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213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213화
■■■는 지금 웃고 있다.
■■■는 현재 대악마로서 고고하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출발한다.
가뭄의 대악마, ■■■가…….
용사와 그 일행은 직감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라는 느낌으로 그놈은 지금 웃고만 있을 겁니다.”
난 석판에 그런 내용을 대충 적어 두며 모두에게 말했다.
엘릭서를 제작한 후, 난 나오자마자 모두를 요정왕의 궁에 불러 모았다.
불러 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악마를 때려잡을 준비.
내 설명에 리안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시가 어째 이상한데.”
“허, 이만큼 정확한 예시가 어디 있다고 그래.”
이 정도로 완벽한 예시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웃고 있는 대악마가 두려워서, 지금 나는 손발이 떨리고 있단 말이다.
“어쨌건 중요한 건, 아직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대악마가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거야.”
이거, 생각보다 독한 놈이다.
놈의 자부심 그 자체에 흠집을 냈는데도 미동도 안 할 줄이야.
물론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놈이 분노로 눈을 까뒤집은 순간, 흩어진 집중력 덕분에 일부 엘프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으니.
그 ‘젊은 엘프’들이 여기에 있다.
“좀 몸은 괜찮으십니까?”
난 내 뒤에 있는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나름대로 뜻이 있어 바깥으로 나간 건데, 그걸 가지고 힐난을 할 이유는 없다.
해서도 안 되고.
어디까지나 ‘결과’가 나쁜 거지, 그들이 숲을 나선 이유까지 나쁜 것은 아니니까.
뭐, 바깥을 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불안했던 것이다.
마신의 잔재가 세계수를 파멸시키려 했음에도,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그 무력감.
그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저, 저희는 숲을 나와, 어떻게든 세계수께 도움이 될 힘을 기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만…….”
“대악마가 개입했겠지요. 물론 여러분에게는 사로잡혔다는 자각이 없었겠지만요.”
“……그렇습니다.”
사로잡힌 과정은 저마다 다양했다.
어떤 이는 용병 일을 하다가 사로잡혔고, 또 어떤 이는 곤경에 빠진 자를 돕다가 그리되었다.
전부 비슷한 시기에, 짜고 친 듯.
즉, ■■■, 그놈이 젊은 엘프들이 숲에서 나온 시점부터 모두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긴 당연하겠지.
세계수 정도 되는 존재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이다.
그런 사전 준비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새끼, 수틀리면 아예 자폭할 수도 있단 말이지.’
메이릴 때와 비슷하다.
억지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진명을 찾게 된다면 놈은 날 죽이지 못하는 이상 반드시 소멸한다.
놈은 날 죽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요정숲이 황폐화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며…….
‘소멸하는 순간 벌어지는 후폭풍도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이지.’
중요한 건 그 둘이 겹치는 경우다.
세계수가 어찌해 줄 거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명’을 되찾은 대악마라면.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세계수에게 무시 못 할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되면?
틈이 생긴다.
남은 대악마가 그 틈을 찔러 세계수를 무너뜨릴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수가 그런 것을 허용할 정도로 여간내기는 아닐 테지만…….
지금은 그 일말의 가능성조차 조심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하여간 그런고로.
“여러분에게는 아직 그 대악마의 힘이 남아 있습니다. 곧, 놈은 다시 여러분의 눈을 통해 숲을 살피게 될 테지요.”
“그, 그런……!”
젊은 엘프들의 표정이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고 숲을 나섰는데, 오히려 세계수에게 해악이 될 행동을 하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난 단순히 그들이 절망하게끔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게 있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무엇인지요?”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 여러분에게는 자유의사가 있지요. 그리고 대악마는 아직까지 그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
“곧, 놈은 다시 활성화될 시야를 통해 정보를 확인하려 할 겁니다.”
놈이 엘프들에게 건 암시는 그리 치밀하지 않다.
그래,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대악마란 그런 존재거든.
자신들 외의 다른 생명은 언제든지 소모해도 상관없는 말이거나 하찮은 미물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놈들.
놈은 엘프들이 제 암시에서 벗어날 리 없다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그걸 역으로 이용할 겁니다. 놈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찌르는 거죠.”
“잠깐, 용사님.”
그때, 요정왕이 내게 말했다.
“대악마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놈을 도발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만약 놈이 과하게 돌발 행동을 벌인다면…….”
“괜찮습니다.”
“그런…… 가요?”
“예, 놈은 자신의 계획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그것 하나로 그 지옥에서 ‘군주’에 오른 존재니까.”
잿빛 피란 그런 존재.
따라서 마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순혈’을 증오하는 것이다.
뭐, 그런 배경이다.
그래서 잿빛 피를 상대하는 게 좋다.
순혈이 놈을 도울지는 몰라도, 잿빛 피의 입장에서 순혈에게 도움을 청할 일은 없으니.
놈은 어떻게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것이고, 그러면 훨씬 상대하기 쉽다.
“어쨌건, 그렇습니다.”
난 엘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대악마의 암시에 당한 ‘척’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정해 드릴 테니.”
“……그,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됩니다.”
애초에 딱 그 정도의 암시다.
상대가 아스모데우스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쪽은 더 커지기 전에 내가 싹을 잘랐으니까.
그래.
애초에 ■■■, 그놈은 그리 협잡질에 능한 악마가 아니거든.
* * *
요정숲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악마가 관여되어 있으며, 심지어 놈의 목적이 세계수라는 것이 밝혀진 시점이 아니던가.
당연히, 분위기가 바뀔 수밖에.
■■■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요정왕과 원로들의 회의가 벌어졌다.
