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승자 독식 (3)
이 시나리오가 공개되고 난 이후, 관련 내용을 살펴본 사람들의 반응은 상반됐다.
-오, 드디어 좀 일반 유저들이 해 볼 만한 시나리오가 나오네.
-첫 번째 시나리오처럼 정신 나간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ㄹㅇ;; 또 뭐 괴상한 레이드 몹 하나 등장시켜서 깽판 쳤으면 이번에는 진짜 회사 찾아가서 내가 똑같이 깽판 쳤을 듯.
-그런데 이건 개인이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길드전 같은 느낌 아니냐?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애들은 뭘 하라고…….
-길드에 가입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음? 그 정도면 이 최종장 시나리오는 참여조차 하지 못할 쪼렙 초보자거나 아니면 그냥 사회성이란 게 없는 사이코패스지.
-ㄹㅇ ㅋㅋ. 그래도 나름 재밌겠는데?
-드디어 초대형 길드전 콘텐츠가 나왔네.
비교적 첫 번째 재앙보다 평범해 보이는 시나리오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부터 길드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와 잔뜩 흥분한 기대 섞인 반응들까지……. 여러 반응이 혼재된 이 두 번째 시나리오. 그리고 이들은 이내 누가 최종적인 시나리오의 승자가 될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펼쳐 대기 시작했다.
-미국의 상징이자 최강의 영웅들이 가득한 길드, 히어로즈가 당연히 최고지!
-무슨 헛소리? 열두 개의 별이 평균적인 유저들의 스펙이 가장 높다는 분석 자료도 못 봤냐? 히어로즈에 최상위 랭커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전체적인 유저들의 질적 수준이지.
-흥, 그래 봤자 길드원 수가 억 단위에 겨우 드는 소국의 길드들 아닌가? 자그마치 9억이라는 압도적인 길드원 수를 보유한 무림이야말로 최강의 길드가 될 자격이 있지.
-응~ 그래 봤자 대부분은 레벨 100도 못 찍은 쪼렙 허수아비만 가득한 거 다 알아.
-우리 오세아니아 대륙의 자랑, 캥거루 기사단 무시하냐? 나름 그래도 꽤 저력이 있다니까?
각자 저마다 자신이 속한 대륙의 길드가 최고라고 자부하며 시끄럽게 아르팬디아를 어지럽히는 유저들. 애초에 이번 시나리오는 자신들이 낄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대부분은 그저 각각의 대륙을 대표하는 길드 중에서 누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지에 대해서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전쟁이냐? 어디 한번 제대로 떠 봐?
-어! 뜨자!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어디 소국 주제에 감히 대국에게 덤벼?
-하여간 저 새끼들은 말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유럽이 최고인 거시다! 유럽연합 만세! 프랑스 만세!
격한 논쟁 속에서 감정이 상한 이들로부터 촉발된 소규모 분쟁. 저마다 상대 대륙에 소속된 길드들과 크고 작은 싸움을 벌여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이 발생하며 묘하게 전운이 곳곳에 감도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대형 길드들에서는 별다른 반응이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이상해…….”
“왜. 또 무슨 일 있어?”
그 모든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보며 묘하게 밀려오는 께름칙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덱팬무의 부길드 마스터, 이그니스.
그녀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덱팬무의 마스터, 아더를 노려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을 주었다.
“무슨 일이긴요. 이번에 시작된 두 번째 최종장 시나리오 때문에 그렇죠.”
길드를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그것도 그 길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의 시나리오. 그렇기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 이그니스는 자신과 다르게 무사태평한 것 같은 아더를 보면서 무언가 배알이 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 어차피 우리는 참여 안 하기로 했잖아. 괜히 신경 쓸 필요 있어?”
“우리가 참여를 안 하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니 그렇죠. 게다가 저번에 들어왔었던 그 이상한 제안도 거절했잖아요.”
“뭐? 그 파란 돌인지 검은 돌인지 뭔지 하는 그 회사?”
“정말이지…… 블루록 인베스트먼트가 어떤 회사인지 알기나 하고 그러는 거예요?”
“뭐…… 그때 제안하는 거 들어 보고 인터넷에서 좀 뒤져 보긴 했지?”
전 세계의 경제를 주무르는 거대한 자본 세력. 그들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며 이그니스는 무언가 엄청난 일이 그림자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아더는 그녀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한사코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이 길드는 돈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서 움직이는 길드라고요? 아니,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은 저도 동의하는데 그것도 상황과 상대를 보면서 해야죠. 그쪽에서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또 어떤 이권을 우리에게 줄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들어 보고 조율해 본 이후에 결정해야 할 거 아니에요. 제안은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무작정 거절의 의사부터 밝히면 어쩌자는 거예요?”
오직 덱스에 대한 동경심과 선망 그리고 비틀리고 뒤틀어진 집착과 변태적인 이상성욕이 다 함께 혼재되어 만들어진 길드.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덱스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 이상,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 길드는 수직적이고 통제된 위계질서 속에서 운영되는 다른 길드와 다르게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정신병자들의 집단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제멋대로였다.
