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마나운용법을 익히고 오러를 손에 넣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기사다.
그러한 기사는 전장의 주역일 수밖에 없었고, 제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사의 육성에 주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기사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때로는 수십만의 대군보다 한줌의 비대칭 전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법이고, 이러한 비대칭 전력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기사는 탐나는 인재였다.
다만 명예에 집착하는 기사를 이런 일에 함부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고, 기사와는 상관이 없는 마나운용법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각양각생의 마나운용법은 시간이 갈수록 개성을 갖추게 되었고, 이제는 마나운용법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 * *
바인드의 안색이 일그러지며, 긴장으로 인해 전신에 힘이 들어찼다.
‘어떻게 알았지? 아니. 저 괴물이라면 당연한 건가?’
수대를 이어 내려오며 자온을 통치하고, 동남부의 암흑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정보길드에는 당연히 그 힘을 유지할만한 비밀이 있다.
특별한 마나연공법.
은밀성과 속도에 특화된 마나연공법이 그것이었고, 그림자라 이름 붙여진 마나연공법은 정보길드의 일원들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은밀한 암살자로 만들어 놓았다.
이름은 정보길드이지만 실상은 제국에서 제일가는 암살조직인 것이 이들의 실체였던 것이다.
시대를 걸쳐 개선을 반복한 그림자는 이제는 사람의 바로 눈앞에서도 은신이 가능할 정도였고 거기에 부가적인 효과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익힌 자의 경지를 완전히 숨기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오러마스터라고 할지라도 바인드를 본다면 그냥 건강한 일반인이라고 넘어갈 정도였는데, 아렌이 대번에 알아채버린 것이니 바인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길드원들의 몸에서 첨예한 살기가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바인드가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보길드 최대의 비밀이다.
암살자는 은밀성을 잃는 순간 그 전투력이 반 이하로 떨어지는 법.
이들이 아렌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건방지구나.”
아렌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을 굴렀 다.
툭.
발끝을 슬쩍 들었다가 바닥에 다시 가져다대는 별거 아닌 동작이었지만, 그 여파는 이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둥.
“크헙!”
“헙!”
아렌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 차있는 공기의 밀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한순간에 무게를 가진 공기가 가공할 무게를 가지고 정보길드원들의 몸을 내리눌렀다.
일순간에 전신을 감싼 수백 킬로에 가까운 무게에 정보길드원들의 몸이 일순간 비틀리면서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크으윽!”
경지가 높은 몇몇이 무릎을 꿇으며 무게에 저항했지만, 순식간에 정보길드 전체를 무력화시킨 아렌의 무위에 두 발로 단단히 버티던 바인드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양손을 뻗었다.
“멈춰라!”
소리와 기척이 전혀 없이 바인드의 양 손에서 뻗어나간 검은 빛이 아렌의 미간과 명치를 노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두 줄기의 선이 그어졌고, 찰나 간에 당도한 선이 아렌의 미간과 명치에 도달했다.
수백 킬로의 압력이 전신을 옥죄고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힘을 전개한 바인드의 무력은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너무도 빠른 빛에 아렌은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의 눈에 희열이 떠오르려는 그때.
탱!
검은 빛과 부딪친 아렌의 명치와 미간에서 붉은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쇳소리와 함께 빛이 튕겨나갔다.
“……뭐?”
바인드의 입이 벌어지고, 제각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희열의 빛을 띄우고 있던 정보길드원들도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툭.
그림자 특유의 검은 오러를 가득 머금은 비수 두 자루가 땅바닥에 꽂혔다.
아직도 시꺼먼 빛에 휩싸여 있는 비수는 바인드의 경지가 얼마나 고절한지를 증명해주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허망한 표정으로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는 그들의 귀에 아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따끔하군.”
마스터에 이른 암살자가 내지른 일격을 얻어맞고도 따끔하다고 평가하는 괴물의 말에 모두들 넋을 놓았다.
“답례를 해야겠지.”
우웅.
아렌의 말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나의 움직임을 느낀 순간 바인드는 결단을 내렸다.
수백 킬로에 이르는 압력이 전신을 옥죄고 있었지만 마스터에 이른 바인드의 움직임을 거침이 없었고, 암살자답게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었다.
“살려 주십쇼!”
쿵!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머리를 땅에 박아버린 채 온 몸을 웅크린 바인드의 모습에 어지간한 아렌도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 *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아렌의 신체는 블랙박스의 에너지를 정화하는 과정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신체가 이상적인 형태로 탈태한 것은 물론이고, 모든 마나를 부룡기공의 성장에 집중한 것으로 한없이 용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용의 비늘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이 아렌의 피부는 인간의 것을 한참 벗어난 강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위를 항상 호신기가 감싸고 있으니, 마스터가 내지른 일격에도 그저 따끔하고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외적인 충격보다 내적인 충격을 일으키는 것이 마스터의 공격이라지만, 아렌의 내부역시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지 오래였으니,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렌은 바인드의 솜씨에 내심 감탄했다.
제 아무리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아렌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의 구애를 벗어나는 일격은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의표를 찌르는 타이밍과 전혀 기척을 내지 않는 은밀성, 거기에 합쳐진 가공할 속도는 제 아무리 아렌이라도 반응할 수 없었다.
