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8
068화
아카데미의 피해는 처참했다.
간략하게 집계된 것만으로 전체의 70%가 무너지거나 소실되었고, 파괴되어 버린 숲은 식물생장의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려야 복구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부르바스를 위시한 교수들과 아카데미 요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카데미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하루이틀 안에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카데미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고, 예정되어있던 몬스터 토벌을 통한 외부 수업도 중지되었다.
수습과 뒤처리, 몰려들기 시작한 귀족들의 항의까지.
악순환이 시작되었고, 결국 부르바스는 휴교를 선포하며 학생들을 아카데미 밖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 * *
“흡!”
짧지만 강한 호흡과 함께 롱소드가 허공을 갈랐다.
내려베기에 이은 가로베기, 사선베기, 찌르기 등의 동작이 이어지더니만, 이내 가슴께에서 멈춘 검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찌르기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하품이 날 정도로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벡스터는 진지했다.
전신의 근육을 조이고, 넘실거리는 오러를 한 점으로 갈무리한 채, 천천히 나아가는 검 끝을 노려보는 두 눈은 강인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땅 바닥은 벡스터가 흘린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그렇게 천천히 전진한 검 끝이 허공의 한 점에 닿았다.
팡!
강렬한 기세와 함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폭발하는 것처럼 반응했다.
믿기 힘든 기이한 일격이었지만 정작 벡스터는 만족한 표정을 짓지 못했다.
“후우.”
한숨과 함께 기세를 갈무리한 벡스터가 손을 쥐락펴락 하면서 중얼거렸다.
“아직 멀었구나.”
“그게 멀었다라······. 기준이 다른 건가, 보는 눈이 다른 건가?”
불현 듯 들려온 목소리에 자세를 바로 한 벡스터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도리안 공자.”
“좋은 아침이요. 벡스터 경.”
은발을 휘날리며 비범한 신태를 자랑하는 도리안이 환하게 웃었다.
외모와 기도만을 본다면 이상적인 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고, 젊은 기사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지만, 벡스터의 마음은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도리안이 나직하게 웃었다.
“특별한 주인 밑에 특별한 기사로군.”
“과찬이십니다.”
겸손하게 말하는 벡스터를 보면서 도리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경지는 분명 익스퍼트 중급인데, 방금 전의 검술도 그렇고 실질적인 전투력은 상급과도 어느 정도 비벼볼만 하겠어. 아렌의 수하라서 그런가? 만만한 자는 아니군.’
도리안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벡스터가 연무장을 정리하고 신색을 바로 했다.
“도련님께 갈 시간입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베로아가 나타나 시간을 알렸고, 벡스터가 도리안에게 양해를 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가 눈에 띄니 모든 것이 비범해 보인다.
도리안의 눈에는 아무런 무력도 없어 보이는 시녀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하여간 재미있는 녀석이야.”
피식 웃은 도리안이 주변을 돌아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아렌이 메카니 공작가로부터 인계받은 숲속의 저택.
도리안을 비롯한 아렌의 일행들은 이곳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참화는 아카데미 내부의 피해로 그치지 않았다.
아카데미를 넘어 도시로도 피해가 확산되었고 다행히 사상자는 적었지만 한동안 도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의 피해는 되었다.
문제라면 아카데미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
교역 도시의 역할도 하고 있는 유피테르인만큼,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충분했지만 이번의 참화로 숙박시설이 모여 있는 지구가 타격을 받았고, 졸지에 학생들은 노숙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생들이 부랴부랴 숙소를 찾기 위해 도시를 헤집었고, 유피테르 내부가 어수선해졌지만, 아렌의 일행에게는 다행히도 비빌만한 언덕이 있었다.
“시끄럽구나.”
이제는 붉은색이 입혀지는 숲을 바라보던 아렌이 밑에서 들리는 소리에 인상을 찡그렸고, 벡스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만 베로아는 담담한 얼굴로 아렌에게 말했다.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도 귀족의 덕목입니다. 특히나 그라인드 백작가의 적자이신 도련님이 학우들 몇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은 도련님의 명예뿐만이 아리나 가문의 명예에도 흠이 될 수 있는 일이에요.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아렌의 무시무시한 눈빛이 쏟아졌지만 베로아는 몸을 꼿꼿이 세웠다.
“쯧.”
충성심에 가득한 그 모습을 본 아렌이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자 벡스터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침실 밖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저택의 공터에는 트리안과 네이던이 대련을 펼치는 중이었고, 그 덕에 아렌은 아침잠을 설쳤으니 심통이 난 것이다.
“여! 일어났나!”
그런 아렌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 도리안이 손을 흔들며 웃었고, 다른 일행들도 아렌을 보며 아침 인사를 건넸지만 아렌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준비해라.”
“예. 도련님.”
벡스터가 밑층으로 내려가고 베로아의 도움을 받아서 의관을 정제한 아렌이 침실을 나섰다.
* * *
아렌의 저택이 위치한 곳은 제국의 유력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당연히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었고, 도시 내부에까지 번진 참화는 이곳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거기에 베로아의 꼼꼼한 관리까지 있었으니, 아렌의 저택을 본 순간 일행의 입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말 멋진 곳이네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넘치는 저택과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숲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본 콜레트가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유피테르 내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정도니까요.”
