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239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240화
소멸의 권능.
당연하지만 아무리 내가 8서클에 도달했다 한들, 신의 권능을 다루는 건 별개의 문제다.
여전히 ‘소멸의 권능’은 다루기가 난해하기 짝이 없는 힘인 것이다.
9서클에는 도달해야 뭔가 제대로 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난 방향성을 바꾸기로 했다.
권능 그 자체의 역량을 당장 올릴 수 없다면,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써먹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옳은 것이다.
【서, 설마……!】
내 손끝에서 휘몰아치는, 새카만 힘을 본 아리오크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미 놈은 움직였다.
평소라면 결코 부각되지 않을 신속(迅速)의 단점이 나타났다.
놈은, 지금 움직인 순간의 ‘방향’을 갑자기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졸지에, 놈은 자청해서 소멸을 향해 뛰어 들어오는 꼴이 되었다.
후웅.
소멸의 빛이 가볍게, 놈의 왼팔에 닿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왼팔 내부의 ‘사소한 균열’에 닿았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그래, 한 번 부서진 뒤, 불안정하게 복구된 신체 부위.
그 틈을 지나, 놈의 회복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건 가능한 것이다.
전부, 수왕이 확실히 놈의 왼팔을 터뜨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콰직!
요컨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소리.
【커흑……?!】
그리고 소멸의 빛이 닿자마자, 놈의 왼팔이 흔적도 없이 바스러진다.
단순히 바스러진 게 아니다.
회복될 가능성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한 소멸.
그리고 그 일격으로 놈의 ‘확신’이 완전히 깨졌다.
아니, 깨진 정도가 아니다.
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동요하며 소리쳤다.
【네, 네가…… 어떻게, 그분의 권능을……! 부, 불가능하다!】
“글쎄다.”
딱히 불가능이니 뭐니, 그런 말을 하는 건 상관이 없다만…….
“네가 봐야 하는 건,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큭?!】
놈도 바보는 아닌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필사적으로 수왕의 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아아.】
이미 놈이 동요하고, 내 소멸에 의해 육체가 무너진 시점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휘날리는 바람과 함께 제 앞에 나타난 자를 확인한 순간.
【빌어먹을.】
놈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상대를 보지 않다니.”
후욱.
어느새 수왕은 내 앞에 서 있었다.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오른팔을 힘껏 뒤로 당겼다.
오래전, 본 적이 있던 모습.
수많은 적으로부터 자신의 육체를 방패삼아 우리를 지켜 냈던 그 다부진 등…….
“무인 실격이다.”
그 말과 함께.
일격(一擊)이 악마를 꿰뚫었다.
콰직!
이번에야말로 수왕의 주먹이 확실하게 놈의 심장을 터뜨렸다.
회귀 전, 참으로 질기게 마지막까지 박동하던 심장.
지금, 그 심장이 으깨졌다.
아직도 선명하다.
– 제대로 결판을 내고 싶었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수왕이 쓴웃음과 함께 내게 했던 말.
–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느릿하게.
– 그럼에도, 바랐다네.
아리오크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휘청거리는 몸에는, 조금의 힘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침내.
쿵!
아리오크의 육중한 거체가 무릎을 꿇었다.
이건 회귀 전, 수왕이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 했던 광경이다.
‘늘 사로잡혀 있었지.’
수왕은 우리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마치 고민이라고는 없는 듯 굴었다.
언제나 호탕하게 웃었으며, 분위기가 무너졌을 때도 그만큼은 굳건히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몰랐다.
……아니, 모른 게 아니다.
애써 모른 척했을 뿐이다.
수왕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거나, 끊임없이 그날의 일들을 후회하고 있음을.
– 무(武)가 뭐라 생각하나.
그는 습관처럼, 우리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는 했다.
무(武)란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신념인 동시에 어쩌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미련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혈사자를 쓰러뜨리셨잖습니까. 그 기분 말이지요.”
