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75
475화. 나태 (1)
“끼에에에에엑!”
두꺼운 갑각의 인간형 벌레가 온몸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붉게 달궈진 껍질 안쪽 모든 체액이 증발해 버렸으니, 아무리 악마급이라 한들 살아남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강철의 거인, 아니 드워프를 노려보았다.
[인간, 원통. 방심…….]“뭐라는 거냐, 전쟁에서.”
쩌어어억.
테그멘의 강철 도끼가 거대한 인간형 벌레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리고 연달아.
“전부 뒈져라!”
꽈아아아앙!
허공에 붉은 갈색의 파도가 퍼져 나가며, 달려들어 오던 근방의 마충들을 쓸어 냈다.
‘한동안은 못 쓰겠어.’
하지만 충분했다.
이미 장군급은 아니더라도 부관급은 되는 악마급 둘을 홀로 처리했으니.
‘불벼락을 개조한 보람이 있어.’
더 이상 악마급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나머지는 다른 12대 기사가 잡았을 것이다.
‘할 만큼 했다, 불벼락. 이제 쉬어라.’
하이넨은 과열된 불벼락을 흘깃 쳐다보며 다시금 주변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파바바박.
위이이이이잉.
타다다다다당.
공포심도 감정도 없이 그저 적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마충 떼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온몸을 오러로 감싼 데다가 ‘희망의 빛’의 힘까지 받고 있는 오러유저를 일반 마충들이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순간.
‘위험!?’
흡.
갑작스레 느껴지는 직감에 따라, 그는 미친 듯이 테그멘을 움직였다.
파바박.
육중한 강철의 거인이 붉은 갈색의 오러를 머금고 미친 듯한 속도로 움직이는 순간.
파바바박.
그 움직임을 따라, 그가 있던 자리에 콩알 같은 검은 구슬들이 날아와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뭐, 뭐야!?”
보통 사람이 보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하이넨은 검은 구슬이 땅을 뚫고 들어간 깊이가 측량이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단숨에 파악해 냈다.
그리고 그 공격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파바바박.
‘이, 이런 미친……!?’
분명 전투 예지를 통해 미친 듯이 피해 내는데도, 적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검은 구슬은 간발의 차이로 그를 스쳐 지나갔다.
[제법이야. 하나같이 짜증 나는군. 귀찮게…….]뒤이어 소름 끼치는 영파가 하이넨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하나같이?
‘미친……!?’
그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저 영파만으로 몸이 떨리게 하는 존재감.
실제로 그것 때문에 몸의 반응이 아주 약간 느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쏟아지던 검은 구슬의 세례 중 몇 개가 그의 몸이나 다름없는 테그멘을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앙!
콰드드득.
반사적으로 휘두른 오른손은 거의 넝마가 되었는데.
[진짜 몸도 아니라……? 하. 수지가 안 맞는구나, 네놈.]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그제야 검은 구슬의 세례가 그쳤다.
“대체, 이게 무슨……?”
한순간에 영문도 모른 채 넝마가 된 테그멘의 오른손.
위이이이잉.
주변에서 다시 덤벼드는 마충 떼에 눈길이 가지 않을 정도로, 하이넨은 혼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가.
– 스승님!!
웨폰 마스터가 있는 관저 너머 한참 뒤쪽에서 터져 나온 엄청난 고함을 듣는 순간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의 빛’을 구동하던 마도사와 사제들의 보호막이 사라진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뭔가 잘못됐다.’
그 생각에 하이넨은 본능적으로 내성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지키고 있던 관저의 창문을 통해, 웨폰 마스터가 몸을 일으키는 광경이 보였다.
그 옆에 용사가 있는 건 의외였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그리드의 모습이 더 신경 쓰였다.
하이넨은 그 손짓을 따라 홀린 듯 관저를 향해 뛰어들었다.
와장창!
“아니, 얌전히 좀……!!”
위이이이잉.
“기사들, 벌레들을 막아!!”
“……창을 깨면 벌레들이 따라 들어오잖아! 이 땅딸보야!”
어지럽게 엇갈리는 목소리.
항상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던 그리드의 거친 욕설이 하이넨은 왠지 반갑게 느껴졌다.
분노하거나 이성을 잃어서가 아니다.
품위니 예절이니 하며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던 친구가 마침내 그것을 깨트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명했다.