진짜 광기로 가득한 이들을 통솔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아더와 이그니스. 하지만, 소속 길드원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죄다 경악스러운 수준의 미친놈들로 가득했기에 사실상 이 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뭐 어쩌겠어? 어차피 손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길드와 연합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온갖 깽판을 다 치고 다닐 녀석들인데. 분명 덱스 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추악한 짓거리들 하지 말라면서 너나 나를 길드 사무소 앞에다가 매달아 버리고도 남을걸?”
길드 이름을 덱스의 팬티는 검은색이라고 바꾸자는 안건 하나 가지고도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장장 6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피 튀기는 혈투를 벌여 왔던 진짜들. 이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화력과 저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더이기에 그는 자신의 말을 믿으라며 단호히 이그니스에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최종장 시나리오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잖아? 괜히 독이 든 성배를 받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느니 차라리 맘 편하게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더 마음 편한…….”
하지만 그 순간.
아더는 갑자기 들려오는 알림음에 자신이 하던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무림’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무, 무림?”
소속된 길드원 전체에게 공지된 메시지. 그렇기에 아더에게 들린 메시지와 똑같은 것을 들은 이그니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무림이 갑자기 왜……? 아니, 그보다 무림은 중국 정부의 세력일 텐데?”
미국의 부를 상징하는 월 스트리트의 일원인 블루록 인베스트먼트.
그렇기에 이그니스는 그 거절에 대한 보복 조치로 벌어질 수많은 상황을 예상하며 그들의 주 세력인 히어로즈 길드와 여러 북미 연합 길드들에 대한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예상했던 적대 세력 중에서 무림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불안한 가설.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아주 희박한 확률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을 떠올린 이그니스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왜 그래? 갑자기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이그니스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당황하는 아더. 하지만 그도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수많은 메시지를 보며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히어로즈’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열두 개의 별’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심판’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아스모데우스’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마우리의 방랑자’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가우스’ 길드가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였습니다.].
.
.
수십억의 유저가 플레이 하는 이 아르카디아에서 이름을 날리는 최상위 길드들.
소위 패권 길드라고 불리며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그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덱팬무에 전쟁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게 뭔 짓거리들이지?”
한순간에 수십 개의 초대형 길드들과의 전쟁 상태에 돌입한 덱팬무.
그 수적, 질적 차이만 해도 수백 배나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아더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진짜 전 세계의 모든 길드를 규합했다고……? 도대체 무슨 수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는 이그니스. 그런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며 아더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 검은 눈동자로 조금은 겁에 질린 것 같은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지금 이거…… 그 파란 돌인지 뭔지 하는 새끼들 제안 거절했다고 이러는 거지?”
‘왜, 왜 이래, 갑자기……?’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나사 빠진 인간 같지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는 언제나 중심을 잡아 주었던 아더. 그런 그가 진중한 모습으로 물어 오자 이그니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내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 것으로 보여요. 지금 최종장 시나리오를 위해서 서로 견제하고 적대해도 모자랄 초대형 길드들이…… 그것도 하나도 아니라 이렇게 동시에 전부 우리 길드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을 보면 아마 뒤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모두 하나로 규합했을 거예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모두를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단 말이지……?”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던 아더. 그리고 그는 이내 이그니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
“그 파란 돌 자식들 말이야. 지금이라도 어떻게 협상하자고 하면 솔직히 받아 줄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긴 한데…….”
마치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다는 듯, 친구 추가까지 해 놓으며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고 사라진 블루록의 관계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그니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내 마음대로 했다가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번에는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지금 같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다고 하면 다른 길드원들에게도 충분히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명분도 되는 상황인 것 같으니까.”
만약 자신이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백기를 들겠다는 아더. 하지만 그런 그 제안에 이그니스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분명하게 승산이 없는 싸움.
중앙 대륙을 제외한 전 대륙이, 아니, 심지어 같은 식구나 다름없는 한국의 대형 길드들마저 덱팬무에 선전포고를 한…… 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이그니스. 이 미친놈들이 가득한 길드에서 유일하게 생각이란 것을 하며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던 그녀의 머리는 그들과 손을 맞잡는 것이 합리적이고 유일한 선택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근.
그녀의 고동치는 가슴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과거, 이름조차 기억도 나지 않는 RPG 게임 속에서 이미 이권을 장악한 길드의 불합리한 사냥터 통제 때문에 사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지막지한 세율 때문에 착취를 당하며 힘들게 게임을 했었던 그녀.
기득권과 힘을 가진 세력들에 의한 그 어떠한 폭거와 지배에 반대하는 그 신념이 그녀의 이성적인 결정을 가로막고 다른 길을 선택하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응? 어떻게 해?”
그리고 그런 고민 속에서 대답을 재촉하는 덱팬무의 수장, 아더.
그런 그의 물음에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이그니스는 표독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이미 전쟁 선포까지 한 놈들하고 무슨 협상이에요? 죽을 각오로 싸워야죠.”
그런 이그니스의 대답에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듯, 씩 웃어 보이며 아더는 말했다.
“역시…… 이래서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니까.”
그렇게 뜬금없는 아더의 사랑 고백과 함께 아르카디아의 최종장을 장식할 두 번째 시나리오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전 세계의 길드를 상대로 한 어느 한 길드의 외로운 투쟁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