레티시아도 식당 밖으로 보이는 경치에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코린과 이런 곳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트리안과 네이던도 어색하게 앉아있었지만, 도리안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유가 넘쳤다.
“소문은 들었지만 소문이 반도 못 따라가는 느낌이군. 정말 이곳은 최고의 휴양지야. 그렇지 않느냐. 엘레나.”
“예. 오라버니.”
도리안의 옆에 단정히 앉아서 차를 홀짝이는 엘레나의 모습은 그림 같은 레이디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일행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넌 왜 여기에 있는 거냐?”
트리안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도리안을 노려보았지만, 도리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너희하고 같은 이유지. 친분이 있는 사이에 잠자리를 빌리는 게 이상한가?”
귀족의 교범 같은 모습으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도리안의 모습을 본 유나와 센드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지만, 트리안의 표정을 풀리지 않았다.
“서로 치고 박은 사이에 친분이라고? 내가 친분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는 거냐?”
으르렁거리는 트리안의 모습에 도리안이 가볍게 웃었다.
“원래 귀족 사이의 친분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다. 아직 더 배워야겠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가문의 교육을 모욕하는 발언에 트리안의 눈가에 흉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도리안은 여전히 웃을 뿐이었다.
“너 이 자식······!”
트리안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모두의 얼굴이 찌푸려졌고, 동시에 엘레나가 주먹을 쥐었다.
까드득.
뼈가 맞물리는 살벌한 소리가 엘레나의 손에서 울렸고, 트리안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공기가 가열되기 시작하고 유나와 센드가 구석으로 숨어버리던 그때.
“시끄럽다.”
베로아와 벡스터를 대동한 아렌이 계단을 내려왔다.
* * *
트리안의 기세가 죽고, 엘레나가 겁먹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좋은 아침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렌 공자.”
네이던과 레티시아를 시작으로 인사가 이어졌지만, 아렌은 찌푸린 얼굴을 피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내오겠습니다.”
주인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만큼 긴장할 만도 하건만 베로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공손히 말했고, 유나와 센드가 부지런히 주방을 왕복하면서 식사를 날랐다.
아렌의 식욕을 아는 만큼 끊임없이 음식이 이어졌고, 부지런히 음식을 섭취한 아렌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리는 것이 보였다.
“레티시아.”
“예. 아렌 공자.”
먼저 식사를 끝내고 아렌의 식사를 지켜보던 레티시아가 답했다.
“방음 마법진을 설치해줄 수 있나?”
뜬금없는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레티시아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가능하죠.”
“잘 됐군. 내 방에 설치를 부탁하마.”
“알겠어요.”
내막을 짐작한 네이던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아침잠을 설쳐서 심통이 난 거로군. 나도 돕지.”
룸메이트여서 아렌의 생태를 알고 있는 네이던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서린 긴장이 풀렸다.
제 아무리 일행이라고 하더라도 아렌은 초월적인 힘을 소유한 괴물.
전설의 영웅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것이 아렌이니 친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다.
어느덧 폭풍 같은 식사를 끝낸 아렌이 베로아가 가져다 준 차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의 수리는 언제쯤 끝날 거 같나?”
“글쎄? 일주일 이상은 걸리겠지만 보름까지는 아니겠지.”
도리안의 대답에 아렌의 얼굴에 놀랍다는 표정이 서렸다.
“빠르군.”
“마법사가 넘치는 아카데미니까 가능한 일이지. 복원 마법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네이던의 말에 새삼 아렌은 이곳이 무림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다시 새겼다.
그리고 그의 이목을 속이고 사람을 빼돌린 마법사의 존재 역시 그랬다.
“그놈들은 뭐지?”
아렌의 물음에 모두의 안색이 굳어졌다.
부르바스를 비롯한 아카데미 전력을 가볍게 밀어붙인 힘과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월적인 재생능력의 괴물을 그들도 보았던 것이다.
“······믿기지는 않지만 베럭과 마크라면 마룡을 해치운 12영웅이다.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살아있는지 모르겠군.”
트리안이 괴로운 음성을 내뱉었다.
세월이 지나 잊혔다고는 하지만, 12명의 영웅은 대륙을 구한 전설적인 영웅들이다.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는 귀족가의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트리안 역시 어릴 적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었는데, 영락한 현실의 모습을 보니 괴로움이 밀려온 것이다.
“아카데미는 워낙에 소문이 많지.”
잠깐의 침묵 끝에 도리안이 입을 열었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학생회에 있다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힘도 그렇고, 전쟁터에서 쉬쉬하는 금지된 기술의 출처도 아카데미라는 소문도 있어.”
가볍게 한숨을 쉰 도리안이 말을 이었다.
“그 중에는 아카데미 지하에 거대한 시설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뭐 도시괴담급이니 다들 웃어넘겼지만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니 허탈할 정도야.”
도리안의 말에 모두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쉽사리 입을 여는 자들은 없었다.
“······왜 아카데미 지하에 그런 살벌한 시설이 있는 거죠?”
얼굴에 두려움을 가득 떠올린 콜레트가 물었고, 도리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알 수 없지. 황제의 생각을 누가 알겠나?”
황제.
제국을 지배하는 이름에 모두의 어깨가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