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23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23화
123 유럽과 미국 내분/조지 부시 취임식에서 생긴 일
포르투갈 정치인들만 국제 정치적으로 이해타산을 따져야 하기에 과거의 약탈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며칠간 인터넷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대표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번 새해는 앙골라에서 보내기로 한 니콜라이와 샤샤는 모스크바 본사 일리야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결과라면…?”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침략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44.8%가요.
포르투갈이 앙골라를 480년간 약탈했다는 사실에도, 포르투갈 국민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사과하자.’라는 여론도 꽤 있었지만.
“그게 뭐가 어때서? 그땐 그런 시대였잖아.”
“맞아. 그때의 국제적인 분위기를 알아야지. 우리만 그랬나?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델란드와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는데.”
“일본도 같았지. 몽골은 유럽 국가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했었고.”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면 뭐 어쩌자는 건데?”
이렇게 포르투갈의 만행을 정당화했기에 그들은 조국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 생산기반 시설을 구축해 준 걸 고맙게 여겨야 한다.’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포르투갈이 아니었다면 앙골라 같은 나라들은 아직도 원시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니콜라이는 기자 시절 때의 일을 떠올렸다.
‘일본 국민들도 비슷했었지.’
참 어이없는 일들이 많았었다.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 반응도 있나요?”
-네, 많습니다.
일리야가 말해 준 곳을 찾아서 띄워보니 역시나였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뭐 오래전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힘이 없으면 당하는 거지. 억울하면 국방력을 키우든가.”
“선사시대 때부터 ‘약육강식’이었는데 뭘 그래.”
“앙골라가 안 됐긴 해도 이건 어쩔 수 없음. 포르투갈이 그만큼 투자했으니 그나마 지금만큼이라도 살지.”
“무식한 것들은 두들겨 패야지. 킥킥.”
“일본인으로서 포르투갈 입장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감.”
한국인들은 ‘일본 정치인은 미워해도 일본 국민은 그들과는 다르니 미워하지 말자.’라고 했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도 정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일본 서점엔 혐한 서적을 따로 전시하는 코너가 있었고, 그런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TV와 인터넷방송에서는 한국을 까 내리는 영상들이 쏟아졌었다.
한국인들을 조센징이라 비하하며 무시하고 교포들은 일본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말로는 일본을 욕했지만, 이 정도까지 일본을 적대하며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건 살인하고 도둑질한 놈이 피해자를 욕하고 비하한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은 20여 년 전이니 더하겠지.’
-대표님. 침략을 당했던 나라 국민들의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반발심이 높게 나왔습니다.
“미친. 포르투갈인들은 살인과 도둑질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면 괜찮다는 거잖아? 배상해라! 개인과 개인으로 쳐도 이런 일을 저지르면 배상해야 하잖아!”
“그러게. 수백 년간을 그렇게 해 놓고도 기껏 그거밖에 못 살아? 돈 좀 빌려줘?”
“러시아한테 한번 덤벼 봐. 아주 박살을 내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 줄 테니까.”
이후로도 많은 사람이 포르투갈이 저지른 침략과 약탈행위를 욕했다.
-특히 대만이 흥미롭게 나왔습니다.
대만에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자들이 많았다.
원 역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는데.
리덩후이(1923~2020)는 대만의 7~9대 총리를 역임한 인물로 대만 최초의 민선 총통이면서 최초의 본성인(대만 현지 출신) 총리였다.
그는 일본 방문 때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논란은 ‘중국과 한국이 억지로 만들어 낸 문제’라는 주장을 폈다.
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에서도 공개적으로 일본 편을 들기도 했다.
심지어 2015년의 한 인터뷰에서는 ‘70년 전에는 일본인으로서 조국(일본 제국)을 위해 싸웠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만인들은 더욱 한심한 행동을 한다.
일본의 쇼와 덴노(1901~1989).
그는 1923년 황태자 신분으로 당시 식민지였던 대만을 방문했다.
열렬한 환영 속에 12일 동안 기차로 대만 전역을 누비면서 시찰하였다.
그러나 당시 같은 식민지였던 조선 땅은 암살 위험성 등으로 끝내 방문하지 못했다.
똑같이 일본의 지배를 받은 한국과 대만인데 도대체 왜 이런 현격한 차이가 생긴 것일까?
대만인 60%가 ‘일본을 가장 좋아한다’라고 답했던 걸 떠올리니 니콜라이는 한숨이 나왔다.
‘러시아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는 한국이었지.’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이 있기 전까진 확실히 그랬었다.
-독일인들의 조사 결과에서는 과거를 반성한다는 쪽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습니다.
이런 결과는 역사를 왜 제대로 배워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조사 결과를 보면 포르투갈인들은 반성하는 쪽보다는 정당화하는 쪽의 여론이 조금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관한 글들에는 앙골라 주민들의 생활상이 담긴 사진을 모두 올려 두세요. 사진은 모레까지 보낼 테니까요.”
-네. 모든 인터넷 플랫폼에 올려 두겠습니다.
앙골라 주민들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흙벽돌로 지은 집에서 사는 사진.
아이들이 10여 개의 붉은 벽돌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사진.
뭘 넣고 만들었는지도 모를 희멀건 죽 같은 것을 가족 일곱 명이 모여서 먹는 사진.
