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3)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3화
조기축구회 감독 덕분에 서울 UTD의 테스트를 위해서 고척동으로 향하는 길.
“서울에서 테스트 볼 바에는 수원이 낫지 않아?”
아버지는 서울 UTD 유소년팀 테스트를 받는 게 내키지 않는 듯 연신 수원 대성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자기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거기까지 어떻게 왔다갔다 해?”
“이사 가면 되잖아?”
“이사 갈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냐?!”
“지금 집을 팔면…….”
“아버님이랑 아빠한테 뭐라 말할 건데?”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손자가 넷이라는 행복을 가까이에서 만끽하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합심해서 사준 집이었다.
“아… 그래도 서울은… 아….”
아쉬운 소리를 계속 하셨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이 시대에 힘없는 가장이여…….
내가 위로라도 해주고 싶지만, 나도 수원으로 이사 가는 건 반대다.
나야 어디를 가도 상관없긴 한데 문제는 따로 있거든.
“오빠, 오늘 합격하면 이제 축구 선수 되는 거야?”
“엉아, 다와써?”
내년이면 초등학교 들어갈 둘째 가을이와 유치원에서 행복한 다섯 살 여름이가 새로 이사한 곳에 적응해야 하니까.
여름이는 둘째치고, 가을이는 초등학교 적응시킨다고 병설 유치원까지 보냈는데, 그게 말짱 꽝이 되는 건 좀 그렇잖아?
“엄마 쉬!”
게다가 세 살밖에 안 되는 막내 겨울이까지 애를 셋이나 데리고 이사를 해야 할 엄마가 고생하는 것도 싫고.
“아버지, 제가 잘해서 서울이 아니라 해외에서 데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캬! 우리 아들 멋지네! 그래, 그것도 좋겠다. 자기야, 국내파보다 해외파가 좋은 거 아니야? 그지?”
“아니, 그렇게 되면 우리 이민가야 하는데?”
아, 그게 또 문제네.
“그땐 어쩔 수 없지! 우리 장남을 생각해서 이민 해야지!”
“아… 근데 왜 수원은…….”
“그만.”
“……어.”
입술을 비죽이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가 내가 애를 다섯이나 키운다며 핀잔한다.
“하하하.”
다시 돌아온 지도 7년은 됐는데 저 모습을 보면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
“엄마, 아버지.”
“응? 왜 그러니, 아들?”
“왜?”
“내가 이따 테스트 잘하면 좋겠어요?”
“그러엄, 당연하지!”
“얼마 잘할까요? 내가 제일 잘하면 될까요?”
“그럼 아주 좋지?”
엄마의 말에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쉽지 않을걸, 가자마자 거기 애들이랑 시합 뛰는 걸로 테스트한다 들었거든.”
“어머, 그래? 거기 소속된 애들은 축구한 지 오래된 애들 아냐?”
“뭐… 빠르면 유치원 때부터 하는 애들도 있긴 하더라. 아무튼, 쉽지는 않을 거야.”
글쎄, 과연 그럴까?
나만 알 수 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고척 스카이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축구장에는 벌써부터 빨갛고 검은 서울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패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 인조잔디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인조잔디에서 뛰어본 게 은퇴 전 한국에서 애들 데리고 자선행사 했을 때였던 것 같은데.
물을 적당히 먹은 잔디와 다른 결의 미끄러움과 잔디 사이에 잔뜩 뿌려진 고무칩이 느껴진다.
아, 이 고무칩, 신발 속에 들어가면 신경 쓰이는데.
“조봉수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내가 아버지가 새로 사준 축구화를 신고 잔디를 밟고 있을 때 서울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아버지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조봉수 감독은 조기축구회 회장님의 지인으로 U-15의 감독이었다.
“네, 맞습니다.”
“네, 저는 드림 오브 서울 UTD 코치 정한율입니다. 테스트 보고 싶다는 아이가 이 아이인가요?”
“안녕하세요, 윤태양입니다.”
정한율이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참 예의 바르고 씩씩한 친구네요. 태양이라고? 축구 재미있니?”
“네! 엄청 재미있어요!”
“친구들이랑 축구 해본 적은?”
“아직은 없어요.”
“그래…….”
정한율의 표정이 흐려진다.
