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종유석이 가득한 자연동굴 안.
찰박찰박.
완전무장한 기사들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뒤따르는 병사들이 화톳불을 세워 시야를 확보했다.
“여기에 캠프를 설치하지.”
라울이 적당한 공터에 도착하자 지시를 내렸다.
“저희는 여기까집니다. 마스터의 건투를 기원하겠습니다.”
기사들이 가슴에 주먹을 대며 라울에게 경의를 표하고 병사들을 통솔했다.
“자, 그럼 공략팀 이쪽으로.”
라울의 부름을 받고 모인 이들은 단 두 명. 공략팀이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인선이 아니긴 했다.
“준비 마쳤습니다, 마스터.”
던전 공략을 위해 숏 스피어와 버클러를 장착한 켄이 검은 갑주를 입고 앞으로 나섰다.
갑주는 가죽도 금속도 아닌 특이한 재질이었는데, 게이트 공략 도중 상대했던 아머드 스콜피온의 껍질로 제작한 물건이었다.
무게는 가죽갑옷보다도 훨씬 가벼운 주제에 강도는 금속제 갑옷보다 튼튼해서 시착해본 기사들의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양산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앞으로 던전에서 안정적으로 재료 수급이 가능해지면 정식 장비로 채택할 예정이었다.
“마스터를 모시고 다시 던전 공략을 하게 되다니! 정말 무한한 영광입니다!”
또 다른 팀원은 아주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동굴에 들어선 이후 줄곧 라울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눈도장을 찍으려 애쓴 그는 바로 조쉬였다.
C등급 용병 출신으로 퍼스트 길드에 입단한 그는 전생의 용병왕 후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빠른 성장을 거듭해왔다.
게다가 그를 눈여겨본 제이크가 틈틈이 챙겨준 덕분인지, 소드유저 중급 수준이었던 그가 현재는 엑스퍼트 초급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다만 그 자유분방하고 특이한 성격 덕분인지 기사단에 편입되고 나서도 내부 임무보단 외부로 나돌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현재는 투리엄 지부 병력의 지휘관이자 던전 공략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조쉬 경. 기사 서임 이후 두어 달 만인가?”
“네, 두 달하고도 사흘만입니다! 그동안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찾아와 주실 줄이야! 이 조쉬, 오늘 최선을 다해 마스터를 보필하겠습니다!”
조쉬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감을 표했다. 그리고 슬쩍 꺼내든 것이 있었으니.
“여기, 마스터께서 맡기셨던 마법 램프도 잘 보관해 두었습니다. 오늘도 제가 마스터의 앞길을 환히 밝혀 드리겠습니다!”
라울은 솔직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넥트 세상에도 이렇게 사회생활 스킬 만랩 캐릭이 있을 줄이야.
단순히 아부만 잘하는 녀석이었다면 라울도 관심을 끊었겠지만, 놀랍게도 그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상사인 제이크는 이미 흐물흐물 녹아버렸고, 부하들의 신뢰도 상당했다.
얼핏 봐선 덜렁거릴 것 같은데,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전장에서 상황판단과 대처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용병생활을 겪어서 그런지 부하들을 꼼꼼하게 챙기니 평판이 나쁠 수가 없었다.
“하하, 조쉬는 오늘도 에너지가 넘치네. 그런데 이번엔 램프보다는 조쉬의 다른 솜씨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라울의 머리 위쪽으로 동굴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마법 조명 십여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어때? 조명은 이정도면 되겠어?”
“어. 고마워 라벨.”
오늘은 까만 오피스룩 원피스를 챙겨 입은 라벨이 라울의 어깨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럴 수가! 오늘은 라벨 님도 함께하시는 겁니까? 이 조쉬, 그 아름다우신 모습에 눈이 멀 것 같습니다! 제가 라벨님이 다치….”
“조쉬. 공략 중에도 그렇게 시끄럽게 굴 거야?”
“아닙니다!”
조쉬가 입에 지퍼를 채웠다. 하지만 라벨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행복해 보였다.
‘좀 조용해졌네.’
켄은 라벨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는 조용히 라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럼 간단하게 공략 방식을 설명할게.”
그리고 이어진 라울의 설명에 조쉬는 당연하다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켄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설명이 끝나자 켄이 약간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래서야 마스터 혼자서 공략하는 것과 다름없잖습니까? 저는 마스터의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긴 했지.’
엑스퍼트 중급의 기사에게 후방에서 낙오되는 잡몹 처리를 맡겼으니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 미리 얘기를 했던 것인데….
“크흠. 켄 님?”
그때 조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조쉬 경.”
“혹시 마스터와 함께하는 던전 공략은 이번이 처음이십니까?”
“그렇네만.”
그러자 조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일단 마스터의 말씀에 따르시지요. 직접 겪어 보시면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 그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조쉬가 대답하기도 전에 라울이 말을 끊었다.
“이만 출발하자. 오늘 중으로 공략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해.”
“네, 마스터.”
그렇게 인간 셋과 요정 하나로 이뤄진 라울의 파티가 ‘제이낙의 던전’의 공략을 시작했다.
* * *
촤라락! 스걱!
찬란한 황금빛 선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끼에에엑!”
그리고 그 황금빛 선에 수십, 수백 조각으로 잘려나가는 반투명한 영체들이 고주파의 비명을 쏟아냈다.
후두둑. 팅!
작은 입자로 몸이 흩어지며 소멸하는 영체들에게서 작은 보석 같은 물체들이 떨어져 내려 던전 바닥에서 반짝였다.
‘이, 이게 뭐야?’
켄은 눈앞을 어지럽히는 황금빛의 향연에 멍하니 넋을 놓았다.
