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
4화
내가 푼 문제집을 살펴본 윤희의 표정은 심각했다. 소신껏 풀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한데?”
“반성 중이야.”
“진짜 반성하는 거 맞지?”
“맞다니까. 진실된 눈, 안 보여?”
“진심이 하나도 안 느껴지니 문제지, 이 화상아.”
한숨을 푹 내쉰 윤희가 말한다.
“애초에 다른 과목은 안 그러잖아? 다 맞기도 했고. 이 과목은 왜 이런 건데?”
“하하.”
윤희가 흔들어 보이는 ‘윤리’ 문제집을 보며 나는 웃기만 했다.
“문제가 어려워?”
“난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틀리더라.”
“당연하지! 오빠는 빌런의 격멸부터 거론하니까!”
“그게 정답 아냐?”
“아냐!”
참다못해 소리를 지른다.
“납득 못 하겠어도 무조건 외워! 윤리 과목에서 무조건 최우선적으로 하는 건 시민의 안전이야! 시민의 안전! 이걸 전제로 세워 둬야 한다고!”
“빌런을 제거하면 시민의 안전도 자연스럽게 보장되잖아”
“닭이냐 달걀이냐가 아냐! 무조건 시민의 안전을 생각해! 공무직 헌터는 시민의 안전을 외치니까. 그럼 중간은 갈 거야.”
“알았어.”
“이 과목만 잘하면 되니까, 응?”
타이르듯 말하는 말에 나는 앵무새처럼 몇 번이고 대답했다.
혹시 용돈이 부족해서 화난 건가 싶어 용돈을 줬다가 욕만 더 먹었다. 내 잘못이 맞나 보다.
근데 내가 준 돈은 안 돌려주더라.
여하간 오랜만에 해 본 공부는 꽤 재밌었다.
예전에는 왜 멀리했는가 의아함이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우수한 엘리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건 굉장한 메리트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었다.
내가 되고자 하는 공무직 헌터에서 요구하는 건 결국 힘이었다.
정의감을 요구하는 윤리 과목도 존재하지만 판에 박힌 정답을 원할 뿐. 이걸로 응시자가 빌런인 걸 걸러 낼 변별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의를 표방한다. 무엇이 정의일까. 정답은 제각각이지만 무언가를 지켜내는 것이 정의로 표현되고 숭고한 가치로 평가받는 건 분명했다.
빌런은 그 대척점에 선 존재. 뺏고 말살하고 파괴한다.
이 사실에 깨달은 점이 있다.
“그럼 나도 정의로울 수 있다는 거잖아?”
현시점 민간인 최준호는 선량한 시민이다.
공무직 헌터가 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빌런 취급받을 일도 없고.
지금의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생에 그토록 바래왔던 것이 이렇게 손쉽게 넣을 수 있던 거라니.
왜 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지키기 위해 왜 무기를 드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러려면 시험에 합격하는 게 먼저겠지.
윤희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무고한 시민을 지키는 게 최선이다.’
근데 그러려면 빌런의 씨를 말려야 하니 빌런부터 제거하는 게 맞지 않나?
윤리 과목, 은근히 어려웠다.
* * *
공무직 헌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성이다.
그 외에 보는 시험들은 최소한의 교양 수준.
각성 능력이 80%라면 나머지가 20% 정도다.
커트라인은 60점.
고등학교 수준의 난이도라더니 맞는 말이다.
국어, 외국어, 한국사, 윤리를 차례대로 시험 본 뒤 실기 시험이 이어졌다.
실기장에서 이루어지는 실기시험은 각성 단계의 증명이다.
최소한의 능력만 보유하고 있으면 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공무직 헌터다.
어중이떠중이 각성자들이 모였다는 인식처럼 모여든 면면도 각양각색이었다.
“아씨, 왜 이리 붙기 힘들지?”
“각성만 하면 붙는다며?”
“그러니까. 이번엔 붙겠지.”
“한 번 붙으면 철밥통이니까, 꼭 붙어야지. 안 붙으면 다 뒤집어 버릴지도.”
저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예전 생각이 났다.
