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대격변 (1)
아르카디아 제3대륙.
이곳에서 처음 가상현실에 발을 디디며 평화롭게 게임을 시작한 일본 유저들.
그들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날아온 전체 알림에 열광했다.
[메인 시나리오, Act. 1 대륙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계 퀘스트, 해적 소탕이 생성되었습니다.] [관련 내용을 확인해 주십시오.]“오? 메인 시나리오라고?”
“헤에……. 이건 뭐지?”
유저 전체에게 날아온 퀘스트. 그 내용을 확인한 이들은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메인 시나리오, Act. 1 대륙 침공]평화롭던 쇼엔 제국의 한 항구도시. 그곳에 갑자기 나타난 수천 척의 의문의 함선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약탈하고 사라졌다.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제국의 영토를 지키고 자랑스러운 쇼엔 제국의 영광을 수호하라.
[승리 조건]-검은 해적단의 지배자, 카를로스의 사망 (0/1)
-검은 해적단의 함선 80% 격침 (5%/80%)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 30개 파괴 (5/30)
-쇼엔 제국의 해군기지 파괴 (0/1)
“쇼엔 제국……? 여기는 그 북쪽에 위치한 제국 아닌가?”
“거기는 아직 조사가 덜 된 지역 아닌가? 그런데 그것보다 무슨 해적단?”
“아니, 무슨 뜬금없이 해상 전투야……?”
아직 유저 대다수의 활동 반경이 대륙 중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저 북쪽에 자리한, 아직 유저들의 발이 닿지 못한 곳에서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는 주저했다.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해? 지금 당장 출발해도 최소 일주일은 이동만 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페널티 이거 뭐야? 쇼엔 제국의 영유권이 일부 상실된다니? 뭐 실패하면 영토라도 빼앗긴다는 건가?”
귀찮음 그리고 정보 부족으로 인한 불확실성. 여러 이유로 인해서 유저들이 주저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주)아르카디아의 일본 지사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아 가는 이 퀘스트를 잠재우기 위해서 발에 땀 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패치가 안 된다는 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으르렁대는 카즈키 지사장. 험악한 어조의 물음에 스피커에서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밸런스 조정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부족합니다.]“아까 설명하지 않았나! 쇼엔 제국의 해군 전력이 너무 약해 보여서 지금의 전투력보다 5배 정도로 높이겠다고! 그냥 일반적인 수치 조정만 하면 되는데 왜 그게 안 된다는 건가!”
밸런스 관리 팀에서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움직이지 않는 인공지능 엘리스. 그런 그녀의 완고함에 카즈키 지사장까지 직접 나서서 검은 해적단을 막기 위한 밸런스 조정을 시도하려 했지만, 엘리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쇼엔 제국의 해상 전력은 다른 제국이나 왕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현재 수준에서 더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밸런스에 위해가 가는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또한…….]구체적인 그래프와 여러 세부 자료들을 가지고 쇼엔 제국의 해상 전력이 충분히 강하다고 설명하는 엘리스. 그런 그녀의 설명에 카즈키 지사장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또한, 이번 밸런스 조정은 특정 유저를 대상으로 한 부당 패치로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쇼엔 제국의 해상 전력 강화에 대한 밸런스 조정 요청은 거부합니다.]일말의 조정도 없이 최종적으로 거부를 때려 버리는 엘리스. 그런 그녀의 말에 카즈키는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을 연신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지금 2대륙에서 벌어진 상황 때문에 우리 대륙이 피해를 모조리 보게 되었는데, 이걸 그냥 우리보고 두 눈 뜨고 지켜만 보라는 건가!”
일본 대륙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저 멀리 안중에도 없던 한국 대륙에서부터 시작된 일. 거기서 얌전히 게임이나 하지 왜 굳이 멀고 먼 자신들의 관할권에 와서 이런 깽판을 저지르는지, 카즈키 지사장으로서는 영구 밴의 철퇴가 절실히 마려워지는 순간이었다.
“덱스라고 했지? 아르팬디아에 공개된 영상 보니까 그 자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게임 전체에 피해를 주는 악질 유저들을 제재하지 않고 도대체 뭐 하는 건가? 한국 운영진은 운영을 그따위로 하는 건가!”
권명한 전무에게 쌓인 한을 풀기라도 하듯 엘리스에게 따지듯이 윽박지르는 카즈키 지사장. 하지만 엘리스의 무미건조한 답변은 오히려 그의 속을 살살 긁으며 더 뒤집어 놓을 뿐이었다.
[정당한 플레이로 인한 결과일 뿐입니다. 해당 사안에 운영진이 개입할 권한이 없습니다.]“아니, 정당한 플레이라도 정도가 있지! 이게 어딜 봐서 정당한 플레이야!”
완전무결한 인공지능에 의해서 돌아가는 게임이 가지는 최악의 단점. 그것은 그녀가 너무나도 원리 원칙주의자이며 너무나도 공명정대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악질이라도, 비매너를 일삼으며 게임의 밸런스를 완전히 붕괴시키며 게임을 그야말로 활활 불태워 버리는 유저라 하더라도 그 과정만 정당하다면 모든 것을 인정해 버리는 이 인공지능과. 지금껏 수백 명의 직원이 밤을 지새워 가며 만들어 가던 거대한 서사가 단 한순간에 모조리 허사로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이 원흉이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의문의 유저 하나 때문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이 그를 미치고 팔딱 뛰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즈키의 귓가에 권명한 전무의 마지막 조언이 스쳐 지나갔다.
