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16)
제316화
시간을 과거로 조금 되돌려, 제롬이 이슈바르의 치료를 위해 패오니아를 들고 오시리스 왕국으로 움직이고 있던 그때.
이케니아 왕국의 서부, 콘월 영지의 주인이자 왕국의 검인 브라움 반 드미트리는, 생각지도 못한 손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검가의 대회의장.
브라움의 맞은편에는 평범한 행색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저잣거리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특색이라고는 하나 없는 초라한 노인이었지만.
브라움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비범함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며칠 전, 조카인 아고르 반 드미트리가 콘월로 당당하게 복귀해 말했다.
드래곤 산맥을 수색하여 산맥의 괴인을 찾아왔다는, 의기양양한 보고와 함께 말이다.
브라움은 처음 보고를 들었던 순간, 아고르 그 얼간이가 되지도 않는 사기꾼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검가의 우수한 정보원들이 산맥의 괴인을 찾아 대륙을 이 잡듯 뒤졌던가.
연맹의 왕국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적국인 신성제국의 영토까지도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수면 아래에서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찾지 못했던 그를, 가문의 골칫덩이인 아고르가 어찌 찾아온단 말인가?
애초에, 아고르를 드래곤 산맥으로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제일 위험하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간 김에 조용히 산맥의 몬스터들 배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자잘한 속 시끄러운 일은 사라질 테니까.
그렇게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아고르가 산맥의 괴인이랍시고 노인 하나를 데려왔으니, 사기라 생각하는 것은 응당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아고르와 동행한 노인을 마주한 순간.
브라움은, 이자가 진짜 산맥의 괴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회의장을 가득 채운 브라움의 기운을 부드럽게 흘려내고 있었으니까.
우레와 같이 난폭한 자신의 오러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에게 적대적이다.
평범한 노인이었다면 이미 진즉에 혈맥이 찢겨 피를 토했으리라.
평범하지 않으니,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산맥의 괴인이 먼저 나를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
“흘흘흘! 그대가 먼저 나를 찾지 않았습니까, 우물의 주인이여.”
꿈틀!
노인이 웃음을 흘리며 내뱉은 단어 하나가 브라움의 심기를 건드렸다.
“우물이라….”
우르르르릉!
회의장 내부에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굉음이 흘렀다.
“비록 내가 아쉬운 것이 있어 그대를 찾은 것은 사실이나, 언사를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흘흘흘! 그만한 무력과 재능을 가지고도 고작 이 좁은 땅에 웅크려 대장 놀이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우물 안을 제패하고 왕 행세를 하는 개구리와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브라움의 흉흉한 기세에도 산맥의 괴인, 제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브라움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렸다.
이바렐라가 허락한 짧은 기간의 휴식.
당연히 제노스는 비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황금사자교의 교황을 쓰러뜨리는 데 손을 거든 후, 제노스는 이케니아의 검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제노스는 고민했다.
오시리스로 향해 목표를 곧장 노릴 것인지, 아니면 이케니아로 향해 덫을 놓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짧은 고민 끝에 그가 내린 선택은 이케니아였다.
결국 오시리스로 떠난 목표는 필연적으로 이케니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오시리스로 향해 목표를 놓칠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를 구해 덫을 만드는 것이 나으리라.
그렇다.
제노스가 원하던 ‘모든 짐승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이’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조력자가 필수였다.
다행히 과거, 연을 쌓았던 우수한 가문이 있었지만 검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문의 주인이 고작 이 정도 도발에 흔들릴 그릇이라면, 조력자로서는 기준점 미달이었으니까.
다행히 브라움은 제노스의 도발을 가벼이 흘렸다.
과히 불쾌한 언사였지만,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제노스의 능력이지, 그의 말투가 아니었으니까.
“내 시간은 금보다 귀하다. 고작해야 시답잖은 도발이나 받아줄 생각은 없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지.”
브라움이 대회의장을 가득 채운 기운을 순식간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대 역시 우리 가문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 모습을 드러냈겠지. 서로 원하는 것만 조율하는 게 시간을 아끼는 길이라 생각한다만.”
아고르, 그 멍청한 놈이 갑자기 유능해져 산맥의 괴인을 발견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기파를 가볍게 흘려낼 정도로 비범한 노인을 무슨 수로 그놈이 찾아내겠는가.
