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시상식 – 아이덴티티 (2)
시상식장에 도착하니 가라앉은 긴장감 속에 저 멀리 거대한 무대가 가장 먼저 보였다.
“이쪽입니다.”
나는 아야도의 안내를 받아 우리 스튜디오의 자리로 향했다.
물이나 다과 따위가 놓여 있는 동그란 상이었다.
자리에 앉아 하는 일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
“아는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건네진 질문에 나는 답했다.
“업계에 있는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데몬소울의 플레어 소프트 디렉터가 왼쪽 어딘가에, 언치티드의 디렉터가 오른쪽 어딘가에, 그리고 앞쪽 자리에 블리지드가.
‘음···.’
그 외에도 쟁쟁한 여러 개발사가 꽤 보였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라스트 판타지 팀이나 페르소나 팀, 그리고 문명 팀 정도.
가뭄의 해라는 말대로 딱 거기서 눈에 익은 얼굴이 끝나버렸다.
아니, 하나 더 있긴 하다.
‘닌텐더.’
저들이 무슨 상을 탈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루소는 없군요. 이런 자리에 빠질 인간이 아닐 텐데.”
“아.”
아야도가 짧게 침음을 흘렸다.
표정이 꽤 불편해 보였다.
아니, 곤란해하는 걸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루소는 칩거 중입니다.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죠. 외부 연락은 모두 단절하고 년 단위로 사라질 때가.”
“그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아야도가 안경을 고쳐썼다.
“도리어 기대할 일이죠. 언제나 그런 칩거 끝엔 걸작을 들고 나오니까요.”
예컨대 폐관 수련 중이란 말이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상식은 그때쯤 시작됐다.
시선을 옮기니 보이는 것은 단상 위로 음악과 함께 등장한 사회자.
그의 부드러운 멘트에 객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시작부터 본상의 수상자를 말하지는 않았다.
여러 행사나 업계 유명인의 초청 공연, 그리고 수상은 그 뒤에나 시작됐다.
시작을 알리는 것은 하나의 트레일러였다.
쿠구궁!
나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조금의 경외감을 품은 채 그것을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지금 저 거대한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은 나로 하여금 2017년을 피하게 만든 게임이었으니까.
“축하드립니다! ‘링크의 전설 : 야생의 숨!’ 올해 최고의 기대작 상을 받았습니다!”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그 어딘가에서 내 곁에 있던 한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흠, 그 정돈가?”
조아윤이 받았다.
“별룬데···.”
두 사람은 사뭇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야도는 그 평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글쎄.
“그 정도지.”
“디렉터님?”
“맞지 않습니까. 저 IP가 보통 IP도 아니고.”
이 인간, 이성적인 척하더니 닌텐더가 상을 타자마자 한껏 심기가 불편해졌다.
경쟁사를 견제하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거짓말 같은 거 못한다.
“저도 기대 중입니다. 야생의 숨.”
내 속에는 게이머로서의 내가 있고, 디렉터로서의 내가 있다.
개중 게이머로서의 나는 야생의 숨과 같은 ‘놀이’로서 출중한 게임을 좋아한다.
디렉터로서의 나는 그 게임의 만듦새와 구조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게임은 취향이다.
그걸 존중해줬으면 한다.
그저 나라는 인간 자체가 야생의 숨을 너무 좋아하고 있으니, 암만 적진이라 해도 덮어놓고 깔 수는 없단 말이다.
솔직한 말로 지금 가장 기다리는 것이 저 게임의 출시였다.
마지막으로 저 게임을 한 지가 시간으로 따지면 10년도 훌쩍 넘었다.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날 수밖에.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런 잡담이나 나누는 중에도 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단상 위로는 하나하나 수상자가 올라갔다.
손에는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올해의 액션은 둠이다. 최고의 롤플레잉은 작년에 출시한 위치3다. 최고의 모바일 게임은 AR혁신을 일으킨 포켓몬 고다.
상을 탈 만하다.
충분히 납득하고 나를 진정시켜 그런 것들을 다 넘긴 이후였다.
“다음으로 올해의 사운드입니다!”
드디어, 비벼볼 만한 상 하나가 나왔다.
그에 조아윤이 바짝 굳어버린 순간이었다.
다행인 일인지, 오래갈 긴장은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리와인드의 아이덴티티! 올해의 사운드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짝짝짝!
박수소리와 음악소리.
내가 바라본 조아윤은 그 어딘가에서 덩그러니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에 양길상이 나섰다.