“성공했군, 자네!”
그런데 하이넨이 환호성을 마저 지르기도 전에, 그리드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설명할 시간 없소. 불벼락 잠시만 빌립시다!”
“뭐?”
“어차피 곧 박살 난다며!? 한 방에 거하게 써 버리고 끝냅시다! 방법이 있어!”
“어? 어……!”
변해도 너무 변했다.
테그멘의 왼손에 장착된 개조 불벼락이 허망하게 붙들려 빼앗기는데.
그 순간, 웨폰 마스터의 다섯 초월무구들이 그의 주변으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이거 한 방으로 탈진할 거다. 기사들, 그리고 하이넨 공. 나와 용사를 확실하게 호위 부탁합니다!”
“그, 그러긴 할 텐데…….”
“여기, 화염 마법 룬 문자 뭡니까?”
“여기, 여깁니다.”
콰드드득.
용사의 지적에 따라, 그리드는 모든 모든 마나를 화염 마나로 변환시키는 불벼락의 룬 문자를 거친 손길로 지워 버렸다.
“야 인마!!!”
하이넨이 화들짝 놀라는 순간.
우우우웅.
그리드의 오러를 받아들인 다섯 초월무구가 다시 불벼락을 향해 그 힘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마나가 증폭되는가 싶더니.
주변을 감싼 특별한 파동이 불벼락 안으로 수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이이이이잉!
불벼락의 끝에서 쏘아진 차가운 빛줄기가, 그리드에게서 시작된 그 묘한 파동을 싣고 그대로 벌레 떼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게 보였다.
‘고작?’
동시에.
콰드드드드득.
드워프의 역작, 초월무구 불벼락이 힘없이 부서지는 모습도.
그 순간 하이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인마!!!!!”
대단한 효과가 보였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빛줄기 하나 뽑아 놓고 그대로 초월무구를 날려 버리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 고함지를 힘도 나질 않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아르곤 경이 뭔가 한 모양인데요?”
창백한 안색의 그리드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용사 역시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증폭시켰군요. 단발성 확장 영역에 오버 히트 시킨 초월무구, 거기다 대마도사의 증폭 마법까지……. 완벽합니다. 특히 당신의 영역이…….”
“당연히 그래야죠. 전력을 쏘아 낼 때 딱 한 번 쓰고 하루 내내 사용 못 하게 만들었는데, 영역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웃깁니다. 그 효과도 벌레들처럼 작은 생명체에 국한되고요.”
그 말에 용사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제 생각보다 더 극단적으로 가셨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인류를 위해서 아닙니까.”
하이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초월무구를 박살 내면서까지 고작 빛줄기 하나 쏘아 내 놓고, 마치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대화를 나눈다.
‘뭐지? 나만 멍청인가?’
황당한 생각에 멍하니 굳어지는 순간.
“어!?”
호위 기사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보니,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마충들이 갑자기 후드득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연락을 보내라! 일반 마충은 30분 내로 전부 전멸할 예정!! 강자들은 반전하여 벌레들의 군주, 분노를 죽이라고!!”
그리드의 외침에 기사들의 표정이 확 변하는 순간.
– 어!? 어!?
전장에 확연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두둑.
투두두두둑.
공중에 가득하던 벌레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다가 점차 많은 수가 갑자기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하는데.
그 벌레 하나하나가 푸른 성에가 낀 듯이 얼어 있는 모습이 그제야 하이넨의 눈에 들어왔다.
“특이 영역 진화, 벌레잡이 냉기 전염병……. 그 정도로 이름 붙이면 될까요? 꼴사납네요, 참.”
“그 꼴사나운 것 덕분에 이 전쟁은 승기를 잡았습니다.”
용사와 그리드의 대화를 들은 하이넨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 보던 그때.
[감히!!!!!!!!]동쪽 하늘 저편에서 7개의 뿔과 7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여왕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놈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벗겨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전장의 정경.
바다에는 인어족의 시체가 넘쳐 났고, 그 피로 붉게 물든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위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크라켄의 촉수.
그것을 확인한 인류 연합 대다수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끝냅시다!”
“가자!”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여왕벌을 향해, 희망의 빛을 두른 저릭이 검은 늑대를 타고 돌진했다.
그리고 어느새 기력을 회복했는지, 다시금 최전선으로 달려 나간 검제가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전부 뒈져라!!”