경험이 없다고 하니 좋을 리가 없지.
“규칙은 알고 있니?”
“네, 규칙은 알아요! 축구 경기 매일 보거든요.”
“그래, 오늘은 저기 있는 친구들이랑 축구를 할 건데 할 수 있지?”
“네.”
정한율은 그리 말하며 나에게 유니폼을 건넸다.
아무것도 마킹되지 않은 서울의 유니폼이었다.
“혹시 태양이는 하고 싶은 포지션이 있니?”
포지션이라.
지난 삶에서 내가 시작한 포지션은 윙포워드였다.
하지만 온갖 부상과 잘못된 벌크업으로 센터 포워드가 됐다가 미드필더가 됐다가 후방 미드필더로 은퇴했다.
수비수 빼고 다 해봤네.
그렇다고 수비수를 하고 싶지는 않다.
금전적으로 생각하면 연봉이 가장 높은 건 역시 공격수지.
“공격수요!”
“그래, 그러면 일단 공격수부터 해보자. 옷 갈아입고 올래?”
정한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와 함께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입었던 옷을 벗고 유니폼을 갈아입는 가운데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아들, 잘할 수 있겠냐?”
“해봐야 알죠.”
“쓰으… 내 아들이지만, 왜 이렇게 차분하지? 누가 보면 축구 선수로 한 10년은 뛴 줄 알겠어.”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대꾸 없는 나를 보고 씨익 웃은 아버지는 내 축구화 끈을 단단히 묶어주고 양말에 신가드를 넣으며 말했다.
“아빠가 뒤에서 응원할게. 수원으로 가자고 한 건 그냥 장난인 거 알지? 아빠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뛰어봐. 알았지?”
“네,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다시 운동장을 나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축구장 안에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빨개진 볼을 하고서 열심히 워밍업하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워밍업을 하러 가는데 가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왜 그래, 가을아?”
“오빠, 가서 잘해!”
안에서 달리는 아이들만큼이나 빨개진 볼을 하고서 진지한 표정을 하는 가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귀여웠다.
크면 분명 절세미녀가 되겠지.
절대 시집 안 보낼 거다.
“엉아, 빠이티!”
“오바, 빠! 자래!”
가을이가 응원하자 여름이와 겨울이도 나를 보고 잘하란다.
이렇게 되면 멋진 모습을 안 보여줄래야 안 보여줄 수가 없는데.
“아들, 축구는 처음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알지?”
마지막으로 엄마의 응원을 들은 뒤 나는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야, 너 축구 잘해?”
아이들과 나란히 달리기 시작하니 한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몰라, 왜?”
“모르는데 왜 왔냐?”
“너는 왜 왔는데?”
“나? 잘하니까 왔지.”
“그럼 나도 그렇다고 해두자.”
“넌 못할 거 같은데. 여자애같이 생겼잖아.”
…이 새끼가.
순간 욱했지만, 넘어갔다.
후, 어린애다. 어린애 도발에 넘어가면 어른이 아니지.
어른답게 굴자, 태양아.
나는 나에게 시비 거는 놈을 무시하고 워밍업을 끝냈다.
그러고 보니 숫자가 좀 적네.
오늘 전 U-12 6학년 클래스 합동 훈련이라고 해서 왔는데 나를 포함해서 고작 16명이 다였다.
사실 U-12는 돈을 받고 가르치는 아카데미 형식이어서 많이 없을 만도 하다.
생각보다 비싸거든.
서울의 정식 유소년은 U-15, 그러니까 중학생부터다.
여기서 잘하면 나는 서울의 U-15인 오성 중학교 축구팀에 예비 합격자가 되는 거다.
“아들, 화이팅!”
조끼를 입고 맨 앞에 서있으니 엄마가 나를 향해 응원을 했다.
엄마를 보고 씨익 웃어주고 앞을 바라보니 아까 나한테 시비 걸던 잼민이가 눈에 들어왔다.
상대편이구나.
잘됐네.
“야, 깝치지 말고 내가 공 주면 나한테 바로 패스해. 알았냐?”
…근데 이번에는 저놈 말고 같은 편 애가 시비를 거네.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을 패스 받는 건 나다.
삐익!
그사이 울리는 휘슬소리.
