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30
30. 위대한 개인기
“두 달 좀 넘었습니다.”
“허 참. 믿기지가 않는데…”
정두일 PD의 말은 정말로 못믿겠다는 뜻이었다. 의심스러운 눈빛.
아역 배우 출신이라고 해도 우진혁의 연기는 정도를 넘어설 만큼 좋은 것이었다. 근데 하물며…
“사실이에요. 부모님께 확인했어요.”
PD의 눈빛을 읽은 한유경 작가가 말했다.
“한 작가님이 우진혁 학생 부모님을 아세요?”
“아뇨. 직접 뵌 건 아니고요. 우진혁 학생이 다니는 학원 원장님이 연성훈 배우님이세요. 그분 통해서 확인했어요.”
“하. 그게 말이 안 되는 건데…”
정두일 PD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연세린을 향해 물었다.
“그럼, 연세린 양도 연기 배운 지 두 달 좀 넘은 거예요?”
“아휴, 아뇨. 저는 몇 년 됐어요.”
“그쵸?”
그제야 정두일 PD의 눈빛이 수긍했다.
그래, 몇 년 하고 저 정도 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 그래도 특별한 재능이지만.
“아, 저 연세린 학생은 연성훈 배우님 따님이에요.”
“아. 어쩐지.”
한유경 작가의 설명에 정두일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흘러가야 개연성이 있는 얘기였다.
정두일 PD는 여전히 눈앞에 서 있는 우진혁이라는 개연성 없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저, 두 사람 혹시 개인기 같은 거 있어? 아님, 뭐 특기 같은 것도 좋고. 한번 보고 싶네.”
한유경 작가의 요청에 정두일 PD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연기를 저렇게 해치운 애들에게 뜬금없이 개인기?’라는 눈빛이었다.
한유경 작가가 PD의 눈빛을 읽고는 빙긋 웃었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애들이 어떤 다른 끼가 또 있을까 궁금하시지 않아요?”
한유경 작가가 의아해하는 PD의 눈빛에 다시 미소를 띠고는, 시선을 우진혁에게로 옮겼다.
의미심장한 둘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사실 한유경 작가가 둘에게 뜬금없이 개인기나 특기를 요구한 건 아니었다.
뜬금이 없었던 건 어제 걸려온 우진혁의 전화였다.
– 작가님. 내일 오디션에서 저희에게 개인기나, 특기를 요청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응? 그런 게 있으면 참가자가 알아서 보여주면 되는 거야. 원래 오디션에서는 다들 그래.
하지만 우진혁은 꼭 요청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유를 묻는 자신에게 진혁은 이렇게 말했다.
– 세린이가 노래에 굉장히 소질이 있는데, 아직 소극적이라서요. 그걸 깨울 계기가 좀 필요합니다.
– 그래? 노래에?
– 이번 오디션에 대한 열정이 커서, 작가님이 노래를 부탁하시면 분명 할 거예요.
세린에 앞서, 일단 진혁이 자연스럽게 먼저 개인기를 하겠다는 부탁이었다.
한유경 작가로서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 진지한 진혁이 무슨 개인기를 할지도 궁금했고, 세린의 노래도 궁금했다.
“저, 먼저 해보겠습니다.”
약속대로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오, 그래. 뭘 하려고?”
“찰리 채플린 연기 모사를 좀 해보겠습니다.”
“응? 찰리 채플린?”
뜻밖이었다. 진혁과 찰리 채플린이라니. 한유경은 궁금했다. 둘은 어딘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또 재밌을 것도 같은 조합이었다.
정두일 PD도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요즈음 친구들도 찰리 채플린을 알아요?”
진혁으로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진혁은 그냥 요즈음 친구가 아니었으니.
“아니면 내가 찰리 채플린 광팬인 걸 알고 준비한 건가? 어떻게 알았어요? 혹시 인터뷰에서?”
응?
진혁으로서는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진혁이 찰리 채플린 연기 모사를 개인기로 택한 건 순전히 제임스 때문이었으니까.
찰리 채플린의 열성 팬이었던 제임스는 한 번씩 그 익살스러운 연기를 흉내 내곤 했다. 그렇게 진혁도 그 배우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게 찰리 채플린 연기 모사를 개인기로 택한 이유였다.
하지만 정두일 PD는 진혁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이야. 연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PD 취향까지 조사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하하! 어디 한번 봅시다. 이거 엄청 기대가 되는데.”
정두일 PD는 말 그대로 정말 기대가 되는 표정이었다. 책상에 팔꿈치를 짚으며 몸까지 진혁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시작하겠습니다.”
진혁이 몇 발자국 옆으로 이동하더니, 찰리 채플린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흡!””
능청스러운 진혁의 연기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금세 우뚝 멈춰선 진혁이 고개를 조금 숙이는가 싶더니, 누군가 용기를 북돋우려는 듯한 제스추어를 하기 시작했다.
무성영화를 구현하듯 소리를 내지 않고 표정과 제스처로만 하는 연기였다.
“오호–.”
찰리 채플린의 광팬이라던 정두일 PD답게 진혁의 연기에 눈빛을 빛냈다.
한참을 몸짓하던 진혁이 옆에 있을 가상의 누군가를 드디어 설득한 듯 그의 손을 잡고 힘차게, 그러나 특유의 어정쩡함으로 걸어 나왔다.
이내 우뚝 멈춰 서는가 싶더니 가상의 상대에게 웃으라는 뜻의 제스처를 한다. 소리 나지 않는 입술에 맺힌 단어는 분명.
스마일.
“모던타임즈!”
정두일 PD가 마치 퀴즈 정답을 맞히는 듯한 톤으로 영화 제목을 외쳤다.
