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9)
제159화
삼도천(三途川).
죽을 때 건너간다는 천계와 마계, 그리고 중간계를 연결한다는 강의 이름이었다.
과거에 내가 죽었을 때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실제로는 삼도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과거로 돌아오는 바람에 죽은 걸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본의 아니게 삼도천의 유무를 다시 한번 확인할 뻔했다.
“그, 사제. 몸은 좀 괜찮아?”
“괜찮겠습니까.”
움찔!
“아주 무섭더군요, 그 기술. 베라스를 조지기 위해 만드신 기예라구요?”
“으, 응! 맞아, 그 녀석의 능력이랑은 상성이 좋지 않아서, 맞붙으려면 평범한 기술로는…!”
“그렇군요. 음, 그런 엄청난 기술로 하나뿐인 사제를 ‘조지려’ 하신 거군요. 잘 알았습니다.”
움찔! 움찔!
그리고 내게 그런 귀한(?) 경험을 시켜줄 뻔했던 장본인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니. 나야 사제가 그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지. 스승님도 긴가민가하셨다잖아.”
“긴가민가… 그렇군요. 카르마 님께서도 긴가민가하시는 상황인데, 백익께서는 문답무용으로 절 조지려 하신 거군요.”
움찔! 움찔! 움찔!
“카르마 님이 바람꽃을 통해 중재를 해주지 않으셨다면 전 분명 죽었겠지요. 으음, 생각만 해도 아주 소름이 돋습니다.”
“허허허, 애송아. 그 정도만 하거라.”
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과 눈을 떨던 람팡이 안타깝게 느껴졌는지 초췌한 인상의 카르마가 나를 제지했다.
퀭한 얼굴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머리가 풍성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노화로 인하여 초췌해진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
지금 이곳은 파티마의 뒷골목에 위치한, 람팡이 임시로 만들어둔 판잣집이었다.
어젯밤, 람팡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또다시 싸움이 시작됐었다.
한참을 싸우던 도중, 람팡이 ‘모종의’ 기술을 펼치자.
과연 하얀 날개. 옥좌에 올린 그 이름은 도박으로 딴 게 아니었다.
진짜로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카르마 님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분명히.
졸지에 사제를 찢어 죽일 뻔했으니, 저렇게 눈치 보는 것이 당연했다.
“나조차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테니, 람팡이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겠느냐.”
카르마의 말에 나와 람팡의 눈빛에 걱정이 맴돌았다.
그렇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카르마 님이 본인의 능력을 사용하여 중재에 나섰던 것이다.
“몸도 안 좋으신 분이 왜 또 무리를 하셨어요, 진짜.”
“흘흘, 덕분에 애꿎은 셋째가 안 죽고 끝났잖느냐.”
“…….”
람팡이 속상함을 토로했지만, 카르마 님의 말에 입이 쑥 들어갔다.
‘…그래. 죽을 뻔하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카르마 님의 그 상처는 또 뭐고요?”
대충 짐작은 갔지만,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뿌드드드득!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쩔쩔매던 람팡의 입에서 짐승과도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베라스, 그 개자식 때문에…!”
람팡이 울분을 토하려 하자 카르마가 손을 들어 올렸다.
“흘흘. 되었다, 람팡아. 내가 직접 설명하마. 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어째서인지 쓸쓸한 표정을 지은 카르마가, 이내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3년 전, 나의 이종의 힘 ‘강철’을 일깨워준 후 반텐을 떠난 카르마는 다음 도시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라스가 보낸 흑사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한 번만 찾아뵙길 원한다면서.
람팡까지 함께 보자 하여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찾아간 그곳에서, 베라스는 무릎을 꿇은 채 읍소하였다고 했다.
흑사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부디 그 뜻에 동참해 달라고 말이다.
카르마의 성정으로는 그 의견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베라스의 제안을 카르마가 단호히 거절하자, 돌변한 베라스는 카르마의 등 뒤를 기습하여 치명상을 입혔었다.
“그때 애송이,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구나. 베라스를 조심하라 했던 그 말이.”