세상에 대한 불만, 증오는 빌런이 되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날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슬래쉬’ 오종엽도 대기업 헌터 취직 준비를 하다가 여러 번 고배를 마시고 사고 쳤다가 빌런이 되었었지.
그 실수만 아니었으면 공무직 헌터로 눈을 낮췄을 거라 한탄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저들도 시험에 떨어지면 불만과 증오를 풀지 못할 경우 빌런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싹이 보이는 걸 미리 자르는 것도 과연 정의일까.
정다현은 어떻게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한쪽에서 소란스럽더니 누군가의 외침이 실기장을 뒤흔들었다.
“어? 정다현이다!”
“뭐? 정다현?”
“정다현이 왜 여기에 왔어?”
사람들의 시선이 모습을 드러낸 정다현에게 집중되었다. 나 또한 안으로 들어오는 정다현을 발견했다. 그녀는 오늘 옅은 메이크업에 흰색 블라우스와 블랙진으로 청순함과 늘씬한 몸매를 한껏 부각했다.
바야흐로 각성자가 주도하는 시대.
강함의 척도로 레벨을 평가하고 그들이 올린 성과를 온갖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소모되고 있다.
정다현은 매년 집계 되는 대한민국 최고 유망주(20-22세)에서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거기에 빼어난 미모와 대기업에서 국가수호국으로 옮긴 독특한 이력까지 더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었다.
근데 그녀가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빌런들을 잔인하게 제압한 손속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서 감시하기 위해?
의심 한가닥이 생길 무렵에 시선이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시험은 잘 보셨어요?”
“예, 잘 봤습니다. 사무관님은 어쩐 일로?”
“나라를 위해 일할 분들이 모인 자리인데 오는 건 당연하죠.”
다소 들뜬 눈으로 날 훑었다.
“그리고 탐이 나는 인재도 있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데요?”
“뭘요. 이렇게 미리미리 움직여야 안 뺏기거든요. 빌런전담반, 유능한 분들이 많이 필요해요.”
진지하게 정다현의 말을 경청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게 일반적인 형태인 겁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무관님 정도 되는 분이 찾아오는 경우 말입니다.”
“평범하진 않겠죠?”
역시나.
“왜냐면 준호 씨 같은 인재가 흔치 않거든요. 이만한 인재가 등장하면 먼저 선점해야죠. 그 관점에서 흐름을 보면 자연스럽죠.”
“영광입니다.”
“당연한 행동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합격하시면 저희 측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정다현이 뜨거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름답게 꾸며 놓고 바라보면 주변의 시선이 심상치 않잖아.
설마 내게 이목을 집중시켜서 경거망동 못 하게 하려는 건가? 아무래도 나에 대한 의심도 존재하는 것 같으니 주의해야겠다.
“합격하는 게 먼저인 거 같습니다.”
“준호 씨가 불합격을 걱정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실기는 걱정 없는데 필기가 걱정돼서요.”
“아······!”
“그래도 동생한테 꿀팁을 받았으니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실기 시험 기대할게요.”
정다현이 면접관이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었다. 보통 사람이면 관심이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분 좋기도 하다는데 난 왜 자꾸 머릿속으로 증인들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부터 드는 걸까.
“평범하기도 힘드네.”
작게 툴툴거린 뒤 실기시험에 들어갔다.
* * *
6급 공무직 헌터인 임해철은 옆에 앉은 정다현을 바라봤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다. 실력에서 오는 당당함과 올곧은 신념, 그걸 더 빛내 주는 미모까지.
특히 오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작년에 보고 반한 뒤 줄곧 대시를 해 왔지만 돌아온 건 냉정한 거절.
근래 들어서는 아예 마주치지도 못했었다.
“사무관님이 오실 줄 몰랐습니다.”
“흥미가 생겨서요.”
“사무관님이 흥미를?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흥미가 생기네요.”
“······.”
“그리고 우리는 빌런 체포에 협력해야 하는 사이 아니겠습니까? 좀 더 돈독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죠.”
“괜찮아요.”
“예?”
“빌런전담반의 예산으로도 충분해요. 임해철 주무관님의 호의는 말만으로도 감사해요.”
