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18 우연과 필연
* * *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뭔가 생각했던 거랑 이미지가 많이 다르네.’
홍대입구역 근처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뉴스나 뉴튜브에서 찾아본 홍대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거리!
청춘을 불살라버리는 곳!
나 이외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죽여버리겠다아아!
덤벼라 이 X 같은 세상아!!!
대충 이런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조용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됐다.
삼삼오오 모여 어디론가 이동하는 무리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커플로 추정되는 이들.
획획 지나가는 오토바이.
너무나 평범한 서울의 모습이었다.
나는 지하철역 앞에 있는 KFC를 지나 안쪽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중간중간 지도를 펼쳐 방향을 확인하고 더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조금 허름한 건물이 인상적인 한 장소에 도착했다.
‘여긴가?’
지도상 정확했다.
내가 찾던 상호의 간판도 찾았으니 여기가 맞다.
그런데 뭔가 께름칙했다.
어제저녁 뉴스에서 복면을 쓴 두 명이 길 가던 남자를 퍽치기해서 금품 30만 원을 약탈해갔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봤었다.
그 남자는 도둑들을 쫓아가다가 핸드폰을 떨어트렸고, 깨진 액정을 쥔 채 울먹거리는 장면이 뉴스에 그대로 나왔었다.
‘액정 수리비가 30만 원보다 더 나온다고 했었는데···.’
도둑이 잡히긴 했지만 이미 30만 원은 다 쓴 뒤였고, 깨진 액정도 멀쩡히 돌아올 것 같진 않았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도 비슷했다.
나에겐 지금 무려 현찰 19만 원이 있다.
여기서 만 원이 빠진 이유는 교통카드를 충전하는 데 쓴 돈과 오는 길에 허기가 지는 바람에 피자빵을 하나 사 먹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하필 빵 굽는 시간에 그곳을 지나간 게 문제였다. 냄새가 너무 좋았어. 그걸 누가 참을 수 있겠나.
크흠.
하여튼!
내가 이 외진 곳에서 강도를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짜리몽땅한 몸뚱이로는 건장한 성인 도둑놈을 이길 수 없다.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지갑을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가방끈도 몸에 딱 맞게 조였다. 만약의 사태가 생기면 곧바로 뛸 수 있는 준비를 해 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던전 입구로 들어갔다.
건물의 지하 깊숙한 곳.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곳엔 ⌜Star 악기점⌟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리고 가게 앞에는 입간판도 하나 서 있었는데, 다행히 인터넷과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절찬 폐업 세일 중! 최대 90% 할인! –
내가 이곳에 온 이유.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파밍을 해야 했다.
* * *
“으음···.”
전날 진탕 술을 퍼마시고 가게에서 자고 있던 한 남자, 홍대성은 일어나자마자 시계부터 확인했다.
10시 7분.
가게 오픈 시간인 10시에 딱 맞춰 일어났는데도 어째 손님은커녕 길고양이조차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엔 9시에 문을 열어도 사람이 항상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손님이 줄어들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먼저 게임, 만화, 영화 등등 세상에 놀거리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굳이 악기를 배울 이유가 있겠나.
구태여 힘들게 악기를 배워봤자 숙련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숙련돼봤자 써먹을 곳도 별로 없다.
예전처럼 통기타 연주로 연인에게 어필하던 세상도 이젠 아니다.
낭만과 사랑은 고대 유물처럼 변한 지 오래였고, 그에 따라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점점 사라졌다.
심지어 요즘엔 악기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 번 사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해야 할 악기를, 단 한 번의 만남도 없이 인터넷으로 사버린다.
그게 경제적이니까.
그게 합리적이니까.
물론 그들은 탓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프라인 악기점을 오래 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푸념 같은 거였다.
홍대성은 카운터 의자를 뒤로 제껴 다시 누워버렸다.
오랜 시간 홍대에 붙박이처럼 지내면서, 인디 밴드 생활을 하면서, 공연을 하면서, 악기점을 운영해온 시간이 조금 씁쓸해졌다.
‘뭐···. 그 시간이 아까웠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빈둥빈둥, 천장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보고 어떤 동물하고 비슷하게 생겼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그때.
딸랑! –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안녕하세요?”
“어?”
“아무도 안 계시나요?”
“나 여기···.”
홍대성은 조금 어린 듯한 그의 목소리에 놀라 의자 레버를 반대로 당기는 바람에 뒤로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허리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난다.
소리를 보아하니 분명 전치 2주 급이다.
홍대성의 귓가에는 한의원 선생님의 ‘쯧. 쯧. 거 좀 조심하시지. 또 왜 오셨어요?’라는 불평이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두다다닥 거리는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카운터에 몸을 기댄 채 빼꼼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애.
그는 홍대성의 화려한 문신을 보고 흠칫거리나 싶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 그···. 사장님? 직원님?”
똘똘하게도 생겼네.
그런데 저 꼬마애는 이상한 말부터 뱉었다.
“혹시···. 강도를 당하셨나요?”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로 실례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 만에 웃어보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본인이 강도님이신가요? 그렇다면 저는 바빠서 이만···.”
홍대성은 누운 상태로 한동안 큭큭거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특이해 보이는 애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나를 보고 쪼는 기색도 없이 당돌하게 할 말은 다 한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이 순간.
그게 한서진과 홍대성의 첫 만남이었다.
