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221
221. 눈부시게 밝은 (본편 완결)
“군인인가?”
“아마도.”
총을 들고 웃고 있는 남자.
어린 아이가 군인을 그린 것 자체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드라마든 뉴스든, 어딘가에서 군인을 봤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냥 군인이 아니었다. 아이가 볼 수 있는 군인의 모습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용병 같은 이런 모습은.
“누굴 보고 그린 거야?”
“아, 그게.”
서연이 진혁의 옆에 나란히 서서 그림을 쳐다보았다.
“나도 몰라.”
“응?”
“그게 나 사고 나서, 기억을 잃었잖아.”
서연과 서연의 아버지가 함께 차량으로 이동 중에 난 큰 사고. 그 사고로 서연의 아버지는 죽고, 서연은 며칠간 의식불명으로 있다가 깨어났다.
그리곤 사고 시점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서연.
“내가 깨어나서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래. 그림을 그렸던 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어디서 뭘 보고 그렸는지는 기억이 안 나.”
“……”
“아마도 무의식 중에 사고 이전에 본 걸 그린 게 아닐까. 혹시라도 이 그림이 사고 이전 기억을 되찾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방에 걸어 놓았는데.”
서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까진 뭐,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네.”
“…..”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6살 이전 기억을 얼마나 가지고 있겠어. 이젠 그러려니 해야지.”
사고. 기억 상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그린 군인 그림.
어?
그 순간 진혁의 뇌리에 번뜩이듯 무언가 스쳤다.
이런…. 지금까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진혁이 조금은 놀란 눈으로 서연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은 과거로 돌아와 다른 사람으로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름이 같은 소년의 삶을, 이전 삶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그런데.
만약 미령이 자신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이전 삶의 기억을 꼭 가지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외모가 꼭 같은 소녀의 삶을, 이전 삶의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전 생의 기억이 없는 서연은 미령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진혁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왜? 왜 그렇게 빤히 봐?”
“서연아. 혹시.”
진혁은 잠시 주저했다. 이번 생에 와서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만약 서연이 미령이라면, 이것이 어떤 기막힌 운명이라면.
“성미령이라고 들어봤어?”
“성미령?”
“응. 한번 잘 생각해 봐.”
진혁은 긴장된 눈으로 서연의 표정을 살폈다. 어쩌면 이 이름에만큼은 반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서연이 미령이라면.
한참 미간을 좁힌 채 골똘히 생각을 하던 서연이 말했다.
“모르겠어. 누군데? 이름은 여자 같은데.”
“전혀 모르겠어?”
“성미령이라…. 전혀 모르겠는데.”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서연의 눈빛에는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진혁도 맥이 탁 풀렸다.
그러게. 뭘 기대한 건가.
서연이 물었다.
“근데. 그게 누군데?”
“아니야. 모르면 됐어.”
“어? 뭐야? 갑자기 여자 이름을 대고는 숨겨?”
“여자는 무슨.”
“그럼, 여자 아니야?”
아니지. 미령이는 여자가 아니라….
그러게. 무엇이었을까. 미령이는 나에게.
가족 같은 사이? 여동생? 그렇게 정의하긴 했었다.
하지만 서연에게서 사랑을 받고, 서연을 여자로서 사랑해온 지난 2년여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무엇이 달랐을까. 미령과는.
두 번째 삶을 살아보고 나서야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여자…. 였을 거야.”
“뭐야? 그게. 여자였을 거라니.”
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과거형인 걸 보니, 설마 예전 여자 친구야?”
“훗. 서연이 너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날 봐 왔을 텐데.”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여친인가? 아님 중학교?”
진혁이 피식 웃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질투를 하는 서연이 꽤나 귀여웠던 까닭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때.”
그보다 더 어렸을지도. 적어도 남녀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점에서는.
“와. 진짜. 전 여친 얘길 꺼내다니. 용서할 수 없어. 자, 벌이야.”
서연이 눈을 감고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자, 빨리.”
“어머니한테 쉬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짓말이야. 자, 빨리.”
눈을 감고 있는 서연을 보며, 진혁이 미소를 지었다.
서연이 미령인지, 미령에 대한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이제와 그걸 헤아리는 게 뭐가 중요할까.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뿐.
지금 진혁에게 중요한 건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을 후회 없이 사랑하는 것, 그리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진혁의 입술이 천천히 서연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
“에, 또, 오늘 이 화창한 5월의 봄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두 사람의 주례를 맡게 되어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화창한 봄날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야외 결혼식.
전 WP 사장 이승수가 사뭇 근엄한 목소리로 주례사를 읊어나갔다.
하지만 금세.
“부부가 살다 보면 말입니다. 참, 그, 안 싸울 수도 없고, 그 또 싸우다가 보면 아, 뭐 세상에 이딴 게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하객들 사이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민우가 이광수 사장에게 물었다.
“이승수 사장님이 사모님하고 사이가 많이 안 좋으신가 봐요?”
“아니. 안 좋을 수는 없을 거야.”
“왜요?”