철벽, 철벽이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정다현의 대답에 임해철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근데 사무관님이 관심 갖고 계신 응시생은 누굽니까?”
“저분이요.”
“음,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훌륭한 분이에요. 언락을 비롯한 강도들을 제압한 게 저분이에요.”
“그 얘기는 저도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 눈빛은 뭐란 말인가.
정다현이 응시생을 바라보는 눈은 자신조차 받아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더 낫다는 걸 보여 주는 수밖에.’
정다현 앞에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면 생각이 바뀌겠지.
아니, 그걸로도 부족했다.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뒹굴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팔 하나를 자르고 눈을 파버리면 정다현도 저렇게 바라보지 못하겠지.
평소에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던 들끓던 살기가 허무할 정도로 치솟았다.
억지로 웃은 임해철이 말했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가 저 응시생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주무관님이?”
“그럼 사무관님이 판단하기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
“아니요,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저 응시생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에 사무관님의 관심을 끄는지.”
“힘드실 텐데.”
그 한 마디에 임해철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제가 말입니까?”
“네.”
“허락한 걸로 알겠습니다.”
최준호를 바라본 임해철은 더 이상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 * *
실기시험의 각성 증명은 매우 간단한 과정이었다.
각성자는 능력을 개화하면서 각각의 단계로 표현되었는데, 레벨 1의 충격량을 보여 주면 합격이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충격량은 물론, 대련과 각종 상황에서 대처 능력, 생존 서바이벌까지 벌인다.
그에 비하면 공무직 헌터 시험은 단출하기까지 하다.
응시하는 인원의 실력 차이에 기인하겠지.
차례대로 시험을 보고 내 차례가 되자 다시 시선이 집중됐다.
전직 빌런 출신이라서 그런가. 역시 시선집중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보는 시선이 많으면 다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부터 들거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직 평범함에 도달하려면 멀었다는 이야기겠지.
실기 시험을 응시하려고 할 때 얍삽하게 생긴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응시생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지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 사이 앞으로 나선 얍삽이가 내 앞에 섰다.
“6급 공무직 헌터 임해철 주무관이다.”
6급이라는 말에 웅성거림은 커져 갔다.
윤희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볼 때, 젊은 나이 6급이면 레벨 3-4에 해당하는 실력자였다.
공무직 헌터로서 촉망받는 인재고, 언제든지 대기업으로 이직이 가능한 실력.
내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죽어 나가던 불나방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왜 대놓고 살기를 풍기는 걸까.
설마 전생을 꿰뚫어 보는 기프트라도 보유한 걸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일별하곤 얍삽이에게 물었다.
“왜 저는 대련인지?”
“응시생의 실력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이 있다.”
그러면서 얍삽이가 정다현을 힐끗거렸다.
“겁나면 거부해도 좋다. 실기 시험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테니.”
“이런 경우가 흔합니까?”
“당연히 흔하지 않다. 눈여겨 볼 사람이 아니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거든. 우리가 인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이렇게 대련으로 실력을 알아본다. 나도 그랬지.”
그러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다.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걸 보아 한 판 붙어 보고 싶나 보다.
“적당히 힘 조절을 해주지.”
얍삽이는 날을 세우지 않은 철심 박힌 목검을 들었다. 베지는 못해도 상대를 두들겨 주는 용도로 딱 어울리는 검이었다.
“검을 들어라.”
“저는 이거면 됩니다.”
“무투 계열인가보군.”
검을 든 녀석의 자세는 꽤 정석적이었다. 빈틈을 찾으려는 집요한 눈길과 검 끝에 실린 거력. 조금씩 방향을 찾아 나가는 발끝까지.
기본 교육을 잘 받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녀석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기술적인 부분 교육은 잘 됐을지 몰라도 타고난 성품이 교만하여 승승장구하더라도 주제 파악을 못하다가 강자 앞에서 죽을 운명이다.
주위를 빙빙 돌던 녀석에게 틈을 드러내자 득달같이 달려든다.
강맹한 기세가 담긴 검이 어깨를 노렸다. 그런데 담겨 있는 힘이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포스, 각성자가 운용할 수 있는 힘이 살기와 함께 실려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걸 잡았다.
“······!”
