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91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91화
새카만 기운에 감싸인 채, 관에서 일어서는 드라큘리온의 모습은 회귀 전과 같았다.
힘은 그때보다 아래였지만,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된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가 아니던가.
수왕, 성녀, 요정왕, 용사…….
그리고 9서클에 달했던 나.
아무리 높게 쳐 줘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뭐, 어쨌건.
〈아, 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드라큘리온의 시선이 체페슈 쪽에서 멈췄다.
그의 충혈된 눈이 흔들렸다.
〈체페슈, 내 아들아.〉
“……아버지.”
드라큘리온은 제 아들을 보더니 얼굴을 감싸 쥐며 헛웃음을 흘렸다.
〈크, 흐흐…… 너, 너마저.〉
웃음에 광기가 깃들었다.
그의 감정에 반응하듯 새카만 기운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깡말랐던 몸이 단단해지고, 주름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카만 갑옷이 그를 감쌌다.
〈너만큼은, 저들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 저택은 네 어미의 추억이 깃든…….〉
“오래전의 일입니다.”
체페슈가 안타깝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제 아버지를 응시했다.
그런 아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드라큘리온이 소리쳤다.
〈되살릴 수 있다! 처음에는 네 어미를 잃고 힘들었지. 너도 그렇지 않았느냐. 하지만 난 방법을 찾았다. 그자에게 들었던 방법. 그것만 있다면……!〉
“그 악마라면 죽었습니다.”
대신 내가 답했다.
〈……뭐라?〉
내 말에 드라큘리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 손에 소멸되었지요. 당신이 계획한 일이 무엇이었건, 그게 현실이 될 일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말한 그대로입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스태프를 소환했다.
새하얀 빛을 머금은 채, 신성력이 주변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엄청, 역겨운 기운들.]세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폭풍이 보호하는 한, 드라큘리온의 독기는 날 침범하지 못한다.
“당신, 끝났다고.”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내 말에 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드라큘리온이 소리쳤다.
〈선명하다! 아내가, 내게 미소 짓던 그때가 선명해! 그걸 다시 볼 순간이 코앞이다. 네놈이 뭐건……!〉
“제 알 바는 아닙니다. 제가 아는 건, 당신이 무분별한 학살을 자행했고 더 이상 당신에겐 구제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가 악마의 세뇌에 당해 망가졌다거나, 그 근원이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거나…….
그 어떠한 이유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오로지 결과가 말한다.
결과적으로 드라큘리온은 수만이 넘는 무고한 이를 학살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닥치고 정화됩시다.”
〈하하! 네가 무엇이기에!〉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소리치며, 드라큘리온이 광기를 폭발시켰다.
땅이 들썩이고, 새카만 진액이 그의 그림자에서 터져 나왔다.
〈아니, 차라리 잘 됐다! 전부, 내 현실을 위한 밑거름이 될 터이니……!〉
“아버지, 제발!”
체페슈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한 듯 간절히 외쳤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닿지 않는다.
이윽고 체페슈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하일 경, 부탁한다.”
“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라큘리온이 전진했다.
* * *
‘해야, 한다.’
체페슈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고쳐 잡으며 생각했다.
가족으로서의 정.
아들로서 아버지를 벤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설령 그것에 정당성이 있다 할지라도.
차라리.
‘차라리, 아버지의 폭주가 단순한 탐욕 때문이었다면.’
불로불사를 탐한다는 단순한 욕망 때문이었다면, 이토록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이토록 절망하지 않았을 텐데.
“으아아아!”
그런 잡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체페슈는 창을 뻗었다.
홀로 수만 번도 수련했던 창이건만 그리 날카롭지 못하다.
아버지에게 닿기는커녕, 창은 허공을 휘저을 뿐.
‘흔들렸다.’
그렇게 몇 번이고 생각했건만.
–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는 자연스레 직전에 용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가능한 것인가.
아버지를, 인연을 끊어 내는 것이 과연 자신에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수십 번을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동시에.
– 체페슈, 부탁한단다.
자신을 믿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아준 어머니.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불로불사라는, 이 저주받은 몸뚱이가 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
〈이곳으로 오거라, 아들아!〉
드라큘리온이 손을 뻗었다.
