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19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320화
신화시대.
아사르와 마신이라는, 두 신과 연관된 이들의 생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세계수는 마신의 잔재로 인해 기나긴 세월을 고통 받았고, 사도들은 스스로를 무덤에 가둔 채 고독에 빠졌으며, 하나 남은 신 또한 영겁의 시간 동안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야 했다.
그리고 그 가혹한 운명은…….
“…….”
얄궂게도, 내 시조, 솔로몬에게도 해당됐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자면 다른 이들보다도 더욱 가혹했다 할 수 있으리라.
“이, 건…….”
처음에는 단순히 ‘점액’으로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결과, 저것들은 그런 단순한 게 아니었다.
“……솔로몬의 피군.”
점액에 뒤덮여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곳곳에 무언가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전부 일정하게 선을 이루고 있었다.
‘혈관.’
잠시 생각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몸 내부의 피가 멋대로 움직이며 이내 살갗을 뚫고 나오는 그 광경을.
끔찍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겠지.
“자, 잠깐, 솔로몬이…… 최후가, 이랬다고? 어, 어떻게…….”
세트는 어지간히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말조차 더듬거렸다.
“발푸르기스라는 가문을 세웠다고 하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 도대체 왜……! 아, 아니, 그보다 솔로몬은 아사르께서 마신의 영향력을 거두고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던 게……!”
“자유롭게 만들었‘었’지.”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하지만 아무리 아사르라는 존재가 솔로몬을 보호했다 한들, 그건 그가 영원불멸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일이다.
솔로몬의 비극은 결국 아사르의 ‘죽음’이라는 것에서 출발한 것.
그가 살아 있을 때면 모를까.
아무리 아사르가 많은 것을 준비하고, 솔로몬을 배려했다 한들 그 ‘피’까지 바꿀 수는 없다.
마신의 피는 악마를 부르며, 필연적으로 수많은 악마들의 개입에 노출되게 된다.
본래라면 그 ‘노출’에는 시조뿐만이 아니라 후손인 발푸르기스 역시 자유롭진 못했을 터.
‘물론 아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문 전체가 마신의 주구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아사르의 사후, 많은 것이 달라졌잖아? 마신 역시 방법을 바꿔서 은밀하게 개입하기 시작했고, 대악마들 역시 그렇게 했지.”
당장 회귀 전만 해도, 그 ‘은밀함’ 때문에 세계가 차츰차츰 작살났던 게 사실.
그런데 그런 놈이, 가장 손대기 쉬운 내 시조에게 손을 안 댔다?
“……그럴 리가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뭐, 야.”
뒤에서 레메게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몸을 덜덜 떨며,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조주의 비참한 최후.
녀석이 이렇게 동요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피조물인 그의 입장에서 이보다 충격적인 광경은 없을 테니까.
“레메게톤.”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아, 빌어먹을……! 그냥, 평소처럼 제멋대로 돌아다니겠거니 했는데!”
“진정해.”
“진정?! 창조주가, 눈앞에서 저 꼴로 죽은 꼴을 봤는데,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러니까, 더 진정하란 거다.”
난 더 소리치려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는 진정시켰다.
그 충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라.”
“……현, 실?”
난 동요하는 레메게톤에게 되새기듯 침착하게 말했다.
“시조의 최후가 확실히 예상 이상으로 처참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미가 없진 않았어.”
“그게, 무슨…….”
난 곧바로 바닥을 꼼꼼히 채우고 있는 점액들을 가리켰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불길하고 끔찍하게만 보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레메게톤이라면, 알아차릴 테지.
녀석은 솔로몬이 자신의 지식을 집약해 만들어 낸 최고(最古)의 대마도서니까.
“봐라, 네 창조주는 아무 의미 없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아.”
아니나 다를까. 곧 레메게톤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미안하다. 너무 흥분했군.”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흥분하지 마.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난 그렇게 말하고는 샤브티 쪽을 보았다.
폭풍 사이로 보이는 샤브티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엎드려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새카만 기운.
그림자 같기도 하고, 또 달빛조차 없는 밤하늘 같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불길하다는 것. 세트의 폭풍이 어떻게든 저것이 바깥으로 나오는 걸 막고 있지만 그조차 시간문제겠지.