즉, 이자 역시 원하는 바가 있으니 스스로 아고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리라.
그런 브라움의 반응에 제노스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흘흘흘! 뇌명(雷鳴) 브라움 반 드미트리가 우레처럼 빠르고 신속한 것은 검뿐만이 아니라더니, 과연 소문이 틀리지 않았습니다그려.”
스윽!
몸을 일으킨 제노스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무례를 사과드리지요. 말씀하신 대로, 이 사람은 명확히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손에 넣을까 고민하던 중, 때마침 검가에서 저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브라움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맞다. 오랜 세월 우리 가문과 거래해온 그대의 능력이 필요하다.”
“흐음, 역시 그 이유시군요.”
제노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뭐, 가능합니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매번 진행하던 사항이니. 적당히 골라서 전해드리면 되는지요?”
가장 최근에 검가에서 거래했던 드레이크 한 마리. 제노스는 그 정도를 생각했으나, 브라움이 조금도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부족하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가장 흉포한 놈을 최대한 많이 받겠다. 그것들을 내가 원하는 장소에 풀도록. 그게 내 의뢰 사항이다.”
“……!!”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탓에, 천하의 제노스였지만 눈가에 이채가 깃들었다.
“허어, 왕국에 반란이라도 일으킬 생각이신 건지요?”
지금껏 검가와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요구를 해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가능한지 여부와 요구 조건만 얘기하면 될 일이다.”
브라움이 단호히 말했다.
산맥의 괴인이 다루는 몬스터들을 이용하여 미라지 광산을 흔들고, 그 권한의 일부를 가져오는 것은 가문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
결코 외부 인사에게 함부로 말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흐음, 그것도 옳은 말씀이군요….”
브라움의 입이 당장에 열리지 않으리란 사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제노스가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말씀하신 의뢰 사항, 전부 들어 드리도록 하지요. 제가 가진 가장 포악하고 위험한 놈들만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장소로의 이동 역시 제가 책임지도록 하지요.”
가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나 브라움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한 승낙이었음에도, 그의 표정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아직, 그대가 원하는 바를 내게 말하지 않았다.”
거래는 쌍방이 오가는 것이다.
이 정도로 파격적인 일을 모두 승낙한다는 건, 제노스가 원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영약, 무기, 금화, 땅, 신분.
브라움은 제노스가 그 어떤 것을 원하더라도 줄 자신이 있었지만, 브라움 역시 느끼고 있었다.
제노스가 원하는 것은,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흠, 제 요구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제노스가 검지를 길게 편 채 쭉 내밀었다.
“저는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조만간 그자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제노스의 주름진 눈가에 광기가 맴돈다.
“그자를 손에 넣기 위해 제가 드리는 ‘어떤’ 부탁이라도 세 번만 들어주시지요.”
검가의 주인이 하려는 짓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저만한 규모의 사건을 일으킨다면 올리비아에 웅크린 그자 역시 행동을 보일 것이다.
그때, 검가를 써먹어 자신 또한 움직일 것이다.
“가문에 해가 되는 일은 들어줄 수 없다.”
“아아, 그건 물론입니다.”
대충 자신이 원하는 이를 무력으로라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을 생각한 모양이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자신이 ‘비원’을 이루는 역사적인 순간을 타인의 손에 넘길 리가 없지 않은가.
거래란 서로의 가치가 다를 때 성립된다.
브라움에게는 고작해야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으나, 제노스에게는 비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저벅, 저벅!
회의장을 가로질러 다가온 제노스를 물끄러미 바라본 브라움이 손을 내밀었다.
“사람을 찾는 것도, 내가 원한 것들을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스윽!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도록. 그대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이쪽도 최선을 다하겠다.”
맞잡은 두 손이 흔들리며 서로의 흡족함을 드러냈다.
이 야합(野合)으로 인해, 미라지 광산에 드레이크 무리가 풀리게 되었고.
이후 왕국의 포고문을 받은 검가는, 빅토르를 책임자로 내세우고 브라움을 가문의 기사 중 하나로 위장시킨 채 천천히 미라지 광산으로 향했다.
일행의 안에, 브라움 외에 또 하나의 위장 인원을 포함한 채로 말이다.
* * *
이케니아 왕국의 북부 지역.