그 소리에 맞춰 우리 편 잼민이가 나한테 공을 보내고 다시 줘! 라고 외친다.
“응, 싫은데?”
공을 끌고 달려 나갔다.
* * *
장래희망이 1군 코치인 정한율은 U-12 선수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드림 오브 서울로 불리는 어린이 아카데미 선수들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얘들은 가르쳐야 하는 제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주는 고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부모 등살에 엄하게 교육하는 것도 쉽지 않고, 심지어 포지션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오로지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해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제대로 된 유소년이 나올 리가 없지.
적어도 정한율이 U-12 코치로 있던 5년간은 그랬다.
U-15로 승격한 애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 탓에 오늘 테스트를 보러 온 애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조봉수 감독이 테스트 해보라고 하기는 하는데 축구를 뛴 경험조차도 없단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당차게 공을 몰고 앞으로 가고 있다.
아니, 앞에 여덟 명이나 있는데 드리블을 해서 뭘 하자는 걸까?
드리블은 제법이긴 하다만, 축구는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응?”
그 와중에 가장 앞에서 달려든 아이를 가벼운 상체 무빙으로 제친다.
“뭐야, 처음이라더니?”
하지만 그것뿐이다.
이어서 앞에 두 명이 길을 차단하고 제쳐진 아이가 뒤를 차지해 삼각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말 안 듣는 애들을 꾹꾹 참아가며 압박을 가르친 보람이 보인다.
그 순간이었다.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난처해 보이던 태양이라는 아이가 한 아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 팀에서는 수비적 재능을 보여 부모님이 수비수도 괜찮다고 하면 U-15로 정식 입단시킬 아이였다.
“하필 가도 저 애한테 가냐.”
그 순간.
태양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한다.
맞상대 하는 아이가 당황할 정도로 놀라운 속도였다.
한 박자나 늦게 몸을 돌리는 아이를 대신해서 옆에 있던 아이가 태양이를 향해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태양은 그것마저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공을 살짝 띄워 앞으로 보내고 본인 역시 사뿐하게 슬라이딩 태클한 아이를 뛰어넘었다.
그 뒤로 남은 건 골키퍼를 제외한 네 명.
고작 네 명이 지키는 필드는 넓디넓어 태양이 마음껏 달릴 수 있게 했다.
기대하지 않던 태양의 모습에 정한율의 눈빛이 바뀌었다.
“발이 빠르고, 공을 치고 달리는 데도 큰 차이가 없네.”
드리블이 좋고 준족에 공을 가진 상태에서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
이것만 해도 큰 점수를 줄 만하다.
측면이든 정면이든, 역습 상황이든 빠른 발은 축구선수로서 엄청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 명을 제치려는 건 좀… 아무래도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축구를 모르니 패스를 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이는 태양이 향하는 길을 네 명의 선수가 차단한다.
“패스 해야지!”
무리하게 돌파하려고 시간을 잡아먹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태양이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질주했다.
정면에서 마주한 선수를 향해 태양이 선보인 건.
“프리플랩?”
그것도 상대방의 눈을 속이고 벨런스를 무너뜨리는 완벽한 프리플랩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 사이드로 들어오는 두 선수가 토끼몰이처럼 교차하듯 앞을 차단하는 순간, 레인보우 플릭으로 공을 넘기고 몸을 빙글 돌려 단숨에 둘을 제쳤다.
이제 남은 건 한 명.
태양이 멈췄다.
태양의 무지막지한 드리블에 뒤로 주춤하며 거리를 벌리던 아이는 뭔가 싶은 마음에 제자리에 멈췄고, 순간 골키퍼의 시야를 가렸다.
태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을 찼다.
태양의 발을 떠난 공이 무지개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그대로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휘슬이 울린 뒤, 여섯 명을 제치고 두 명을 둔 상태로 감아차기 골을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에 당황한 정한율이 태양의 아버지, 윤지성을 향해 물었다.
“추, 축구 처음 하는 거 맞습니까?”
“…네, 네.”
아들이 본격적으로 축구하는 걸 처음 본 지성도 넋을 놓은 채 간신히 대답했다.
“엉아 체고!”
“체고!!”
그 와중에 셋째와 막내만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엄지를 추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