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49
제149화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멜빈 백작은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간 피폐해진 몸 상태는 둘째 치고, 마나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간 수련해 온 기사가 마나를 잃는다는 사실은 목숨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멜빈 백작의 관심은 자신의 몸 상태보다 영지의 상황에 더 쏠려 있었다.
“…그래서 제이든 자작이 지금 어디 있다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게리엇 남작령에 머물고 있습니다.”
라울은 백작이 쓰러지고 난 후에 영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백작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이야기를 들었다.
“…하, 다 내 잘못이구나.”
멜빈 백작은 사실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타고난 자질과 꾸준한 노력으로 젊은 나이에 대단한 검술 성취를 거두면서 가문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그 특유의 호탕하고 대범한 성격과 성취에 따른 카리스마는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었고, 결국 백작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가 백작위를 계승하고 난 뒤, 제대로 뒤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부 측근들이 제이든 자작을 어떻게든 손봐야 한다고 했지만, 멜빈 백작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차피 승계는 끝난 일이고, 멜빈 백작은 굳이 형제들의 피를 보지 않고도 백작가를 잘 이끌어나갈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제이든 자작이 상속받은 영지를 팔아넘기는 몰상식한 짓거리를 벌이긴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큰 탈 없이 백작가는 순항해왔다.
멜빈 백작의 카리스마는 불만을 가진 영주들을 억누르기에 충분했다.
또한, 정치보다 백작령의 내치와 실력 향상에 주력한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아서, 실력 있는 기사단과 강병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가 이번 게이트 사태를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내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고.
‘하지만 내가 너무 물렀던 모양이구나.’
태양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카리스마 넘치던 백작이 쓰러지자, 그동안 불만을 품어왔던 이들이 준동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설마 큰형인 제이든 자작이 다시 영지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라울과 딜런의 대처를 보면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으니….
‘녀석들, 나보다 낫구나. 이렇게 잘 자라줬으니 더 바랄 게 없겠어. 이제 나도 은퇴할 때가 되었나 보군. 이것도 다 신의 뜻인가?’
마스터가 되기 위한 수련을 거듭하며 멜빈 백작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만났다.
그건 여태까지 그가 마주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한계점.
벽을 두드릴 때마다 ‘너는 거기까지다’라는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결국, 벽을 뛰어넘기는커녕 이제는 마나조차 다룰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어찌나 분했는지 백작의 입에선 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고, 이불을 움켜쥔 손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그렇게 백작이 손에서 힘을 빼려던 바로 그때.
“포기하실 겁니까?”
“…뭐?”
“소드 마스터. 백작령. 다 포기하실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라울아.”
백작이 눈을 번쩍 뜨며 라울을 바라봤다.
라울 또한 그 눈을 피하지 않으며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다 포기한 듯한 표정 짓지 마십시오! 그건 결코 아버지, 그리고 백작가의 가주가 보여주실 모습이 아닙니다!”
“……!”
“아버지가 쓰러지신 거? 비겁한 놈들이 치졸하게 독을 썼을 뿐입니다. 영주들의 이탈? 어차피 처리했어야 할 쓰레기들이었을 뿐입니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마나가 없으면 껍데기뿐인 그런 분이셨습니까!”
흥분으로 약간 붉어진 라울의 얼굴을 바라보던 멜빈 백작이 손을 올려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크크큭, 크하하, 푸하하하!”
침대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턱.
백작이 곰 발바닥 같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라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애비가 몹쓸 모습을 보였구나. 그래, 이런 건 나 멜빈 드 애쉬튼의 모습이 아니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그를 뛰어난 검사로 만들었고, 백작가의 가주로 만들었으며 세 아이의 아버지로 만들어 준 것이다.
‘포기…? 웃기지도 않는군.’
55년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었던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라울의 말처럼 별것도 아닌 공작에 흔들릴 정도로 그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내가 여기까지라고? 운명이라고? 이딴 게 운명이고 신의 뜻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 부숴버리겠다!’
