을의 문 제가 외부인의 입을 통해 상관의 귀 에 들어가기 전에 대관 자신이 직접 말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거겠 지. 조만간 경비병 열댓을 동원하고 용병도 비슷한 수를 고용해 수색에 나설 계획이니, 부디 심려치 마시라 는 말은 덤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그냥 넘어가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영주로서 영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 다는 거야 둘째치고, 딱 봐도 경험 치 냄새가 나잖아. 칼날만 전쟁 이 후 줄곧 경험치 기근에 시달려온 나 다. 이런 기회를 지나칠 수는 없지.
“조심하셔야 합니다.”
키 큰 나무들이 드리운 마른 그림 자 사이로 달빛이 스민다. 그 아래 창백해진 얼굴을 드러낸 숲지기는 소곤대는 목소리로 나와 란델에게 경고했다.
“숲에 도사리고 있는 게 언제나 인 간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굶주린 트 롤일 수도 있고, 밴시나 드라우그 같은 사악한 존재들일 수도 있지 요.”
“퍽이나.”
드라우그까진 바라지도 않고, 숲 트롤만 나타나 줘도 고마울 지경이 다.
45레벨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 치가 240만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트롤이 주는 4200 경험치도 쥐꼬리 만 한 수준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 만 노상강도 잡아 죽이며 15씩 쌓 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심 기대 감을 돋웠지만, 이내 쯧 혀를 차고 말았다.
“냄새부터가 트롤이나 언데드는 아 니구만.”
어지간한 야생동물보다도 뛰어난 감각은, 숲지기가 안내하는 목표지 점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급격한 신진대사를 바탕으로 비현 실적인 재생능력을 자랑하는 트롤은 상상 이상으로 고약한 체취를 흘리 고 다닌다. 언데드는 움직이는 시체 인 만큼 독한 시취를 풍기고.
하지만 지금 내 코로 흘러들어오는 냄새는 ‘적당한’ 구린내에 지나지 않았다. 한 보름쯤 씻지 않은 부랑 자가 풍길 법한 냄새라고 할까……. 거기에 나무 타는 냄새와 죽 끓는 냄새, 그리고 은은한 쇠비린내가 곁 들여졌다.
찐득한 쇠비린내, 그러니까, 혈향은 개중 가장 희미하고 옅었다. 그러나 내 코의 점막은 그 미세한 혈액 입 자마저 게걸스레 빨아들였다.
난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의 피다. 게덴문츠에 서 실종되었다는 약초꾼이나 숯장이 삼부자, 사냥꾼 형제 중 하나가 남 긴 냄새겠지.
흥분한 바이콘의 목덜미를 쓸어 진 정시키며 접근을 이어갔다. 풍부한 냄새 다음으로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거진 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가장 뒤를 이 었다.
“일제히 들이칩니까?”
“됐어. 도망가는 놈들이나 잡아.”
“예, 각하.”
어떤 놈들인지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전이나 준 비가 필요한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팔찌의 형태로 손목에 매달려 있는 흐룬팅 을 툭툭 두드려보았다. 역시나 아무 런 반응도 없었으므로, 별수 없이 안장에서 ‘성자의 파멸’을 뽑아 들 었다.
스릉.
어쩐지 아찔한 기운이 느껴지는 칼 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밝은 달빛 덕에 검신에 새겨진 문자가 희미하 게 번뜩였다.
‘성자의 파멸’은 어지간한 양손검 보다도 더 길고 무거운 검이다. 덩 치가 유달리 큰 편인 나조차도 허리 에 차고 다니기에는 조금 거추장스 러울 지경이니, 말 다했지.
다만 무게중심이 잘 잡힌 물건이라 한 손으로 다뤄도 전혀 문제가 없었 다. 6킬로를 상회하는 무식한 중량 도 거인의 수준에 다다른 힘으로 쥐 니 기분 좋은 묵직함으로 느껴질 뿐 이었고.
칼자루를 고쳐 쥐며 고삐를 치자, 두 뿔 마수가 땅을 박찼다.
크홍-!
어두운 숲의 풍경이 휙 하고 뒤로 물러난다. 사나운 투레질을 흘린 바
이콘이 고작 몇 번의 달음박질로 30미터도 넘는 거리를 지워버린 것 이다. 덕분에 나는 눈 깜짝할 새 자 그만 공터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오래전에 불탄 것으로 보이는 창 고. 그 앞에 차려진 야영지. 수레와 짐말. 무장한 사내 여덟.
역시나 평범한 도적들이었다. 허름 한 차림새가 대다수인 가운데, 사슬 갑옷과 쇠투구 몇 개가 눈에 띈다. 탈영병이 얼마쯤 섞인 모양이다. 공터에 들어서 이러한 지각과 인식 이 이루어지기까지는 1초도 채 걸리 지 않았고, 모닥불에 둘러 앉은 놈 들은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내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맹렬한 속도를 살린 바이콘이 그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콰직!
황소보다도 거대한 마수는 가슴팍 과 앞발로 도적 셋을 짓뭉개버렸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막 비명을 지르 려던 놈의 머리통을 한입에 물어뜯 었다.
“흐으- 흐아아악!”
“스, 습격이다! 습겨억!”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해버린 넷을 대신해, 나머지 놈들이 괴성을 질러 댔다.
세 놈이 펄쩍 일어서다가 무릎이 채 끝까지 펴지기도 전에 도로 나자 빠졌다. 둘은 목이 잘렸고, 하나는 눈썹 윗부분이 깔끔하게 날아간 채 였다.