“미, 하일……! 샤브티를 옭아매고 있는 힘……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야! 이, 건……!”
두 손을 뻗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세트가 소리쳤다.
“알아.”
놀랄 건 없었다.
예상한 범위 내니까.
마신이 아사르의 부재를 틈타, 제 피를 이용해 솔로몬에게 심어 놓은 ‘불순물’일 것이다.
“들어와, 새끼야.”
그리고 그 순간.
콰직! 쐐애액!
견고하기 짝이 없는 그 폭풍을 뚫고 새카만 발톱이 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조금만 더 쏘아졌다면, 어쩌면 내 머리를 꿰뚫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거리.
하지만 그것에 동요하기는커녕, 그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예전부터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소리 좀 많이 듣지? 좀 연기라도 그럴듯하게 하던가.”
【…….】
“반응할 생각이 없다면, 나도 딱히 네 장난질을 받아 줄 생각이 없다만…….”
그 말에, 폭풍 내부에 속박되어 있던 샤브티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옭아매고 있던 존재가 고개를 들었다는 표현이 옳을까.
【……언제부터 눈치챘지?】
그 순간,
일대의 대기가 가라앉았다.
“……!”
그리고 그 순간, 세트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녀석이 저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설마……!”
폭풍의 힘이 거세졌다.
더욱 견고하고, 강해진다.
그야말로 철벽.
그녀는 내 성장과 함께, 이제 사도의 힘을 거의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저 거센 폭풍을 뚫고 바깥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리라.
하지만.
【귀찮아.】
그 철벽조차, 샤브티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한순간, 샤브티에게서 튀어나온 칠흑의 손톱이 일제히 폭풍의 틈을 찢어발겼다.
“꺄아악……!”
폭풍이 간단히 무력화된다.
그것은 굳이 샤브티에게 갇혀 있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폭풍을 꿰뚫고 튀어나온 그것은 뭐라 인지하기도 전, 시조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해서는 그것을 집어삼켰다.
콰득! 콰드득!
당연하다는 듯, 간단히.
내 시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시체가 허물어졌다.
그리고 직후, 일대를 뒤덮고 있던 점액들이 꿈틀거리며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형상을 취했다.
“……하.”
그것은 몸을 일으켜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마다 형태가 명확해졌다.
날개가 펼쳐졌다. 12장의 날개.
그 수많은 악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간교하며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
악마 군주.
【으, 음, 흠…… 너무 오랫동안 자고 있었나. 이것 참, 갑자기 움직이려니, 좀 힘들군.】
“쓸데없이 인내심이 강하군.”
【그게, 내 장점이거든.】
흉포한 미소가 입가를 채웠다.
그 자체로 파괴와 절망을 형상화한 듯한 막강한 존재감이 일대를 가득 채우고, 공간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시련’이라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던 과거가 무너져 갔다.
‘역시, 이거였나.’
회귀 전, 갑작스레 나타났던 또 하나의 대악마.
당연히 위에서 갑작스레 다른 것들과 함께 ‘강림’하며 내려왔을 거라 여겼던 상정 외의 존재.
“대악마, 말파스(Malphas).”
【흐, 히힛!】
그 말에, 놈이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날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정, 답!】
도발하듯, 경박스레 대답했다.
* * *
“……군주가, 이미 하나 더 내려와 있었다고?”
세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놈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아아, 세트. 오랜만!】
반갑다는 듯 말파스가 경박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손가락을 세 보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몇천 년? 몇백 년? 모르겠네. 기생하고 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좀 맛 가서 말이지.】
“……샤브티와, 내 시조에게 기생하고 있었나?”
내 질문에 말파스가 웃었다.
【정답.】
그 말과 함께, 놈이 간단히 팔을 휘둘렀다. 동작은 가벼웠으나, 위력마저 가볍지는 않았으니.
콰아아앙!
가공할 힘이 그대로 세트를 향해 들이닥쳤다.
“으, 윽……!?”
세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놈의 힘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것보다, 내 마법이 그녀를 보호하는 게 더 빨랐다.
쿠웅!
공간이 단절됐다.
놈의 공격은 간단히 그 균열 사이를 오갔고, 세트에게 닿지 못했다.
그날, 놈이 내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수법.
【흠, 안 되나.】
제 공격이 가로막힌 것을 확인한 말파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까닥대더니.
