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81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81화
경악에 찬 채 잘게 떨리는 집사의 눈동자를 보며, 난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쓰라린 기억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는 최악이라 해도 될 기억.
– 어디, 만족스러우십니까?
– 가문의 멸망을 방조한 게 어떻습니까. 당신의 탓입니다.
– 당신은 가주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미하일 님.
그날은, 가문이 무너진 날이었다.
손쓸 도리도 없이, 처참하게.
마도명가로서 수많은 마법사들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았던 우리 가문이었으나, 그 끝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대악마의 군세라고는 해도.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조금도 반항하지 못하고 무너졌으니까.
많은 이들이 죽었다.
장렬하게 싸우다 쓰러진 이도 있었고, 우왕좌왕하다 쓰러진 이도 있었다.
그 가신들의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만 난 죽지 못했다.
자포자기해서는 죽기로 했으나 그조차 할 수 없었다.
– 함께 죽는 것이 용기라 생각하십니까? 진심으로?
누군가 그 적들을 뚫고 나를 구해 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경멸에 가득 차 있었다.
평소의 모습이라면,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분위기였다.
– 그렇다면.
그리고 날 구한 그 자는.
– 도련님의 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는 거겠지요.
바로 집사, 머르딘이었다.
* * *
“역시 전부,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래서…….”
“정확히는 몰라. 집사의 말대로 난 선천적으로 축복받은 육체를 타고났으니까.”
난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집사를 보며 웃었다.
설마하니, 그 집사에게서 이런 반응을 볼 줄이야. 정말 회귀를 하게 되니 이런 경험도 할 수 있는 건가.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내 육체가 아예 타고 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마법사로서 축복받았다 할 만한 재능과 육체를 타고 났다.
하나, 내 마나 순환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인 변화.
집사가 말한 그 일파의 비원.
난 이미 그 비원을 이룬 채, 몸에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그 결과물을 만들 방법이 있다는 말씀은…….”
“몸만 타고난 게 아니거든.”
누가 봐도 재수 없다 느낄만한 표정을 한 채, 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이 머리도 타고났지.”
“……!”
“내 육체가 어째서 이렇게 마나를 쉽게 받아들이는지, 또 어째서 일반적인 마법사는 하나도 힘든 마나 순환을 다중으로 일으키는 게 가능한지…….”
“잠깐…… 그걸, 설마 분석하셨다는 겁니까!”
“그리고 해석까지 했지.”
내 말에 집사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련님은 이제 스물입니다.”
“어, 맞아.”
“제대로 마법을 익힌 지는…… 10년? 아니, 아니지요. 제가 판단하기로는 간신히 3년을 채우셨을 터입니다.”
3년.
그랬다. 마법 자체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접했지만, 본격적으로 서클을 맺고 무언가를 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조차도 야매였지만.
뭐, 하여간.
“집사는 천재라는 게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예?”
“재능 말이야. 압도적 재능. 마법사라는 건 굉장히 불합리한 직종이지. 100년의 노력이 있어도 천재의 5년을 이기지 못해. 마법이란, 그 ‘재능’의 여부가 무척 극단적이란 말이지.”
“그건, 그렇지요.”
“집사가 말한 ‘3년’이라는 건 일반적인 범주의 3년이잖아?”
“……허.”
거기까지 들은 집사가 저도 모르게 입가를 떨었다.
“하긴, 재능의 범위는 무궁무진하지요. 제가 감히 판단하지 못할 만큼…….”
집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일파를 만들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걸 누군가는 타고날 수 있다니. 허허, 이런 불합리가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집사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짙은 회의감이 느껴졌다.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난 그런 집사의 회의감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익히고 있는 자율 순환식은 내가 당신과 함께 완성시킨 거니까.
하지만 그걸 말할 순 없다.
말한다고 한들 믿을 리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은 원래 원래 불합리한 법이지. 하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았어.”
“……무슨 말입니까.”
“집사의 몸 상태. 사실 거의 누더기나 다름이 없잖아?”
“……!”
“난 눈이 좋아. 아까 말했다시피 타고난 재능이지. 집사가 내게서 무언가 느꼈듯, 나도 집사에게서 뭔가를 느꼈단 거야.”
내 말에 집사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괜찮다.
재능과 노력.
집사만큼 이 둘에 시달린 사람도 없는 법이니, 낙담은 하되 절망을 하지는 않으리라.
“집사 역시도 그 일파의 발악에 의해 망가진 부류인 거 같더라고. 그래도…… 성과는 좀 있었던 모양이지만.”
“성과라……. 후후. 예, 있었지요. 성과는 있었습니다.”
집사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그는 피곤한 눈으로 저 너머 떠 있는 달을 쳐다보았다.
“어스름 학파.”
“…….”
“제가 속한 그 미치광이들이 속한 이름입니다. 저 달을 상징으로 하였지요. 마나가 가장 깊게 차오르는 것은 저 선명한 보름달이 떴을 무렵이니.”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어스름이었으니.
그 미치광이들의 일원이었으며, 미치광이들의 비원을 이룬 마지막 어스름.
그래, 그게 나였다.
“……뭐, 어쨌건 어스름의 가르침은 대를 이어 내려올수록 점점 정교해졌습니다. 적어도 처음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졌지요.”
“처음에 비해서는 말이지.”
“예, 여전히 객관적으로 보자면 위험천만한 수련법이지요. 얻을 수 있는 것만큼이나 감당해야 할 대가가 크기에.”