적어도 저렇게 아버지를 믿고 있는 아들 앞에서 다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멜빈 백작은 각오를 다졌다.
꾸드드득.
“크허헝!”
마치 맹수가 울부짖는 것 같은 괴성을 지르며 축 처져 있던 멜빈 백작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쪼그라들었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며 입고 있던 환자복이 찌지직 찢겨 나갔다.
“그오오오!”
드드드드드득!
몸을 일으킨 백작이 힘을 집중하자 그의 몸을 중심으로 마나의 파동이 진동하며 물체들을 밀어냈다.
“아, 안 됩니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마나를 움직이시면 다시 마나역류가 일어나거나 마나로드가 터질 수도 있어요!”
나키아가 경악한 눈초리로 소리치며 백작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백작에게 다가가려는 그녀의 움직임은 라울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째서…?”
“누구에게나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법이지. 아버지는 지금 그걸 되찾고 싶으신 거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라울은 즉시 길드통신을 열었다.
「필립, 지금 즉시 저택 5층의 경비태세를 강화하도록. 아니 본관 전체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허락 없는 이의 출입을 전면 금지한다.」
「네, 마스터.」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딜런 형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저택에 접근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통제해. 책임은 내가 진다!」
그 사이 백작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고 있었고, 불규칙한 마나의 파동이 방안을 휩쓸고 있었다.
“나키아, 지금 즉시 이곳과 밖을 차단하는 결계를 설치해줘. 할 수 있겠어?”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벨! 이곳의 마나를 안정시키고, 아버지에게 보조 마법을 걸어줄래?”
“맡겨두라고!”
라벨이 날개를 펄럭이며 백작의 머리 위로 날아가 가루를 흩날리며 요정의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라울이 레그나토르를 발동하자 황금빛 갑주가 그의 오른팔과 상반신 절반을 덮었다.
이윽고 광휘의 아우라가 터져 나와 백작의 몸에 따뜻한 빛을 내리쬐었다.
“흠. 역시나…. 뭔가가 백작의 마나홀을 억제하고 있어. 그의 마나량과 경지, 몸 상태가 불균형한 이유가 있었구나.”
레그나토르가 발동되며 모습을 드러낸 카르데나스가 신중하게 백작의 상태를 관찰하더니 내린 결론이었다.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이건 본인의 의지나 경지의 문제가 아니라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서.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듯하구나.”
아마도 신에 필적하는 존재의 힘이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 카르데나스였다.
“끄으윽! 크핫!”
백작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쓰러졌을 때의 모습처럼 몸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고, 핏발이 서면서 혈색도 푸르스름하게 변해갔다.
“역류 초기증세예요! 이대론 정말 위험합니다. 마스터, 뭔가를 하시려면 서둘러 주세요!”
나키아의 경고 섞인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라울이 과격하게 그의 몸을 미쳐내는 마나의 파동을 견뎌내며 백작의 앞으로 다가섰다.
“아버지 제 말 잘 들리시죠?”
라울의 목소리에 신음성을 흘리는 백작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아버지의 마나에 생긴 문제. 그리고 앞을 가로막은 벽은 일종의 저주와 같은 겁니다. 우리 가문을 질시하는 누군가가 걸어놓은 치졸한 수작이죠.”
파지직.
백작의 분노에 마나가 더 격동했다. 라울은 그 파동을 손으로 걷어내며 다시 말했다.
“물론 아버지의 힘으로도 그런 저열한 저주 따위 언젠가는 깨버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이 우릴 가만두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백작가에는,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힘이 필요합니다!”
라울이 길드창을 띄웠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 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부디 신의 축복을 나누어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 지긋지긋한 벽을 깨부수고 저희와 함께 싸워주세요!”
마치 환상처럼 길드 가입 여부를 묻는 글자가 백작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쩌저정.
세상이, 그리고 시간이 멈춰버렸다.
-[경고] 플레이어는 현재 강제 시나리오의 메인 시나리오 NPC에 개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경고] 메인 시나리오 NPC에 문제가 생기면 시나리오에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을 멈출 것을 권고합니다.