【뭐, 됐어. 깨어난 것에서 대충 소기의 목적은 이뤘고.】
“…….”
회귀 전, 난 미리 지상에 강림해 있던 대악마들이 판데모니움, 총 일곱이라 여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활동’했던 것은 일곱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 일곱 외에 하나.
‘마신의 피’라는 매개를 이용해, 시조, 솔로몬에게 기생해 있던 빌어먹을 대악마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큰 그림을 보고.
“내가 이걸 놓쳤네.”
즉석에서 〈롱기누스〉를 소환해, 놈을 향해 쏘았다.
그것을 본 말파스가 히죽 웃더니 아무렇게나 제 관절을 꺾어서는 기괴한 모양으로 내 공격을 피했다.
【히힛, 〈롱기누스〉라! 아아, 저 빌어먹을 게 후대의 손에 재현됐다 이건가!】
“그냥 얌전히 박혀 주지?”
【싫거든?】
그 말과 함께 놈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순간, 공간이 갈라지며 그 틈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카아아아아!
하지만 그것들은 내게 그리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마신이나 대악마 정도가 아니고서야, 이제 내게는 별 의미가 없으니.
“〈성흔의 빛〉.”
마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일대를 성스런 빛이 가득 채우고 삿된 것을 태웠다. 그리고 갈라졌던 공간이 다시 붙었다.
【흠, 흠, 확실히 위험하네.】
말파스가 낄낄대며 웃는다.
경박스럽게.
물론 이 정도로 끝낼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롱기누스, 약식.〉
신을 꿰뚫은 창.
솔로몬이 만든 ‘진짜’와 비교하자면 한없이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대악마 정도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무기라 할 수 있으리라.
【상대할 생각 없거든?】
말파스는 그리 말하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애초에 놈은 지금 날 어찌할 생각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피한 뒤.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 마신에게 합류할 생각이리라.
물론 그렇게 둘 생각은 없다.
‘시조의 복수도 할 겸.’
내 시조, 솔로몬이 모습을 감춘 이유.
그건 단순히 마신에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솔로몬의 핏줄은 본래, 마신에게 복종할 운명이었지. 말파스, 넌 그걸 위한 첨병이었고.”
【…….】
내 말에 말파스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난 계속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조금씩 내 시조를 타락시키고 발푸르기스를 ‘악마’의 가문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네 목적이었겠지?”
【흐음, 그래서?】
“하지만 네 그 병신 같은 생각을 내 시조가 모를 리 없었고.”
도발하듯, 얄미운 미소와 함께 난 놈에게 말했다.
“미리 알아챈 시조가, 사도 샤브티의 도움을 얻어 ‘발푸르기스’의 핏줄과 널 분리해 냈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솔로몬은 말파스를 자신과 함께 이 무덤에 가둔 것이다.
【흠, 흠, 그래서? 이야기는 끝났나? 감동적인 이야기기는 한데, 난 여기 계속 있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거든? 그 솔로몬이 마지막에 남긴 ‘지식’도 챙겼겠다, 굳이 있을 이유도 없지.】
“하.”
【잘 있어, 멍청한 용사!】
그 말과 함께 놈의 모습이 순식간에 내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대악마로서 놈은 ‘도주’와 ‘은신’에 능하다.
회귀 전에도 안 날뛰었던 게 아니다.
암살자같이, 귀신같이 뛰어난 영웅들의 등을 찌르고 도망가는 것에 능했지.
대악마로서의 위신이라거나 하는 건 좀 떨어졌지만, 얄궂게도 그렇기에 더더욱 위협적이었다.
그때 이상하게 갑자기 나타나서 의문을 품었는데,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숨어 있었을 줄이야.
“미하일, 놓쳐선 안 돼!”
“알아.”
난 팔짱을 낀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날 본 세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움직여야 되는 거 아니야?”
“아, 그럴 필요 없어.”
왜냐고?
– 오랜만이다, 말파스.
사실 이 빌어먹을 악마에게 유감이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거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말파스가 눈을 부릅뜬 채 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힌 듯, 버둥댄 채.
【…… 뭐?】
놈의 앞에는 와이즈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여기까지 왔는데, 또 모르는 척하는 것도 좀 웃기고.’
내 시조, 솔로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