과거,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부 지역은 마수의 숲과 드래곤 산맥, 그리고 신성제국과 국경을 마주한 왕국에서 가장 척박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러나 작금의 북부 지역을 그렇게 생각하는 왕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엘프들의 땅, 엘룬하임에서만 볼 수 있는 엘프들의 특산품이 서서히 퍼져 나가며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보기 드문 문화가 자리 잡았고.
드래곤 산맥과 신성제국 또한 잠잠한 상태가 계속되었기에, 북부 지역에 대한 인식은 나날이 개선되고 있었다.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대지, 반텐의 회의실.
가문에 항상 파란을 몰아왔던 제롬이 올리비아로 떠난 이후 뜸해졌던 대회의가 오랜만에 열린 탓에, 회의실은 간만에 반텐의 간부들로 가득했다.
바스락!
카르비어트 마법 병단의 총책임자, 멀린이 지팡이를 가볍게 휘젓자 회의실 정중앙에 왕가에서 보내온 포고문이 둥실 떠올랐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회의실의 중심. 제롬의 아버지이자 반텐의 주인인 바쿠스가 가신들을 향해 물었다.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왕가에서도 심혈을 기울인 광산이라 소문이 자자한 미라지 광산입니다. 이번 일로 광산의 일부가 검가에 넘어간다면, 놈들은 또다시 과거처럼 제 놈들의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날뛸 것이 자명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광산의 권한을 손에 넣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검가를 견제할 세력으로서 무조건 파견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반텐의 가신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작금의 왕국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 않았으니,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다만, 의견은 다른 부분에서 갈리기 시작했다.
“그럼 누가 파견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야 고민할 것도 없이 저희 볼케이노 기사단이….”
불꽃의 기사, 하카렌이 말하자.
“무슨 소리입니까! 광산에 나타난 드레이크 무리의 덩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 허리케인 병단이 나서는 것이 맞지요!”
바로 누가 방패가를 대표하여 미라지로 파견을 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방패가는 더 이상 후계자의 구도에 대해 갈등을 빚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이 지지하던 후계자를 위해 무리해서 억지로 공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아옹다옹하는 것은, 그야말로 선의의 경쟁이었다.
방패가의 이름을 드높이는 주역이 되고픈 순수한 경쟁심.
그 마음을 읽었기에, 바쿠스는 가신들이 다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기특하였기에.
하지만 시장통처럼 시끄럽던 회의실은, 한 여인이 입을 열자 곧장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전부 입 다물어요.”
나직한 목소리로, 차가운 문장을 내뱉는 여인.
과거에 비하면 거의 천사나 다름없이 말투가 바뀐 그녀의 이름은 바로 메르시 폰 카르비어트였다.
제롬의 누나이자, 먼 미래 제국의 땅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해 불철주야 수련하던 철의 여인.
“미라지는 내가 가요. 허리케인 마법 병단이 나를 보조하도록 해요.”
“아니….”
볼케이노 기사단의 단장, 하카렌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아레스를 쳐다보았지만, 아레스 또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하카렌 경. 메르시의 검은 이미 저보다 날카로우니까요.”
후계자로서의 수업을 병행하는 아레스와 달리, 전심전력으로 무예만 갈고 닦은 메르시의 검은 이미 헥사곤조차도 1단계를 해금하지 않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 메르시가 오빠고 나발이고 칼 들고 설치기 시작하면, 아레스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크윽….”
믿었던(?) 주군마저 꼬리를 내리자, 하카렌 또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반동분자(?)가 나오지 않자, 메르시가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더 이상 불만은 없겠지요? 그럼 기정사실화하고….”
“잠깐.”
메르시의 말은 어느 여성의 저지에 의해 깨졌다.
하지만 아무리 거친 메르시라도, 이 여성의 말에는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방패가의 안주인, 엘레나 폰 카르비어트였으니까.
“광산 안에 있는 것들이 드레이크라 했지? 그러면, 유사시엔 차라리 광산을 통째로 무너뜨려 생매장시키고 새로 시작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어.”
화륵!
그녀가 손 위에 불을 만들어 장난처럼 허공 위로 던졌다 받았다.
“그럼 역시, 광산을 한 번에 무너뜨릴 만큼 강한 마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찡긋!
윙크를 보내는 엘레나를 보며 메르시 역시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이 거친 성격은, 분명 어머니의 피를 닮은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렇게, 미라지 광산으로 향할 방패가의 파견 인원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