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4
374화
신성그룹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그룹이다.
여기에서 1위로 꼽히는 건 당연하게도 시가총액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진정으로 1위에 꼽히는 이유는 신성그룹이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기업,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계열을 분리하였지만 대한민국을 주름 잡는 대기업이 인맥으로 얽혀 있다.
뿐만 아니라 신성그룹 출신으로 정계는 물론 고위관료로 진출해 있고 그 영향력이 구석구석 뻗어 있어 신성공화국이라는 명칭이 약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거대한 그룹을 이끈 이영문 회장은 시대의 거인으로 불렸다.
본래에도 재계 서열 1위였긴 했으나 마물의 등장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 사회 속에서 그룹을 수습하고 최적화를 통해 체질 개선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법으로 규제를 하기 전 신성 길드를 만들어 기어이 대한민국 최고로 올려놓았다.
기업으로 국내 1위, 길드로 국내 1위인 곳은 세계 어느 국가를 둘러봐도 찾아볼 수 없는 성과였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신성가의 둘째 이세희였다.
고작 20대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거둔 성과는 실로 눈부셨다.
이영문의 지원 아래 신성 길드를 대한민국 최고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고, 신성그룹이 다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낸 게 그녀였다.
무능하던 이세찬이 식물인간이 되고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신성그룹은 그녀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실력을 지닌 그녀였지만 거대한 제국을 노리는 자들은 많았다.
기존에 이영문을 따랐다가 숙청된 사장단과 그들이 배치한 실무진, 죽어버렸지만 이세찬을 따르던 사람들까지.
그들은 이영문이 죽기 전 대부분 힘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몇 가지 운과 이유가 겹쳐 다시 고개를 치켜들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최준호의 실종이다.
이세희와 밀접한 관계이자 세계최강의 초인으로 불렸던 그는 신성그룹을 반석에 올려놓은 빅뱅 시리즈의 개발자였다.
막강한 힘을 발휘함에 있어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그는 반대편에 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지면서 이세희는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사라지게 되었다.
둘째는 기존 신성가 인척들의 지원이다.
계열 분리를 통해 직접 회장 자리를 노릴 수 없게 되었지만 집안의 일원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입김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지막은 그녀를 향한 질투였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자 길드의 수장. 여기에 아름다운 미모와 각성자로서 우수한 실력까지.
모든 걸 갖춘 이세희는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모든 걸 거머쥔 그녀의 추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쉽지 않아.”
이세희는 이 모든 보고를 받으면서 쓰게 웃었다.
시시각각 억지로 조여 오는 상황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오늘 있는 파티도 반강제적으로 참여가 결정된 상황이었다.
정부에서 도와준다면 좀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듯한데,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 가해지는 압박을 보면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던 것일까.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그룹을 위한 것이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자신이 손에 쥔 걸 빼앗으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갖가지 이유를 가져다 붙였을 것이다.
“가기 싫네.”
하지만 가야 한다.
여기에서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만든다는 걸 의미했다.
자신감을 가진 상대는 지금보다 더 거침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이걸 왜 지켜보고 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간단했다.
아직 그룹 장악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영문의 죽음 이후, 최준호의 실종까지의 시간이 극히 짧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건 비서실장이었다.
“회장님. 지시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그럼 가죠.”
“예? 하지만…….”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드레스코드를 맞추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세희는 현재 편안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상류층 연회이니 만큼 각양각색의 드레스가 등장할 게 분명했다.
“굳이 그 부분에 신경 쓰고 싶지 않네요.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불편한 심리를 감지한 비서실장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이세희의 뒤를 따랐다.
*
* *
“…….”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의 연속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이세희는 정다현의 연락을 받았다. 본래 오늘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던 정다현은 갑작스러운 일로 불참을 선언했다.
어떤 일인가 싶어 거듭 물어보았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개인적인 일이라고 할 뿐.
“…이럴 거면 미리 얘기라도 해줄 것이지.”
절친이자 최준호에 이어 최연소로 초인이 된 정다현은 현 시점에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다.