“흐음.”
내 말에 수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있다. 멍청한 질문이다.
아리오크가 분명 위협적인 상대라고 한들, 그는 내가 기억하는 그 ‘수왕’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아리오크란 그저 조금 힘겨웠던 도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겠지.
지금의 그에게 있어 이번 대결은 그리 대단한 감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빌어먹을, 머릿속에 박혀 있는 기억이 그리 시키는 것이다.
내 기억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만이,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기분이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아리오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흐, 하, 하…….”
놈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래도 대악마인지라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결국, 그 정도가 한계.
놈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본신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놈은 새카만 피를 울컥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흐, 자랑, 해도 좋다. 왕이여.”
놈은 당장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점멸하는 붉은 눈으로 수왕을 응시했다.
“네가, 이겼다. 인류로서…… 용사를 제외하고, 대, 악마를 쓰러뜨렸다는 위업을…… 달성했어.”
“…….”
“네 이름은, 이제 세계 전역에 퍼질 테지. 날, 나를…… 이긴 인류로서 말이다.”
“자랑이라. 그렇군.”
수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 꽤 충실감을 느끼고 있어.”
“…….”
“하지만 네가 대악마라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과거를 넘었다.”
“……벽.”
“그래, 과거를 넘어 이 순간까지 도달한 게지. 그 ‘과거’에 대한 것을 정확히 설명하는 건 힘든 일일 테지만…….”
그는 아리오크의 심장을 꿰뚫은 주먹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쨌건, 일어서 나아간 게지.”
그렇게 말하는 수왕의 눈빛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수왕’과 지금의 ‘수왕’은 같으면서도 다르니까.
하지만.
‘나아간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설령 완전히 같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나아간다.
기억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가 줄기차게 말했던 무(武)의 의지란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째서인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이어지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와 그날의 모두는…… 여전히, 단절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흐, 하, 하하…… 그렇군. 나아갔다. 나를 밟고, 나아간 건가.”
아리오크가 키득댔다.
“하긴, 무(武)를 지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상대했을 때부터…… 결과는, 정해진 거겠지.”
놈은 그렇게 말한 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찌 보면, 그분께서 ‘용사’를 통해 신념을 버린 날 단죄했던 것일지도 모를 일.”
“마신은 관계없다만.”
“하, 하, 용사…… 대적자여. 어찌 그리도 신을 모르는가.”
아리오크는 낄낄대며 말했다.
“아니, 모른 척하는 걸지도 모르지. 애써, 눈을…… 돌리고.”
“…….”
나는 그의 말을 담담히 들어 주었다.
보통의 대악마라면 폭발을 걱정해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여유가 없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왕이 놈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확실하게 그 폭발의 근원 또한 소멸시켰으니.
어지간히도 힘든 작업이다.
본래라면 근원이고 나발이고, 그걸 소멸시키기 위해서 당장 나조차 감당이 안 될 마나가 필요했겠지만…….
‘때마침, 수왕이 심장을 꿰뚫는 과정에서 그 틈이 보였으니.’
나로선 다행인 일이었다. 가장 귀찮은 일을 피해도 됐으니.
“……끝, 이군.”
파삭.
놈의 손끝이 부스러졌다.
폭발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 놈은 천천히, 소리 없이 죽어 가고 있었다.
“부족, 했지만, 뭐, 괜찮다.”
그 말과 함께 날 쳐다본다.
“재밌는 것도, 보았고…….”
그리고 잠시 후.
스륵.
회귀 전, 가람을 멸망시켰으며 우리를 꾸준히 괴롭혔던 재앙.
대악마, 아리오크가 소멸했다.
* * *
잠시 후, 일대를 둘러쌌던 거센 폭풍이 잦아들고 내부가 드러났다.
무인들은 결과를 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왕이 있을 자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오!”
멀쩡한 모습으로 한 손을 든 채 모습을 드러낸 왕을 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위대한 왕이여!”