“아윤아! 너 상 탔어! 일어나!”
그제야 조아윤이 “엥?” 소리를 내다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짝 굳었다.
“?”
믿기지 않는 듯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 사, 사장니임···.”
“응.”
“저거···.”
“네 거야. 가서 소감 말해야지.”
“으어···.”
조아윤이 좀비처럼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이후 마이크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홀로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두려운 걸까.
그도 아니라면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걸까.
뭐가 됐든, 생각지도 못한 상을 탔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젠 없는 시간대의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팀장님! 우리 GOTY 가야죠! 나 사운드로 상 하나만 타게 해줘요!
이제라도 그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인 일.
가슴을 옭아매던 족쇄 하나가 풀린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 사회자가 말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아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사회자를 번갈아 봤다.
그러다 말했다.
“화···.”
“화?”
“화장실 가도 돼요···?”
정적이 일었다.
푸흡!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그럴 만하다.
단상 위로 올라가 있는 조아윤의 다리가, 이리 멀리서 보일 정도로 후들거리고 있었으니까.
아직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힘든 것이겠지.
여하튼, 하나는 분명했다.
“···끝나고 다녀오실까요?”
“배배배배배가 아파요···!”
TGA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수상소감이었다.
* * *
이후로도 식은 진행되었으나 다른 자잘한 상을 더 타지는 못했다.
특히 아트에서 수상에 실패한 한서림이 전동 마사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부르르 떤 일이 있었다.
그러나 수용이 가능한 정도였다.
올해의 아트 수상작은 아웃사이드.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호러와 탈출이라는 문법 아래서 철저히 시각적인 효과로 연출력을 끌어올린 게임이다.
그에 반해 아이덴티티는 직관적이고 동화적인 카툰 풍 그래픽을 채용했다.
대중성을 노리기 위한 판단이었고, 그것은 이제까지의 헬릭과 다르게 한서림이 가진 ‘독특한 감성’을 억제하는 형태의 결과를 낳았다.
“선배는 알죠? 내가 진짜 진심으로 했으면···.”
“나도 알지.”
승부욕이 강한 한서림은 나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 투덜투덜 불만을 표했다.
미안함은 있었다.
결국 한서림을 억제한 것은 내 판단이었으니까.
녀석의 승부욕을 앎에도 내 디렉터로서의 판단에 따라 자존심을 내려놓게 했으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위로할 말은 있었다.
“다음작에선 탈 수 있을 거야. 너 꽤 굴릴 거거든.”
“···진짜죠?”
굴린다는데 좋아하는 걸 보니 얘도 정상은 아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그거 기억나? 헬릭 2때 디자인 했던 거.”
“대학 과제 같았던 그거?”
“그런 류야.”
“진짜 끔찍하네.”
말하면서도 한서림이 삐뚜름하게 웃었다.
잡담은 거기까지였다.
“다음으로 대망의 하이라이트! 올해의 게임상입니다!”
기다렸던 순간이 다가왔다.
아니, 기다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쿵―
심장이 뛰었다.
설렘의 가벼움과는 다른, 긴장의 쫄깃함과도 다른.
마치 선고를 받는 죄수의 것처럼 묵직하게 박동이 흉부를 내리눌렀다.
고개를 들었다.
판결이 코앞이다.
그 순간 떠오르는 감상적인 마음이 있었다.
무대가 꽤 잔인해 보인다.
저 화려한 조명 아래 단상,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객석의 명암 대비가 그런 감상을 띄워냈다.
저 사회자의 손에 들린 대본이, 그리고 입을 빌어 나오는 말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모두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가도 판결이 갈리는 순간 승자는 빛을 받고 패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박수갈채로 꾸며줄 뿐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영영, 내가 디렉터로서 자리하는 동안 이 광경 속에서 조바심을 떨쳐내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나,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그것이 즐거웠다.
‘원해왔던 거니까.’
이제와 이런 기회라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했으니, 객석이 아닌, 화면 밖의 관객으로서만 이런 광경을 바라봐 왔으니.
“올해의 게임상은 바로···!”
자, 판결 앞에서 의연해지자.
떨쳐내지 못했던 과거의 잔재는 이곳에 두자.
“···긴장되는 순간이네요.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마음을 먹으니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재난을 느끼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나무 사이를 뛰어 달아나는 동물들처럼.
분위기가 답을 먼저 준 것이다.
그것은 옳았다.