하늘로 치솟았던 투구 쓴 머리통 둘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기우뚱 자빠진 시체들이 피와 허여 멀건 뇌수를 쏟아냈다.
“후욱, 그흐으어.” 방금까지 함께 잡담을 나누던 패거 리들이 눈앞에서 시체가 되어버린 모습에, 유일한 생존자는 완전히 얼 이 빠져버린 눈치였다. 놈은 피에 물들어가는 칼날을 올려다보며 괴상 한 바람 소리를 내었다.
“씨팔, 뭐야! 뭔 소란이야!”
“습격이라잖아! 나가!”
“움직여, 움직여! 올라가라고, 이 등신 새끼들아!”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었군.
불탄 창고의 잔해 사이에서 도적들 이 샘솟듯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숨겨져 있었 던 모양.
“사, 살려-”
바이콘의 발치에서 벌벌 떨어대는 놈에게 중검을 내리꽂았다. 길고 두 꺼운 칼날이 빗장뼈를 박살 내며 파 고들자 도적의 눈깔이 뒤집혔다.
츠츠츠.
시체에서 뽑혀 나올 무렵, 성자의 파멸은 온 검신이 검붉은 막에 뒤덮 인 채였다. 여덟 장한이 뿜어낸 피 는 여전히 풍부해서, 모닥불 곁에 자그마한 개천이 흐를 지경이었다.
시이이 이이—
검붉은 개천이 허공으로 역류했다. 피의 기류는 바이콘의 몸을 휘감듯 흘러올라 내 왼손 위에서 회오리쳤 다. 강렬한 와류-‘피바람’은 형체를 갖춘 직후 쏘아져 지하에서 튀어나 온 도적들을 덮쳐갔다.
씨이잇!
경쾌한 파공음이 비명과 어우러졌 다. 두꺼운 누비옷을 입은 자도, 헐 벗은 자도, 사슬갑옷을 걸친 자도-강렬한 마력이 담긴 와류에 부드럽 게 갈리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덕분에 열여섯을 처치하고 난 뒤에 도 지하로 향하는 길에는 장애물이 없다시피 했다. 대부분이 피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고, 쇠고리가 엉겨 붙 은 살덩이나 가죽 부츠를 신은 발 몇 개가 굴러다닐 뿐이었다.
“예상보다 규모가 크네.”
그때, 골만이 기병 둘과 함께 공터 에 들어섰다. 녀석은 투레질하는 말 을 달래며 도적들의 야영지를 훑어 보았다.
“타지에서 온 놈들인가 봐요.”
“알아봐야지.”
“어떻게요? 저민 고깃덩이랑 대화 하는 방법이라도 깨우치셨어요?”
내가 픽 웃기만 하자, 골만은 한숨 을 쉬더니 숲을 향해 고함쳤다.
“란델 소령님! 포위망은 필요 없으 니 와서 수습이나 도와주세요!”
그는 귀를 기울여 대답을 듣더니, 날 돌아보며 투덜거림을 이어갔다.
“굳이 직접 나서시더니 아주 난장 판을 벌이셨네. 이래서야 게덴문츠 의 무고한 영민들이 이 중에 섞여 있었대도 부인할 재간이 없겠어요.”
“없었어.”
“어떻게 아세요, 그걸?”
“딱 보면 알지. 대충 봐도 도적 아 니면 탈영병들인데.”
“물론 나리야 다르시겠지만, 사람 을 이렇게 곱게 갈아두면 도적인지 농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거든요. 지긋지긋한 헛소문이 생기기도 딱 좋고요.”
“그만 징징거리고 그쪽 구멍이나 막아.”
“구멍이요?”
골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가 턱 짓한 방향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이 내 불탄 잔해 사이에서 널빤지에 덮 인 계단을 발견하고 혀를 내둘렀다.
“이건 또 뭐야……. 준비가 꽤 철 저한 놈들이었네요.”
“준비는 무슨, 그냥 운 좋게 괜찮 은 소굴을 발견한 거지. 그 외에도 더 있는 것 같으니까 잘 막고 있 어.”
“나리는요?”
“심문하러 가야지.”
골만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2년 사이 키가 한 뼘하고도 반이나 큰 골만이었지만, 송아지를 닮은 눈은 지금도 영락없이 소년의 것이었다.
“남은 놈•이 있군요?”
“어.”
난 바이콘에서 내린 다음 안장에 성자의 파멸을 갈무리한 뒤 도적들 이 뛰쳐나왔던 계단으로 향했다. 빈 손으로 걸음을 옮기는 나를 보고 골 만이 의례적인 말을 던졌다.
“같이 들어가시지.”
“됐어.”
지하의 공기에 발을 들이자, 좁은 공간을 타고 퍼지는 기감을 통해 숨 죽인 도적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망이나 봐. 느긋하게 다녀올 테 니.”
“예, 각하.”
부하들을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가 며, 난 차분히 계산을 해보았다.
기척을 보아하니 열 명도 안 되겠 군. 개중 한둘은 살려야 할 테니, 끽해야 일고여덟 명이 한계인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긍 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지하의 어둠 속에서, 그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으니까. 이런 환경이라면 높 은 질의 만족감으로 적은 수를 갈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첫 사냥감을 향해 걸 음을 옮겼다.
지하창고는 끽해야 농구장만 한 크 기였지만, 탐색이 완전히 끝나기까 지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