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자리에서 일어난 존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의뢰하신 내용이 제가 감당할만한 내용이 아니군요.”
“호오?”
침중한 음성에 아렌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존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지만 정보길드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존의 말을 들어보니 아렌의 예상이 맞았다.
“길드장님께 안내하겠습니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벡스터와 달리 리콘은 표정을 굳혔다.
어느 조직에나 이름은 있는 법이고, 암흑가의 조직들은 특히나 이름에 신경을 쓴다.
신비함과 위압감을 주고 조직원들을 결속시키기 위함인데, 검은 칼이라든지, 피의 형제단이라든지 하는 살벌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있는 자온의 정보길드는 특별한 이름이 없었다.
그냥 정보길드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었고,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보를 취급하는 집단은 많지만 명확한 이름이 없이 그저 정보길드라고 불리고 있으니, 그 위상은 어마어마한 것이 불문가지.
최고급의 정보만 취급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제국의 반대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암흑가에서 정보길드가 가지는 영향력과 힘은 막강하다.
그런 정보길드를 지배하는 길드장이 처리해야하는 정보라면 그 가치와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에 리콘의 안색이 굳어진 것이다.
“모시겠습니다.”
존이 절도 있는 몸짓으로 방을 나서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똑같은 검은 옷을 입은 정보길드원들이 제각각 서류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통신마법구로 누군가와 교신하며 무엇인가를 빠르게 기록하고 있었다.
들어올 때의 환대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광경이었지만, 리콘은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길드원들 중 그 누구도 아렌을 쳐다보는 이가 없었으니까.
외려 아렌이 옆을 지나갈 때면 미세하게 손을 떨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렌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보길드원이니까 나보다 도련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건가?’
그렇게 건물 안의 모두를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있는 아렌의 일행이 도달한 곳은 건물의 가장 깊은 곳.
돌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거대한 문 앞에 당도했다.
한 눈에 봐도 꽤나 육중해 보이는 문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열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곧은 자세로 선 존이 아렌을 향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혔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벡스터가 발끈하며 앞으로 나섰고, 리콘도 어정쩡한 자세로 벡스터의 옆에 섰다.
호위기사로서 당연한 반응이니 존은 화를 내지 않았다.
여전히 허리를 굽힌 존이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이 문 너머로는 저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변함없는 존의 태도에 벡스터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돌아가시죠. 도련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온같은 수상쩍기 그지없는 곳에서 더더욱 수상한 정보길드에 들어온 상황이다.
아렌을 만나고 나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어엿한 기사로 성장한 벡스터에게 있어서 아렌의 안위는 자신의 목숨 이상의 것이 되었으니 벡스터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괜찮다.”
하인의 충성스런 모습에 만족한 아렌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객은 집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겠지.”
“…… 알겠습니다.”
아렌의 말에 벡스터가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평소에 말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 아렌이니만큼 한번 나온 말을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을 아는 탓이다.
귀하신 손님을 헛걸음하지 않게 했다는 상황에 존의 안색이 편안해졌다.
“다만 이후로는 이자들도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라인드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하지만 이어지는 아렌의 말에 존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 * *
쿵.
걱정스런 표정의 벡스터와 어색해하는 리콘을 남겨두고 걸음을 옮긴 아렌의 뒤로 돌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운치 있군.”
자온으로 내려올 때 거쳤던 동굴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통로가 아렌의 시야에 들어왔고, 동굴 곳곳에 박힌 발광석이 시야를 밝혀주었지만, 일정 이상의 거리를 볼 수 없었다.
어둠에 잠긴 동굴 저편의 모습이 아렌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피식 웃은 아렌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고요하기 짝이 없는 동굴 속에 아렌의 발소리만이 울렸고, 아렌이 움직임에 따라 마치 어둠이 길을 내주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고생들이 많구나.”
상대도 없는 공간을 향해 아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공간에 설치된 마법진과 특수한 마나운용, 거기에 시야까지 가리고 냄새까지 억눌렀으니 이 나조차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너희가 있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느릿하게 주변을 살피며 걷는 모습이 산책을 나온 것만 같았다.
“예전에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다면 나도 착각했을 거야. 너희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동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렌밖에 없었다.
“그러니 슬슬 나와서 길을 안내해라. 의미 없는 걸음은 하고 싶지 않구나.”
아렌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신체는 용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중이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순간 분석해서 장단점을 도출해낸다.
새로운 관점의 지식을 발견하면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 연구도 하는데, 이것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아렌의 경지가 워낙에 고절해서 대부분의 지식이 버려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자온으로 향하는 통로를 한번 본 아렌은 이내 그 허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비슷한 양식을 가진 지금의 통로는 더 이상 아렌에게 장해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집이 있는 녀석들이군. 하긴 임무를 수행하는 자는 그래야 하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통로의 모습에서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방법을 바꿔야겠구나.”
