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필라도르 왕국의 수도, 베르티에서 아리아에게 와이번의 날갯비늘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암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리아와 세트에게 애써 밝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힘을 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다섯 명이서 드래곤 산맥으로 향한다.
이 대명제 자체가 지극히 잘못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민이 됐었다.
‘옥좌에 오른 이들 다섯 명이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 다섯 명이 드래곤 산맥을 정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그렇다고 군대를 이끌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드래곤 산맥 내에 자생하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식물들과 환경, 그리고 몬스터들은 이방의 군대에게 결코 자신들의 속살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제길,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응?’
바로 그때.
가슴 품 안에 고이고이 모셔둔 단도(短刀)에 생각이 미쳤다.
과거, 하이 오크로 변태 중이었던 하탄과의 싸움에서.
자신에게 협상을 제안하여 물러갈 기회를 주며 내밀었던 물건이었다.
머지않은 미래, 드래곤 산맥 오크들의 왕이 될 것이라 자신했던 하탄은 차후 어떤 부탁이든지 한 번은 도와줄 것을 약속했었다.
왜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는 몰라도, 아니 알 것 같았다.
바로 여기에 길이 보였으니까.
‘그래, 바로 이거야!’
다섯 명이라는 소수로 드래곤 산맥을 뒷산 오르듯 뒤지고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문의 군대를 이끌고 무식하게 쳐들어갔다가는 백작가의 군대가 산맥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릴 터였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서, 이미 산맥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조력을 구하면 될 일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것도, 산맥의 많은 곳을 영토로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터.
‘거기다가 인구까지 많아.’
엘프들과 충돌이 있었던 2년 전과 비교한다면, 그리고 영토가 그때보다 더욱 넓어진 지금이라면.
하탄에게 힘을 빌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라이칸스로프들도 바우칼라크에게 내린 가르침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게 호의적이니, 그들까지 끌어들인다면 더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하탄에게 그 검의 기회를 쓰겠다는 거야?”
살라딘이 조금 진지하게 물어왔다.
“곤란하지 않아? 그 검은 나중에 계획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지 않나?”
원래 그리던 계획대로라면, 오크들은 좀 더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는 것이 필요했다.
살라딘은 이번 사안이, 그 계획을 수정해야 할 만큼 큰 문제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선택지가 없어. 어차피 이번 일은 무조건 해결해야 해. 이 일이 실패하면, 차후 대전에서 연맹이 마법적 우위에 설 수 있게 해준 프란 왕국이 멸망하는 걸 구경만 하게 될 테니까.”
“……!!”
내 말의 무게 때문인지, 살라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해결이 안 된다면, 어차피 뒤는 없단 말이군.”
“바로 그렇지.”
“…하.”
드러누웠던 몸을 어느새 모두 일으킨 살라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길. 네놈이랑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달관한 표정은 맨 처음 드래곤 산맥에 가야 한다고 말했던 때와 거의 동급의 신세 한탄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처음과 같이 눈가가 죽어 있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뭐. 어떻게 시작할 건데?”
베스킨 경 역시 처음과 달리 반대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분간 선상 훈련은 라빈스가 맡도록 해야겠군요.”
* * *
드래곤 산맥의 동남부.
산맥의 흉험한 소문과 다르게 평화로이 노을을 맞이하는 한 마을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대륙의 여러 평범한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
이 마을이 보통의 마을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마을의 위치가 드래곤 산맥의 내부라는 것.
그리고 마을에 거주하는 이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콰작!
도끼가 아닌 손톱으로 장작을 팬 라이칸스로프, 바우칼라크가 다른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크르륵. 오늘은 이게 끝인가?”
몇 년 전, 인간 세계에 납치되어 노예시장에서 유통되는 굴욕을 맛본 이후.
바우칼라크는 방패가로 향해 블리자드 기사단과 함께 세상에 대한 견문과 무력을 쌓았다.
그리고 한 오크와 인간의 막고라를 보고 크나큰 감명을 받은 그는, 부족으로 돌아와 누구보다 용감히 침입자들과 싸워 당당한 전사로 인정받았다.
“크륵. 하탄, 그 괴물이 동북부로 뻗어 나간 덕에 편하긴 하다만….”
원래 바우칼라크가 힘을 쌓은 이유는 산맥의 신성(新星), 하탄과의 전투를 위함이었다.