-강제 시나리오 오류 계산 중…….
-해당 강제 시나리오 [애쉬튼 백작가의 몰락]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현 가주 멜빈 백작에 걸려 있는 강제력이 해제될 경우, 플레이어 라울이 얻을 수 있는 3281개의 연관 퀘스트가 모두 소멸할 수 있습니다.
-[애쉬튼 백작가]에서 ‘라울’의 영향력이 급감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라울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창.
라울은 차가운 눈으로 내용을 확인하고는 작게 속삭였다.
“X까.”
-강제 시나리오 [멜빈 백작의 사망]이 완료되면, 플레이어 라울에게 [새로운 백작가의 주인], [막내의 반란], [애쉬튼 백작가의 구원자] 등 13가지의 히든 에픽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드넓은 영토와 강력한 기사들이 가득한 애쉬튼 백작가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커넥트 시스템의 플레이어 맞춤형 시나리오를 따라주십시오. 머지않은 미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경고] 만일 플레이어 라울의 개입으로 [애쉬튼 백작가의 몰락] 강제 시나리오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이번 시나리오 동안 플레이어가 달성한 27개의 연관 퀘스트 보상이 모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경고] 비틀어진 시나리오로 인해 시스템 강제력이 플레이어 라울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까고 있네.”
좋은 게 있으면 진작에 주던가.
‘어차피 백작가는 줘도 안 가질 생각이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그리고 퀘스트 보상 좀 못 받는다고 안 죽는다. 퀘스트가 없어진다고? 정말 그럴까?
시나리오가 없어진 자리엔 새로운 시나리오가 등장하기 마련.
겨우 말장난 같은 경고로 라울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쓸데없는 경고창 띄우지 말고 새로운 시나리오나 만들어 내라고.’
라울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일해라, 제작자!”
와장창.
멈췄던 세상이 유리조각처럼 깨지고 라울은 어느새 다시 백작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가입 승낙]허공에 떠 있던 글자가 반짝이며 빛을 발하자 백작의 몸에서 터져 나오던 마나의 파동이 일순 멈춰버렸다.
“모두 빨리 방 밖으로 나가!”
카르데나스의 외침에 라울이 백작 머리 위에 떠 있던 라벨을 낚아채고, 문 앞에 서 있던 나키아의 허리를 껴안은 채 방(결계) 밖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잉, 쿠과과과!!
그리고 라울이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백작의 몸을 중심으로 광풍이 몰아치며 무시무시한 마나의 폭풍이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웃! 이게 무슨!”
“모두 몸을 낮추고 방에서 떨어져!”
방 밖에서 몸소 경비를 서고 있던 필립이 기사 둘을 붙들고 천천히 방에서 멀어졌고, 라울 또한 나키아를 부축해 거리를 벌렸다.
그오오오.
저택 내부에도 마나의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다행히 일반인들은 아까 내보낸 상태였다.
“결계는 어디까지 완성했지?”
“방을 중심으로 하나, 저택 중심으로 하나를 설치했어요. 조금 불안하긴 해도 저택 밖까진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겁니다.”
거리를 벌린 나키아는 바닥에 마법 지팡이를 세우고 결계에 마나를 주입하고 있었다.
예상외로 거친 마나 파동에 결계 유지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택을 둘러싼 결계는 내게 맡겨.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어.”
라벨 또한 자그마한 마법 스틱을 꺼내 벽에 새겨진 마법진을 보강하고 있었다.
“허허허, 수많은 마스터의 탄생을 지켜보았지만, 이 정도 반동은 처음이구나. 이미 예전에 도달해야 했을 경지가 억지로 틀어막혀 있었으니…. 과연.”
카르데나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파동의 중심지를 바라봤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이 탄생할지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그리고 라울은 두 주먹을 굳게 쥔 채 마나의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덧없이 시나리오의 흐름대로 끌려가는 인생은 사양이었다.
‘두 번째 삶. 이제 시나리오는 내가 직접 만들어 나간다!’
라울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거칠게 불타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