그녀가 있기에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빠져버리니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고 있는 착각을 받았다.
예전이라면 절대 느끼지 않았을 감정이다.
이세희는 정다현이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낸다고? 그거 다 필요 없어.”
대체 자신을 뭐로 보는 건지.
아니다, 정다현의 반응은 현재 자신의 상태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걸로 생각해볼 문제였다.
“나도 약해졌구나.”
최준호가 실종되고 1년, 안팎으로 하도 시끄럽다 보니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곳이 많고, 그 결과 의지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가 마른다는 건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처음에는 의연하게 대처했으면서도 자꾸만 뒤숭숭하게 만드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점점 대세가 넘어가는 걸 느끼고, 대다수가 점점 그 사실을 믿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고립된다.
자신은 그저 최준호가 살아있다고 믿고 기존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 브레이크가 망가진 폭주기관차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럴 때 최준호라도 나타난다면 단번에 상황을 뒤집어버릴 수 있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희망회로보다 불길한 느낌이 더 잘 맞아떨어지는 법이다.
최준호가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이유가 있음을 의미했다.
“…회장님?”
“네.”
상념에 빠져있던 그녀를 끄집어낸 것은 운전기사의 목소리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가죠.”
어디다 정신을 놓고 다니는 건지.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이세희가 밖으로 나와 연회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뒤따르는 비서실 인원은 재계 서열 1위 회장님답지 않게 적었지만 이세희는 개의치 않았다.
연회장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 담긴 의미심장함이 전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때 한 무리 사람이 이세희에게 다가왔다.
“어? 회장님이다.”
“언니.”
말을 건 것은 방계로 분류되는 수연 호텔 그룹의 정인혜였다. 면세점과 백화점을 함께 거느리고 있는 그룹의 오너로, 이세희가 등장하기 전 가장 능력 있는 재벌가 여성 회장으로 꼽혔다.
아직 수연그룹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룹 회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영광이네? 본가의 회장님에게 언니 소리도 들어보고.”
“장난 마요.”
“난 진심인데?”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질투심이지. 참 추한 모습들이야.”
정인혜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난 우리 세희를 지지하니까 저 사람들하고 같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그래요?”
“헤드 브레이커가 어처구니없이 죽었을 거래 상각하지 않거든. 신성그룹을 너보다 더 잘 이끌 사람도 없어 보이고.”
“잘 아시네요.”
“그래,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내가 아는 세희지. 잘 해봐.”
“언니도요.”
어린 시절부터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였기에 서로를 편히 대할 수 있었다.
“인철 오빠도 움직이고 있어.”
정인혜의 오빠인 정인철은 차기 수연그룹 총수로 유력한 인물로, 정인혜와 대립 관계에 놓여있다. 또한 이세찬이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잠깐이지만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다.
하지만 품성이 방정맞고 경영 실적이 이세희와 비교해도 민망한 수준이어서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끝난 줄 알았는데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나보다.
“워낙 눈치 없이 나대는 양반이라 꽤 실수를 저지를 거야. 조심해.”
“제가 걱정해야 돼요?”
“하긴, 그 양반이 걱정되어야겠지? 근데 난 걱정이 안 돼.”
정인철과 정인혜의 대립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을 넘으면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죠.”
“잘못하다 여기서 개망신 당하겠네.”
말과 달리 정인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제 최준호만 오면 완벽할지도?”
“그 이름이 왜 나와요.”
“예쁜 사촌동생 속 썩이는 망나니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번 보면 따끔하게 얘기해야겠어. 다현이랑 둘 중 확실하게 정하라고.”
심각하게 굳어있던 이세희의 표정이 풀렸다. 그것이 정인혜가 의도한 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노력마저도 고맙게 느껴졌다.
“됐어요.”
“오올,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거야?”
“아뇨, 그랬다가 언니 머리가 부서질 수 있어서요.”
“에이, 설마. 과격하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 장난 가지고 머리를 부순다고?”
“…….”
“지, 진짜구나.”
“상상을 뛰어넘는 사람이에요. 재밌는 분이죠.”