하지만 하탄은 막고라 이후, 제롬과 나눈 모종의 대화를 통해 어째서인지 북부로 영토를 넓히는 데 집중했고.
자연스럽게 남부에 있는 라이칸스로프의 마을에는, 하탄의 무지막지한 확장 정책 때문에 영역에서 밀려난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침입해왔다.
‘처음에는 꽤나 바빴지. 매일같이 싸워 댔으니까.’
자칫하면 죽을 만큼 거친 싸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덕에 부족으로 돌아온 자신이 수월하게 전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2년이 흐르자.
오크들의 영토 또한 상당 부분 안정되었고, 더 이상 라이칸스로프들의 영역까지 침입해오는 몬스터들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 탓에, 라이칸스로프의 마을은 유례없는 평화를 향유하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바우칼라크가 전사로서 날카롭게 갈고닦았던 손톱은 장작 패는 도끼로 전락하고 말았다.
“크르르. 심심하다, 심심해. 그래도 반텐에 있을 때는 심심하지는 않았는데. 크르르.”
평화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바우칼라크는 이 상황에서 느끼는 무료함이 더 큰 탓에 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었다.
그때.
“크르르, 바우칼라크. 안에 있나?”
집 밖에서 자신을 찾는 소리에 바우칼라크의 귀가 자동으로 쫑긋하고 올라갔다.
“크르르. 있다, 오보르텐. 무슨 일이지?”
“크륵. 너를 찾아온 인간들이 있다, 바우칼라크. 방패가라고 하면 알 거라던데. 짐작 가는 게 있나?”
산맥을 벗어난 적이 없는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은 인간 세상의 물정을 전혀 모르니 자연스레 경력직인(?) 바우칼라크에게 물어보았고.
“!!”
바우칼라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패가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크르르. 지금 바로 가지.”
잘랐던 장작을 바닥에 대충 던져놓은 바우칼라크는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광장으로 곧장 달려갔다.
무언가, 이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여, 바우칼라크. 오랜만이다?”
“크르르. 별로 오랜만도 아니다. 얼마 전에 서신을 보냈지 않나.”
반가운 얼굴에 손을 흔들었지만, 바우칼라크는 덤덤하게 반응했다.
“직접 얼굴 본 건 오랜만이니까. 보자, 대충 2년 조금 더 됐나?”
2년 동안 보지 않았던 사이, 바우칼라크 역시도 당시보다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하탄이 영역을 확장하는 바람에 밀려온 몬스터들이랑 뼈 빠지게 열심히 싸웠다더니. 헛짓거리는 아니었나 보네.’
바우칼라크뿐만이 아니라,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의 힘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 모여 사는 아인족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가진 바 힘이 평범하지 않아.’
과연 드래곤 산맥.
이 산맥은 까도 까도 양파처럼 항상 더 많은 것이 튀어나왔다.
“크르르. 맞다, 2년 조금 더 됐다. 한데 제롬, 여기는 어쩐 일인가?”
바우칼라크가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라이칸스로프의 마을은 엘프들의 땅, 엘룬하임처럼 온갖 특산물들이 널린 곳이 아니다.
즉, 교역을 목적으로 왔을 리는 만무했다.
“아아, 다른 건 아니고. 바우칼라크, 요새 꽤나 심심하지?”
전해오는 서신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전투가 없는 산맥 생활은, 바우칼라크처럼 혈기 넘치는 라이칸스로프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테니까.
“…조금 무료하긴 하다. 크르르.”
역시나,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마 바우칼라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젊은 라이칸스로프들 또한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물고기들은 충분히 있고.’
이제, 떡밥만 뿌리면 심심함에 몸부림치는 물고기들이 벌 떼같이 몰려들 것이다.
“그럼 말이지, 바우칼라크.”
떡밥을 한 움큼 쥔 채.
“우리랑 같이 와이번 사냥해볼 생각 없어?”
물고기들을 향해 뿌리자.
“!!”
“!!”
마을에 찾아온 인간들이 신기했는지, 광장 곳곳에서 바우칼라크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이칸스로프들의 귀가 쫑긋하고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이건 뭐, 낚을 필요도 없네.’
라이칸스로프들의 모습을 보자, 영주성 내부 한편에 키우는 잉어 떼가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했다.
“크, 크르르! 와이번? 와이번을 사냥할 생각인가?”
바우칼라크뿐만 아니라,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의 눈에도 기이한 열망이 도는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무료함만으로 이런 열기를 뿜어낼 수는 없는 일.
