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6)
제166화
황자들을 만난 다음 날. 여관 ‘주의 휴식처’ 앞은 이황자가 보내온 상단들의 방문으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뭐, 먼 길 가야 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상단에서 내는 소음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본 루나가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하루라도 서둘러서, 뵙고 싶으니까요.”
빠드득!
분함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는 루나의 이가 입 속에서 뒤틀렸다.
붙잡혀 있는 어머니를 떠올린 거겠지.
“프란체스코 교황과 이야기는 마무리된 겁니까?”
“…네, 덕분에 어떻게든.”
이황자가 상단을 보내왔듯이, 일황자 역시 약속대로 루나를 보내왔다.
교황은 루나의 어머니를 구류하여둘 만큼 그녀에 대한 신뢰가 없다시피 한 이였지만, 일황자가 직접 부탁을 한 이상 루나의 파견을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그럼 이제, 루나 대주교의 어머님을 구출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일황자는 애초에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다. 이 판세의 정치적인 역학 관계를 따지기도 바쁠 터이니, 루나와 교단의 개인적인 문제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루나의 어머니를 빼돌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터였다.
‘그 여우 같은 프란체스코 교황이 미심쩍어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설마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일을 처리할 줄이야.’
선교사로 임명된 루나는 반텐으로 떠나기 전 어머니를 뵐 것을 교황에게 요구했었다.
어머니가 구류된 장소를 알아야만 바티칸을 떠나기 전 은밀하게 구출을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루나의 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 프란체스코 교황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루나 대주교의 어머니를 얼마 전, 건강상의 이유로 다른 장소로 옮겼다는 개소리를 말이다.
그 바뀐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으니, 자신 있게 루나를 보내준 것이리라.
‘되도 않는 소리지. 요양을 위해 그런 불모지로 사람을 보낸다고?’
우연의 일치일까. 루나의 어머니가 이동한 곳은 내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였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땅 가운데 가장 단단한 방어를 자랑하는 대지의 하나.
발리스타 요새.
제국의 세 자루 검 중 하나인 카밀 공작이 지키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발리스타로 행로를 잡아도 괜찮을까요? 거긴 군사 지역인데….”
막상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발리스타로 방향을 잡으니 겁이 나기라도 한 건지, 루나가 말끝을 흐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루나 대주교가 전생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그녀가 아닌 그 어떤 이라도 발리스타의 방어를 단신으로 돌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곳은 그런 땅이었으니까.
“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황제 그리고 황자들의 세력과 명분을 등에 업은 지금, 저희를 공격한다면 이바렐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테니까요.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는 여자는 아닙니다.”
게다가 발리스타는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과거, 밀리아를 구한 후 반텐으로 돌아가던 중 제국에서 보낸 추격대 때문이었다.
일반 병사들에게 공포로 군림했던 몬스터 부대와 동일한 괴물이 나타났었고, 홍염의 마법사 아리아 폰 웬디널이 사용했던 불꽃과 유사한 힘을 쓰던 난쟁이가 있었다.
이번에 발리스타 요새를 통하여 귀국하는 일정의 기회를 놓친다면, 두 번 다시 방문하기 어려울 것이리라.
“발리스타를 경유해서 입국하면 올 때 거쳤던 행로보다 1개월 이상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니까, 이상하지도 않고 말이죠. 대외적으로 무언가 꾸민다고 생각할 수도 없을 겁니다.”
다만 딱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발리스타를 ‘벗어난 이후’ 반텐으로 향할 때까지 걸리는 찰나의 시간.
그 시간에 과연 이바렐라가 가만히 있을지가 문제였다.
드웨인과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분이었음에도 해결이 되지 않아 엘프들이나 아버지에게 부탁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추후 반텐으로 향할 때까지 드웨인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연락을 하기로 했었지만, 이제는 그 문제 역시 위험도가 대폭 낮아졌다.
나는 여관 내에서 카르마를 챙기고 있는 람팡을 힐끗 보았다.
‘하늘이 도왔지. 설마 백익 람팡을 바티칸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카밀 공작과 마찬가지로 옥좌에 오른 람팡이 있는 이상, 어떤 함정을 파두었다고 해도 돌파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루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이황자가 보내온 상단의 대표가 다가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롬 폰 카르비어트 공자님. 저는 이번에 이황자님께 반텐으로 파견을 명받은 상단 중 하나, 라그랑쥬 상단의 책임자인 조제프라고 합니다.”