“재미있다기보다는 아무리 봐도 미친 거 같은데.”
“직접 보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는 마요. 그러다 큰일 나니까.”
“어렵네, 어려워.”
고개를 젓는 정인혜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뒤 이세희는 연회장 중앙으로 향했다.
정재계 인사들은 물론 인기 스타들도 와 있는 이곳이야 말로 별의 세계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이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 거 같았지만 이세희는 느끼고 있었다.
안부 인사인 척 다가오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려고 하고, 은연중에 그룹이 형성되어 자신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걸.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질 보이지 않는 견제였다.
‘어렵지 않아.’
이세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은 최준호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도와줄 우군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죽음은 밝혀진 바가 없다.
최준호가 준비해둔 우호 지분은 여전했고 자신은 확실한 실적을 거둬 증명했다.
여기에 전대 회장인 이영문이 직접 지목한 후계자가 자신이다.
공포를 확산시키는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저 짜증나는 인간들의 얼굴만 치우면 더 오래 버틸 자신이 있고.
“세희야.”
정인혜가 예고했던 대로 저 멀리서 190cm의 체구 좋은 중년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단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지냈어?”
“기왕이면 호칭을 붙여주세요, 정 회장님.”
“사촌지간인데 좀 편하게 대할 수도 있지.”
“부탁드릴게요, 정 회장님.”
“…어쩔 수 없군.”
이세희에게 친한 척 굴던 수연그룹 후계자, 정인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요즘 힘들다고 들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친척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가늘게 뜬 정인철의 눈에 탐욕이 묻어나왔다.
“넌 괜찮다고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아.”
“잘 모르겠네요.”
“헤드 브레이커는 죽었다.”
“…….”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나오자 이세희가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인철은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네게 가장 큰 우군이 되어줬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최준호는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 더 늦다가는 너도 적으로 간주되겠지.”
“준호 씨는 안 죽었었어요.”
“시체가 확인되지는 않았지. 하지만 1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죽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거야.”
“회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나만이 아니라 주변이 다 그래. 하지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정인철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날을 세우지 말고 주변을 둘러봐. 널 도와줄 사람이 많아.”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달콤한 말을 쏟아냈다.
“세희 넌 이미 멋진 성과를 보였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지. 좋은 남자도 만나서 가정도 꾸리고.”
가장 먼저 하려는 것이 헤드 브레이커와 분리.
그 틈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조언을 가장한 간섭을 묵묵히 듣던 이세희가 말했다.
“절 위해 하는 말이었나 봐요.”
“맞아,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 가족이죠.”
그게 비록 부질없는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잘못되면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피가 연결된 사이는 맞다.
이세희는 싱긋 웃었다.
자신의 말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정인철도 웃었다.
“마침 회장님이 도와줄 방법이 하나 생각났어요.”
“그래? 뭐든지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
이세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내 눈에 띄지 말아줄래요?”
“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냥 가만히,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좋겠다고요.”
“…….”
정인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남자에게 미쳐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보구나.”
“착각하는 건 회장님이겠죠.”
“착각? 난 현실을 보고 있는 거다. 지금 네 행동은 신성그룹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거야!”
“제가 보는 거랑 많이 다르네요.”
“최준호는 죽었다. 죽은 시체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기어이 같이 침몰하겠다고?”
그럴 일이 벌어진 적도,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준호가 죽었다고,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심장이 아파왔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불쑥 끼어든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살아있으면?”
“뭐?”
잔뜩 화가 난 정인철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따라서 시선을 옮긴 이세희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순간 연회장에 적막이 깔렸다.
그것이 자신들의 대화 때문이 아니다.
이곳만이 아닌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를 뒤집어버릴 파급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해서다.
파티의 주인공인 것처럼 잘 차려입은 잘생긴 청년.
불과 방금 전까지 정인철이 죽었다고 떠들던 최준호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발산되는 기세는 매우 사나웠다.
최준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세희를 지나친 그는 정인철 앞에 섰다.
“살아 돌아왔는데, 어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