‘역시나, 와이번이 공통의 적이구만.’
이 거대한 마경인 산맥에 굳이 ‘드래곤’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단지 드래곤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산맥 전체에서 용종(龍種)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다른 종족들에게도 용종은 꼴 보기 싫은 장애물이자 넘어야만 하는 산이라는 뜻이었다.
특히나 와이번은, 그 특유의 날램과 모여 사는 둥지의 특성으로 인해 지금껏 사냥을 하기만 했지, 당한 적은 거의 없는 몬스터.
한마디로, 모두의 눈 밖에 난 몬스터였단 뜻이었다.
“맞아. 우리들한테도 우리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그 도마뱀들을 잡아가야 하는데, 우리 힘만으로는 조금 역부족이라. 어때, 관심 있어?”
“크르르! 하겠다! 아마, 족장께서도 허락하실 거다!”
바우칼라크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크르르르르!! 와이번 사냥이다!!”
“크와아아아아앙!!”
주변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이칸스로프들은 이미 확정이라도 되었다는 듯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운데.’
이래서, 사람이나 몬스터나 원수를 만들지 말고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바우칼라크가 되물었다.
“크르르. 그럼 우리와 너희 인간들만으로 가는 것인가? 보아하니 너희도 소수 정예로 온 듯하다만. 우리 종족 또한 일당백의 전사들이지만, 크르르. 기본적으로 숫자에서 밀리면 와이번 사냥은 쉽지 않다.”
바우칼라크도 역시나 쪽수에서 밀릴 것을 걱정했는지, 살라딘이나 베스킨과 똑같은 의문점을 던졌고.
“그건 걱정하지 마. 이번 사냥의 열쇠는 우리가 아니니까.”
나는 반텐에서 했던 말을 고스란히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바우칼라크를 설득한 후, 그와 함께 이동한 곳은 라이칸스로프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족장이 거하는 움막이었다.
“허어, 와이번 사냥 말인가….”
젊은 시절의 혈기 대신, 세월의 흐름이 쌓인 현기가 담긴 목소리가 조용히 내 말을 곱씹었다.
날카롭고 흉포한 다른 라이칸스로프들과 달리, 거암(巨巖)과도 같은 단단하고 묵직한 기세를 풍기는 이.
보통의 라이칸스로프들보다 1.5배는 거대한 이자의 이름은 루갈.
라이칸스로프 마을을 책임지는 족장이었다.
“하긴… 지난 1년간은 전투다운 전투를 거의 해보지 못했지. 마을 놈들이 좀이 쑤셔 할 만해.”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던 루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하나, 바우칼라크를 구해준 인간이여.”
고개를 끄덕이던 루갈이 불현듯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물어왔다.
“그대의 제안처럼 와이번 사냥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 우리 일족의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루갈에게서 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하여 그대들의 필요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족의 피를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묻겠다.”
달의 축복을 받은, 늑대 일족의 왕이 나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루갈이 대가를 요구하자, 당황한 것은 바우칼라크였다.
“조, 족장! 신성한 달의 일족으로서 어찌 그런 장사치 같은 말을…!”
“넌 닥치거라!”
루갈은 바우칼라크의 외침에도 나와 마주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외쳤다.
“엘프들은 그대들과의 거래를 통해 인간들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오크들은 그대들과 맺은 불가침조약에 동북부로 마음껏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만 가만히 있는다면, 결국 산맥에서 도태될 뿐이다.”
지당한 말이었다.
‘역시 일족의 우두머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네.’
라이칸스로프들의 전투력은 여타 평범한 아인족들을 아득히 상회한다.
그런 만큼 이들은 기본적으로 오만하다. 다른 종족들을 한참이나 아래로 내려다볼 만큼 말이다.
오죽했으면, 인간들에게 붙잡혀갔던 바우칼라크조차 그런 성향이 남아 있으니. 이들의 기본적인 성격이 어떤지 능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말해보라, 어린 인간이여. 그대의 제안에 동참한다면, 그대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어떤 것을 제안할 생각인가?”
하지만 이 늙은 라이칸스로프는, 자신들의 일족에게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군.’
어차피 바우칼라크와의 서신을 통해 나누던 대화에서 느꼈던 부분이라, 이번 기회에 한 번쯤 조언해주려 했는데.
이쪽의 지도자가 알아서 인지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대화는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