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9
069화
황제.
현 제국의 위세와 강역을 만들어 낸 불세출의 초인.
막 역동하기 시작한 카일룸 제국을 진정한 제국으로 만들어낸 위대한 지도자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벌여 제국의 영토를 넓혔고, 문물을 개선하여 평민들의 삶의 질을 한 단계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 제국의 시민들 중에 황제를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나이를 먹어 조용히 지낸다고는 하지만 언제 그 과격한 성향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주변국들을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의 이름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렇죠. 황제의 생각은 누구도 알 수 가 없죠.”
레티시아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범인과는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황제는 시민들은 몰라도 귀족들에게는 견제의 대상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이뤄진 황제의 업적은 만만치 않은 세력을 일구어냈고, 때문에 제국의 정치는 크게 황제파와 귀족파로 나뉘어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
“종전을 안 하고 있는 건 결국 그 때문이지.”
도리안의 한 마디가 황제의 속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한 절대권력.
하지만 전쟁이 끝난다면 권력은 축소되고 이전투구가 시작되니, 황제는 국경지대에서의 분쟁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황제에 대한 소문도 워낙에 많지. 금지된 비술을 사용한다던가, 정신 마법의 대가라서 눈빛만으로 사람을 세뇌시킨다던가, 심지어는 남색가라는 소문도 있더군.”
“······난 별다른 소문을 못 들었는데 그 정도냐?”
“북방이야 항상 바쁜 곳이니 다른 곳에 신경을 안 쓰는 거겠지.”
네이던과 트리안의 대화를 지켜보던 코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래도 황제 폐하신데 말씀들을 조심히 하시는 게 ······.”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유일한 평민인 코린이니 조심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없는 곳에서는 황제도 욕할 수 있는 법. 신경 쓰지 마라.”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황제를 욕하고 있군.”
자신의 말이 웃긴 것인지 피식 미소를 지은 아렌을 보며 도리안이 물었다.
“너는 황제를 어떻게 생각하지?”
도리안의 물음에 장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정 경지를 넘어선 초인은 권력을 무시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재해에게 인간의 법을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일행이 보기에 아렌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으니, 과장을 많이 보탠다면 아렌의 의중에 따라서 제국내의 정치 구도가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제국 내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괴물.
최소한 일행이 보기에 아렌은 그 정도의 위치는 되었다.
“별 생각 없다.”
아렌의 대답에 모두의 긴장이 풀려 버렸다.
“일단 난 황제에 대해 몰라. 그렇다고 제국의 다른 사람들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면 그냥 이대로 지내는 게 낫겠지.”
나직한 아렌의 말에 도리안이 웃었다.
“아쉽군그래. 제국이 한번 뒤집어지나 싶었는데.”
“그러네요. 보는 맛이 있었을 텐데요.”
도리안의 말을 받으며 레티시아가 웃었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엘레나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 ······.”
“뭐냐?”
평상시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태도의 아렌이었지만, 그런 아렌을 겪지 못한 엘레나는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오네트에 당한 사람은 몸의 자유를 뺏길 뿐이지 정신의 자유까지 뺏기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욱 잔인한 일이었고, 당연히 엘레나에게도 그간의 기억이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억은 무시무시한 아렌의 신위.
금성철벽과도 같은 자신의 육체를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시킨 아렌에 대한 공포가 엘레나에게는 뿌리깊이 박혀 버린 것이다.
“엘레나.”
그렇게 위축되던 엘레나의 손을 도리안이 잡았다.
어쩌면 이 세상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혈육이 주는 따스함에 엘레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엘레나를 본 아렌이 무심하게 말했다.
“감사받을 일은 아니다.”
미소 짓고 있는 도리안을 슬쩍 바라본 아렌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개자식을 놓친 게 마음에 걸리는군. 거기에 대한 비난을 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하지.”
별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아렌의 모습에 도리안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는 괜찮다. 그 녀석도 아예 무사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엘레나를 바라보는 도리안의 시선에 담긴 온기를 잃은 아렌이 말했다.
“동생은 걱정할 필요 없다.”
아렌의 심유한 눈빛에 엘레나가 흠칫했지만 아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강제로 연결을 끊어서 어느 정도 부작용은 각오했는데, 회복 속도가 남다르군. 조금 쉬면 괜찮아 질 거다.”
“그거 고마운 말이군.”
아렌의 말에 도리안이 크게 안심했다는 태도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불가사의할 정도의 오러 능력을 가진 아렌이 하는 말이니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군. 개자식에 대한 정보는 없나?”
“개자식의 이름은 밀드레드다. 밀드레드 드 콩쿠르.”
도리안이 밀드레드의 이름을 말해 준 순간, 아렌의 두 눈에 빛이 번뜩였다.
“호오.”
“왜 그러지?”
네이던의 말에 아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올라왔다.
“콩쿠르라는 말이지?”
아렌이 트리안을 보며 물었다.
