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자하
“우와아아!”
그림자 밖으로 고개를 내민 루나의 탄성에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와, 그 찬란한 빛과 함께 보이는 낯선 대륙.
광활한 하늘 아래 펼쳐진 그 광경은 일행이 처한 상황과는 별개로 분명히 아름다웠으니까.
“멋지군.”
“아름다워.”
“하아, 진짜 왔네.”
마지막엔 감상을 망치는 푸념도 들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자하(紫霞)가 어디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되는 거야?”
에스티나가 피곤한 목소리로 그리 물은 순간에야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감상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차원 관측기가 열흘 뒤의 강림을 예고한 날로부터 이미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났으니.
에스티나의 말대로, 자줏빛 노을이라는 묘한 뜻을 가진 서진의 수도 ‘자하’를 찾아야 했다.
“오르투스처럼 가장 큰 섬의 가운데에 있다고 하니, 저쯤이겠네요.”
아르곤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군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모였고.
“가자.”
이내 타이니의 한마디와 함께 카일룸이 가속하며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
목표했던 큰 섬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기기묘묘한 양식의 목조 건물들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하자, 일행의 입에서 다시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납작한 돌처럼 생긴 무언가가 켜켜이 쌓여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지붕. 그러한 건축 양식은 서대륙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마치 아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저게 기와구나.”
“뭐?”
“아냐. 그런 게 있어.”
그리고 그들이 그런 낯선 풍경을 눈에 담고 감탄하고 있는 동안, 아래쪽에서도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검은 머리 노란 피부에 특이한 복식을 한 사람들이 일행을, 정확히는 카일룸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네.”
타이니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리던 아르곤이 그의 시선을 받고 딴청을 부릴 때.
에스티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일행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우리가 온다는 연락은 받았다고 했지?”
“그래. 잘 믿지 않는 모양이라지만.”
“뭐, 정령술도 마법사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니 경계할 만도 합니다. 그리고 우린 시간이 없죠.”
“흠…….”
아르곤의 말에 일순간 고민에 잠긴 일행.
이내 에스티나가 멀리 보이는 거대한 5층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가장 큰 건물이 왕성 같은데, 저 위를 몇 바퀴 돌고 나서 내려가죠.”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이자는 말뜻을 이해한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끼에에에에에!”
그들을 태운 카일룸이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왕성 위를 십수 바퀴 돌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것은 일행의 목적대로 충분한 어필이 되었는지, 머지않아 왕성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알아차렸겠지. 가자.”
타이니의 말과 함께 일행이 착륙을 준비하려던 순간.
“하?”
“어!?”
에스티나와 루나가 흠칫하며 짧은 신음을 토했고, 카일룸이 갑자기 빠르게 몸을 기울였다.
동시에 카일룸이 있던 자리로 날아든 푸른 오러가 담긴 화살을, 타이니가 잽싸게 잡아챘다.
타악.
우우우우웅.
“무슨……!?”
“재밌네.”
타이니의 시선이 왕궁으로 추측되는 5층짜리 건물의 첨탑 위에서 자신들 쪽으로 활을 겨누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향했다.
다소 놀란 듯한 눈빛의 남자는 귀하디귀한 비단옷 차림에 금은 장식도 잔뜩 두른 것으로 보아 신분이 꽤 높은 듯했다.
타이니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환영 인사에 답례는 해야겠지.”
우웅.
타이니가 잡아챈 화살이 푸른빛 대신 노을빛으로 물든 순간.
그의 손이 번개같이 휘둘러졌고, 노을빛 오러를 실은 화살이 남자를 향해 쏘아졌…… 아니, 던져졌다.
손을 떠난 순간부터 점차 빠르게 가속하는 화살.
모르스 비전인 사신투의 수법에 중력 속성을 섞은 투척기술, 투뢰(投雷)였다.
– 꽈아아아아앙!
“나이스 샷.”
남자가 있던 자리가 폭음 속에서 터져 나가는 것을 확인한 타이니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야!! 이 미친놈아!!!!”
뒤쪽에서 날카로운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뒤통수를 향해 치켜든 손을 차마 내려치지는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르곤의 목소리였다.
“왜? 뭐?”
타이니가 그 손과 얼굴을 번갈아 째려보자 아르곤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지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일종의 사신으로서 온 거잖아! 그런데 공격을 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아……!?”
“아는 무슨! 아으으으, 진짜!”
아르곤을 필두로, 일행의 비난하는 듯한 시선이 타이니에게 날아들었다.
항상 그의 편을 들어 주던 에스티나마저 시선을 슬쩍 피하고, 루나 역시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저쪽이 먼저 공격했잖아.”
타이니의 처량한 변명만이 허무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 * *
다행히 그 이상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왕궁의 가장 넓은 공터에 카일룸이 착지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고.
“티나, 조금만 더 카일룸의 현신을 유지해 줘.”
“응.”
노란 피부와 검은 머리 일색인 인파의 시선을 받으며, 일행은 카일룸의 등 뒤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타이니는 이곳에 오는 내내 준비했던 말을 내뱉었다.
“고마! 우리는 서대륙에서 온 사신입니더! 카룬 왕국에서 미리 통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심더!!”
마나를 가득 싣고 왕궁 전역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가 준비해 온 동대륙어 대사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고, 자연히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런데 이어진 반응은 타이니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푸하하하!”
“양키가 왜 남해랑 북해 쪽 사투리를 섞어 쓰는 거야?”
“저 사람 뭐야!?”
한순간에 퍼져 나가는 웃음소리.
‘뭐야……?’