라그랑쥬 상단. 제국에서도 오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유서 깊은 상단이었다.
“반갑습니다, 조제프. 규모가 규모이니 체크하셔야 할 일이 많으시겠죠. 개의치 않습니다.”
전생의 자신이 예거라는 이름으로 이끌던 카를로스 상단과도 자주 거래를 하던 곳이다.
‘라그랑쥬 상단이라. 이황자가 제법 신경을 쓰긴 했군.’
이번 제국행에서 제국의 주인인 베드로 황제나, 교황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일황자와 달리 이황자 케일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제국의 대외적인 숙적 중 하나인 방패가로부터 치세(治世)를 인정받은 황제나, 제국의 국교(國敎)를 최초로 타국에 전파하게 된 일황자와 달리 이황자의 업적은 미미했으나 왕국들과의 거래는 알음알음 있어 왔던 일이었다.
그러니 이황자가 황제나 일황자 못지않게 이바렐라에게서 떨어져 나간 이들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압도적인 공을 말이다.
그 의지의 표현이 바로 여관 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 상단들의 규모였다.
제국의 이름 높은 상단 중 하나인 라그랑쥬 상단을 필두로, 가지각색의 문양들이 새겨진 상단의 마차들이 끝없이 도열해서 짐을 확인하고 있던 것이다.
개중에는 라그랑쥬 상단뿐 아니라 전생에 보았던 낯익은 문장들이 제법 보였다.
조제프를 시작으로 각 상단의 책임자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정오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제국으로 향했던 표면적인 이유, 이바렐라의 힘을 줄이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제는 제국으로 향하려 했던 ‘진짜’ 이유.
루나의 어머니를 구해낼 차례였다.
목표는 바티칸의 남서쪽.
요새, 발리스타였다.
* * *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드래곤 산맥은 그 위도상 일반적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더 혹한의 계절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시사철, 항상 뜨거운 여름과도 같은 기후를 유지하는 곳이 단 한 곳 존재하였으니.
화산으로 인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열화(熱火)의 땅.
키클롭스들의 영토, 가이아였다.
땅! 땅! 땅!
가이아에 울려 퍼지는 맑고 고운 망치 소리.
가이아 역시 몬스터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드래곤 산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이질적인 소리가 아닐 수 없었지만.
키클롭스들은 이 일정한 리듬의 소리가 가이아에 울려 퍼지는 일상을 온전히 받아들였는지, 그 누구도 소리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제 할 일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일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저 망치 소리에 흥분이라도 한 듯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흐음….”
한 키클롭스가 자신이 만든 무구를 보며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키클롭스의 장신에 어울리는 거대한 박도(朴刀).
도신에는 물결치듯 아름다운 비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후후후. 드디어 완성됐구나, 나의 애병이. 좋아, 정했다. 네 이름은…!”
“다 만들었으면 비켜!”
퍼억!
“꾸에엑!”
거대한 모루 앞에서 히죽대던 키클롭스는 뒤에 있던 다른 키클롭스의 발차기에 우당탕 쓰러졌다.
“어떤 놈이…!”
“모루는 너만 쓰냐? 다 썼으면 빨랑 옆으로 비킬 것이지, 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지랄이야!”
“이런, 장인 정신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애병을 완성하던 이 감격의 순간을 방해한 동족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키클롭스가 이내 행동을 멈춘다.
“왜, 뭐? 해보게?”
“……!”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찬 동족이 비아냥댔지만, 키클롭스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동족의 뒤로, 또 다른 동족이. 그리고 그 뒤로는 또 다른 동족이. 끊임없이 늘어져 있는 동족들이, 밍기적(?)거리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뿐인 눈들을 부릅뜨고서.
“…크흠! 내가 지금 애병을 막 완성해서 기분이 좋으니 넘어가지. 우, 운 좋은 줄 알아!”
그러고는 방금 완성한 무기를 들고 허겁지겁 모루에서 비켰다.
애병을 쥐자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이 활짝 웃는 키클롭스.
그리고 앞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찼던 키클롭스는 시간이 지나, 앞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헤벌쭉거리며 시간을 끌다가 앞사람과 같은 역사를 반복했다.
이런 광경이 가이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키클롭스 로드, 아르게스와 호위이자 형인 브론테스가 멀리서 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왕이시여, 동포들의 무장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단둘이 있을 때는 편히 말해도 돼, 형님.”