“모던타임즈 엔딩 장면 맞죠? 으하하. 잘한다. 잘해!”
진혁이 말을 하지 않고 빙긋 웃더니 이내 표정을 바꿨다.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 뭔가 단호하고, 그러나 어떤 슬픔이 담긴 표정.
진혁의 입술이 움직였고, 이번엔 대사가 나왔다. 격정을 억누르듯,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내뱉어내듯, 빠른 대사가 쏟아져 나왔다.
“Soldiers! don’t give yourselves….”
첫 문장부터 정두일 PD의 몸이 움찔했다. 영어로 쏟아내는 진혁의 대사였지만, 정두일은 저 대사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수십 번도 넘게 보며, 외우다시피 했던 대사.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던 대사.
찰리 채플린의 명작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 장면이었다.
마치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모습과 어조로 연설을 하고 있지만, 실은 나치즘에 정확히 반박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주인공.
찰리 채플린의 영어 대사를 정확하게 모사하던 진혁이, 그 딱딱 끊어지는 영어 톤을 절묘하게 한국말로 옮기며 대사를 이어갔다.
“군인들이여, 저 짐승 같은 권력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여러분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여러분을 기계처럼, 짐승처럼 다루고서는, 마침내 여러분을 총알받이로 쓰려는 놈들입니다!”
포효하는 진혁. 진혁은 강렬한 갈망을 담은 눈빛으로 뭔가를 토해내듯 대사를 쏟아내었다.
“짐승 같은 독재자들은 미래의 행복을 약속하는 대가로 권력을 키웠지만, 그건 모두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결코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격렬하게 고조되어 가는 연설.
“저들은! 자신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국민들은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군인들이여, 이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진혁의 꼭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당신들은 기계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가축이 아닙니다!”
원작과는 다른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토해내는 마지막 웅변.
“당신들은 ‘사람’입니다!”
연설을 마친 진혁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격정을 다 삭여내지 못한 모습으로 가쁜 호흡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건 연기니까. 이 연기에 흐르는 눈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코믹한 캐릭터, 그러나 젖어 있는 슬픈 눈망울의 역설까지였다.
웃기기 위해서 자신은 웃지 말아야할 희극인처럼. 격정적이어야 하기에, 그 감정의 그 민낯은 억제 되어야 했다.
하지만 진혁의 가슴은 울고 있었다.
그의 가슴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지를 불사르는 폭염, 피어오르는 연기,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전투 기계처럼, 감정이 거세된 짐승처럼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이전 생의 자신에게.
차마 자신을 사람이라 여기지 못하고, 용병이라는 종으로 구별했던 자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사람이라고.
사람이었고, 사람이며, 사람일 것이라고.
그렇게 진혁은 삭인 눈물로 되뇌고 있었다.
정확히 찰리 채플린의 명연기를 모사한 그것이었지만, 또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우진혁만의 연기였다.
덜컹.
정두일 PD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졌지만, 그런 건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인간 정두일.
처세에 능한 PD이기 이전에, 그에게도 예술을 향한 갈망으로만 채워져 있던 순수한 시절은 있었다.
이제 와 상업 드라마 따위 예술도 아니라는 젊은 날의 뻗댐이 무조건 옳았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투자, 흥행, 성공, 모든 것을 수치로 평가받는 이 세상의 구조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자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누구에게도 평가 받을 필요 없는 정두일이, 그저 사람임으로 충분한 인간 정두일이 오롯이 살아 있음을!
정두일은 눈물을 가려야하는 찰리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껏 울어도 되는 관객이었다.
인간 정두일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 PD님…”
갑작스런 정두일 PD의 눈물에 한유경 작가는 당황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당황한 그녀의 시선이 우진혁에게로 향했다.
‘저 녀석은 개인기를 하겠다더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연기를…’
그것도 분명, 연세린에게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한 개인기일 뿐이라고.
털썩.
정두일 PD가 격앙된 감정에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미쳐버린 연기, 거기에 호응하는 PD의 눈물에 오디션 장이 숙연해졌다.
한유경 작가는 난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세린에게 개인기로 노래를 부탁한다는 건 어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약속은 약속.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와. 개인기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더 굉장한 연기를 보여 주는 건 뭔가요.”
진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세린이 한유경 작가의 말에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아.”
“네. 네?”
한유경 작가의 부름에 세린이 정신이 든 듯 한유경을 쳐다보았다.
“세린이 너도 개인기로 연기할 건 아니지? 나 세린이 노래 한번 듣고 싶은데.”
“노, 노래요?”
연세린의 눈이 커졌다.
“뭐, 배우야, 드라마에서 노래할 일도 있고 그렇잖아. 한번 들어보고 싶어. 세린이 노래.”
세린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우진혁을 바라보았지만, 진혁은 지그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윽고 세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진혁아! 나 진짜 진심이야. 오디션 합격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거니까!’
세린이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세린은 이 오디션이 운명이라고 말했고, 또 그렇게 믿었으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노래.”
진혁의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
“……”
“잠깐 쉬었다 할까요? PD님?”
“네. 그러죠.”
아직까지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PD를 위해 한유경 작가가 짧은 휴식을 요청했다.
정두일 PD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딸칵.
그런 PD를 슬쩍 바라본 한유경이 앞에 놓여 있는 오렌지 주스의 뚜껑을 열고는 천천히 들이켰다.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냥 개인기라던 우진혁의 저 연기는 도대체 뭐며.
진혁이는 왜 세린이에게 노래를 시키려고 했을까?
———- [작품 출처] ———–
본편에 차용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 (1932), 위대한 독재자(1940)
두 작품은 영상물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영상물 발표 후 70년/ 저작권법 제 42조).
“위대한 독재자”의 대사는 소설의 연출을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