이미 보았으니 같은 종류의 공격에 다시 안 당하겠지만, 아렌이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그의 몸에 제대로 된 공격을 적중시킨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았을 때, 바인드가 솜씨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바인드가 자신의 앞에서 납작 업드린 모습을 보였으니, 아렌은 흥이 식으면서도 흥미가 돋았다.
“……제법이군.”
“감사합니다!”
마스터에 이른 무인이라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 마련이어서 목숨을 잃을지언정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기 마련인데, 미련 없이 저자세를 취하는 바인드의 모습은 확실히 색다른 맛이 있었다.
훅.
“아.”
김이 새어 버린 표정으로 아렌이 손을 젓자 장내를 누르고 있던 압력이 사라졌고, 정보길드원들은 몸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의자를 가져와라. 차도 있었으면 좋겠구나.”
“옛!”
눈치를 보고 있던 정보길드원 들 중 하나가 큰소리로 대답하더니 한순간 사라졌다.
마치 공간이 일렁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사라진 길드원이 다시금 허공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나타나더니만 탁자와 테이블을 꺼내놓았고, 다른 길드원이 공손한 자세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괜찮군.”
차를 한 모금 음미한 아렌의 말이 떨어지자, 길드원들의 몸에서 안도하는 감정이 피어올랐고, 머리를 땅에 박고 있던 바인드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앉아라.”
“넷!”
그런 모습을 본 아렌의 말에 바인드가 물이 흐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만 어느새 아렌의 맞은편에 공손하게 앉아있었다.
“쓸 만하군.”
“별거 아닙니다.”
기척이 전혀 없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아렌이 보기에도 꽤나 대단해 보였다.
아렌이 가지고 있는 무력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경지를 개척한 자.
그것이 아렌이 보는 바인드였다.
본래 자신에게 손을 쓴 자를 살려두지 않는 아렌이었지만, 직접 본 바인드는 확실히 아까운 면이 있었고, 아렌은 눈을 뜬 이후로 일관적으로 이어오던 자신의 태도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다.
“무례는 잊어 주마.”
“……옛.”
살의가 담긴 공격을 무례정도로 넘어가주니 묵직한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었지만, 앞으로 정보길드의 미래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바인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 대항했으면 모두 죽었을 거다.’
바인드는 암살자답지 않은 암살자였다.
선대에 일어난 모종의 일로 인해 정보길드는 암살업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바인드의 대까지 오게 되었다.
기술은 더욱 발전했지만, 이제는 암살자라기보다는 밀정에 가까운 정보길드는 암살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것에 반발한 몇몇이 정보길드를 나가서 소식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바인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암살자라는 것은 제 아무리 미화시켜보아도 결국 청부살인자고 암살을 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제 아무리 거대한 대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혈육과 같은 길드원들의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바인드는 하고 있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암살자라는 업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바인드는 판단했고, 그런 바인드의 뜻에 따라 정보길드는 그 정체성을 거의 변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바인드였기에 미련 없이 아렌에게 항복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용건부터 해결해 보자꾸나.”
“……경청하겠습니다.”
아렌의 말에 생각에서 빠져나온 바인드가 자세를 바로 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정보길드가 아렌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나오는 아렌의 말이 그들의 첫 번째 역할이라는 말.
무엇이든지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고, 음지의 인물들답게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바인드와 길드원들은 아렌의 입을 주시하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자온에 풀려 있는 영약이 있느냐?”
아렌의 물음에 바인드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길드원 한명이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최상급은 없지만, 하급에서 중급까지 다양한 종류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상급까지는 구해볼만 합니다.”
“그렇군.”
상급이상의 영약은 전략물자에 가깝다.
죽어가는 사람을 소생시킬 수도 있고, 기사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대마법의 촉매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
거기에 최상급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면 가보로 취급되니 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상급영약을 구해볼만 하다고 하는 것이 자온의 대단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형의 회복을 앞당길 수 있겠어.’
마스터가 속해 있고, 구성원 하나하나의 무력이 범상치 않은 조직이 자온이라는 도시만 지배할리는 만무하다.
모르긴 몰라도 동남부의 암흑가는 정보길드의 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힘이 아렌의 손에 들어왔으니, 하급이나 중급의 영약을 구하는 것은 여반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바인드의 눈을 응시했다.
깊고 어두운 눈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바인드는 정신을 바짝 차렸고, 아렌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마룡봉인체의 행방을 알고 싶다.”
“마룡봉인체 말씀입니까 …….”
얼핏 전달받기는 했지만, 진짜로 마룡봉인체의 정보를 요구하는 아렌의 모습에 바인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하나가 마스터는 우습게 보는 초인이니만큼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인물들이니 바인드로서도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바인드는 표정을 다잡았다.
“시간을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하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현상을 수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힘들다면 주변에서부터 수집하면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인드는 생각했다.
저간의 내용은 모르지만 바인드의 결심을 알아차린 아렌도 흔쾌히 동의한 것이고.
하지만 그 순간.
“마룡봉인체는 왜 찾지?”
음울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고, 아렌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