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35)
제235화
사판 영지의 정보 길드를 이용한 후 올리비아로 돌아온 제롬은,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늘어난 인구에 깜짝 놀랐다.
넵튠 해적단을 처분하고 샤론 왕국에 무고히 잡혀온 노예들을 사와 영지민들로 안착시킨다.
계획했던 바가 있으니, 인원이 느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늘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숫제, 샤론 왕국에 있는 노예 대부분을 다 보낸 것 같잖아?’
“생각하시는 거, 맞으실 겁니다.”
눈가가 거멓게 죽은 드웨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피터 국왕이 메르카도에 있는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무고한 이들을 전부 다 보내 주셨습니다. 넵튠 해적단 대금으로 메꾸지 못하는 부분은 왕가의 사재를 털어서 채우셨다고 하더군요.”
“뭐?”
드웨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말이 차액이지, 메르카도의 규모를 생각하면 아무리 넵튠 해적단의 몸값이 비싸다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했을 터. 어떤 연유로 피터 국왕이 그 많은 대금을 다 냈단 말인가?
“뭐… 왕국의 산업 개혁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 아니겠습니까. 원래 개혁이란 게, 한 번에 싹 정리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요. 마침 저희한테 지원도 하기로 했으니, 이걸로 퉁 친 거죠 뭐.”
“아, 하긴 그렇네.”
노예 산업을 개혁한다고 당당히 말해놓고 남아 있는 노예들까지는 팔고 바꾸겠다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긴 했다.
그리고 올리비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니,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지원도 되고 말이다.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피식!
“뭐, 사심도 당연히 있겠죠. 자기 연애하는데 잘 좀 봐달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소를 흘린 드웨인이 말했다.
“이따가 반텐에 통신이나 한번 넣어주시죠. 엘룬하임에 신경 좀 써달라고.”
“그래야겠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메르카도 노예 상인들을 치우는 데 지원을 해줬다 해도, 이만한 인원은 대가로는 확실히 과했으니까.
다른 면으로라도 보답을 해주는 것이 수지에 맞겠지.
“그나저나, 사판에서는 누굴 찾으신 겁니까?”
“어떻게 알았어?”
“람팡 님한테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올리비아의 내정을 완벽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똑같은 관리 성향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드웨인은 보기 드물게 관심을 드러냈다.
“뭐, 그렇지. 이대로 가다간 드웨인 네가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샤론 왕국에서 보내온 인원 중 행정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저 혼자서도 체계를 잡을 수 있습니다.”
드웨인이 살짝 샐쭉해진 표정으로 입을 내밀었다.
“어이구, 답지 않게 질투는. 네가 능력이 모자라서 그러냐? 넌 다른 일을 해야지, 책상 앞에서 숫자랑 씨름하고 있을 시간 없어. 그런 줄 알아.”
“…킁. 알겠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나서야 표정을 푸는 드웨인이었다.
‘애도 아니고, 나 참.’
말은 저렇게 툴툴대도, 제레미아를 실제로 보면 드웨인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녀의 내정 감각은 그만큼 규격 외였으니까.
드르륵!
창문을 열자 종이와 잉크 냄새로 가득했던 집무실의 공기가 남해 바다의 내음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내밀자,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던 어촌 마을 몇 개가 전부였던 영지 곳곳에 건물과 사람들의 거주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잘도 왔네.”
처음 봄의 축제에 참석하여 드웨인을 납치해오고,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드웨인과 많은 계획을 세우고, 또 수정하며 여기까지 왔다.
처음 드웨인을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국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 여긴 군도의 해적.
이번 일은 그동안의 계획 중 가장 많은 시간, 그리고 가장 많은 물자가 투입될 것이다.
그런 만큼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상대하는 적의 규모도, 무력도 말이다.
작게는 영지민들의, 많게는 주변 나라들의 지원까지. 내 선택 하나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움직인다.
결의를 다지는 내 시야에, 저 멀리 해변가에서 훈련 중인 이들이 들어왔다.
첫 훈련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조금씩 군기가 든 태가 나고 있었다.
“델로 영감의 정체는 아직 짐작 가는 바가 없나?”
라이네 마을의 촌장, 델로 영감. 그를 해군 훈련의 총책임자로 임명한 이후 아무것도 강제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델로 영감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파악해야만 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원을 모르는 자를 끝까지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흐음, 그게….”