〈우리는 가족이다! 영원토록, 네 어미와 함께 한다는 내 생각을 어찌 이해 못하느냐!〉
광기.
하지만 체페슈는 그 광기에 자식인 자신을 향한 마음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광기와 부정.
벌어먹게도…….
아버지가 그 ‘악마’의 꾐에 넘어간 것에는 그런 것도 있는 것이다.
〈슬퍼하지 않았느냐!〉
아버지가 소리쳤다.
〈네 어미가 죽었을 때, 내게 그리도 서럽게 울며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아, 알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약한 마음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 어머니를 살려 주세요.
진실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을 이기지 못했을 뿐.
하지만 자신은 몰랐다.
아버지도 무너져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인 자신 이상으로 무너진 상태였다.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정신이, 자신의 그 말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더라면…….
그랬다면.
‘내게 자격이…….’
그때였다.
“체페슈 경.”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찌르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창을 내지르던 중이었다.
“……미, 미하일 경?”
“괜찮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
미하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들을 향해 치달은 오염 물질들을 간단히 방어해 냈다.
한번 손을 떨치자, 새하얀 신성력이 황홀할 정도로 화려하게 피어나며 주변을 감쌌다.
“아…….”
체페슈는 저도 모르게 그 황홀한 광경에 눈을 빼앗겼다.
눈앞에서는 제 아버지가 광기를 내보이며 날뛰고 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이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빛에 홀린다는 건, 당신이 아직 어둠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은 옳습니다.”
자신이 지금 하는 갈등.
고민, 고뇌…….
그 모든 것은 지극히 옳다고.
그 순간, 체페슈는 저도 모르게 눈앞의 ‘용사’를 향해 존칭을 담으며 말했다.
“전 지금…… 아버지에게, 주저하고 있는 겁니다.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단에게…….”
“그러니까, 옳다는 겁니다.”
미하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저래 건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용사다웠다.
“가족이 아닙니까.”
“하, 하지만…….”
“당신은 그 가족을 상대로 창을 들었습니다. 패륜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함을 각오하고서도 그랬지요.”
다 이해한다는 듯,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가족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설령 어둠에 떨어졌어도, 끊을 수 없는 게 핏줄이지요.”
새하얀 후광이 비쳤다.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성광은 주변의 오염을 정화했다.
〈안 된다, 그 아이는…… 내 자식이다! 네놈이……!〉
“그러니, 괜찮습니다.”
미하일은 재차 말했다.
덜덜 떨리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는 체페슈를 지나쳤다.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할 필요는 없어요.”
“……괜찮은 겁니까?”
“당연하지요. 정화는 제가 합니다. 당신이 평생을 지고 살아갈 짐을 질 이유는 없어요.”
“어, 어째서…….”
이토록 이해해 준다면 알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이번 일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음을.
하지만.
“뒤를 부탁합니다, 체페슈 경.”
다 안다는 듯, 쓴웃음과 함께 미하일이 자신을 위로했다.
제 아버지를 상대하는 대신, 자신의 뒤를 부탁한다고.
체페슈는 그게 그 나름의 위로 방식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체페슈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스태프를 높이 든 채, 성광에 휩싸인 그를 수많은 마법진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전설 속의 용사처럼.
그 환한 빛을 내뿜으며, 그가 체페슈에게 말했다.
“그래서 용사가 있는 것이니.”
* * *
서클 익스펜션.
곧바로 서클을 확장시키고, 전투를 준비했다. 그 사이, 드라큘리온은 자신의 권속을 소환하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감, 히……!〉
“감히는 무슨.”
난 피식 웃고는 손을 뻗었다.
“멀티 캐스팅.”
디바인 필러(Divine piller).
7서클의 신성 마법.
용어 그대로 신성력으로 가득 찬 기둥을 소환하는 신성 마법.
악하지 않은 존재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이 되는 힘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크아아아악!〉
이렇게 된다.
드라큘리온은 말 그대로 기둥 속에서 ‘지져’졌다.