4km나 떨어진 웅덩이에서 흙탕물을 길어 오는 사진.
굶주림에 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아이와 힘없이 헤 벌린 입속으로 파리가 드나드는 사진 등.
이런 비참함이 담긴 사진들과 짧은 영상까지 죄다 올렸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의 TV 방송에서는 한국의 ‘100분 토론’과 같은 토론이 열리기도 하면서 국민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사태가 점점 커지자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내용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얀덱스는 블랙홀의 자회사고 구글과 야후의 대주주가 블랙홀이라….”
“그래서 안 된다는 말이야?”
대통령의 커진 목소리에 비서실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을 삭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당하고만 있자는 말인가?”
“우리도 맞불을 놓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맞불?”
“네. 러시아도 침략 행위를 했으니 러시아에 대한 자료를 퍼트리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 러시아 내용만 퍼트리면 우리가 한 일이라는 게 표가 나니까, 유럽 국가들의 내용을 섞어서 퍼트리면 우리 포르투갈에 관한 얘기는 주목을 덜 받게 될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바로 진행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며칠 후.
포르투갈 정부는 ‘맞불 작전’이라 생각했으나 이건 ‘물귀신 작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서는 유럽 국가들의 이미지가 점점 나쁜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방송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침략을 당했던 나라들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다.
이런 흐름을 보며 니콜라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우와! 진짜 딱 네 말대로 되고 있네.”
니콜라이가 새로 준비한 후속타는 이거였다.
미국과 유럽의 내분.
거대한 나라일수록 내분으로 인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한다고 미국과 유럽이 무너질 일은 없겠지만 국민들은 분열될 터.
이건 니콜라이가 기자 시절에 알게 된 방법 중 하나였다.
한국 정치인들은 ‘삼김시대’ 때는 ‘지역감정’의 갈등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표를 갈랐다.
시대가 지나 그게 통하지 않자 시도한 방법은….
1. 이념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2. 세대갈등, 남녀갈등.
1번은 과거부터 시도하면서 쭉 이어진 갈등이지만, 2번은 정치인들이 새롭게 만들어 낸 갈등이었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국민들을 갈라 놓아야지 정치하기가 편하다는 것을.
니콜라이도 이걸 미국과 유럽에 적절히 써먹었다.
“이게 정말 통하는구나.”
“거짓말도 계속 들으면 세뇌가 되어서 정말처럼 생각하게 되거든.”
학창 시절 한곳으로 치우친 역사관을 가진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은 학생은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난다.
물론 100%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가정에서도 비슷하다.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언론은 이런 점들을 시기적절하게 이용했다.
계속 비슷한 내용을 내보내면 국민들은 그 내용이 거짓임에도 믿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걸 크게 키우면 세계의 언론도 같다.
미국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우방국의 방송에서는 그걸 그대로 내보내면 그 나라 국민들은 그 내용들이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앙골라 입장을 계속 내보내면 결국 반대의 입장도 나올 테니 그들을 분열시켜 싸우게 하는 것.
“후속타가 너무 센 거 같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이런 내용들이 인터넷과 언론으로 계속해서 나오게 되자 니콜라이가 예상한 것처럼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점차 반으로 갈라서는 움직임을 보였다.
부시 당선자도 이런 기류를 느끼고 미국 국민들까지 선동될까 싶어 긴장하기 시작했다.
“취임식이 다가오는데 이런 조짐은 좋지 않은데 말이야. 니콜라이 대표가 판을 너무 키우는군.”
“유럽은 역사적으로 전쟁이 잦았던 터라 앙금이 깊이 남아 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입니다.”
부시도 비서실장과 같은 마음이었다.
“앙골라 혼자서 이런 일을 하는 건 꿈도 못 꿨겠지만, 러시아와 블랙홀이 개입하게 되니 세계가 요동친단 말이야.”
“러시아가 유럽 전체를 걸고넘어지려고 하진 않았을 텐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부시도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포르투갈 정부에서 유럽 전체를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지금으로선 확답할 수 없으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 같진 않습니다.”
“흐음. 그럴 리야 없겠지만 포르투갈이 배상하게 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배상을 해 줘야 할 텐데. 그들 속이 여간 쓰리지 않겠어.”
“이번 일을 일으킨 포르투갈에 압력을 가할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선에서 배상금이 아니라 다른 성격으로 협상을 하라고 말이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면 우린 우리 국민들을 일단 잘 단속하고 유럽 국가들이 서로 싸우기를 바라면 되는 건가?”
부시는 오직 미국의 이익과 평화만을 원했다.
그 어떤 나라라도 미국에 위해를 가하고 반기를 들면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의 정치적인 성향은 이처럼 뚜렷했기에 유럽 국가들 간의 다툼은 한편으로 미국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 * *
세계가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던 중 1월 20일.
조지 부시의 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는 자하르 대통령, 앙골라 대통령과 니콜라이도 참석했다.
니콜라이는 앙골라 대통령과 함께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앙골라 대통령께서 배상 문제를 논의하셨으면….”
“크흐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유럽 정상들이 모인 자리로 움직였다.
니콜라이는 마침 잘됐다 싶어 그의 뒤를 따라붙으며 크게 외쳤다.
“어디 가십니까? 배상 문제를 논의하셔야죠!”
니콜라이의 외침에 유럽 정상들은 포르투갈 대통령을 피해 빠르게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