대비를 티끌만큼이라도 하는 것과 완전한 무방비는 하늘과 땅 차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카르마 역시 베라스에게 위그드라실의 씨앗을 사용하여 추격을 불가능하게 만들 만큼 큰 상처를 입힌 채 도주했지만, 베라스가 치명상을 입은 카르마를 고이 놔줄 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카르마와 람팡은 베라스를 따르는 탁류의 흑사자들을 피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3년 동안이나.
‘…또, 역사가 바뀌었네.’
카르마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후, 나는 카르마에 대한 약간의 부채감을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카르마는 한참 더 반텐에 거주하며 약방을 운영한 채 나를 기다렸어야 한다.
그리고 베라스에게 카르마가 살해당하는 시점은 제국과의 전쟁이 임박할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 내가 카르마를 빠르게 찾아간 탓인지, 카르마는 반텐을 보다 이른 시간에 떠났고.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베라스를 만나 배신을 당하게 되었다.
안 맞아도 되는 칼침을 맞게 하여 약간의 채무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뭐, 결국 내가 해준 말 덕에 기습에도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았으니까.’
과정보다 중요한 것이 결과다.
결국 카르마와 람팡은 살아남았고, 이렇게 나와 마주치게 되었으니 그거면 된 것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베라스의 휘하에 있는 흑사자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카르마와 람팡을 노려올 것이 분명했다.
‘지난번에 베라스의 휘하가 나를 습격한 것도 그렇고… 탁류 놈들, 뭔가 제대로 꾸미고 있는 모양이네.’
나라고 과거의 일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단순히 베라스가 카르마와 람팡을 배신했다는 것만으로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카르마와 람팡을 처리한다면, 자신들의 대척점인 청류는 더 이상 탁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할 테니까.
어느새 이야기를 끝낸 카르마와 람팡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저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람팡이지만, 어젯밤 ‘그’ 기술을 사용한 람팡은 옥좌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강자였다.
이런 인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분명 내 계획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카르마는 또 어떤가. 흑사자들의 대부나 다름없는 인물인 청익이며, 대삼현의 한 명이기도 한 자다.
‘…나 참, 내가 뭐 하는 거람.’
피식!
나도 모르게 계산기를 굴리고 있는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카르마는 나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이종의 힘을 일깨워준 사람이다. 그것도 전생과 현생, 두 번에 걸쳐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카르마를 도울 이유는 충분했다.
“두 분,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야, 덕분에 살았…!”
계속 바라왔지만 지은 죄(?)가 있어 꺼내지 못했던 말을 이쪽에서 먼저 꺼내주니 옳다구나 하고 승낙하려던 람팡이었지만.
“안 된다.”
스승의 짧은 반대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검게 썩었다.
“아, 아니, 왜…. 스승님, 사제가 먼저 도와준다잖아요. 스승님 지금 안정적으로 치료받으셔야 한다니까요?”
람팡의 울 것 같은 표정에도 카르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제롬, 내 기억에 넌 분명 가문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종의 힘을 익혀 많이 강해졌다 하더라도, 군식구가 딸린다면 분명 가문에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겠지.”
단호함이 묻어나는 표정이다. 그래, 내가 아는 카르마라면 당연히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카르마 님. 저 역시 얻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
그렇기에,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만 한다.
“카르마 님이 뭘 생각하신다 하더라도 전 가문에서 그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군식구 한둘 정도로 제 입지가 바뀌지 않는다는 소리지요.”
“…….”
“게다가, 저 역시 베라스 측과는 갈등을 빚고 있는 몸입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게다가 람팡 님의 힘은 엄청나지요. 오히려 제가 동행을 요청드려도 모자란 상황이라는 거죠.”
“그, 그래? 잘됐네! 스승님, 사제도 저렇게 얘기하니까…!”
하지만 카르마의 표정은 한층 더 딱딱해졌다.
“…람팡을 이용할 셈이냐?”
“예, 이용할 겁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했다.
“다만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없으리라 약속드립니다. 저 역시, 맑은 물을 추구하는 흑사자이니까요.”
“…….”
카르마의 눈길을 피하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정 의심스럽고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국 내의 여정만이라도 함께하시지요. 저를 직접 보고 판단하시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치료는 하셔야 하잖습니까?”