전신이 타오르고, 보기 끔찍할 정도로 살갗이 처참하게 벗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흐!〉
죽지 않는다.
죽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큘리온의 힘이 강해졌다.
쨍그랑!
그를 누르고 있던 빛의 기둥이 산산조각이 나며, 드라큘리온이 날 향해 쏘아져 왔다.
‘창인가.’
본래 드라큘리온 가문은 창을 사용했던 기사 가문.
괜히 ‘꿰뚫는 자’라는 이명이 붙은 게 아니다.
그의 손에서 새빨간 피가 창의 형태로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안이 더 빨랐다.
“어딜!”
신성력이 가미된 오러.
콰앙!
새하얀 궤적이 창을 쳐 냈다.
굉음과 함께 기세 좋게 전진했던 드라큘리온의 몸이 꺾였다.
하지만 리안도 성하진 않았다.
“이게, 뭔……?!”
녀석은 한참을 밀려나서야 간신히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이거, 힘 완전히 소화 못시킨 상태 아니야?”
“어, 그 상태 맞아.”
“소화를 완전히 시킨 상태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지기에…….”
“뭐, 대충 마스터 셋 정도와 대결을 벌여도 밀리지 않을 정도는 될걸.”
“……미친.”
리안이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스터 하나로도 그렇게 압도됐었는데 그게 셋.
당연히 기가 질리겠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집사가 마법을 이용해 드라큘리온을 상대하며 물었다.
꽤 안정된 모양인지, 이제 7서클의 마법을 쓰는 데 익숙해 보였다.
“소멸시켜야지.”
“일단 불로불사를 상징하는 괴물로 알고 있습니다만, 소멸시키는 게 가능은…… 아, 이런.”
말을 채 끝내기도 전, 드라큘리온이 쇄도했다.
집사는 7서클의 마법으로 곧바로 드라큘리온을 불태웠지만.
〈소용없다!〉
놈의 몸은 곧바로 원상태로 회복된다.
아무리 타격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금세 회복하고 몸을 일으키니.
쯧, 하고 혀를 차며 집사가 말했다.
“바로 회복하는데요?”
“그렇겠지.”
상식적이지 않은 상대.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
“일단 방법은 있다는 거군요.”
“어, 효과는 확실할 거야.”
내 말에 리안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검에 서린 오러는 여전히 선명히 타올랐다.
“그 말은…… 우리가 시간을 벌면 된다는 거네?”
“어, 맞아.”
내 말에 리안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까앙!
〈가소롭다!〉
곧바로 드라큘리온과 녀석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염 지대라고는 해도…… 일단 내가 건넨 마도구는 물론이고, 신성력으로 보호도 해 놨으니 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꽤 성장하기도 했고.’
처음 보았을 때는 아무리 차세대 검성이다 뭐다 해도 미숙한 면이 많이 보였는데, 이제는 꽤 침착해졌다.
제법 내 기억 속의 ‘리안’과 닮게 됐다.
– 크르.
리안이 드라큘리온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드라큘리온의 권속들이 전진했다.
갖가지 무기를 든 채, 당장이라도 날 찢어발길 기세였지만.
“〈파이어 월〉, 멀티캐스팅.”
집사가 만든 불꽃의 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얼마나 버티면 될까요?”
“거의 다 됐어.”
그때였다.
– 크아악!
집사가 만든 벽을 뚫고, 권속들이 날 향해 쏘아졌다.
새카만 검이 마법을 준비하는 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하지만.
콰득!
“돕겠습니다.”
날카로운 창이 권속을 꿰뚫었다.
체페슈였다.
그는 권속을 꿰뚫은 창을 뽑아내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체페슈는 권속들 너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드라큘리온을 보며 간절히 말했다.
“제 아버지에게 안식을.”
시간이 지났다.
드라큘리온을 가로막은 셋은 아직 첫 번째 삶 때만큼 강하지 않았지만, 다들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인재들.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좋아.”
난 천천히, 손끝을 타고 흐르는 ‘결과물’을 느끼며 주먹을 굳게 맞잡았다.
됐다.
확실하게, 괴물을 정화시킬 마지막 준비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