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38)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희는 부경유통 쪽에서 들어온 신고를 접수하고….
“그러니까요. 그 신고 접수 처리가 왜 힘 있는 대기업들 위주로만 이렇게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거냐고요.”
―…….
“그리고 이게 접수를 해 줄 사안입니까? 그냥 들어오는 신고는 아무런 자체 검열도 없이 무조건 상대방 업체 쪽으로 발송서를 보내고 그러는 겁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길래, 내가 불렀다.
“이사관님?”
―네, 말씀하시죠. 듣고 있습니다.
“우리 공정 거래합시다.”
상대 쪽에선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공정 거래하자고요. 그쪽에선 매장 수수료 측정에 자기들만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잘나가는 유명 해외 브랜드들에 한해서는 8퍼센트, 5퍼센트, 심지어 어떤 브랜드는 브랜드 자체가 유통판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3퍼센트 아래로까지 잡아 준다고 하네요.”
―…….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봅니다. 브랜드의 인지도, 수준이 다 다른데 어떻게 모든 브랜드에 다 똑같은 조건을 적용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중간에 낙오하는 브랜드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거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랜드가 도태되는 건 시장 경제 안에선 어쩔 수 없는 내용이고, 브랜드들 쪽에서도 이런 시장의 구조를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뇨,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왜 유통판은 자기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네?
“대기업이라서요? 지금처럼 이런 문제가 터지면 정부 기관이 앞으로 나와서 중재를 해 줄 거기 때문에요?”
―그게 무슨….
“우리 재경은 더 이상 부경유통이 매력이 없는, 태영유통과 비교를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통판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부경유통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들을 상대로 입점 평가를 내리고 거절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체적으로 우리 브랜드들을 노출시킬 유통판으로 부경유통이 매력이 없다고 자체 평가 판단, 입점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거라고요. 여기에서 공정위가 관여할 내용이 뭐가 있습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우리 편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해당 보이콧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골프 웨어 퍼스펙티브.
영업부 차준영이가 진행 중인 골프 웨어 대여점 영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 과장님이 이 기획안 디테일을 잡아 보라고 하셨을 땐 몰랐는데, 대여점 쪽으로 상품을 풀어놓고 보니까 그 전엔 안 보였던 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바쁜 와중에도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차준영이를 따로 불러 응원도 해 줄 겸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거요?”
“SNS를 위해 골프를 다니는 사람들 있잖아요.”
“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SNS를 꾸미는지 혹시 아세요?”
“뭐 그냥 사진 잘 나온 거 몇 장 건져서 올리고, 스웩한 흔적 남기는 거 아닌가?”
아마 나는 상상을 못 할 거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차준영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금 과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겠지만, SNS에 영혼을 파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떻게요?”
“한 번 라운딩 나갈 때 그런 대여점에서 옷을 세네 벌씩 따로 챙겨 가는 거예요.”
“왜?”
“중간중간 그늘집 들릴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거죠.”
“허, 허허….”
“그래야 자기가 라운딩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늘집에서 갈아입고, 코스 바뀔 때 갈아입고… 그렇게 한 번 라운딩을 나갈 때 세네 번 정도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죠. 그래서 주마다 한 장씩 올리는 거예요.”
“천재들인데?”
얼굴 표정을 바꾸며 차준영이 말했다.
“방송이나 다른 프로 골퍼들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브랜드 노출은 아주 잘 됐습니다. 그리고 약점이 될 줄 알았던 국내 브랜드라는 부분이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젊은 층들을 상대로 프리미엄을 얻고 있는 거 같고요.”
“그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네?”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식이 아니라, 애초에 이런 방향에서 결과물들이 올라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식의 전달이 보고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차준영 씨에 대한 신뢰가 더 쌓이는 거 아니겠어요?”
“아….”
“조금만 더 애써 주세요. 스너프, 태영백화점 쪽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중이잖아요.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왜 있는 건지 알아요?”
“……?”
“더 빨리 가라는 말이 아니에요. 살아남으라는 말이에요.”
“그게 무슨….”
“물이 빠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건 둘째 치고, 썰물에 갇혀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식사합시다.”
시니어즈의 돌풍 역시 굉장했다.
전년 대비 매출 성장 620퍼센트.
물론 620퍼센트에서 400퍼센트 정도는 방돔 지사를 끼고 진행 중인 수출 물량이 커버를 해 주고 있는 거지만, 국내 시장의 성장도 괄목할 만한 수준.