“···축하합니다! 리와인드의 아이덴티티!”
“꺄아아악!!!”
“됐다! 됐어!”
팀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헬릭2 때처럼 멍하지 않게, 조금 더 익숙해진 자세로 일어났다.
가장 앞서 무대 위를 향했다.
등을 팍팍 쳐대는 한서림의 손길이나 어깨를 흔드는 양길상의 힘, 내 손을 꼭 쥐는 조아윤의 악력 따위를 느끼며.
“또 만나는군요!”
사회자는 나로 하여금 데자뷰에 가까운 것을 느끼게 했다.
헬릭2의 사회를 봤던 그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약속을 지키셨네요. 이 자리에 다시 서겠다고 하셨죠.”
빙긋 웃는 모습에 나 또한 지금만큼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지키기 위해 있는 게 약속이니까요.”
“그럼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저 아래, 오늘만큼은 나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 선배들이 있다.
그 모습에 감정이 울컥 샘솟았다.
가라앉히고 손에 힘을 더했다.
“우선···.”
드디어 나는 내 과거의 잔재를 다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참으로 기꺼우며 이제야 속 후련하게 나아갈 수 있을 듯하다.
기나긴 49재였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아쉬움이나 울분도 이제야 영영 잠들었으니, 앞으로는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을 듯하다.
···따위의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정신병자나 중2병 환자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이 감정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그러니 느끼는 내가 그를 충만히 받아들인다면 타인의 찬사는 중요치 않았다.
하여 그것을 덜어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언어로 빚어지는 것은 남은 진심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모든 유저분께, 그리고 함께 고생해준 팀원들에게, 축하해주신 분들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보태니.
“끝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생이 시작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그랬듯 나는 멈추면 죽는 사람이니까,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멈추지 못하는 나는 이날을 긴 마라톤의 분기점으로 찍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에겐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설렘이 가슴을 적신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다음에 또 보죠. 같은 자리에서.”
돌아서니 웃는 팀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이 녀석들을 내가 걸어온 길의 증명이라 한다면, 표현하길 참으로 반듯하게 세운 길이었다.
“자.”
영광을 나눈다면 역시 이 녀석들이다.
마이크를 넘겼고, 화장실이 가고 싶던 조아윤이 한발 물러섰다.
사회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국내 게임계는 흥겨운 소식을 받았다.
『아덴은갓겜이다 : 국내 최초 AAA급 GOTY 걍 찌찌 불어터지겠네ㅋㅋㅋㅋㅋ』
『방배동피의군주 : 주모,,,이제 술 그만 줘도 돼,,,샷따 열어,,,』
『미래가안맑음 : cex』
『퇴사마렵재희 : 리와인드 사운드 되게 귀엽네ㅋㅋㅋㅋㅋ』
『ㅇㅇ : 하이 워치 고티라던 블빠쉑 어디감?어디감?어디감?어디감?』
당장 커뮤니티를 불태우는 찬양 행렬부터 그 뒤를 잇는 각종 언론의 보도까지.
비단 게임업계만을 울린 소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한국 언론 자체가 리와인드의 소식을 퍼 나른 것이다.
이유야 별것 있겠는가.
국뽕은 암만 과해도 모자라다.
언론이 열광하고, 국민이 열광하는 가장 뜨거운 소스다.
전 세계 최고.
불모지에 솟아오른 거목.
리와인드를 일컫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그제까지 게이머는 만들어도 게임은 못 만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나라에서,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 세계 최고가 나올 것이라고.
연말을 태운 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도리어 연예계의 유명한 게임 덕후들이 SNS로 아이덴티티를 언급하며 일반인층에 게임이 더 잘 알려지는 형태로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네오의 박영준 대표가 술자리에서 연호에게 말했다.
“나랑 예능 하나 안 나갈래?”
“뭔능이요?”
“예능.”
박영준 대표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여 씨익 웃으며 연호의 잔을 채웠다.
“나 좀 살려주라.”
올해는 네오의 사활이 걸린 게임, ‘클리어 존’의 발매 연도였다.
노이즈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
대표의 이름값, 인물로서의 상품성,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은 게임 흥행에 보이지 않는 지표 중 하나였다.
예컨대, 박영준 대표의 의도는 지상파에서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것이었다.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언론이 게임 개발 업계 자체를 이렇게도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유례없는 사태였다.
빨대를 꽂아야지 않겠나.
“연예인 싸인이나 받으러 가자. 응?”
연호의 고개가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