타이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이는데.
그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붉은 옷을 입은 기사, 아니 무사 중 가장 앞에 있는 잘생긴 남자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일행을 맞이했다.
“서대륙의 사신을 뵙습니다. 서진의 호궁 무사, 강인이라 합니다. 통신은 받았습니다만 정말로 하루 만에, 그것도 신조(神鳥)를 타고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동대륙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행이 동시에 타이니를 바라보는데, 그는 여전히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여태 바보 소리를 많이 들어 오긴 했어도, 그는 결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으니.
무사의 말은 확실히 알아들었지만, 그 억양이나 말투가 자신이 배운 것과는 꽤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방금 사람들이 웃은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어, 그, 그럼 말이 이미 됐을 낀데요? 국왕 전하를 뵙고 싶심더.”
말은 여전히 똑같이 나왔다.
“푸흡!”
“큭, 대체 어느 지역 말……?”
“차, 참아.”
왕궁 앞에 모여든 무사들이 저마다 하늘과 땅, 좌우로 고개를 돌렸고.
강인이라는 자 역시 얼굴이 벌게진 것을 보니 몹시도 쪽팔렸다.
‘씨, 씨X…….’
어쩌면 자신의 뿌리가 동대륙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절, 언젠가는 조상의 고향(?)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배워 놨더랬다.
그때부터 자리 잡은 말투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주변 사내놈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에스티나를 훑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러다.
“쟤들 너 비웃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야?”
“동생, 괜찮?”
묘한 표정의 아르곤과 에스티나, 그리고 대신 화를 내 주는 루나의 모습에 그는 애써 침착한 척을 해 보였다.
“좋은, 좋은 반응이야. 음, 좋아하고 있는 거야.”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에 가깝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그런데 그때.
– 이놈!!!!!”
왕궁으로 추측되는 5층 건물 쪽에서 갑작스레 고함이 들려왔다.
이내 정문으로 보이는 뚫린 문 안쪽에서 중년 남자가 날 듯이 빠르게 뛰쳐나오더니, 완만하게 휘어진 곡도에 이글거리는 오러를 일으켜 다짜고짜 타이니를 향해 휘둘렀다.
‘허!?’
거의 2~300m의 공간을 한달음에 압축한 것 같은 비상식적인 움직임.
게다가 그 곡도에 어린 오러는 단순히 불꽃처럼 이글대는 것이 아니라 처음 보는 기묘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오러의 절삭력을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아까 화살을 쏜 그놈이군.’
하지만.
‘제법이네.’
타이니의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오러유저가 특별한 기술을 통해 그 움직임과 파괴력을 극대화했지만, 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쾅!!
순식간에 방패 형태의 노을빛 오러를 일으킨 왼손으로 그 검격을 흘려 낸 타이니.
자세가 무너진 중년인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는 순간.
그 틈을 타서 파고든 타이니의 오른손이, 중년인의 왼쪽 발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으드득.
쾅!
우르릉.
“컥!”
그대로 휘둘러진 중년 남자가 흙바닥에 제 얼굴 모양의 도장을 찍어 가며 비명을 토해 냈다.
‘성질 같아서는 아예 끝장을 보고 싶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던 타이니는 그대로 습격자의 발목을 놓고 물러섰다.
그런데.
“왕자 저하!”
왕자?
이 대륙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왕자 저하!”
“이런!”
“저 무도한 자들을 체포하라!”
챙! 챙!
“어…….”
가속된 의식 속에서 체감된 시간이야 길었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년인을 타이니가 제압한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강인을 비롯한 호궁 무사라는 자들의 반응은 너무 극적이었다.
‘왕자라니?’
타이니가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딱 봐도 중년은 돼 보이는 얼굴에 오러유저인데.
“와, 왕자라꼬예? 그, 그렇기엔 너무 삭았심더!”
그 말에 흙바닥에 박힌 채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던 중년인의 고개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타이니를 향해 끼긱 돌아갔다.
원독 어린 눈길.
“저, 저놈. 자, 잡아…….”
‘하? 지가 먼저 공격해 놓고.’
아예 끝장을 낼 걸 그랬나?
황당한 마음을 가득 담아 놈을 바라보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일행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타이니?”
“야, 씨!? 너 지금 사고 친 거지?”
“동생, 싸워?”
우우웅.
에스티나의 활, 아르쿠스의 시위에 녹색 오러의 화살이 맺히고.
아르곤의 검, 마기아에도 7가지 색깔의 오러가 솟구쳤다.
“어? 너희들이 지금 그러면…….”
타이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일행을 향해 손짓하는 순간.
“무형시(無形矢)?? 칠채검강(七彩劍罡)!? 제길, 절대고수들이다!”
“어찌 사신이라는 자들이 겁박을……!”
채채채챙!
지켜보던 무사들도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었고.
피이이잉!
펑.
그들 중 누군가가 던져 올린 둥근 물체가 공중에서 폭발하더니, 이내 붉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하늘을 수놓았다.
“……일이 더 커진 거 같은데.”
하하. 씨X, 개판이네.
타이니의 표정이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제대로 꼬였다. 어쩌지? 망할!’
한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극단적인 방법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다 때려눕히고 왕을 찾아?’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어쩔 거야, 타이니?”
“상황 설명, 해 봐.”
“저 오러유저는 뭔데? 왜 갑자기 습격을…….”
어지럽게 쏟아지는 일행들의 목소리에 괜스레 머리가 아파 오는데.
– 모두 동작 그만!!!!
궁궐의 깊숙한 곳에서, 장내를 진동시키는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