우르르르릉!
꽝!
지상에 살아남은 마충 중에서 초월급으로 추정되는 여왕 벌레들은 실버팽의 벼락이 휩쓸었고.
“전군 돌진!”
제나스를 비롯한 블루윙과 다른 기사단들, 그리고 성기사들도 나서서 놈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이이이잉.
갑작스러운 재앙을 피해 날아오르려던 여왕 벌레들은.
스각.
스걱.
지상에서 높게 날아오르기도 전에, 그림자에서 솟구친 검은 단검들이 정리해 버리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한순간에 사기가 충천하는 광경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상 마충 군단이 전멸해 가고 있는 상황.
아무리 칠죄종이 강하다 한들, 아무리 비행형이라 한들 희망의 빛의 축복을 받는 연합군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넨을 비롯해 좀 전에 검은 구슬 공격을 당했던 12대 기사 중 일부의 생각은 달랐다.
‘좀 전의 그놈은 저 여왕벌이 아닐 텐데?’
특히나.
쿨럭.
“전군 전투 준비! 칠죄종이 하나 더 있다!”
심장 부근이 꿰뚫린 듯한 모습으로 피를 토해 내는 갓 핸드가, 전장의 중심에서 분위기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분노를 향해 허공을 내달리던 저릭과 검제가 한순간에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어떻게 이렇게 무능할 수가…….]분명 인간형인 마족 하나.
하지만 그 하나의 존재감이 거대한 여왕벌, 분노의 존재를 가리고 전장의 시선을 모두 잡아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감이 지켜보는 모두의 움직임을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
“솜누스……!”
크롬벨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사방에 넓게 퍼져 나갈 정도로 한순간에 조용해진 전장.
그 위에서 분노한 한 마족의 정신파만이 울려 퍼졌다.
[크라켄을 맡으라고 했지, 라스! 인어족을 다시 지상으로 돌리라고! 한심한 놈! 멍청한 놈이 고집만 세서 일을 다 말아먹어!?]전장을 떨쳐 울리는 분노한 정신파에 거대한 여왕벌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 혹시 마족끼리 싸우나?
그 희망찬 생각이 인류 연합 대다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거대한 여왕벌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전투는 우리가 패했다, 인간들. 인정하지. 하지만…….]멀리 떨어진 상공에 홀로 떠 있는 인간형 마족 하나.
그 붉은 눈이 전장의 모든 이의 눈앞에 떠오른다 싶더니.
[너는 여기서 죽어야겠구나. 반드시.]번쩍.
마족의 손끝에서 나온 검은 빛줄기가 상공에서 지상의 한 지점을 검은 선으로 이었다.
그 결과.
“커억……!”
한순간에 심장을 꿰뚫린 웨폰 마스터가 허망한 눈으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솜누스!!!!”
“그리드!”
“이런!”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경악하고, 누군가는 슬퍼하는 순간.
“전군 공격! 저 인간부터 노려라!!!”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검제의 분노한 고함이 굳어 버린 연합군의 정신을 깨웠다.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놈들이 있던 바로 아래의 바닷물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마족, 원수!]– 꾸어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앙!
바닷속에서 솟구친 여태까지보다 배는 커다란 촉수가, 허공의 거대한 여왕벌과 인간형 마족을 동시에 쓸어 버리려는 듯이 휘둘러지는데.
[주제도 모르는 것이……!]다시금 허공에 붉은 눈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스각.
가벼운 소리와 함께,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반으로 잘려 나갔다.
[라스, 크라켄을 처리해라.]마족, 슬로스의 영파가 울려 퍼지는 순간.
번쩍!
우르르르르릉.
지상에서 쏘아진 실버 팽의 샛노란 벼락이 허공의 놈을 강타하고.
어느새 그 눈앞까지 날아오른 검제의 붉은 검이 엄청난 힘을 품고 놈의 머리 위로 휘둘러졌다.
그사이 다시 검은 늑대를 탄 저릭이 새하얀 빛살을 휘감은 도끼로 허공에 만월을 그렸다.
그러나.
콰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콰.
강렬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충격파 속에서.
[기왕 힘을 써 버렸으니, 그놈이 오기 전에 최대한 죽여 놓고 갈까?]나태는 너무나도 멀쩡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절망을 새겨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