“가람의 영광이여, 영원하라!”
여전히 건재한 왕의 존재감.
이곳에 모인 가람의 무인 전부가 깨달은 것이다.
왕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점에 있으며, 마(魔)의 개입에 꺾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존재임을.
“……아.”
그리고 그들 가운데, 연미려가 서 있었다. 그녀는 혈사자가 소멸한 자리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가문을 괴롭혔던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 하…….”
자신의 손으로 끝내지는 못했다.
알고 있다. 혈사자라는 괴물을 상대하기에, 자신의 경지는 너무나도 미약했음을.
그렇기에 꼿꼿이 고개를 들고, 놈의 마지막을 쳐다보고자 했다.
그건 옳았다.
당당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
꾸욱.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이 순간의 무력감을 인정하되, 집어삼켜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이제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
원한은 끝이 났고.
이제는 새로이 시작할 때.
연(蓮) 가문.
이제 그녀가 주인이다.
나이가 어릴지라도 그녀는 핏줄을, 그 화려했던 명예를 이어 갈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해.’
자신은 아직 미숙하다.
그녀는 모두의 환호성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굳게 선 수왕을 보았다.
그 옆의, 모든 것을 바꾸고 그녀를 구원한 용사를 보았다.
당장은 동경에 불과할지라도 언젠간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후우.”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한 두려움으로 떨리던 어깨가 진정됐다.
당당히 걸음을 내디뎠다.
지나간 미래 속에 스러졌던 연꽃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 * *
며칠 뒤.
드디어 대악마 하나도 추가로 소멸시켰겠다, 난 간만에 뒹굴거리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산더미처럼 일이 쌓여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뒹굴거리는 건 아니었고…….
“키에에엑!”
리안이 하늘을 날았다.
“꺄아아악!”
에일렌도 하늘을 날았다.
“부족하군, 부족해!”
그리고 그 가운데, 수왕이 눈빛을 번뜩이며 포효했다.
……뭐, 그래.
이거다. 뒹굴거리는 이유.
수왕에게 개인 교습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없거든. 기회가 왔으면 제대로 뽑아 먹어야지.
“하하, 시원하게 처맞는군요.”
난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아리안델과 함께 만족스러운 심경으로 눈앞의 광경을 구경했다.
“그러게요.”
“저것들이 신종 조류마냥 저렇게 괴성 지르는 꼴을 보는 게, 제 인생의 낙입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취미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난 그저 조금 과격한 것을 보는 게 취미였을 뿐이야. 저렇게 빌빌대면서 강해지는 거지, 뭐.
“음, 그런데, 미하일?”
“예, 말씀하시지요.”
“저기, 집사님은 왜 구석에서 저러고 계신 건가요?”
그 말에 난 한창 수왕에게 박살 나고 있는 둘의 뒤.
“흡!”
“…….”
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집사를 보았다.
집사의 근육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점 우람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미적인 관점에서 좀 더 진일보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이런 걸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자극이라는 겁니다.”
“……음.”
“이해하기 어렵지만, 저쪽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취미가 있는 법이죠. 깊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평생 난 이해 못할 세계다.
……음, 이해 못해야 해.
난 잠시 후, 한바탕의 대련을 마친 후 휴식 중인 수왕에게 다가갔다.
“전하.”
“오, 용사!”
수왕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
게다가 아리오크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던 건지, 이전보다도 더욱 그 기세가 강해졌다.
“그래, 무슨 일인가?”
“뭐, 별다른 건 아닙니다만.”
난 조용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밀리움에게서 보답으로 받았던 보물.
수왕의 단약.
“……음?”
수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내 단약이 아닌가!”
“아는 이에게 받은 겁니다만, 혹시 전하의 물건이 맞는지요.”
“내 것이 맞다네. 내 기운을 내가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으니. 그건 그런데…….”
그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어째, 미완성이군?”
이내,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