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Noble RAW novel - Chapter (279)
유엔의 관리자(본편완결)
아우렐리아 연방에서 개발한 ‘보라매’ 전투기가 땅에서 둥실 떠올랐다.
독특하게도 3발 엔진을 가지고 있는 보라매는 가운데의 엔진이 위아래로 움직여 수직이착륙과 호버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며, 최고 속도는 마하 2.5에 달한다.
무엇보다 이 전투기에서 극히 난해한 고기동 조종을 가능하게 하는 건 BCI였다.
1973년에 미국 MIT에 의해 BCI가 처음 개발된 이래 바이오 컴퓨터 연구는 혼란에 빠진 미국에서 흘러나와 아우렐리아 과학자들에 의해 결실을 맺었고, 보라매의 성능을 100% 끌어낸다는 명목으로 세계 최초의 4진법 컴퓨터가 항법용으로 장착되었다.
물론 이 항법 시스템도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문자 그대로 따끈따끈한 기체였고, 생산량도 몇 기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연방정부가 전략핵탄두를 장착한 보라매의 출격을 결심한 것은 그만큼 현 상황이 중대하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병기들이 움직였다.
바다 위의 군함들은 핵공격에 대비해 분산한 상태로 대공 레이더에 집중했다. 함대공 미사일들이 발사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바닷속의 핵잠수함들은 발사 심도에 위치한 채 통신 부이에 귀를 기울였고, 각지의 ICBM 사일로들은 개방되어 핵미사일 발사 준비를 진행했다.
전쟁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지상만이 아니었다.
우주 공간에서 우주왕복선들과 군사 위성들의 오퍼레이터들도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달 기지에 있는 우주비행사들에게 돌격소총이 지급되었다. 유사시 우주 공간에서 교전이 벌어졌을 때 우주복을 입고도 발포할 수 있도록 방아쇠울이 제거되고 적외선 레이저 조준장비 등이 장착되는 등의 개조를 받은 장비들이었다.
우주왕복선들은 장착한 미사일의 신관 세팅을 변경했다. 대기가 없는 관계로 지구상에서처럼 폭풍만으로 타겟을 쓸어버릴 수는 없지만 유도 능력이 있는 미사일들은 할당된 표적들을 파괴할 능력이 있었다. 지상에 있을 우주 관제소에서는 위성을 경유해 공격 타겟을 지정해주었다.
대치가 오래 지속되면서 우주왕복선의 파괴를 대비해 우주복을 입은 채 대기하고 있던 승무원들 대부분은 성인용 기저귀에 대소변 중 최소 하나, 내지는 둘 모두를 지린 상태였지만 거기에 찝찝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되려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을 적시기 위해 물의 재보급을 받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공격위성들은 장착되어 있는 병기들의 세팅을 변경했다. 입자가속기를 탑재한 입자 빔 위성이 언제 어디서 치솟을지 모르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그 포구를 이리저리 돌렸고, 지상공격용으로 제작된 핵무기를 장전한 궤도 폭격용 위성 역시 자신들에게 할당된 목표를 폭격하기 위해 우주의 어둠을 망토처럼 뒤집어쓰고 기동했다.
모든 아우렐리아군 통신부대는 연방의 국가기간방송과 특수 주파수들에 귀를 기울였다.
연방에서는 계속해서 특별 주파수로 발신되는, 무작위의 숫자를 불러주는 난수방송 소리와 국가기간방송 등이 동시에 끊길 경우 수도가 핵공격을 받아 소멸한 것으로 간주하여 즉각 보복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난수방송도 그 내용은 의미가 없고 소리가 들리는 것 자체만으로 수도의 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핵무기 담당자들은 모두가 바짝 긴장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모든 긴장상태는 의미가 없었다.
-전 부대에 알린다. 유엔에서의 협상이 타결되었다. 작전을 중단하고 원대복귀하라.
-현재 연방 소속의 모든 항공기, 군함, 지상부대, 핵무기 관제소, 기타 모든 장병들에게 알린다. 현재의 국제적 긴장상태는 유엔 본부에서 있었던 극적인 타협을 통해 해결된 상태다. 유사시를 대비해 출격한 모든 항공기는 비행장으로 귀환하며, 기존에 초계 작전 중이던 초계기들은 기존 임무를 계속하라.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일단 양측 모두가 합리적인 해결책에 합의했다.
그 사실만으로 달 궤도의 우주비행사부터 저 지구 표면 가장 깊은 곳의 벙커에 있던 이들까지,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독일 제국은 핵전쟁이라는 미지의 위협 앞에, 그리고 자신들에게 넘어온 공을 보고 고민하며-수많은 긴급통신과 핫라인 교신 등이 벌어진 끝에-마침내 시세를 인정했다.
“아우렐리아 정부가 소행성 채굴 시스템에 우리의 투자 허가를 약속하겠다면, 상임이사국 지위를 포기할 의사가 있소.”
선택은 포기였다. 인류 문명 전체의 붕괴라는 위기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결국 한 발 물러나는 게 모두가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유엔은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고,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개방된 사일로들의 문은 다시 닫혔으며, 항공기들도 다시 착륙했다.
그것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는 않았다.
단지 사소한 한 걸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걸음 있으니 위대한 도약도 있는 법이었다.
***
“축하드립니다. 의장님.”
“의장은 무슨.”
나는 손사래를 쳤다.
“세계인의 감정 쓰레기통이지.”
“의장직을 그렇게 말하시는 분은 쳐음 봤습니다.”
“그야 내가 초대 의장이니까?”