* * *
용호상박이라 했던가.
용과 호랑이가 서로 얽히고설켜 싸우고 있는 실제 형상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마어마하네.’
⌜Star 악기점⌟의 사장 or 직원 or 강도로 보이는 사람의 몸에는 호랑이와 용이 새겨져 있었다.
반짝이는 그의 머리와 대조적으로 나시티 바깥에 드러난 문신은 분명 위압감을 줬다. 근육질 몸매는 또 어떻고.
만약 그가 쓰러진 채로 허리를 잡고 있지만 않았다면 나도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누운 채로 얼마간 큭큭거리던 남자는 내게 엄지를 보여줬다.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나 여기 사장 맞아.”
“어···.”
“거기 카운터 앞에 있는 사진 봐봐. 나 맞잖아.”
“아~”
‘어’가 ‘아’가 된 건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펍 같은 곳에서 전자기타를 들고 있는 그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시판이 카운터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힘들 땐 돕고 살아야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묵직한 한 손으로 내가 내민 양손을 꽉 하고 잡았다. 있는 힘껏 확 하고 잡아끈다. 체격이 얼마나 좋았는지 내 몸이 붕 뜨는 줄 알았다.
거구.
그는 정육점 아저씨 뺨치는 덩치의 소유자였다.
남자는 몸을 툭툭 털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악기 보러온 거야?”
“아, 네. 어쿠스틱 기타랑 다른 것도 조금요.”
“다른 거? 악보 같은 거?”
“네.”
“내가 설명부터 해줄까? 아니면 먼저 둘러볼래?”
알고 봤더니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신 사장님이셨다. 이래서 사람이 생김새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분명 어제 뉴스에 나왔던 강도와 꽤 흡사하게 생기시긴 했지만, 그래서 움찔하긴 했지만, 뭐 그건 이미 지난 이야기였다.
“그럼 먼저 둘러볼게요.”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나는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매장은 굉장히 넓었다.
지하층 대부분을 쓰는 것 같은 이 악기점엔 어쿠스틱 기타부터 일렉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등 없는 게 없어 보였다.
가게 입구 쪽에는 작은 소품들이 모여있었는데 나는 거기에서 공책 하나는 쥐곤 손을 떨 수밖에 없었다.
“500원···?”
“어. 그거 세일 중이다. 싸지?”
동네 오메가 문구에서는 한 권당 3,000원은 하는 오선지 공책이 여기선 무려 1/6 가격이었다.
천국.
그래.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나는 이성의 끈을 놓을 뻔한 것을 간신히 되돌려 놓으며 필요한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 원 정도만 쓰고, 나머지로 기타를 사면 된다.
인터넷에서 보고 왔던 입문용 기타가 16만 원이니 여유자금이 조금 있었다.
내가 물건을 고르는 중간중간 딸랑이 종소리와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들이 오가는 게 느껴지긴 했다. 다만, 나는 그곳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닥과 벽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어쿠스틱 기타들은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밀러 아저씨가 내게 틈틈이 설명해줬던 명품급 기타도 많이 보였다.
마틴, 테일러, 깁슨 같은 유명 회사의 제품부터.
콜링스, 굿얼, 맬퍼슨 등의 하이엔드 핸드메이드 제품까지.
은은히 퍼지는 통기타의 나무 향이 괜스레 내 심장을 콩닥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가게 안을 찬찬히 살피던 중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가게 구석진 곳에 세워진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 발견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기가 팍 죽은 모습을 하고 있는 기타.
진짜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최소한 그렇게 느꼈다.
“중고 기타를 보려고? 그것도 초보한텐 괜찮지.”
어느새 가게 아저씨는 내 뒤에 와있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이거 중고예요?”
“어. 여기부터 저기 코너 끝까지가 중고. 처음에 네가 보던 곳이 새 상품이 진열된 곳. 저기 기둥이 분기점이야.”
일종의 상술 같은 건가?
아무래도 새 상품을 먼저 본 뒤에 중고를 보게 되면 마음이 쏠리는 건 새 상품일 테니까.
마진율도 아마 더 좋겠지.
하지만···.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혹시 저거 쳐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그런데 기타 칠 줄은 알아?”
“조금은요.”
“어려서부터 배웠나 보네. 멋지네.”
그런데 저 아저씨는 괜히 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언제 나를 봤다고 저런데.
나는 그 어쿠스틱 기타가 가게 아저씨의 손에서 내 쪽으로 내밀어지는 순간을 가만히 지켜봤다.
마치 슬로우모션이 걸린 듯 그 동작은 느리게만 느껴졌다.
아저씨의 걸음걸이, 손동작.
인고의 시간 끝에 받은 통기타는 내 손에 착하고 감겼다. 내 품에 따뜻하게 안긴다.
이 기타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기타였다.
“RL-173···.”
“어? 몇 년 전에 단종 된 국내 브랜드 기타인데. 혹시 아는 기타니?”
“네.”
“그래? 대중들한테 많이 알려진 브랜드는 아닌데. 신기하네.”
밀러 아저씨와 무인도에서 지내면서.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기타.
이 어쿠스틱 기타는 밀러 아저씨가 말대로 어느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는 로컬 브랜드의 기타였다.
나는 조율도 되지 않은 그 기타를,
우선 가볍게 튕겨봤다.