시니어즈의 메인 모델로 채서린을 섭외한 미래기획의 선택은 적중했고, 그와 동시에 매 화 배우들이 시니어즈 제품을 입고 방영되고 있는 악녀검사의 성공은 나의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5.9퍼센트라는 전국 시청률로 출발한 악녀검사.
단 2화 만에 첫 방송 시청률에서 3.8퍼센트나 더 치고 올라가 9퍼센트 후반대를 기록했다.
많은 종편 채널들이 등장을 하며 시청률 갈라 먹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아주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요즘 시대엔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적이라고 하는데, 그 성적을 악녀검사가 거둬들였다.
그리고 11퍼센트 시청률로 시작된 3화부터는 요즘 시류대로 국내 OTT 3사에 동시 상영이 되어 51개국에 수출이 되면서 큰 화제성을 일으켜 냈다.
그렇게 부경유통에 대한 보이콧이 4달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결국 부경유통의 장선열이가 백기를 들고 홍준이에게 만남을 청했다.
* * *
서류까지 다 챙겨서 와
임시 주주 총회 소집 명령.
법원에서 들어온 총 7장의 임시 주총 소집 명령서를 받아 든 장선열, 부경유통 회장은 허탈한 웃음을 끊임없이 토해 내고 있었다.
공정위를 통해서도 건드려 보고, 세무 관련 법조계 인맥을 이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방향의 돌파구가 번번이 다 막히고 말았다.
특히 재경 그룹의 특별 세무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법조계 인맥을 통했을 때, 큰조카 장민수의 처가인 배씨 집안에서 재경 그룹을 감싸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만 했다.
바로 그때쯤 장선열 회장은 큰형님네에서 자신이 아닌 재경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허허, 허, 허, 허허허허….”
회장의 그런 괴기한 웃음을 지켜보는 임원들의 모습에도 함께 허탈한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돈줄이 막히고, 방향이 막혔다.
그 모든 게 막히기까지 4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둘째 형님 쪽으로도 막힌 돈줄을 뚫어 달라 부탁을 넣어 봤지만, 우호 지분을 그런 식으로 외면한 역량을 비꼬는 소리만 들어야 했다.
우호 지분.
후회가 물밀 듯 밀려오고 있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둘째 형님의 지적이 정확한 것이고, 이건 피아 식별이 겨우 가능해진 어린아이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내어 놓을 테니.
부경유통에게 있어 재경, 둘째 누님은 최대 우호 지분 파트너.
그냥 우호 지분 파트너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12퍼센트라는 경영권을 넘볼 수 있을 만큼의 막대한 양을 거머쥐고 있는 파트너였던 셈이다.
그 정도 지분 파트너라면 떠받들었어야 맞는 것이었건만, 도대체 그 당연한 걸 왜 못 했단 말인가.
지난 20년 넘는 세월, 너무 그 자리에 그림자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으셨기에, 그렇게 계시는 누님의 존재를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일까?
그 어떤 방향에서 지난 실수를 되짚어 봐도 이 사달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고, 공격의 명분은 재경의 것이었다.
지난 4달 동안 부경유통은 일방적인 재경 그룹의 보이콧으로 회복 불능 상태의 갑질 기업 이미지를 안게 되었다.
여기까지인가….
정녕 부경유통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임원들은 생각했다.
지금 자신들 앞에서 바닥까지 드러내고 있는 회장의 모습은 더 이상 과거의 장선열 회장이 아니었다.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기질이 강한 인물임엔 틀림없지만,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룹 임원들을 끌고 나가는 힘만큼은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부경가 안에서 막내아들이라는 이유로 호텔 사업과 함께 가장 덩치가 작은 백화점 사업을 분사시켜 물려받았지만, 지난 20년간 장선열 회장이 일궈 놓은 결과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처음 백화점 사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부경의 백화점 사업은 부경가의 장녀가 가져간 호텔 사업보다도 부실했다.
그걸 지난 20년간 더 이상 호텔 사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수준으로 그룹화를 성공시켰고, 면세점과 아웃렛은 업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태영유통을 수차례나 앞질렀다.
어디 그뿐인가.
그 수많은 외국계 유통 브랜드가 한국으로 들어와 국내 마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때마다 태영마트와 함께 시장을 지켜 낸 인물이기도 하다.