맥없이 바닥을 향해 늘어져 있는 숏스피어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각종 함정과 미로로 악명높았던 던전 초입부는 그야말로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가장 앞장서 일행을 이끄는 라울은 마치 이 던전을 직접 설계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길을 찾아나갔다.
그의 감지력은 단 하나의 함정도 놓치지 않았고, 시스템을 활용한 맵핑(mapping)과 라벨의 방위탐지 마법, 그리고 조쉬의 직감이 더해지자 미로는 평범한 골목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초입을 가볍게 통과한 일행을 맞이한 것은 두 개의 동상이 놓인 작은 방과 그 너머의 직사각형 통로였다.
수많은 모험가를 잡아먹은 곳으로 악명 높은 ‘돌아오지 않는 통로.’
본격적인 던전의 진입로였다.
방 안에 놓인 동상 중 하나에 이름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제이낙’. 이 던전의 이름이었다.
제이낙이란 인물은 맨손에 주먹을 움켜쥔 자세를, 그리고 옆의 동상은 부러진 창대를 들고 서 있었다.
오랜 세월로 인해 동상이 마모되고 훼손된 모양이었지만, 형태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한동안 켄이 동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이미 수많은 모험자를 맞이한 동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렇게 통로를 지나자 다시 자연동굴 같은 지형이 나타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습격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제대로 움직일 거야. 뒤쳐지지 않도록 해. 조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마스터! 뒤는 맡겨 주십시오!”
갑자기 둘의 템포가 변하자 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빨리 움직이지 않았나?’
그리고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라울의 진짜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백여 개에 달하는 손바닥 크기의 비도가 라울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일행에게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말 그대로 썰어버렸다.
과거 게이트를 공략할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컨트롤 하는 비도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비도에 담긴 기운의 크기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해졌다는 점이었다.
그때의 비도는 약간의 마나를 담아둔 정도였다면, 지금은 담겨 있는 에너지가 마나 블레이드처럼 밖으로 형상화될 정도였으니까.
‘역시 마스터! 볼 때마다 강해지시는 구나. 역시 저분 곁에 머물러야 나의 천재성도 빛을 발할 텐데….’
조쉬의 눈빛이 존경과 선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보석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탁, 타다닥.
양손에 들린 것이 집게가 아니라 검이었다면 누가 봐도 절세의 고수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조쉬의 눈에 멍하니 넋놓고 있는 켄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보다 선임 기사라지만 경험이 부족하니 그가 잘 이끌어줘야 했다.
“켄 님! 그렇게 넋 놓고 계시면 마스터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숏스피어는 잠시 집어넣으시고 빨리 떨어진 것들부터 수거하세요!”
조쉬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켄이 그의 손에 들린 집게를 한번 쳐다보고는 물었다.
“설마 나보고 집게를 잡으란 말인가?”
“그럼 구경만 하실 겁니까? 설마 지금 저 장면을 보고도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아니시겠죠?”
그러자 켄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싼 황금빛 비도들을 올려다보고는 자신의 숏스피어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이러려고 던전에 들어온 게 아닌데….’
의기소침하게 인벤토리에 무기를 집어넣는 켄의 모습을 바라본 조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챙겨두었던 집게를 건넸다.
“상급 기사분들 정도 되지 않으면 전투로 마스터를 돕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대신 이렇게 전리품이라도 대신 챙겨놓으면 공략 속도가 빨라지니 마스터도 만족해하시죠.”
라울이 켄을 데려온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조쉬의 입장에선 켄 또한 자신처럼 전리품 수거를 위해 따라온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두 사람이 영체들이 떨어뜨리는 ‘영석(靈石)’을 수거해 주자 라울이 한결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발견된 위치는 조금 다르긴 해도 던전 내부는 변한 게 없네.’
한편 라울은 감회가 새로운 듯 던전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비도들이 아니었다면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제이낙의 던전.
루벤 왕국 수도 근처에 위치한 이 던전은 전생에도 배도현이 가장 먼저 클리어했던 곳이었다.
꽤 많이 알려진 곳이고, 수많은 모험가와 귀족 가문의 병력들이 공략을 시도했음에도 고배를 맛본 최고 난이도의 던전.
그런 던전을 솔로 플레이어 배도현이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곳이 ‘초능력자’ 전용 던전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피스트 마스터, 혹은 격투 마스터로 알려진 제이낙은 실제론 초능력자였다.
이 던전은 그가 후세의 초능력자들을 위해 준비해 둔 일종의 시험장이었고, 모종의 이유로 초능력자들이 사라진 커넥트 대륙에선 이 던전을 돌파할 수 있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절친한 친구였다고 알려진 다른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그리어 후작가의 선조란 말이지.’
전생의 배도현은 그 사실을 몰랐기에 제이낙의 유산만 챙겨 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가 굳이 켄을 데려온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혼자서 공략하는 편이 훨씬 빠르겠지만, 눈앞의 보물을 알면서도 놓치고 갈 순 없잖아?’
전생의 켄은 뒤늦게 던전을 찾았음에도 선조의 유산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스피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그리고 라울이 직접 그녀를 인도해서 유산을 얻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럼으로써 라울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단순히 부하 한 명을 마스터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어 후작가. 지금은 숨을 고르며 다시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잠룡의 가문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일단 라울의 계획이 생각대로 진행 되었을 때의 얘기였다.
살짝 마음이 급해졌는지 라울의 걸음걸이가 조금씩 빨라져갔다.
‘크헉, 마스터! 너무 빠르잖아요!’
집게를 들고 뒤따르는 조쉬의 이마에선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