“꽉 잡혀 사는데 좋고 말고가 어딨어. 무조건 복종이지.”
“아….”
뜻밖이었다. 그래도 이승수 사장 하면 밖에서는 나름대로 한 카리스마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광수 사장이 진지한 얼굴로 민우에게 속삭였다.
“민우야. 가장 좋은 결혼이란 건 말이다.”
“네.”
“안 하는 거야.”
“네?”
도민우가 옆에 있는 민영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사장님.”
“왜.”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안 해요.”
“그래…”
이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미쳐야 할 수 있는 게 결혼이지.”
“흐흐흐.”
이광수 사장이 자신의 결혼관을 피력하고 있는 동안, 이승수 사장의 주례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 우리 멋진 신랑 김용수 군과 아름다운 신부 김희정 양. 내가 두 사람을 오래 지켜봤잖아요? 잘 살 겁니다.”
진혁의 매니저 김용수와 세린의 매니저 김희정. 두 사람의 복잡했던 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언니, 예쁘네.”
“그러게.”
세린의 말에 서연이 맞장구를 쳤다.
“다음은 축가 순서입니다. 신부의 오랜 지기이자, 세계적인 가수죠. 연세린 양이 축가를 불러주시겠습니다.”
“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린이 축가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으와. 연세린 선배님의 축가라니.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프렌들리걸스 멤버들과 윤초록별이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흐흐. 그렇지.”
입봉 감독이 된 이영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작된 세린의 축가.
“눈부신 날― 눈부신 사랑이 이곳에 있네요.”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세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와.”
그저 다들 넋을 잃고 세린의 노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법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우리의― 사랑이 이곳에 있음을 믿어요.”
“우와!”
짝! 짝! 짝! 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속에 세린의 축가가 끝을 맺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 무렵, 프렌들리걸스 사차원 담당 장이현이 영준에게 물었다.
“근데 오빠.”
“왜.”
“오빠는 왜 여자 친구 안 사귀어요.”
“안 사귀냐? 못 사귀는 거지.”
“왜 못 사귀어요.”
영준이 어이없다는 듯 장이현을 쳐다보았다.
“야, 너는 이 좋은 날 꼭 아픈 곳을 찔러야 되겠냐? 왜 못 사귀겠냐. 내가 매력이 없나 보지.”
영준이 씩씩댔고, 그런 영준을 빤히 쳐다보던 이현이 말했다.
“아닌데. 매력 있는데.”
“아, 그럼, 그럼. 다들 그렇게 얘기해. ‘오빠 매력 있어요.’ 근데, ‘사귈래?’ 그러면 ‘아, 오빠, 오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남자로서는 아니에요.’ 그런 거지.”
영준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오. 내가 키가 10cm만 더 컸어도.
라고 생각하며.
“아닌데. 난 사귈 수 있는데.”
“아니. 근데. 자꾸 너….”
“……”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사귈 수 있다고 했는데.”
“……”
영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사귈 수 있다고?”
“네.”
“그, 그럼, 사귈래?”
“네. 좋아요.”
“크헉!”
영준이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한 이유였다.
“자, 이제 신랑 신부가 행진할 때 장내에 계신 하객분들은 모두 기립하셔서 힘찬 박수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딴 따다다단.
환한 웃음을 머금은 김용수와 김희정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펑! 펑!
폭죽이 터지고. 모든 하객이 큰 환호와 박수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다.
그리고.
“신랑 신부 친구분들 어서 앞으로 나와 주세요. 기념 촬영이 있겠습니다.”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서연이 진혁의 손을 잡았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누나. 진심으로 축하해요.”
“고마워.”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자자, 여기 부케 받으실 분 서 주시고요.”
“서연아.”
김희정이 활짝 웃으며 서연을 불렀다. 서연이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갔다.
“자, 하나둘 셋! 하면 신부님 부케 던져 주세요. 하나 둘 셋!”
휙!
부케가 서연이 서 있는 곳에 한참 빗겨나 날아갔다.
그 순간.
서연이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선보이며 부케를 받아내었다. 할리우드에서 주목하는 액션배우다운 동작이었다.
“우와―!”
모두의 감탄이 터져나왔다.
“네! 우리 민서연 배우님의 결혼에 대한 악착같은 의지가 느껴지는 동작이었습니다.”
사진사의 너스레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단체 사진 찍습니다. 다시 자리 잘 잡아주시고요.”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진혁의 친구들이 모여 섰다.
세계적인 배우가 된 진혁과 서연.
세계적인 가수가 된 세린.
기획사 이사님 민우.
아나운서 민영.
그리고 영화 감독이 된 영준까지.
“우리 애들 너무 멋지죠.”
사진 촬영을 바라보던 우봉수가 다른 부모들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게요.”
“아휴, 다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들이 눈물을 찍어내었다.
“……”
자리를 잡고 선 진혁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5월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파란 하늘.
아름다웠다.
하늘도.
삶도.
“진혁아. 카메라”
서연이 진혁의 팔을 톡 쳤다.