탑을 공들여 쌓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장선열 회장의 무기력한 모습이 뭘 뜻하고 있는지, 임원 회의실 안으로 모여 있는 인물들 그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허허, 허허허… 이게 지금… 지난 긴급 이사회 때 소액 주주 연대가 신청한 회계 장부 열람 신청을 거절해서 일어난 일이란 말이지?”
해당 이사회 당일 소액 주주 연대 쪽 신청에 부결권을 행사한 임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입을 꼭 다물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회계 장부 열람 신청 부결이 만들어 낸 파장치고는 상황이 너무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
해당 신청이 들어왔을 때에만 해도 소액 주주 연대의 지분 수는 0.18퍼센트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한 분기 이상 길어지는 주가 폭락, 덩치 큰 기관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 빠르게 손절을 치고 떠난 외국 투자자들….
주식이 반토막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소액 주주 연대의 지분 수는 이상하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엔 더 이상 빠질 게 없다고 판단한 개미 투자자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만 했지, 이게 감히 부경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부경유통 쪽으로 걸린 작전일 거란 의심은 전혀 못 했다.
0.18퍼센트대를 유지하고 있던 소액 주주 연대의 지분 수는 빠르게 0.54퍼센트까지 치고 올라왔고, 기업의 비정상적인 경영을 민간 차원에서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법원을 통해 임시 주주 총회 소집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장 회장은 법원에서 통과시킨 임시 주총 소집 명령서를 받아 들었다.
해당 내용으로 주총이 열리게 된다면 상대는 틀림없이 경영권 교체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일말의 의심도 없는 카드다.
소액 주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재산이 경영진들의 무능으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보이콧 이슈의 전말이 장선길 회장의 브랜드 측, 입점 업체 측을 상대로 펼친 의미 없는 유통판 마진 갑질, 브랜드 군기 잡기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있는 상황이고.
지금의 상황에서 장선열에겐 소액 주주 연대가 꺼내 들 카드를 막아 세울 여력이 없었다.
대한민국 유통 역사상, 지금의 부경유통만큼 대기업이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재경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부경이 간판을 올렸던 시기엔 최소한 IMF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명분 앞에 무너지는 재경을 많은 사람은 아쉬워하고, 걱정을 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기업 최고 위기가 찾아왔고, 이 위기 앞에 부경유통을 걱정하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다.
명분에서 졌고, 피아 식별을 잘못한 전략, 전술… 모든 면에서 크게 져 버린 전쟁이다.
그럴싸한 전투가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허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전투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재경 쪽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방어만 하다가 허무하게 전쟁 자체를 내어 준 꼴이 되어 버렸다.
그제야 장선열은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릇된 명분이 모든 걸 앗아 간 일방적인 전쟁이었다는 걸.
* * *
장선열 회장이 직접 재경 그룹 본사 회장실을 방문했다.
어색한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장선열 회장은 도대체 어떤 말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가운데, 손홍준 회장이 “할 말 있으면 해. 만나자고 해서 있던 약속까지 다 취소시키고 기다리고 있었어.”라며 먼저 입을 열었고 시작된 대화 속에서 앞뒤 잴 것도 없이 장선열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자형,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손 회장은 침묵했다.
애초에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제가 이렇게 빕니다. 제가… 미쳤습니다.”
하지만 장 회장의 부탁 앞에서도 손 회장은 그 어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잠시?”
“네, 자형. 제가 분수를 몰랐어요.”
“내가 봤을 땐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아니라, 이제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 거 같은데?”
“…….”
“하긴, 내가 자네 앞에 앉혀 놓고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줘. 그간 자네한테 섭섭했던 마음들이, 자네 말처럼 채신머리없이 이 자리에서 나온 거 같으니까.”
“자형한테 제가 채신머리없다고 말했던 건….”
손 회장은 단호하게 손을 들었다.
“서로 사정 이야기하자고 보자 했던 거면, 곤란해. 자네 사정, 부경유통 사정은 꼭 자네 입 통해 직접 안 들어도 알 만큼은 충분히 다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제가 자형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그러지 마. 꿇는다고 바뀌는 거 없더라. 나도 꿇어 봤거든. 자네 아버지, 돌아가신 장인어른 앞에서.”
“…….”
“그때 처음 알았어. 내 무릎은 돈이 안 된다는 거. 그리고 아무도 내 무릎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주지 않는다는 거.”
“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