“마크라는 자의 이름이 마크 드 콩쿠르 맞나?”
“맞아. 그런데 그건 왜 묻지?”
떨떠름한 표정의 트리안을 보면서 아렌이 웃었다.
“어쩌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구나.”
아렌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 *
“그나저나.”
아렌의 미소에 갑자기 내려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지, 트리안이 고개를 꺾으며 입을 열었다.
“그 밀드레드라는 녀석은 뭐냐? 거기에 다른 선배들은 또 뭐고? 아무리 봐도 그냥 학생은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트리안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밀드레드의 능력은 그렇다 치고, 주앙과 랜디, 셀리의 실력은 평범한 학생이 보일 만한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밀드레드가 주도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였으니 트리안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한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나도 밀드레드가 모임을 주도하는 녀석인 줄 알았지. 솔직히 말해서 밀드레드의 능력은 한 집단을 통솔하는 데는 최고의 능력이니까.”
소속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강화하는 마리오네트는 뛰어난 지휘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니 도리안의 의견은 타당했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도 만만치 않았단 말이지. 결국 밀드레드도 모임의 헤드는 아니라는 소리야.”
주앙, 랜디, 셀리의 능력을 떠올린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해볼 수 있겠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정보에 밝은 것은 너다.”
네이든의 말에 도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말과 함께 도리안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는 별.
장난감 같아 보이는 외형이지만 그 광채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렇군.”
별을 보자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네이던의 모습에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별 사냥꾼의 모임이겠지. 그것도 하나하나가 능력이 꽤 대단한.”
“또 뭐가 나오는 거냐.”
트리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교수도 동원할 정도의 모임이라는 거지. 그런 그 머리가 어떤 녀석일지는 상상도 안 가는군.”
트리안의 말에 일행이 헛웃음을 지을 무렵, 콜레트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근데요오.”
“왜 그러죠? 콜레트 양.”
레티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콜레트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담긴 호의에 힘을 얻은 콜레트가 말을 이었다.
“교수를 동원할 정도면 별을 모으는 것 자체는 쉬운 거 아닌가요? 그냥 막 뿌려도 될 거 같은데.”
양 손을 흔들며 말하는 콜레트의 말에 레티시아가 답했다.
“그렇게는 못해요. 최소한 별이 어떤 경로로 손에 들어갔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져야 하죠.”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인 레티시아가 말을 이었다.
“별은 학생회로 갈 수 있는 통로고 미래의 권력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에요. 거기에 사욕이 개입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다른 걸 떠나서 다른 파벌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고, 아카데미는 난장판이 되면서 별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겠죠.”
친절한 설명에 콜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든 생각인데 말이지.”
트리안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학생회는 어떤 집단이지? 상황이 이 이정도로 개판이 났으면 겉으로 나설 만도 한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잖아?”
“······그것도 그렇군. 생각해 보면 기숙사 학생회의 존재는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총학생회를 본 사람은 없는 거 같다.”
네이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총학생회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원래는 그러려니 했는데, 상황이 이쯤 되니 총학생회도 아카데미의 수많은 소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군.”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카데미는 유례가 없는 사건 사고를 겪었고, 말도 안 되는 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된 상황이다.
이쯤 되면 아카데미가 사실은 교육 시설이 아니라는 루머가 퍼져도 진지하게 의심해 볼 만할 정도였으니 네이던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총학생회는 존재한다.”
하지만 단언하는 도리안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확인했지.”
“근거는?”
도전적인 네이던의 표정에 도리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피렌사의 혈족이 총학생회에 속해 있다.”
* * *
“역시 대단한 가문이네요. 없는 곳이 없군요.”
조금은 비꼬는 듯 한 말투에 도리안의 시선이 레티시아에게로 향했지만 이내 고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진짠가요? 저는 듣지 못했어요.”
엘레나가 놀란 표정으로 도리안에게 물었고, 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우스가 총학생회에 들어갔다.”
“다리우스가 말인가요 ······.”
인상을 구기는 엘레나의 태도를 보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뭐.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덕분에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내가 확신하는 근거는 그거다.”
네이던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거 들을 만한 이야기가 나오는군.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라.”
도리안이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뭐?”
어이없어 하는 표정의 네이던을 바라보며 도리안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어떤 의무도 빚도 없다. 내가 신세지고 있는 건 아렌이지. 그런데 이런 정보를 아무런 대가없이 풀라고?”
한순간 변해 버린 태도에 당황한 일행이었지만, 이내 도리안의 말을 이해했다.
정보는 때에 따라서 무한한 힘이 되는 법이고, 현 상황에서 총학생회에 대한 정보는 가치를 따질 수가 없다.
그런 정보를 무상으로 요구했으니 셈이 맞지 않는 것이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본 도리안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너희에게 말하는 게 아니다.”
도리안의 시선이 아렌에게로 향했다.
“어디까지나 아렌과의 관계 때문에 말하는 거라는 것을 명심해.”
의자에 몸을 묻은 도리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