남아 있는 젊은 엘프들 또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가볍게 말하고 있지만.
……정말 모를 일이다.
내가 죽는다거나, 놈을 소멸시킬 확신이 없다는 문제가 아니다.
결과는 확신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생겨날 피해가 얼마나 될지를 모른다는 게 중요한 것.
그렇기에 난 지금부터 놈에게 ‘선택지’를 강요해야 한다.
놈이 굳이 자신의 이점을 포기하고 내 앞에 나오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려고?]세트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놈이 아스모데우스처럼 협잡에 능하지는 못하더라도, 제 이점을 포기하고 나올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야. 당연히, 어지간한 수는 눈치챌 테고.]“그야 그렇겠지.”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뭘 어쩌라는 건가.
이쪽에는 그놈이 그리도 치를 떠는 신물의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네프티스의 풍요.”
[물론 그게 그놈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네프티스 본인도 아니고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리라고 보는데?]“그것도 알아.”
그런 것도 모르고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있겠는가.
“실제로 ‘풍요’가 놈의 가뭄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거든.”
“놈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면 그만이라 이거지. 때마침, 딱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보여 줄 상황도 만들어졌고.”
놈은 잠입한 엘프들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요정숲의 내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발하여 놈의 집중력을 무너뜨리는 쪽에 활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놈의 ‘시야’도 확보했겠다.
놈을 상대할 때 필요한 엘릭서도 확실하게 손에 넣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그렇게 손에 넣은 패를 활용하는 것.
“그래서 세트.”
[……음?]세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랑 일 좀 같이 하자.”
[어…….]세트가 영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파들파들 떨리는 눈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불신감…….
아니, 이건 신뢰의 수준.
반드시 내가 엿 같은 제안을 할 것이라 신뢰하는 눈빛이다.
“너도 일단 사도잖아.”
[……그렇지?]“덤으로, 오래 산만큼 대악마들에게도 꽤 인상이 박혀 있을 거고.”
이따금씩 보이긴 했지만, 대악마들은 정말 치를 떤다 싶을 정도로 사도들을 증오한다.
당연한 일이다.
놈들에게 있어 아사르의 사도란 말 그대로 대척점에 선 존재인 것이다. 증오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동시에.
“놈들, 널 엄청나게 경계하잖아.”
무덤에 묶여 있던 때였다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허나, 이제는 다르다.
세트는 확실하게 현실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힘을 되찾았다.
아직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대악마가 착각하게끔 만들 수는 있는 것이다.
[……흐음, 내가 사도로서 놈의 앞에 서길 바란다는 거지?]“정확히 말하면 노출되는 거지. 놈이 자신의 ‘가뭄’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믿게끔 말이야.”
[그러면 놈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아예 빼지 않을까? 성공 확률이 엄청나게 낮아진 거잖아.]“그것도 못할걸?”
난 피식 웃었다.
이건 확신이다.
한번 회귀라는 기적을 겪고, 놈들을 경험했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확신.
“이거, 놈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끌어다 쓴 도박일 테니까.”
굳이 우리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그래.
놈은 거금의 사채를 써 가며, 이번 일에 모든 걸 투자했다는 뜻이다.
* * *
며칠이 지났다.
■■■는 여전히 요정숲의 염탐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꾸준히 그를 향해 세계수의 생명력이 들어온다.
막대한 양이지만, 부족하다.
그는 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순혈’조차 하지 못한 업적을 세우고, 그분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 안 된다.
‘벨페고르, 네놈.’
그는 어느 대악마를 떠올리며 이를 빠득 갈았다.
순혈 가운데서도 유독 ‘불합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교란종.
그저 ‘나태’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강해지고, 빠르게 진명을 되찾은 괴물.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놈은 태생적으로 강하고, 위대할 운명으로 태어난 군주였으니.
그 사실이, 증오스럽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놈의 그 태생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집착이 되었고, 그 집착은 저도 모르게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세계수를 집어삼킨다는 목적 하나로, 그는 많은 것을 희생했다.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포기한다면 그는 영영 순혈을 따라잡을 수 없다.
벨페고르, 그 가증스런 놈의 발아래 살아야 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몸에 맞지도 않는 협잡질을 일삼으며 움직인 게 아닌가.
괜찮다.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자연스레 요정숲을 향한 길이 열릴 테고, 세계수를 향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가뭄이 완전히 숲을 덮친다면, 세계수는 어떻게든 그 가뭄을 치유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을 터.
그 순간이, 기회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꾸준히 숲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다.
계획대로라면 숲의 생명력이 적지 않게 소모되어야 했을 터.
그런데.
“어, 어째서냐.”
그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잠입시킨 엘프들이 비추는 ‘풍경’ 속 숲은 멀쩡했다.
생명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그는 알고 있다.
풍요.
신물의 힘이라면 마땅히 그게 가능할 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도 본인이 나섰을 때의 일.
용사가 설령 신물을 손에 넣었더라도, 자신의 능력에 완전히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터.
“그런데, 왜……!”
그는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에 절규하며 초조함에 손톱을 씹었다.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을 때.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사도가 있었다.
풍요의 주인은 아닐지라도 그와 같은 급을 지닌 사도가…….
– 이제, 가뭄은 이 땅을 망가뜨리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본신으로 실체화한 채.
선명한 생명의 힘으로 ‘가뭄’을 억누르고 있다.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애써 만들어 둔 영향력이 희미해져 간다.
“세, 트……!”
그는 동요를 감추지 못한 채, 그 빌어먹을 사도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직감했다.
시간이 없음을.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