파들파들 떨며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전 7서클의 마도사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8서클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하고요.”
“확실히 대단하군.”
“8서클이라 불려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 아시겠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집사는 말했다.
8서클은 물론이고, 7서클마저 그의 재능으로서는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스름의 가르침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어쨌건 본래라면 불가능할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어스름의 마법사라 불렸지요. 오래가진 못했지만, 제 재능을 보고 비웃던 마법사들을 기세 좋게 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내부가 아작 났으니까요.”
집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능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육체에 과부하를 건 겁니다. 후후,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집사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짙게 서려 있었다.
육체의 과부하.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꽤 오래 살고 있잖아?”
“포기했으니 말입니다. 8서클에 올라설 욕심을 포기하고, 마법을 쓰는 것도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고서는 삼갔습니다.”
요컨대 마법사로서의 명예나 자존심을 포기하는 대신 좀 더 오래 살기로 했단 뜻이다.
8서클로의 도박 대신.
반쪽짜리 마법사에 만족하기로 했다는 소리.
“그래서 내게 관심을 가졌다?”
“제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생각했지요. 결국, 재능의 영역이라 제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만.”
집사가 툴툴대며 말을 이었다.
“……더러운 재능 같으니라고.”
“재능이 좀 더럽긴 하지.”
“벌써 6서클에 도달하신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3서클, 그마저도 불완전했던 분이, 하…….”
집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어쨌건 그렇습니다. 제 얘기는 다 했군요.”
“잘 들었어.”
집사의 정체,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점…….
뭐, 그런 건 전부 알고 있었으니 더 들을 필요는 없고.
내 말에 집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아시겠지요. 현재 제 몸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미 굳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흠, 그런가.”
“예, 수련법을 개선하고 싶어도 제 몸 상태는 개선된 수련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그럼 고치면 되겠네.”
난 간단하게 결론을 냈다.
내 말에 집사가 눈을 크게 떴다.
“예? 아니, 몸이 아주 아작 났다니까요? 그냥 지금 늙고 병들어서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라니까.”
“그러니까, 고치면 된다고.”
“아니, 그게 뭔…….”
마법사로서의 두뇌로는 영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야. 일단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 아니겠어?”
집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영 미덥지 않다는 듯 내게 말했다.
“허, 허어…… 아, 아무리 용사라지만, 그런 게 된다는 말입니까?”
“이전까지는 불가능했겠지.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잖아?”
물론, 구실이다.
용사가 특별하며 내가 지니고 있는 신성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집사를 완전히 낫게 할 정도의 힘은 없다.
성녀가 있다면 모를까.
하여간 내가 집사를 회복시킬 수단은 신성력이 아니다.
온전히 ‘자율 순환식’에 대한 내 이해도에 따른 작업이 될 터.
하지만 그걸 전부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미,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경우가 달라요. 제 몸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이건 고칠 수 있는 것이…….”
“신이 관련된다면야, 불가능하다는 말도 우스운 일이지.”
내 말에 집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좀 자고 있어.”
“그게 무슨……!”
“〈슬립〉.”
집사의 재능은 끄고, 켜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제한적.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무척이나 취약하다.
특히 상대가 제법 신용하고 있는 자라면 더더욱.
“도련…… 님, 이 개씨…….”
“아, 성깔 여전하네.”
대충 위급할 거 같으니, 상대가 누구건 다급하게 비속어부터 꺼내든다.
“……발.”
집사는 끝내 마지막까지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아마, 집사가 깨어난 뒤의 제법 반응도 볼만하겠군.
‘뭐, 딱히 나쁜 일로 이러는 건 아니니까.’
알아서 이해해 주겠지.
이해하는 건 집사가 할 일이지 내 몫이 아니지 않은가.
난 픽 쓰러진 집사를 잡아채서는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군. 이 묵직하고 서늘한 감각…….”
[또 뭘 하려고.]갑자기 세트가 튀어나와서는 영 불안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집사의 몸에 새겨진 문제점들이 정말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육체 개조가 미하일로 돌아갈 때다.”
세트가 옆에서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대충 개 짖는 셈 치기로 했다.
* * *
집사의 몸 상태는 엉망이다.
반송장이나 다름없던 회귀 전 시점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마법을 쓰는 데 적합한 상태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어지간히도 망가졌군.”
보통의 마법사는 마법을 쓰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
전신의 마나 순환점이 꼬였고, 각 순환점은 언제 파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게 보이니?]“당연하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났는지도 알겠는데.”
어떻게든 8서클에 도달하고 싶다는 한때의 집착.
사실 집사의 자율 순환식은 이미 꽤 완성되어 있었다.
문제는 집사의 조급함.
마지막 남은 어스름의 후예로서, 한시라도 빨리 ‘완벽한’ 수련법을 만들겠다는 욕망.
그게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억지로 순환 지점을 늘렸고, 만들어서는 안 되는 곳에 마나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기 시작한 마나는 마법을 쓸 때마다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오래 살려면, 마나 순환은 기껏해야 하루 30분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법 경지도 정체되고……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회귀 전, 가문이 무너졌을 즈음 집사가 마나 순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분이 채 되지 못했다.
“이제 바로잡을 때가 됐지.”
천천히, 조심스레.
회귀 전부터 설계해 뒀던 마법을 하나하나 맺기 시작했다.
〈어스름 복구식〉.
회귀 전, 내가 이 마법에 붙인 이름은 그러했다.
그리고…….
키잉.
마법이 환한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