[유저로 인해 발생한 서사는, 유저로 인해서 풀어낼 수밖에 없네. 이 게임에서 우리 운영진이 가지는 권한이 얼마나 미약하고 무력한 것인지 깨닫게 될 걸세. 건투를 빌겠네.]권명한 전무와의 통화에서 그가 남긴 한마디.
지금 엘리스와 씨름하며 카즈키 지사장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아르카디아 한국 지부가 밟아 왔던, 혼란과 파괴의 난장판의 현장이 바로 지금 자신의 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런 것이었나…….”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카즈키 지사장. 그는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고심하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엘리스에게 물었다.
“요청을 조금 다르게 하지.”
[어떤 요청을 말하는 건가요?]“이번에 시작된 메인 시나리오, 그것에 대한 보상을 우리 쪽에서 조정할 수는 있나?”
매우 소극적인 메인 시나리오 유저 참여. 그로 인해서 검은 해적단은 별다른 방해 없이 신나게 쇼엔 제국의 해안 도시들을 종횡무진하며 박살 내고 있었기에 카즈키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유저들의 적극적인 참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요청에 대한 가용 여부를 분석하는 듯, 잠깐 침묵하던 엘리스. 그녀는 곧이어 그 대답을 줬다.
[해당 사안은 조정 가능합니다.]“그렇지!”
이제 해결 방법을 알겠다며 무릎을 치며 좋아하는 카즈키. 그런 그에게 엘리스는 물었다.
[승리 조건에 대한 보상을 어떤 항목으로 조정하시겠습니까?]그리고 그런 카즈키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보상 목록. 그것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카즈키는 하나를 선택했다.
“이걸로 하지. 유저들에게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건가?”
[보통은 공개하지 않지만, 요청하신다면 가능은 합니다.]“그렇다면 공개해 주게. 유저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함이니까 최대한 빨리 적용해 주게.”
[알겠습니다. 메인 시나리오의 승리 조건의 보상을 조정합니다.]그렇게 카즈키 지사장의 강력한 요청 때문에 메인 시나리오에는 한 가지 문구가 추가되게 되었다. 이 모든 혼란을 더욱 가중할 문제의 한 문장을 말이다.
* * *
엘리스의 추가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난 후. 이번 메인 시나리오에 관한 내용이 어느 정도 공개되자 일본 유저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관심이 일게 되었다.
-이거 해적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 한국 대륙에서 넘어온 놈들이라는데?
-칙쇼. 조센징 따위가 감히 우리를 공격해?
-어쩐지 너무 뜬금없이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싶었는데. 그런 내막이 있었구나.
-근데 이럴 것 없이 그냥 정지 먹이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재밌잖아. 한국에서 넘어온 침략자로부터 조국을 지켜라. 크으……. 멋있는걸?
-혼또. 무사도의 정신을 보여 줄 시간이군. 전설급 아이템은 나의 것이다.
최초로 등장한 전설급 아이템. 거기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는 느낌으로 사무라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퀘스트의 서사. 마지막으로 하필 그 상대가 한국에서 온 놈들이라는 사실이 일본 유저들의 가슴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 조국을 지키자! 일본 유저들이여!”
“조센징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자!”
“우아아아아! 덴노 헤이카 반자이!”
“사무리아의 정신으로 우리가 승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의 유저 연합. 랭커라고 불리는 강자들부터,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초보 유저들까지. 모두가 직업이나 레벨,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본 대륙의 수호라는 일념 하나로 집결했다.
“저기, 과장님.”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대형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일본 지부의 사사키. 그는 슬쩍 옆에 있는 아키타 과장에게 물었다.
“저희 유저들의 평균 레벨이 얼마 정도였죠?”
“69레벨.”
그 말에 잠깐 멍하니 있던 사사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저 검은 해적단의 평균 레벨이 얼마였죠?”
“…….”
한참이나 말이 없는 아키타 과장. 그런 건 왜 물어보냐는 듯이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는 이내 똥 씹은 얼굴로 말했다.
“180.”
자그마치 거의 3배에 달하는 레벨 차. 능력치나 스킬 숙련도로도 절대 유저들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강적들이기에 지금 이 상황은 사사키가 봤을 때는 그냥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안으로 유저들을 쑤셔 박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유저들을 저기로 보내는 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나 같은…….”
“이봐, 사사키.”
“예, 과장님.”
그의 말을 끊으며 싸늘한 어조로 그를 부르는 아키타 과장. 그런 그를 보며 상사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찔끔한 사사키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대로 따라. 그걸 윗사람들이 모르고 판단한 거라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지사장님이 직접 내린 지시네. 유저들의 레벨이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모두가 힘을 합치면 큰 전력이 된단 말이네. 작은 나뭇가지라도 모이면 부러뜨리기 힘든 것처럼, 미약한 힘이라도 이번 메인 시나리오를 승리로 이끌 힘이 된단 말이네. 그걸 아직도 모르겠는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실수했다면서 사과하는 부하 직원을 보며 조금은 풀어진 듯, 부드러운 어조로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위한 처세에 대해서 조언을 하려던 아키타 과장. 하지만 그는 저 모니터에서 보이는 참극을 보며 그 입을 놀릴 수 없었다.
수십…… 아니, 수백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해일. 모두를 집어삼킬 것 같은 엄청난 대해의 파도 속에서 절규하는 유저들의 모습과 처참하게 박살 나며 모든 것이 쓸려 나가 순식간에 붕괴하는 쇼엔 제국의 자랑스러운 요새, 포세이아를 보면서 사사키는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토해 냈다.
“죽으러 가라는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