경악이 번져 가는 얼굴을 마주하고 검을 잡아끌자 겉면 나무는 산산조각 나고 속의 철심은 찌그러졌다.
“어어?”
앞으로 끌려 나온 녀석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위기 본능이 발휘한 녀석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서 어깨 갑옷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쯤이면 될 것 같아서 왼손을 놓을 때였다.
“죽어!”
살기가 폭발하며 숨겨 둔 단검으로 내 심장을 찔러 왔다.
“헉!”
“지, 지금 뭐하는!”
모두가 기겁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저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색욕마 임해철.
저번 생에 수백 명이 넘는 여자들을 희롱하고 살해한 빌런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헌터 출신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나중에는 피해자의 피까지 빨아서 짭혈종이라 불리며 내 이름에 흠집을 냈었지.
덕분에 내 존재가 다시 부각돼서 수백 명이 넘는 헌터가 내 뒤를 쫓았다.
당연히 다 죽였고.
미래의 빌런이라 싹부터 남다른 듯해서 나는 손속의 사정을 두지 않기로 했다.
오른손으로 단검을 쥔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손목이 으스러졌다. 기뢰의 기파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팔의 모든 뼈를 다져 놓았다.
“끄아악!”
얍삽이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려 했지만 녀석을 잡은 손에 힘을 줘 끌어들였다.
날 죽이려고 했던 놈을 곱게 놔둔 적이 없다. 당연히 자기 죽을 각오도 해야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녀석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준호 씨!”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여기서 죽이면 불합격이지.
녀석의 목을 향하던 손의 궤적을 바꿔 어깨를 움켜쥐었다. 움푹 꺼지면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이어 반대 어깨도 부서졌다.
털썩!
내 손에 벗어난 얍삽이가 눈을 까뒤집은 채 그대로 허물어졌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종료 선언에 대기하고 있던 응급요원들이 달려와 얍삽이를 응급조치하기 시작했다. 사위에 깔린 침묵 속에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정다현이 굳은 표정으로 날 불렀다.
“최준호 씨.”
“네, 사무관님.”
“절 따라오시죠.”
“알겠습니다.”
난 조용히 정다현의 뒤를 따랐다. 무슨 얘기를 할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근처 백반집이었다.
된장찌개를 주문하는 걸 보면서 적잖이 감탄했다. 음식 보는 안목이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정다현이 사과했다.
“임해철 주무관 건은 죄송합니다.”
“사무관님이 왜 사과하죠?”
“임해철 주무관이 준호 씨의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는 걸 제가 동조했습니다.”
“나쁜 의도였나요?”
“그건 아닙니다. 임해철 주무관이 준호 씨의 실력을 보고자 했고, 저도 나쁜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근데 시험에 불이익이 있을까요?”
“아니요.”
정다현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살기를 보인 것도 임해철 주무관이고 손속이 과해진 것도 임해철 주무관입니다. 준호 씨에게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시험만 합격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보다 슬슬 참기 힘들어졌다.
“이제 먹어도 됩니까?”
나는 앞에 놓인 된장찌개를 가리켰다.
정다현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된장찌개 싫어하는 건 아닌지?”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서 못 먹습니다.”
“드셔보세요. 제가 추천하는 맛집이에요.”
“그래요?”
“예!”
정다현의 호언장담에 나는 호기심이 들어 수저를 들었다.
한입 먹은 뒤 조용히 엄지를 세웠다.
* * *
“오빠! 시험은?”
“잘 봤어.”
“윤리 과목도 잘 봤고?”
“네가 시킨 대로 했어.”
“진짜? 거짓말 아니지?”
“어, 정다현도 합격할 거라고 했어.”
“정다현?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시험 감독으로 왔더라.”
“정다현이 합격할 거라고 했으면 합격하겠네. 답안지는 어떻게 작성했는데?”
“당연히 네가 가르쳐 준 대로 했지.”
윤희가 얘기했던 걸 상기하고 적은 내용을 말하자 녀석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이 미친 인간아! 그렇게 쓰면 떨어진다고!”
* * *
그 시각, 공무직 헌터 시험지를 채점하는 심사위원들은 한 응시생의 답안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