“그럼 그리하지. 그때 제롬의 손을 잡은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빠르군. 뭐, 좋아.”
브론테스의 태세 전환에 웃어버린 아르게스가 시선을 동포들에게 돌렸다.
드워프 못지않은 명장(名匠)의 솜씨를 가지고 있음에도, 가이아의 척박함 때문에 조악한 장비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키클롭스들.
그러나 미다스 후작의 나일 영지를 거쳐 반텐, 그리고 다시 가이아까지 흘러들어 온 철광석과 죽음의 계곡을 지배하던 와이번의 부산물들은 그런 키클롭스들의 장비를 눈부시게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오크들에게 약속된 물량은 어떻게 되고 있지?”
“차질 없이 공급 중이다. 걱정하지 마라.”
“하탄, 그놈도 난놈은 난놈이긴 하다. 이제 산맥 자체가 대부분 녀석의 왕국이나 다름없군.”
“지난번에 보니, 우리가 제공한 무장을 갖추니 그야말로 인간들의 군대 같았다.”
“단련된 전사로 거듭난 오크가 무장까지 갖추었다라….”
잠시 상상하던 아르게스가 그 큰 체구를 과장되게 떨었다.
“무섭군.”
드래곤 산맥을 거의 집어삼킨 하탄은 더 이상 단순한 오크라고 볼 수 없는 강자로 거듭났다.
자신들을 비롯한 키클롭스들 또한 명장(名匠)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종족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엘프와 더불어 숲의 노련한 사냥꾼인 라이칸스로프마저 죽음의 계곡에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지 않은가.
들리는 말로는 산맥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수의 숲을 다스리는 엘프들까지 제롬과 손을 잡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새삼 제롬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브론테스는 아르게스의 반응을 보며 픽 하고 웃었다.
“뭐, 이것도 다 계획된 것 아니겠나. 왕도 알다시피, 산맥 너머 그 괴물이 지키는 북벽(北壁)은 지금 오크들의 전력으로도 돌파하기 어려울 거야.”
“그렇지, 그 때문에 제롬이 라이칸스로프들에게 훈련하라 말했고, 우리에게도 무장을 갖추라 말한 걸 테니까.”
브론테스의 말에 아르게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이만한 전력을 모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자랑하는 제롬.
그의 능력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제롬을 끝없이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가이아의 아래쪽에 위치한 북벽에 있는 인간들의 전력에 전율하게 된다.
도대체 그들은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드웨인이라는 반텐 지역에 있는 제롬의 부하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보겠나?”
“음.”
브론테스가 철광석을 공급해온 인간들의 상단에서 전달한 편지를 아르게스에게 넘겼다.
키클롭스의 덩치를 고려하여 엄청나게 거대한 종이에 작성한 편지였음에도, 막상 아르게스의 손에 들리자 코딱지만 한 종이 쪼가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크기였다.
바스락!
아르게스의 외눈이 드웨인이 보내온 편지를 빠르게 훑어 내렸다.
“흐음, 제롬이 ‘북벽’에 들어간다라….”
키클롭스들이 북벽이라 부르는 철벽과도 같은 땅, 요새 발리스타.
드래곤 산맥이 인간들의 금지(禁地)이듯이, 드래곤 산맥의 많은 몬스터들에게 발리스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공포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수장은 늘 인간과는 거리가 먼 괴물 같은 강함을 자랑해 왔으며.
현재 북벽을 담당하는 수장인 인간은, 그 수장들의 역사 속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지금 우리에게 북벽을 밀어달라는 뜻은 아닌 것 같고. 북벽의 인간이 제롬 일행을 노릴 테니 견제해 달라는 뜻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오크들도 온다지?”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지리상으로 하탄이 있는 중부가 반텐에 더 가까울 테니까.”
“흐음….”
브론테스의 답변에 아르게스의 하나뿐인 눈이 깊게 침잠되었다.
비록 몬스터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 담긴 지혜로 신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전설이 담겨 있는 부족이 바로 키클롭스였다.
그런 종족을 이끄는 지혜로운 왕이었기에, 아르게스는 드웨인의 서신에서 숨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제롬 이 자식, 아무래도 북벽에서 사고 칠 생각인가 보다.”
그것도 키클롭스와 오크의 대대적인 견제가 필요할 만큼 대형 사고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