내 말에 진정성을 느낀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람팡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을 이어가던 카르마의 고개가 결국 끄덕여졌다.
“…그래. 그럼 잘 부탁하마. 단, 약속하거라. 도의에 어긋나는 일에는 람팡을 부리지 않겠다고.”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지요.”
“그놈 참, 말 하나는 청산유수구나.”
‘됐어.’
많은 고난(?)과 시간이 들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은 성과였다.
옥좌에 오른 람팡을 가담시켰으니, 제국에서의 행보가 훨씬 수월해질 것은 당연지사였다.
람팡을 보며 씩 웃자, 람팡 역시 나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두고 봐. 골수까지 탈탈 부려 먹어줄 테니까.’
카르마에게 거짓을 말한 것은 하나도 없다.
도의에 어긋나는 일에는 결코 람팡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의에 부합하는 일에 얼마만큼만 부리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내 모가지를 딸 뻔한 일.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받아내 주지.
* * *
이케니아 왕국의 사절단이 떠나간 파티마는 다시금 평소와 같은 일상을 찾았다.
입국했을 때의 사절단보다 다음 도시로 떠나갈 때의 사절단 인원에 두 명이 더 추가되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간 파티마에, 청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나타난 것은 사절단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으윽!
마치 그림자처럼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
탁류의 검은 날개에 가장 가까운 이, 크로우의 직속 추적대 귀영단(鬼影團)이었다.
킁, 킁!
그중 한 명이 마치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코를 박고 무언가 냄새를 맡고 있었다.
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던 흑의인이 이내 머리를 쳐들고 무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하얀 날개는 분명 파티마에 있었습니다. 이 도시 곳곳에서 짐승의 누린내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그년이 가진 이종의 힘, 수왕(獸王)의 냄새입니다.”
흑의인의 말을 들은 귀영단의 책임자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이상한 일이군. 그렇다면 그녀가 이 도시에서 이종의 힘을 사용했다는 말인데. 우리 외에도 그녀를 추적하는 이들이 있다는 소리인가?”
책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냄새를 맡던 흑의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국의 성기사나 사제들에게 들킨 것 아니겠습니까? 그 미친 종자들은 저희만 보면 이교도라고 대가리부터 깨려고 드니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만… 그녀가 겨우 성기사나 사제들의 눈조차 피하지 못할 리가 없다.”
책임자는 결코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는 신중함 덕분에, 자신이 오늘날 귀영단의 책임자까지 맡게 된 것이 아닌가.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던 책임자가 결정했다.
“추향(追香), 그녀의 수왕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디까지 뻗어 나갔는지 추적해라. 그녀의 모든 이유를 찾아낸다.”
그 말에 추향이라 불린 흑의인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결코 티를 내진 않았다.
명을 내리기 전이라면 모를까, 명이 떨어진 이상 항명은 곧 죽음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킁, 킁!
추향이 코 내부가 헐다 못해 피가 줄줄 흘러나올 때까지 추적하자, 그들의 발걸음은 파티마 바깥의 평야까지 이어졌다.
“…파티마를 나가 평야로까지 싸움이 이어졌단 말인가? 그녀가 수왕을 사용했음에도 왜…?”
자신들의 주인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급이라 칭해지는 경지에 오른 여자다.
그런 여자가 힘을 발휘했는데도 단숨에 제압하지 못할 정도의 상대라니. 대체 누구란 말인가?
책임자의 고민이 계속될 때, 추향의 코에 이질적인 냄새가 실렸다.
“킁, 킁… 어?”
“무슨 일이지?”
추향이 보인 그 반응을 책임자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 그게… 다른 이종의 힘 향기가 납니다. 생소한데 왜 어디서 꼭 맡아본 것 같지… 아!”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추향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이 냄새! 블라디미르 님이 복귀하셨을 때 몸에서 나던 냄새와 똑같습니다!”
“……!!”
추향의 말에 책임자의 눈이 빛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나직이 말했다.
“…찾았다.”
책임자의 눈이 향하는 곳은 파티마의 북쪽.
수도, 바티칸이 있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