팔락!
드웨인이 잠시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연령, 그리고 저 실력으로 볼 때 유추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저만큼 특색이 강한 사람이라면 드러나지 않는 게 더 특이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드웨인이 확답을 피하다니.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전사한 걸로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것도 검가에서 직접 공식적으로 발표한.”
“죽은 사람이라….”
무언가 냄새가 났다.
“좀 더 자세히 파봐. 잘하면 검가의 약점 하나를 더 쥘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드웨인의 입이 다시금 삐죽 튀어나왔다.
“하여튼 간에 말은 쉽지, 직접 하면 얼마나 성가신데… 에잉.”
“쓰읍.”
기분 탓인가. 요새 왜들 이렇게 투덜대는 게 많은 것 같지.
* * *
쏴아아아아.
남해의 파도가 해안가에 조용히 드나드는 밤.
군도의 밤은 대륙보다 빠르게 찾아온다.
저녁 시간이 되면 간조-썰물로 인해 해안가에 물이 가장 많이 빠진 상태-가 찾아와, 일찌감치 영업(?)을 마치고 섬으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곧 출항할 계획이 잡혀 있다면 더더욱 컨디션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임무를 받은 해적단은 출항 전날 더더욱 빠르게 취침에 드는 것이 군도 해적들의 기본이었다.
이렇게 군대 뺨칠 정도로 정련된 삶의 습관이, 군도 해적들을 바다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비결이었다.
그러나 같은 행동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달리 보이는 법.
해적들의 이렇게 일정한 규율은,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행동 패턴이 파악하기 쉽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사삭!
해적들 대다수가 잠에 빠져 적막한 해안가.
일단의 무리가 조심스럽게 해적들의 배가 정박해 있는 해안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이들을 본다면, 이들의 신체가 대부분 왜소하다고 대번에 느꼈을 것이다.
“언니, 나 너무 무서워.”
무언가 음모를 꾸민다고 보기에는 앳된 목소리.
놀랍게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실제로도 아직 어린 소녀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 뒤를 따르는 대부분의 인원들 역시 소녀와 비슷한, 그러니까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쉿! 큰 소리 내지 마.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게 다 끝장이야.”
소녀의 칭얼거림에 가장 선두에서 아이들을 이끌던 여인이 다급히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 구역을 담당하는 키벨레 해적단이 올리비아로 출진할 거야. 모두가 잠이 든 오늘을 놓치면 영원히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어.”
놀랍게도 여인은 본도의 왕인 발락이 두 달 전, 키벨레 해적단에 내린 명령을 눈치채고 있었다.
해적과 그들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타지에서 붙잡혀온 노예로서 살아가는 군도에서, 여인이 키벨레 해적단의 출항 일정을 알아낸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적으로 여인의 능력 덕분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뛰어난 머리를 알아본 키벨레 해적단의 선장 아티스는 그녀에게 해적단의 재정을 맡겼다. 아티스의 선택은 실로 올바른 선택이었다.
여인이 재정을 맡은 후 해적단의 재정 상황이 눈에 띌 만큼 급속도로 나아졌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새는 비용은 물샐틈없이 틀어막았으며, 나가는 비용은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계획안을 짰다.
넵튠 해적단보다 그 역사가 훨씬 더 짧음에도 불구하고, 키벨레 해적단이 이케니아 방면을 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인의 공도 적지 않다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해적단 내부의 물류에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최근 들어 급증하는 해적단 내부의 물자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해적의 손에 놀아나는 자신의 인생이 끔찍이도 싫었다.
단지 하나밖에 없는 동생과, 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동생에 버금갈 만큼 소중한 아이들의 목숨이 저당 잡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지옥 같은 인생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누나, 정말 가능할까? 지금 시간은 썰물이잖아. 배가 전부 모래 위에 올라와 있을 텐데, 배는 어떻게 몰려고? 우리 힘으로 배를 어떻게 밀어내?”
여인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것 같은 소년이 우려를 표했다.
소년의 시선에, 여인은 차분한 평소와 달리 다소 조급해 보였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여인은 소년의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마키 아저씨가 알려주셨어. 군도는 썰물 시간 중,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순간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있다고. 그때 배를 밀어내면 돼.”
마키라는 이름이 나오자 비로소 소년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마키 아저씨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들이 잡혀 오기 훨씬 전부터 키벨레 해적단의 밑에서 노예로 살아왔다는 그는 해적단에 납치된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으니까.