내가 무슨 ‘언리미티드 빠와!’를 외치면서 ‘비열한 배신으로 인해 저는 상처입었지만 제가 유엔을 위한 충정은 어느 때보다도 깊습니다! 유엔은 이제 세계제국으로 개편될 것입니다!’하고, 다른 의원들이 수군대면서 ‘이것이 민주주의의 종말이군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이런 거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좋은 조직이면 대통령아 하지 왜 나더러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아니, 사실 알 것 같기도 해.”
모양새 좋은 숙청.
이제 이런 직책을 받았으니, 군부와 정보국 쪽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잘됐어.”
나는 웃었다.
“잘된 일이고말고.”
“어째서입니까?”
“권력이란 건 말이다. 쥐는 건 쉽지만 몸 성히 놓는 건 훨씬 어려운 법이거든. 나도 권력이라는 작두 위에서 열심히 작두 타기 시작한 지가 몇 년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겠냐.”
물론 의장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할 생각이다.
예컨대 이름만 바뀐 저 김씨왕조에 대한 국제재재라든가.
하지만 의장직도 임기가 있으니, 임기가 끝나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다.
그 뒤에는?
‘그 뒤에는 정말, 진짜로 편히 쉬어야지, 원로 대접이나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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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엔 의장이라는 직책이 그리 형편 좋은 건 아니었다.
당장 쏟아져들어오는 업무가 수두룩했지만, 이미 수많은 업무를 처리한 짬밥이 있는 내 입장에서는 쳐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업무들이었다.
“미주대륙에 대한 재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에 압력을 넣어, 그리고 미합중국에 분명히 전달해, 그쪽이 신정정치를 하는 건 상관없는데 인권 침해가 문제이니 재재를 풀고 싶다면 인권 문제부터 어떻게 하라고.”
현재 미국의 정치체제는 에끌레시아키(Ecclesiarchy)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게 뭐랄까, 우리말로는 적절한 번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 그리스어로 교회를 의미하는 에끌레시와 통치를 의미하는 아크의 합성어이니 교회 정치 정도로 직역할 수는 있겠는데,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유럽권에서는 분명 존재하는 단어라더라. 우리한테 적절한 번역이 존재하지 않을 뿐.
이게 단순한 신정정치가 아니다. 일반적인 신정정치, 그러니까 테오크라시(theocracy : 직역하자면 신의 통치)는 야야톨라든 교황이든 칼리파 아니면 이집트의 파라오든 간에 대표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에끌라시아키는 교황이나 칼리파 같은 일인 대표를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소속 성직자들이 일종의 평의회를 통해 민주적인 절차로 합의를 이끌어내어 통치한다. 테오크라시가 자기들의 대표자를 신의 대리인으로 본다면 에끌라시아키는 신의 대리자 같은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었다.
그래서 형식상 국가원수에 ‘예수 그리스도’를 올려놓고 실질적 통치는 평의회가 하는 거다. 무슨 그리스도가 진짜 재림해서 통치하는 것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상징일 뿐이다.
하긴 원래 김씨 왕조도 이미 뒈진 1대 돼지를 계속 국가원수로 섬긴다는 거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국가원수로 섬긴다는 게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저래서야 그냥 초거대 이란이잖아.’
팔레비 왕조면 낫지 저건 이슬람 혁명 후의 이란이다.
위쪽은 초거대 이란 이슬람 공화국, 중간은 초대형 북괴.
남쪽의 빨갱이들만이라도 제정신이었으면 모를까, 이 새끼들도 국가 통합은 이뤄내었으되 이념에 기반한 경제 운영을 시도하다가 화려한 대폭발을 일으키며 눈 안 내리는 나이지리아의 지위를 획득했다. 조져진 경제는 역시 소련의 전통이구나. 그러니 남미소련도 경제를 조지지.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남쪽에는 눈 내리긴 한다.
“구대륙이든, 신대륙이든 간에.”
나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결국 끝없는 전쟁이 운명지어진 셈이야.”
그리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낸 내게 던져진 사명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라는 임무이니.
‘그래, 맞다.’
완벽한 결자해지.
‘어설픈 판단이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면, 그 원인을 제공한 이가 그 지옥을 메워야지.’
성공할 수 없더라도.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내야만 한다.
그게 내가 받아야 할 마땅한 형기일 테니까.
***
나는 조용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의장님.”
귓속의 무전기가 울리자, 나는 나직이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게나.”
나는 호수의 잔잔한 표면을 보았다.
떠오르는 해가 호수의 표면을 비춰 찬란하게 타오르게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는 사람은커녕 아무런 흔적도 없어 괴리감, 그걸 넘어 기이함과 공허감, 묘한 공포감마저 들 정도로 말끔했다.
편대를 이루어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조차 그저 무정한 그림자로 이 배경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지구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별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존재는 호수에서 하늘을 향해 떠오르며 그 빛을 모든 사물에게 선사했고, 그 빛에 물든 호수는 호박빛으로 찬란히 빛나며 찰랑거렸다.
찬란하게 불타오르는 여명은 모든 존재에게 그 희망찬 빛을 선사하며 보이는 모든 것을 여명의 비단으로 감쌌다.
밤은 낮에 밀려 저 서편으로 도망쳤고, 어둠은 빛에 밀려났으며, 달은 태양의 권세에 빛을 잃었다.
그 호수에서 작은 조각배가 노를 저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배 위에 서 있는 한 실루엣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상대 역시 미소짓고 있으리라.
마침내 파문 하나 없던 호숫가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며 배가 도달했을 때, 나는 보트에서 내리는 이에게 말했다.
“늦었네.”
“그러게.”
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어.”
태양이 떠오른다.
밤의 여신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거두어들인 하늘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을 약속하듯이.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