아렌이 파악한 이 통로는 일종의 환영진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걸어가다가는 하루 종일 걸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마법진이 교묘하게 복합된 이 통로의 진법을 해제한다는 것은 제 아무리 아렌이라도 힘들다.
웅.
공기가 떨리고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렌이 들어 올린 손을 중심으로 기류가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마나가 모여들었다.
“빠져나갈 재주가 없으니, 다른 재주를 부려야하지 어쩌겠느냐.”
파자자작!
놀라운 속도로 모여들은 마나와 공기가 가공할 압력에 한 점으로 뭉쳐 들어가더니 허공에 전하를 생성하고 불똥을 튀겼다.
훅!
그렇게 불안정하게 날뛰던 힘이 압축을 거듭하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안정을 찾고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서 아렌의 손위에 떠올랐다.
“부수는 재주밖에 없으니 원망하지 말거라.”
흉포하기 짝이 없는 빛을 흘리는 붉은 구체는 그 크기가 겨우 손가락 한마디 정도였지만, 느껴지는 힘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
너무나도 쉽게 강환을 만들어버린 아렌이 느릿하게 손을 어둠에 쌓인 통로 쪽으로 내미려던 그때였다.
“실례했습니다.”
다급한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어둠을 가르며 인영이 나타났다.
천장에서, 땅바닥에서, 벽에서 어둠을 뚫고서 불쑥불쑥 나타난 사람들이 이내 아렌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손님 대접이 박하구나.”
“죄송합니다.”
아렌의 말에 아무런 변명 없이 그저 허리를 숙이는 모습에 아렌이 혀를 찼다.
“하긴 너희가 사죄할 일은 아니지.”
아렌의 손에 떠올라 있던 강환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 모습을 확인한 사내들의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상상도 못할 힘을 사역하는 것도 가공스러운데 저렇게 자연스러운 수발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힘도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처음 등장한 사내가 은밀히 손짓했고, 나머지 인원들이 아렌의 사방에 섰다.
마치 포위하는 것 같은 모양이었지만, 아렌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안내하겠습니다.”
동시에 처음 나타났던 사내가 아렌의 앞에 서니 아렌의 주위로 네 명의 마나가 공진하기 시작했고, 주변의 어둠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훅.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걷히고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 통로의 저편으로 고풍스런 문양이 음각된 석문이 나타났다.
끼이익.
그 무게를 짐작하게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고, 빛이 세어들었다.
* * *
통로를 지나 나타난 것은 또 다른 지하 공동이었지만, 놀랍게도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위로 시선을 돌린 아렌의 시야에 하늘을 비추고 있는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수명이 다한 화산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다르지 않았다.
시선을 공동으로 돌리니 공동 한쪽에 자리 잡은 저택과 건물들이 보였고, 몇몇의 인물들이 아렌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통로에서 만난 자들과 같은 복장에 같은 복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선두에서 다가오는 사내만은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짧은 거리가 아닌데도 어느새 아렌의 앞에 당도한 사람들의 모습에 아렌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경신공의 일종인가? 흔히 보이는 종류는 아니군.’
이 세계에서 기사들이 쓰는 보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직선적인 돌격에 치중되어 있다.
변화를 억제하고 폭발적인 돌격력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것은 근접전을 수행해야 하는 기사에게는 올바른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보이는 형태는 순수하게 이동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았으니, 이들의 정체를 대강 짐작하고 있는 아렌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아렌의 앞에 당도한 사내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탄탄해 보이는 몸과 평범해 보이는 얼굴, 펑퍼짐한 옷을 걸쳤다는 것 외에는 인상이 희미한 사내가 아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보길드장인 바인드요.”
“아렌 드 그라인드.”
가명일게 분명한 소개에 본명으로 받아치는 아렌의 태도에 바인드가 눈가를 좁혔다.
몇 대째 내려오고 있는 유서 깊은 길드를 이끌고 있는 바인드는 요즘 골치가 아팠다.
귀족도 부럽지 않을 삶을 살고 있던 바인드였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일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었고, 그로인해서 그의 평탄한 삶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외부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어지간한 일은 존에게 일임해놓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렌이 나타난 것이다.
아렌에 대한 것은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던 바인드였다.
등장부터가 비범했고, 그 이후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못해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아렌에 대한 정보는 정보길드 내부에서도 수위권에 이를 정도의 가치를 매기고 있었다.
그런 아렌을 함부로 만나는 것은 암흑가의 거물로서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적당히 돌아갔으면 하고 수작을 부렸는데, 힘으로 돌파하겠다는 아렌의 위협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바인드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태도가 건방지구나. 하긴 마스터정도라면 그럴 수 있기는 하지.”
심드렁한 아렌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변했고, 바인드의 안색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