“아.”
진혁의 시선이 카메라로 향했다.
“자, 이제 찍습니다. 김치― 하나 둘 셋!”
진혁이 웃었다.
환하게.
더 환하게.
:
:
:
:
[에필로그 –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커억!”
진혁이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매캐한 전장의 열기가 얼어붙은 미령의 심장에 채 닿지도 못한 채 흩어졌다.
“대장! 정신 차려! 눈 감지 말라고! 야, 이 새끼야! 제발.”
사랑했다.
‘제발….’
목숨처럼 사랑했다. 지금 대신 죽을 기회를 준다면 주저 없이 그리할 것이었다.
내가 죽을게요. 그러니 제발. 안 돼요. 이 사람은.
그녀가 믿지도 않던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미령 자매님. 성경 공부 같이 안 할래요?’
‘일없습니다. 일요일에 예배보면 됐지. 무슨 또 성경 공붑니까.’
믿음 같은 건 없었다.
하나님은 개뿔.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지옥일 리가 없지.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하는 건 그나마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람처럼 대해주던 선교사에 대한 의리였다.
탈북자. 중국 공안에 붙들리면 곧바로 북송인 신세. 그게 아니라면, 미령 같은 젊은 여자는 인신매매의 타깃이 되기 일쑤였다.
국경 인근에서는 그래도 탈북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기독교 선교사들인 까닭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3개월.
고아에 꽃제비 출신인 성미령의 삶에서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그나마 사람답게 살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미령 자매님. 일어나요. 빨리! 공안이에요. 공안! 빨리 뒷문으로 도망쳐요!’
선교사가 황급히 쥐여준 몇십 달러 지폐를 쥐고 허겁지겁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먼 발치에 숨어 공안에 끌려가는 선교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그럼, 그렇지. 하나님은 개뿔. 그런 존재가 있다면 저 사람들을 저리 끌려가게 내버려 둘 리가 없지.
퉤.
미령은 침을 뱉었다.
3개월 간 선교사와 머물며, 혹시나 하고 피어오르던 신앙 엇비슷한 마음의 잔재들을 깨끗하게 뱉어내기 위함이었었다.
그런 그녀가 신을 찾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신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기적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제발…. 제발요.
하지만 진혁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아, 안 돼. 대장, 대장! 아니야, 아으 흑,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눈 좀 떠봐. 대장. 아니야…. 으어헝―.”
미령이 떨리는 손을 내밀어 식어가는 진혁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폭음이 들렸고.
삐이익―
날카로운 소음이 귀에 울렸다. 그리고 더 이상 미령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암흑에 휩싸였던 미령의 눈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저만치 쓰러져 있는 진혁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미령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포탄 파편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이었다.
의식이 흐려져 왔다. 진혁을 또렷이 보고 싶었다.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는 건 흐릿한 진혁의 형상뿐이었다.
‘나쁜 놈…. 좋아한다고 얘기하지…. 나 좀 안아주지.’
미령의 입술이 떨렸다. 겨우 힘을 내어 입을 떼었다.
“여…. 동생…. 같은 소리 하네…. 그거 사랑이야. 이 바보야….”
미령의 시선이 힘겹게 하늘을 향했다.
흐린 시선으로도 알 수 있었다. 눈부시게 밝은 날이었다.
하늘은 지옥 같은 땅에도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저기요….”
미령이 하늘을 향해 신음하듯 입을 열었다.
“믿지도 않아 놓고 이런 부탁해서 미안한데요….”
미령의 눈에 핏물이 차올랐다.
“제발요…. 저 사람은 살려주세요. 벌 받을 게 있으면 제가 받을게요. 저 사람은…. 제발….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람답게….”
의식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
“서연아!”
울부짖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서연의 귓가에 울렸다.
삐이익―
날카로운 소음이 귓가를 때리고는 곧 사라졌다.
누군가 서연의 침대를 붙들고 오열했다. 하지만 서연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울고 있는 저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내가 누군지.
다시 의식이 사라졌다.
*
[교통사고로 의식 잃었던 아역 배우 민서연양, 의식 회복. 동승했던 부친은 숨져.]*
“괜찮을까요?”
서연의 엄마 윤성희 이사장이 의사에게 물었다.
병원 앞 정원, 서연이 벤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가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억상실.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딸이었다.
*
“서연이 그림 그리니?”
무표정한 얼굴로 엄마를 잠시 바라본 서연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서연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본 윤성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그림이었다. 6살 여자아이가 갑자기 생각나서 그렸다고 하기에는.
“이건 누구야?”
고개를 든 서연이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몰라.”
“음…. 엄마가 보기엔 군인 아저씨 같은데. 아니야?”
“……”
서연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윤성희는 보았다. 딸의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를.
“……”
누구지?
서연 자신이 그려 놓고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
서연이 작은 손으로 그림의 남자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서연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구름이 고요히 흘러갔다.
하늘이 서연을 향해 가만히 웃었다.
어린 서연도 따라 웃었다.
눈부시게 밝은, 그런 날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