쏴아아아아!
“저거 봐, 파도가 거세졌잖아. 마키 아저씨 말이 맞았어.”
과연 마키의 말처럼 말라붙었던 배의 밑부분에 차근차근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충분히 배 밑에 물이 찼을 무렵, 아이들은 누가 볼세라 조심스럽게 배를 향해 다가갔다.
“마키 아저씨도 같이 가셨으면 좋았을걸.”
한 아이의 아쉬움 가득한 말에 여인의 눈에도 아픔이 스쳐갔다.
-흘흘, 내가 이 나이에 나가서 뭘 하겠느냐. 나는 여기서 생을 마감할 테니, 너희끼리 빠져나가거라. 최대한 시간을 끌어줄 테니, 어서.
오히려 마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본인이 나서서 시간을 끌어 주겠노라 말했다.
자칫 이 계획을 들키면 본인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말이다.
‘아저씨, 꼭 구하러 돌아올게요.’
아쉬움과 아픔을 뒤로한 채 여인과 아이들이 배를 밀어내기 위해 배에 손을 대던 바로 그때.
“얘들아, 뭐 하니.”
“……!!”
음산하기 그지없는, 마치 뱀과도 같이 뒷덜미에 휘감기는 목소리에 아이들의 몸이 순식간에 뻣뻣해졌다.
그건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여인이 받은 충격이 가장 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녀가 꿈에서도 보기 두려운 이의 것이었으니까.
뒤돌아선 여인의 눈앞에, 싱글싱글 웃는 표정의 중년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티스, 선장님.”
“왜, 하던 거 계속하지. 왜들 멈췄을까?”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중년 남자는 바로 키벨레 해적단의 선장, 아티스였다.
스으윽!
아티스의 말이 신호였을까.
배 위에서 키벨레 해적단 선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꼬맹이들, 왜 멈춰! 더 해봐, 더! 우리 배 좀 해적단 밖으로 내보내줘! 나 너무 탈출하고 싶단 말이에요오옹!”
“푸하하하하!”
키벨레 해적단 전원이 배에 승선한 채 자신들을 조롱하는 그 모습에,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도대체, 어디서 새 나간 걸까.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궁금해?”
딱!
그런 여인의 표정을 읽은 아티스가 비열한 미소를 유지한 채 손가락을 튀기자, 아티스의 뒤에서 한 중년 남자가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모습을 본 아이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특히 여인의 눈은 더더욱 말이다. 남자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마…키, 아저씨. 아저씨가 왜….”
“…미안하다.”
아이들이 가장 믿었고, 믿고, 앞으로도 믿으려 했던 남자, 마키가 여인의 눈을 외면하며 아티스를 향해 물었다.
“서, 선장님. 말씀하신 대로 했으니, 저는 섬 밖으로 내보내 주시는 거지요? 맞지요?”
하지만 죄책감도 잠시, 아티스를 향해 되묻는 그의 얼굴에는 환희만이 가득했다.
“아아, 물론이지. 난 이래 봬도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 명색이 선장이잖아?”
싱긋 웃는 아티스의 얼굴에 마키 역시 따라 웃으려 하던 바로 그때.
퍼걱!
“…어?”
아티스의 커틀러스가, 마키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주르르륵!
순식간에 입가로 뿜어져 나오는 피. 피를 흘리는 중에도 마키의 눈은 아티스에 대한 의문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왜긴, 약속했잖아. 섬 밖으로 보내준다고.”
싱긋!
산뜻하게 웃는 아티스의 표정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살려서 보내준다는 말은 안 했지만.”
쿵!
쓰러지는 마키의 시신을 향해 눈짓하자, 해적단원들이 마키의 시신을 들고 아이들의 옆을 지나가 유유히 바다에 던졌다.
풍덩!
“축하해, 섬을 나갈 수 있게 되어서. 그곳에서는 행복하길 빌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마키의 시신을 바라보던 아티스의 시선이 이내 여인을 향해 움직였다.
“자, 제미. 내가 널 어떻게 해줘야 될까?”
“…….”
제미라 불린 여인이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반짝!
구름이 비켜나고 드러난 달빛.
빛 한 점 없어 가려져 있던 그녀의 연둣빛 머리카락이, 달빛에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